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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31화 (131/157)
  • 131화. 동상이몽 (1)

    1944년 7월 12일.

    독일, 베를린의 육군 총참모본부.

    나는 붉은색 깃발로 뒤덮인 노르망디 일대의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결국 이렇게 되어버린 건가.”

    패튼이 최후의 돌파 작전에 나선 지 약 3주일이 지난 현재, 전세는 완전히 연합군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돌파 작전의 성공으로 생 말로와 세르부르 방면의 점령지를 연결하는 데 성공한 연합군은 계속해서 병력을 파견했고, 그 결과 도합 15개 사단, 2개 야전군이 상륙한 상태.

    단순 병력의 수로만 따지면 아직도 아군이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긴 했지만, 연합군의 압도적인 보급, 증원 능력과 공군력의 우세까지 고려해보면 더 이상 아군이 유리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대로 전선이 점점 더 밀려서 원래의 역사대로 연합군이 200만 이상의 병력을 상륙시켜버린다면···.’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과연 우리 독일군은 연합군과 소련군 사이에서 양면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떨리는 손으로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의 병력 현황판을 펼쳐놓고 사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럼 우선··· 동부전선인가.’

    현재 동부전선에 배치된 우리 독일군의 전력은 대략 350만 남짓.

    소련군이 대략 480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직 여유롭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선의 길이가 레닌그라드에서 모스크바-스탈린그라드까지 무려 1600km에 달하는 만큼 이 이상 병력을 차출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러나 현재 서부전선에 배치된 독일군은 고작 70만에 불과한 상황.

    게다가 이들 중 대략 절반 가량이 지정된 해안 방어선에서 움직일 수 없는 데다가 정규 편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고정 사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연합군에 맞서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35~40만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군이 계속해서 상륙해 밀려 들어온다면, 남은 것은 결국 전선의 붕괴와 독일의 패망뿐이리라.

    ‘제기랄··· 결국 역사는 바꿀 수 없는 건가.’

    아니, 그럴 수는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에는···.

    똑똑!

    바로 그 순간, 집무실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각하, 잠시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무슨 일인가?”

    내 허락을 받고 집무실로 들어온 부관은 서류를 든 채 문앞에 서서 말했다.

    “업무 중에 죄송합니다. 방금 국가수상부로부터 각하께 전문이 하나 왔습니다.”

    “국가수상부에서? 그래, 뭐라고 하던가?”

    내가 의아해하며 되묻자, 부관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게··· 총리님께서 지금 참모총장님을 찾고 계신다고 합니다.”

    *****

    그로부터 잠시 뒤, 나는 빌헬름가 77번지에 서 있는 총통 관저에 도착해 있었다.

    “총리님께서는 곧 내려오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맙네.”

    나는 몇 번이고 와봤던 슈페어 총리의 집무실에 앉아서, 그가 올 때까지 커피를 홀짝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슈페어 총리는 약속대로 전쟁에 관한 모든 것은 나와 우리 국방군에게 일임한 채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슈페어 총리가 나를 굳이 호출했다는 것은 그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일 터.

    그리고 그 문제는 아마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가는 연합군의 서부전선 때문이겠지.

    ‘후··· 곤란하게 되었군. 이번 일을 계기로 슈페어 총리가 히틀러처럼 전쟁에 개입하려 들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내가 마음속으로 사정을 가늠하고 있을 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더니 슈페어 총리가 들어왔다.

    “먼저 와 계셨군요. 늦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슈페어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외무장관, 요하임 폰 리벤트로프가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아닙니다, 총리님. 그런데··· 리벤트로프 장관님도 같이 오셨군요.”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 오늘 파울루스 장군을 부른 용건은 리벤트로프 장관님도 관여하고 있는 일이라서 말입니다.”

    외교부도 관련된 사안이라··· 그렇다면 서부 전선의 문제 때문에 호출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슈페어 총리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건 아직 1급 기밀입니다만··· 어제 저녁, 소련 측으로부터 강화 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소련이 강화협상을 말입니까?”

    “예. 그래서 리벤트로프 장관과 함께 고민해본 결과, 아무래도 서부전선의 상황과 이번 강화 제안이 무언가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이 되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원수 각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타이밍에 소련이 강화 협상을 재개하자고 제안했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소식에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야. 확실히 이상한 일이군요.”

    “예. 참모총장님을 비방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이 선전하고 있는 지금 굳이 강화를 맺으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아서 말입니다.”

    사실 단순하게 보자면, 우리의 사정이 어려워진 지금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고 강화를 맺겠다는 의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면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제가 소련의 입장이었어도,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낼 작정이라면 차라리 이번 기회에 공세를 개시했을 겁니다.

    그래서 성공한다면 아군을 패퇴시킬 수 있고, 만약 막히더라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소련은 구태여 싸우는 대신 우리에게 조용히 강화협상을 제안했다.

    그렇다면 이런 대응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혹시 소련의 사정이 반격에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인가? 아니면, 아직 서부전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 그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으면 지금의 이 전선을 유지하지도 못하겠지. 게다가 소련이 전쟁에서 발을 뺄까 전전긍긍하는 연합군 놈들이 자신들의 성공을 숨길 리도 없고.’

    그렇게 내가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슈페어와 리벤트로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장군께서도 별다른 이유가 짐작 가지 않는 모양이시군요.”

    “사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일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차라리 소련 내부에 무언가 문제가 생겨서 급히 전쟁을 끝내려는 것으로 생각하는 편이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게다가 소련이 군말 없이 협상장으로 나와주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고 말입니다.”

    “···아무래도 많은 양보를 요구할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은 한쪽이라도 빨리 끝내는 편이 낫겠지요.”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점점 양보를 하더라도 강화를 빨리 이끌어내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을 무렵, 내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바로 전후의 냉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2차대전이 끝난 뒤 영미 자유진형와 소비에트 연방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었지.’

    그 무렵 나는 소련의 포로 신분으로 모스크바 외곽의 별장에 감금되어있다가 동독으로 복귀해 여생을 보낸지라 미국과 소련의 관계에 대해 그리 많은 정보는 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도 스탈린이 종전 전부터 영미를 경계하며 전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준비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스탈린은 지금 이대로 2차대전이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닌가?’

    지금 이 순간을 기준으로 영미 연합군과 우리 독일, 그리고 소련의 입장을 살펴보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은 단연 소련이었다.

    소련은 지금까지의 연이은 패배로 인해 막대한 영토와 자원을 잃어버렸으며, 특히 한동안 쉽게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수준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

    그에 반해 소련과 맞서 싸운 우리 독일은 수많은 인명을 손실했을지언정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고, 그 대신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와 카프카스 유전지대를 손에 넣은 상황.

    그리고 영미 연합군은 태평양, 지중해 등지에서 다년간 전쟁을 치렀다지만, 소련에 비하면 피를 흘렸다고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재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2차대전이 끝나버린다면··· 연합군과 소련군이 힘을 합쳐서 우리 독일을 박살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남은 것은 영미에 의한 공산주의의 종말뿐이겠지.’

    그럼 소련의 입장에서 이번 전쟁 이후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총리님, 장관님. 소련이 어떤 이유로 우리에게 지금 강화협상을 제의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갑작스러운 내 말에 리벤트로프 장관과 슈페어 총리가 기대 반, 의심 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일단 한번 들어봅시다. 그래서 장군께서는 소련의 숨은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그건 바로··· 우리 독일군과 연합군이 싸우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내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들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현재 소련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어서 약화된 반면, 아군과 영미 연합군은 아직 건재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끝나면 누가 곤란하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연합군이 선전하고 있을 때 소련이 강화를 제안하는 것도, 이런 기회에 소련이 반격에 나서지 않는 것도 모두 설명이 된다.

    ‘연합군이 2개 야전군을 투입했을 때 강화에 나선 것은 자신들이 빠지더라도 연합군은 전쟁을 포기할 수 없도록 의도한 것이겠지.

    그리고 이런 유리한 상황에도 반격에 나서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자신들의 군사력을 소모하지 않겠다는 계산이고.’

    만약 지금 이 순간에 소련이 계속해서 반격에 나서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더 큰 이득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 소련이 얻는 이득보다도 훨씬 더 큰 이득을 영미 연합군이 가져가게 된다.

    그러니 소련은 자신들이 얻게될 작은 이득을 포기하더라도 연합군이 더 큰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리라.

    그런 내 설명에, 슈페어와 리벤트로프는 잠시 생각에 잠겨 고민하다가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전후의 질서까지 계산해서 지금 우리와의 전쟁을 끝내겠다는 거로군요.”

    “확실히, 거기까지 생각하면 지금 소련이 반격 대신 협상에 나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지금의 이 상황을 이용해서 최선의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고민에 빠진 두 사람을 바라보며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역으로 소련 측에게 오히려 이렇게 제안하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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