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29화 (129/157)
  • 129화. 코브라 작전 (2)

    “전차장님, 오늘따라 전투기가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전부 다 아군기일 테니까.”

    1944년 6월 20일.

    코브라 작전에 참가한 제37 전차대대 소속 전차장, 다니엘 하사는 잔뜩 긴장한 장전수를 달래며 말했다.

    그러나 전투기가 머리 위로 지나갈 때마다 깜짝 놀라는 것은 사실 다니엘 하사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탑승한 M36 잭슨 구축전차는 포탑 상부에 천장이 없는 오픈 탑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차장님, 저희 전차는 왜 뚜껑이 없는 겁니까?”

    “글쎄다. 내가 듣기로는 방어력보다 기동력과 시야를 우선시해서 그렇다는데, 그래도 굳이 상부 장갑을 뗄 필요가 있나 싶군. 뭐, 덕분에 시원해서 좋긴 하지만 말이야.”

    “하하,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시원하다는 점 말고도 M36 잭슨 구축전차에는 한 가지 더 큰 장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 녀석은 오직 티거나 판터 같은 중장갑 전차들을 잡기 위해서 준비된 대전차 자주포였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기동할 때 대열의 가장 뒤에 선다는 점이었다.

    그 대신 셔먼이 상대할 수 없는 중전차들가 나타나면 우리가 책임지고 격파해야겠지만, 지금처럼 전투기들이 제공권을 확실히 장악한 상황에서는 그럴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터.

    ‘처음에는 이런 괴상한 전차를 배정받는 바람에 이상한 임무에 끌려가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는데, 오히려 내가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군.’

    다니엘 하사는 마치 소풍을 나온 것처럼 오픈 탑 포탑에 걸터앉은 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하지만 그런 여유로운 시간은 전방에서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피탄음과 함께 끝나버렸다.

    콰앙!

    “저, 적이다!”

    “엄폐해!”

    깜짝 놀란 다니엘이 고개를 돌려보니, 제일 선두를 달리던 M4 셔먼이 연기를 내뿜으며 도랑에 처박혀 있었다.

    이에 놀란 전차들은 각자 사방으로 기동하며 전투태세를 갖추었고, 이들과 함께 행군하던 병사들도 적습에 대비해 엄폐하기 시작했다.

    “저, 전차장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해럴드, 일단 아군 전차 뒤에 붙어라! 적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때까지는 안전을 확보하는 게 먼저다!”

    “예!”

    다니엘 하사는 미군의 대전차 자주포 교리대로 우선 뒤로 물러난 채 전장의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야지에 있는 놈들은 아군 공격기가 모두 박살낸 덕분인지, 적군은 꽁꽁 은폐한 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어디선가 날아오는 포탄이 아군의 셔먼 전차들을 차례차례 격파하고 있었다.

    “젠장···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거지?”

    “전차장님. 제가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방금 전에 왼쪽의 숲에서 무언가 번쩍였던 것 같습니다.”

    “···왼쪽?”

    장전수의 말에 다니엘 하사는 약간 떨어진 작은 숲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러자 우거진 수풀 사이로 덩굴과 나뭇잎으로 휘감겨진 길쭉한 주포가 삐져나온 것이 눈에 들어왔다.

    “테드! 11시 방향, 거리 800. 수풀로 위장한 판터 1대 보이나?”

    “···죄송합니다! 못 찾겠습니다!”

    “젠장, 비켜! 내가 직접 조준한다.”

    테드를 쫓아내고 포수석에 앉은 다니엘은 자신의 기억을 따라서 조준 레버를 돌리기 시작했다.

    ‘분명 저 부서진 바위 왼쪽이었는데··· 좋아, 찾았다.’

    좁은 조준경 너머로 보니 적의 위치를 찾아내기 어려웠지만, 기억해둔 지형지물을 기준으로 찾으니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현재 거리는 800.

    게다가 저기 있는 저 녀석은··· 수풀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아마도 판터겠지.

    판터가 어떤 전차인가.

    정면장갑에 한해서는 티거 전차만큼이나 뛰어난 방호력을 자랑하는 사실상 중전차나 다름없는 녀석이 아니던가.

    그런데 과연 이 녀석의 90mm 주포로 이 정도 거리에서 판터의 정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을 것인가?

    ‘···제기랄, 훈련소에서 봤던 카탈로그 스펙이 거짓이 아니기를 빌어야겠군.’

    그렇게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발사 레버를 당기는 순간, 셔먼의 75mm 주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90mm 구경의 강렬한 포성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뒤, 다니엘 하사가 포탑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자 판터가 있던 자리에서는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여기는 슬러그. 11시 방향의 판터 격파 완료.”

    “설마 했는데 진짜로 이 거리에서 판터를 격파해낸 건가. 하하, 좋아! 브라보, 계속 진격하도록!”

    “예!”

    그렇게 그날 하루 동안 다니엘 하사의 M36 잭슨은 두 대의 판터와 4호 구축전차를 더 격파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3일 뒤.

    독일군의 전선을 돌파하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진격하던 다니엘 하사의 제37 전차대대는 꾸떵쓰에서 약 20km 떨어진 항구도시, 그랑빌에 도달해 있었다.

    *****

    1944년 6월 25일.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육군 총참모본부.

    “각하, 서부전선군 총사령부로부터의 보고입니다. 금일 오전 8시, 그랑빌 남쪽 방면에서 미군의 진격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후, 다행이군.”

    미군이 전선 돌파에 나선 이래로 지난 며칠간, 사실상 집무실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던 나는 작전 과장의 보고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내가 자리에 앉아 꺼끌꺼끌해진 턱수염을 만지며 책상 위에 쌓인 커피잔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작전과 참모 장교들이 다가와 작전 지도 위의 상황판을 최신화하기 시작했다.

    ‘후··· 정말 위험할 뻔했군.’

    사실, 미군이 아군 방어선을 돌파하려고 나선 것까지는 모두 내 예상대로였다.

    애당초에 아군이 르세-코랑탕 방어선을 꾸떵쓰-생 로까지 물린 것도 모두 미군 일선 부대들의 부담을 늘이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역시 패튼은 패튼이었다.

    그는 그냥 전선 돌파에 나서는 대신 다수의 증원군을 일거에 투입해서 계속된 전투에 지친 아군부대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모든 공군 지원을 모두 남쪽으로 집중시키면서 이번 돌파 작전이 진행되는 전역에 한해서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해버렸다.

    끝없이 날아오는 야보에 의해 아군 부대가 발 묶여 있는 동안 밀고 들어오는 미군들.

    게다가 이들은 판터나 티거조차도 정면에서 격파할 수 있는 신형 구축전차까지 장비하고 있어 그랑빌까지 파죽지세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들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루프트바페가 연합군 공군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랑빌 방면에 다수의 요격기 편대를 배치하자 공습을 피해 숨어있던 아군 기갑부대들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적을 앞질러간 21기갑사단과 14기갑사단이 그랑빌 남부에서 미군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뭐, 예상 이상으로 제법 선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책은 정석을 이길 수 없는 법이지. 연합군이 아군의 의도대로 무리한 돌파에 나선 시점에서부터 승패는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과정에서 비록 다수의 병력을 잃고 그랑빌까지 돌파를 허용하긴 했지만, 이번 작전을 위해서 미군이 얼마나 많은 무리를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 손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이제는 아군이 현재 위치에서 고착상태를 유지하기만 해도 늘어난 병력의 보급 소요를 감당하지 못한 미군이 스스로 무너질 테니까.

    그렇게 되면 소련놈들도 결국 강화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테니 동부전선을 종결시키고 영국과 미국을 유럽에서 몰아내는데 집중할 수 있으리라.

    ‘아니, 이렇게 되면 차라리 소련을 먼저 끝장내고 미국, 영국과 협상을 하는 것이 나으려나. 다음에 리벤트로프 외무장관과 한번 얘기를 나눠봐야겠군.’

    어쨌든 이걸로 미군의 반격작전도 끝났을 테니 이젠 잠시 쉬어도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따르르르릉!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것은 내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였다.

    “······.”

    내 직통 전화기로 걸려온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시급한 문제일 터.

    하지만 미군의 반격작전도 좌절한 데다가 동부전선도 고착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도대체 어디서 전화가 온단 말인가.

    내가 의아해하면서 전화를 받자, 수화기에서는 뜻밖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육군 참모총장 파울루스 원수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파울루스 원수, 나 서부전선군 사령관 롬멜이요.”

    “아, 원수 각하십니까. 미군의 돌파 시도를 그랑빌에서 저지했다는 보고는 방금 받아봤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후··· 그건 그렇소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황급히 되묻자, 롬멜은 잠시 뜸을 들이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게, 지금 생 말로의 그랑드 해변에 미군이 상륙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소.”

    *****

    그 무렵, 런던에 위치한 연합군 원정군 최고 사령부.

    “각하, 90사단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독일군을 격퇴하고 그랑드 해변과 생 말로 항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패튼의 코브라 작전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소식에 침울해하고 있던 아이젠하워는 갑작스러운 보고에 깜짝 놀라 반문했다.

    “예, 비록 육로를 통해서 생 말로까지 진격하던 부대들은 모두 독일군의 반격에 막혀 그랑빌에서 멈춰섰지만, 해안을 통해 침투하기로 한 부대가 단독으로 생 말로를 장악한 모양입니다.”

    “···하하하! 설마 지상군이 아니라 상륙군 쪽이 성공해버릴 줄이야.”

    “아무래도 독일군의 해안 방어가 저희의 예상보다 훨씬 허술했던 모양입니다.”

    애당초에 패튼이 아이젠하워에게 제출한 반격 계획은 4개 사단을 추가로 투입해서 육로만으로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하고 생 말로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가 그만한 병력은 한꺼번에 투입하기 어렵다고 반려해서, 3개 사단만 투입하되 1개 사단은 때맞춰 상륙 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뭐, 결국 육로를 통한 돌파 작전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일단 항구만 확보했으면 문제는 없다. 설령 코탕탱 반도의 병력이 밀리더라도 생 말로를 통해서 브르타뉴 반도를 장악하면 되니까.’

    생 말로에서 서쪽으로 진격하면 생 브리외, 브레스트, 로리앙까지 프랑스에서도 제법 큰 항구 도시들이 줄지어 있다.

    게다가 현재 대부분의 독일군은 노르망디와 파 드 칼레 방면에 배치되어 있으니, 저들이 코탕탱 반도를 정리하고 올 때까지 브르타뉴 반도를 장악한다면 유럽 대륙에 제대로 된 상륙 거점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모두 정리한 아이젠하워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출항 대기 중인 모든 병력을 최대한 빨리 생 말로로 투입하도록 하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