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37화 (137/157)
  • 137화. 브르타뉴 반도 방어전 (1)

    “커피 가져왔습니다, 각하. 그리고 빈 잔들은 모두 치워드리겠습니다.”

    “···고맙네.”

    나는 부관이 가져온 커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책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내 눈앞에는 산더미 같은 서류 더미들이 쌓여 있었다.

    “후··· 정말이지 못해 먹겠군.”

    오늘은 1944년 8월 22일.

    소련과의 전쟁이 끝난 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내 업무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니, 줄어들기는커녕 동부전선에서 격전을 치르던 때보다 오히려 더 바빠졌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더 바빠진 것인가?

    그 이유는 단 하나.

    현재 동부전선에 배치된 350만의 병력과 만여 문의 야포, 그리고 수천여 대의 전차와 자주포들을 모두 바뀐 국경선까지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레닌그라드에서 카프카스까지 무려 2000여 킬로미터에 걸쳐서 고루 배치되어 있는 데다가, 바뀐 국경선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정해진 기한까지 병력과 물자, 그리고 아군에게 협조했던 현지인들을 모두 빼내려면 보유한 운송 수단과 이동 루트, 그리고 각 부대의 스케줄을 완벽하게 조율해야만 했다.

    ‘···그나마 이동 거리가 짧은 것은 북부집단군인가. 레프 원수께는 죄송하지만, 북부집단군은 자력으로 이동하도록 해야겠군.’

    북부집단군은 병력도 많지 않은 데다가 이동해야 할 거리가 기껏해야 100여 킬로미터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자력 이동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모스크바 일대의 중부집단군도 그리 큰 걱정은 아니었다.

    비록 이들은 북부집단군과는 다르게 다수의 중장비와 병력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동 거리가 평균 200km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다만··· 문제는 남부집단군이란 말이지.”

    하지만 남부집단군은 다른 부대들과는 사정이 달랐다.

    이들은 돈강 방어선부터 스탈린그라드, 그리고 카프카스에 이르기까지 동부전선에서 가장 먼 곳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중 돈강 방어선은 불과 작년 말까지만 해도 치열한 접전이 있었던 격전지인지라 다른 곳보다 더 많은 병력이 집중 배치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카프카스 끝까지 내려간 부대는 몇 개 사단밖에 되지 않으니 저 녀석들은 크림반도 쪽으로 빼내면 되겠지.

    그럼 사실상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은 스탈린그라드에 있는 우리 6군인가. 자이들리츠 장군이랑 발터 모델은 고생 좀 하겠군.’

    6군은 드네프르 강을 끼고 있는 대도시, 자포리자까지 무려 700km를 이동해야만 했다.

    일단 남부집단군에 대부분의 화물 열차를 배정해주긴 했지만, 그래도 기한 내에 중장비와 차량을 모두 옮기려면 제법 골머리를 앓아야 할 터였다.

    “···뭐,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머지 문제는 차차 협의하는 수밖에.”

    나는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각 부대의 이동 계획 보고서에 서명을 한 뒤, 이미 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그러나 이걸로 내 업무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 각 부대의 이동 계획에 맞춰서 철도와 가도의 운행을 통제하고, 이동 중 병사들을 먹일 보급 계획도 재조정 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변경된 국경선까지 병력을 모두 이동시킨 다음에는 다시 병력을 차출해서 이들을 2000km 떨어진 프랑스의 서부 전선으로 재배치해야만 했다.

    그럼 이 모든 작업을 마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인가.

    그리고 과연 그때까지 서부 전선의 병력만으로 연합군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커피를 마시며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내 상념을 깨웠다.

    “···무슨 일인가?”

    “격무 중에 죄송합니다, 각하. 다만 시급한 사안인지라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좋네, 들어오게. 그래서 무슨 일인가?”

    내 허락에 다시 집무실로 들어온 부관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게··· 방금 전, 브르타뉴 반도의 생 브리외 항구가 연합군의 손에 떨어졌다는 보고입니다.”

    “···알겠네. 그럼 지금 당장 롬멜 원수에게 연락해주게. 내가 곧 찾아가겠다고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부관이 물러난 뒤, 나는 커피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서부전선군 사령부에 방문해 있었다.

    그러나 오늘 이곳을 방문한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어서 오시오, 파울루스 원수. 그런데 왠일로 클루게 원수와 모델 상급대장께서도 같이 오셨구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하. 여기 두 분은··· 동부전선에서 증원군이 도착하면 서부전선군의 부대 편제를 재편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현재 서부 전구 총사령부는 1군, 7군, 15군, 19군까지 총 4개 야전군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을 롬멜이 총괄 지휘하는 구조였다.

    즉, 지금까지 서부전선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집단군이라고 봐도 무방한 규모였기 때문에 굳이 별도의 집단군 사령부를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동부전선에서 150만 대군이 도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이 병력이 모두 도착한다면 서부 전선에 배치되는 야전군의 숫자는 최소로 잡아도 여덟 이상.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의 지휘만으로 이들을 모두 통솔하기는 어려워지기에, 서부 전구 총사령부 예하에 2개의 집단군 사령부를 새롭게 구성하도록 결정한 것이었다.

    “···그렇군. 그럼 두 분께서 집단군 사령관을 맡아주시는 거요?”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아닙니다. 저희 국방군 총사령부에서는 클루게 원수 각하께서 서부전선군 총사령관직을 맡으시고, 롬멜 장군께서는 새롭게 창설될 A 집단군 사령관을 맡아주시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A 집단군 사령관이라···.”

    “하지만 각하께서는 지금까지 하시던 대로 4개 야전군을 그대로 지휘해주시기면 됩니다. 다만, 함께 싸울 집단군이 하나 추가되는 것뿐이지요.”

    그런 내 말에, 롬멜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번 인사 조치는 롬멜의 입장에서는 강등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비록 그가 지휘하는 부대를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서부 전구를 총괄 지휘하던 예전과 비교하면 권한과 직급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롬멜은 군소리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 하긴. 대선배이신 클루게 원수께서 오셨으니 내가 사령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맞겠지. 게다가 난 지금까지 연합군을 몰아내지도 못했고 말이오.”

    “정말 죄송합니다, 각하.”

    “아니오. 솔직히 말해, 나도 현장을 지휘하는 편이 성미에 맞소.”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상황이 모두 정리된 뒤, 우리는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그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새롭게 서부전선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권터 폰 클루게 원수였다.

    “좋네. 그럼 우선 상황보고부터 시작하지. 내 이곳으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보고받기로는 생 브리외가 함락당했다던데, 사실인가?”

    “예. 엊그제 오전, 연합군의 기갑부대가 아군 방어선을 돌파하면서 결국 함락당했습니다. 게다가 어제 저녁에는 플로에르멜까지 넘어가는 바람에 현재 브르타뉴 반도의 74군단이 포위당할 위기입니다.”

    “생 브리외에 이어서 플로에르멜까지 돌파 당했다고? 지금까지는 잘 버텼으면서 갑자기 왜 이렇게 무너지는 거요?”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연합군이 신형 중전차를 투입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일부 보고에 따르면 그 신형 중전차가 판터와 티거까지도 격파했다고 합니다.”

    “···흠.”

    또 다른 항구가 점령당한 것도 모자라서 연합군의 신형 중전차까지 나타나다니.

    계속해서 이어지는 암울한 보고에, 우리는 서부 전구의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침음을 삼켰다.

    현재 연합군이 확보한 플로에르멜에서 비스케이만까지의 거리는 약 40여km.

    만약 이곳을 돌파당하면, 브르타뉴 반도에 배치된 74군단 소속 5개 사단은 포위당하고 만다.

    ‘5개 사단이면 대략 8만 명 정도인가. 그럼 비축된 물자로 버틴다고 해도 그리 오래가진 못하겠군. 이미 대서양은 연합군의 손에 떨어진 지 오래이니 해로를 통해 보급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할 테고···.’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이대로 연합군에게 포위당한다면 74군단은 전멸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브르타뉴 반도를 포기하고 퇴각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저곳에 있는 브레스트, 로리앙, 콩까흐노 항구를 통해서 연합군이 물밀 듯이 몰려올 테니까.

    ‘그렇다고 세르부르 항구 때처럼 저 많은 항구들을 다 파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내가 고민에 잠겨있자, 롬멜 원수가 나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말이오만, 동부전선에서 보내준다던 병력은 언제쯤 도착할 예정이오?”

    “···죄송하지만 아직 기약조차 드리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소련과의 강화 조건대로 변경된 국경선까지 병력을 물리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말입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직 전쟁을 치르는 중인 서부 전선보다 급한 일은 없지 않소? 하다못해 10만 명이라도 실어서 보내주면 좋겠소만.”

    그런 롬멜의 말에, 발터 모델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하하··· 각하께서는 이해가 잘 안 가시겠지만, 지금 동부전선에서는 열차 한 량이 아쉬워서 화물칸은커녕 지붕 위까지도 병사들을 실어 나르고 있는 판국입니다.

    게다가 동부전선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무려 2000km를 달려야 하는데, 지금 당장 10만 명을 보낸다 한들 여기에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다 끝난 뒤일 겁니다.”

    “모델 장군의 말대로요. 우리도 최대한 서두를 테지만, 1개 야전군이라도 도착하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린다고 생각하시오.”

    “······.”

    동부전선에서 구원 병력이 도착하는 것은 아무리 빨리 잡더라도 한 달 뒤.

    하지만 과연 그때까지 브르타뉴 반도의 74군단이 버텨줄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만약 그때까지 버티는 데 성공하더라도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증원이 도착하더라도 결국 브르타뉴 반도를 빼앗긴다면 그 뒤에 남은 것은 끝없이 밀려오는 연합군과의 소모전이었으니까.

    ‘제기랄··· 어떻게든 브르타뉴 반도가 포위당하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롬멜 원수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파울루스 원수, 그렇다면 우리도 신무기들을 투입해보면 어떻겠소이까?”

    “···아군의 신무기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장군께서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티거 2와 메서슈미트 262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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