140화. 브르타뉴 반도 방어전 (4)
1944년 9월 10일.
프랑스, 브르타뉴 반도의 생 말로에 위치한 영국 1군 사령부.
이곳에서, 약 한 달 만에 유럽 대륙으로 돌아온 몽고메리 원수는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래서, 자네 말은 결국 이번 공세 작전도 실패했다는 것 아닌가?”
“···예. 43사단의 햄프셔 연대가 퍼싱 중전차까지 투입하면서 전선을 돌파하려 했지만, 결국 적군의 신형 중전차에 의해서 모두 격퇴당했다고 합니다.”
“젠장, 티거 중전차도 이제 겨우 상대하는 판국에 또 신형 중전차가 등장했다고?”
몽고메리는 햄프셔 연대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읽으며 침음을 삼켰다.
현재 연합군이 보유한 가장 강한 전차, M26 퍼싱의 주포로도 정면 장갑을 관통하지 못했다니. 그럼 파이어 플라이의 17파운더로도 관통하기 어려울 터였다.
“빌어먹을··· 그럼 항공 지원이라도 불렀어야지. 애써 제공권을 장악해놓고서 아군 항공대는 도대체 무얼 했단 말인가?”
그런 몽고메리의 호통에, 이번에는 사령부에서 대기하던 공군 연락 장교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죄송하지만, 원수 각하. 며칠 전에 처음 등장한 독일군의 신예기 때문에 저희 육군 항공대도 이전처럼 자유롭게 항공 지원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신형 중전차에 이어서 이번에는 신형 전투기인가? 쯧쯧, 독일놈들은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는 모양이군.”
그런 참모들의 보고에 몽고메리는 혀를 끌끌 차면서 지도를 바라보았다.
현재 그가 이끄는 영국 1군은 약 2주 전, 생 브리외와 플로에르멜을 점령한 이래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
물론 이는 갑자기 등장한 신무기 때문에 전세가 바뀐 것이지, 몽고메리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현재 연합군 사령부 내에서 영국군과 몽고메리의 입지가 상당히 애매해졌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사정을 돌이켜보면 문제의 원인은 올해 5월, 아이젠하워 장군이 세르부르 항구를 사수하기 위해 영국군의 구원을 포기하면서부터였다.
물론 이는 전략적으로 타당한 판단이었지만, 그로 인해서 영국군은 심각한 피해를 입은 채 유럽 대륙에서 쫓겨나야 했고, 휘하의 병력을 잃은 몽고메리도 결국 지상군 총사령관 자리를 반납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대영제국의 입장에서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이에 처칠은 몽고메리에게 아이젠하워나 패튼보다도 훨씬 높은 원수 계급장을 수여하며 그를 달랬다.
그리고 아이젠하워와 루즈벨트 역시 중요 동맹국인 영국의 불만을 달래주기 위해서 다시 돌아온 몽고메리에게 다수의 병력과 물자를 지원하고 가장 중요한 전선을 맡기며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몽고메리의 자리였던 지상군 총사령관직은 결국 계속 패튼에게 맡긴 채였고, 그로인해 원수가 된 몽고메리는 대장인 아이젠하워와 중장인 패튼의 지휘를 받는 꼴이 되었다.
게다가 그가 지휘하는 영국 1군 또한 병력의 절반 이상이 미군 사단들로 이루어져 있고, 기갑부대 또한 대부분 공여받은 M4 셔먼과 M26 퍼싱으로 편제되어있는 상황.
이렇게 사실상 미국이 모든 역할을 다 맡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만큼, 연합군 내부에서 영국군과 몽고메리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기랄, 천하의 대영제국이 이렇게 돈만 많은 촌뜨기 졸부 놈들에게 질질 끌려다닐 수는 없지.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우리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이에 몽고메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만만하게 브르타뉴 반도 포위 작전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물건들이 튀어나와서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것은 바로, 독일군이 투입한 신형 중전차 쾨니히스 티거와 메서슈미트 262였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브르타뉴 반도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인가?
‘기갑부대는··· 저 빌어먹을 신형 중전차를 격파하지 못하는 한 아무리 많은 병력을 투입하더라도 성과를 내기는 어렵겠지. 그렇다고 공군력으로 밀어붙이기에도 전력이 부족하고···.’
사실, 여기서 가장 간단한 방법은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설령 돌파에 성공하더라도 전선을 유지하기 어려워서 포위망이 역으로 돌파당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미군이라면 모를까, 부족한 입영 자원을 한계까지 징발해서 투입한 영국군으로서는 이 이상의 희생은 감수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무언가 빈틈을 찌르기도 어렵고 말이지.’
브르타뉴 반도는 기본적으로 평탄한 평야 지대지만 군데군데 수풀이 우거지고 작은 강과 지류가 많아 단숨에 돌파하기 어렵다.
그래서 결국 남은 것은 정공법으로 차례차례 관문을 돌파하는 것뿐인데, 그러기에는 독일군에 비해 연합군의 전술 능력이 열세여서 불리한 상황.
‘젠장··· 이제 고작 40km만 더 전진하면 되는데 여기서 막히다니. 무언가, 무언가 결정적인 일격을 날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도중, 몽고메리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보게, 그럼 차라리 반 항구 근방에 낙하산부대를 투입하면 어떻겠는가?”
“···공수작전 말씀이십니까?”
“그래. 어차피 플로에르멜에서 비스케이 만까지의 거리는 고작 40km밖에 되지 않으니, 공수사단을 투입해서 며칠 동안만 후방을 교란하면 순식간에 돌파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몽고메리의 말에, 참모들은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현재 독일군은 전술적 우월함을 바탕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을 뿐, 브르타뉴 반도 전체의 전황은 연합군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무언가 계기를 마련해서 이 교착상태를 돌파하기만 한다면 독일군의 방어선은 순식간에 무너지리라.
“확실히··· 공수 작전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지금의 이 교착상태를 단번에 뚫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좋네. 그럼 지금 당장 투입할 수 있는 공수부대는 얼마나 있나?”
“현재 영국 제1공수 사단이 배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측에 연락하면 미군 공수사단을 증원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몽고메리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확실히 부관의 말대로 미군의 증원을 받으면 보다 확실하게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으리라.
하지만 매번 이렇게 미군의 도움을 받아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게 자존심과 실리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몽고메리는 결국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이번 작전은 1개 사단만 투입해도 충분하네. 이번에는 아군의 힘만으로 해결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낙하지점은 어디가 좋겠습니까?”
이에 몽고메리 원수는 지도 위의 한 도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답했다.
“여기. 플로에르멜과 반 항구 사이에 있는 소도시, 엘븐으로 하지.”
*****
1944년 9월 14일.
플로에르멜에서 남쪽으로 약 10여km 떨어진 작은 마을의 한 농가.
이곳의 마당에서, 뮌스터 일병은 의자에 앉은 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보직은 대공포 중대의 관측병이기 때문이었다.
“어이, 뮌스터. 오늘은 좀 어떠냐.”
“호르트만 하사님. 보시다시피 오늘도 별일 없습니다.”
“그래도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니까 똑바로 보고 있으라고. 안 그래도 지금 여기는 최고 격전지 바로 옆이니까 말이야.”
“하하, 그렇다곤 해도 저희 중대는 항공기보다 전차를 더 많이 상대하지 않습니까? 하늘이 아니라 땅을 봐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뮌스터가 소속된 대공포 중대의 주장비는 티거의 주포로 유명한 88mm flak 36 대공포였다.
그렇기에 뮌스터의 중대는 사실 대전차 부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늘보다 지상의 표적을 상대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것이 이곳 노르망디에 배치된 이후로는 연합군의 항공기가 끝도 없이 몰려오는 바람에 다시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었는데, 최근 루프트바페 녀석들이 제공권을 어느 정도 되찾은 덕분에 또 대전차포 신세가 된 것이었다.
‘뭐, 그래도 대낮에 도로를 돌아다니는 게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던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지만 말이지.’
게다가 적 항공기가 안 오면 뮌스터의 일은 사실상 앉아서 노는 것뿐이었으니까 그의 입장으로서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그렇게 그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옆에 놓인 무전기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안톤에서 바이퍼에게. 현재 적기로 보이는 항공기 다수가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 즉시 방공 태세에 들어가도록!”
“여기는 바이퍼. 수신 완료.”
적 항공기라. 또 뭔가가 시작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뮌스터가 관측 장비를 등에 매고서 다시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이··· 이게 뭐야.”
저 멀리서, 수십 대의 항공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듯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몇 대는 일반적인 항공기가 아니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재보더라도 다른 항공기의 두 배가 넘어 보이는 저 크기에 쌍발 프로펠러까지. 저건 폭격기나 혹은 수송기임에 틀림없었다.
순간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뮌스터 일병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여, 여기는 바이퍼. 바이퍼에서 각 포반에게 알린다. 현재 1시 방향에서 적 항공기··· 최소 30대 이상이 접근 중. 그중 폭격기도 다수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정말인가?”
“틀림없다. 전 포반, 방열 준비하도록.”
그렇게 각 포반에 무전을 돌린 뮌스터는 머리 위로 날아가는 수십 대의 연합군 항공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렇게 많은 항공기가 도대체 왜 출격했단 말인가. 설마 융단 폭격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 항공기들은 마치 뮌스터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아득히 높은 곳에서 그림자를 드리우며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포반에 끌려가서 탄약 적재를 돕던 뮌스터는 믿기 힘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예? 그럼 오늘 낮에 지나갔던 그 항공기들이 전부 수송기였단 말입니까?”
“아니, 그중에 절반 정도는 아마도 호위기였겠지. 어쨌든, 우리 후방지대에 다수의 공수부대가 낙하했다고 하니 다들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예!”
그건 바로, 대대 본부가 위치한 엘븐 인근에 대규모 연합군 공수부대가 낙하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