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노르망디 상륙 작전 (9)
투콰앙!
“하하! 제대로 맞춘 모양이군.”
뒤통수 너머로 울려 퍼지는 경쾌한 폭음을 들으며, 브랜든 하사는 스로틀을 몸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시야가 반전되며 캐노피 너머에는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계기판의 바늘이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충분한 고도를 확보한 뒤 브랜든이 캐노피 바깥을 내려다보자, 그곳에는 그의 P-47 썬더볼트가 쏜 로켓탄에 박살 난 티거 전차의 잔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포탑과 차체가 완전히 분리된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측면의 탄약고에 제대로 적중한 모양이었다.
“팔콘 1에서 네스트에게. 목표물 격파 완료, 다음 타겟을 알려달라. 이상.”
“여기는 네스트. 팔콘 1, 지금 즉시 당소로 귀환하라.”
잠시동안 코랑탕 상공을 유유히 날아다니며 티거를 격파한 흥분을 달래던 브랜든 하사는 전투비행단 본부의 귀환 명령에 짜증을 느끼며 답했다.
“팔콘 1에서 네스트에게. 현재 기체의 상태는 양호하고, 탄약도 충분하다. 추가 임무가 없다면 지상부대를 지원사격하겠다.”
비록 방금 전의 급강하 때 독일군의 대공포 사격에 몇 발 스치기는 했지만, 튼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P-39 썬더볼트에게 이 정도 데미지는 애교에 불과하다.
게다가 로켓탄은 이미 써버렸지만 기관포는 충분하니 토치카 하나둘 정도는 박살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어지는 비행단의 무전에 브랜든 하사는 결국 기수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 그곳으로 독일군 요격기 세 대가 접근하고 있다. 즉시 고도를 상승시켜 자리를 이탈하도록.”
“···쳇, 라져 댓.”
사실 독일군 요격기가 오더라도 고고도에서 전투를 유도하면 충분히 맞상대할 수 있을 테지만, 본래의 임무를 달성한 이상 굳이 목숨 걸고 싸울 필요는 없을 터.
그렇게 판단한 브랜든 하사가 고도를 높이며 전장을 이탈하자, 저 멀리서 메서슈미트 109 2대와 포케볼프 190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흥, 멍청한 놈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시던가.”
그러나 먼 길을 달려온 루프트바페의 요격기들은 고도를 3만7천 피트까지 올려 도주하는 브랜든 하사의 썬더볼트를 그저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
1944년 6월 1일.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서부전선군 사령부.
약 한 달 만에 이곳을 다시 방문한 나는 원래의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전황에 한숨을 내쉬며 작전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현재 노르망디 전선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소?”
“···비록 연합군의 공세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코탕탱 반도에 잡아두고 있습니다.”
“흠···.”
본래 롬멜 원수의 계획은 영국군을 먼저 정리한 뒤 3개 기갑사단을 앞세워서 미군을 단숨에 몰아내는 것이었을 터.
그러나 그로부터 약 2주가 지난 지금, 현재 아군은 미군을 몰아내기는커녕 오히려 약 10여km 정도 후퇴한 상황이었다.
“각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력상으로도 분명 아군이 우세했을 텐데 르세-카랑탕 방어선을 돌파당하다니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만, 아무래도 연합군의 공군력이 우리의 예상 이상이었던 모양이오.”
“연합의 공습 때문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도 루프트바페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롬멜의 대답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분명, 회귀 전에 연합군의 공군이 루프트바페를 압도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동부전선이 사실상 붕괴하는 바람에 루프트바페가 서부전선에 충분한 비행단을 배치하지 못하게 된 데다가, 연료와 자원까지 부족해져서 생긴 문제였을 터.
그러나 지금의 서부전선군은 충분한 전력이 배치되어 있는 데다가 카프카스를 얻은 덕분에 자원이나 연료가 부족하지도 않다.
그런데 도대체 왜 제공권 싸움에서 연합군에게 밀린단 말인가?
그런 내 의문에 답한 것은 루프트바페에서 전투기 총감을 맡고있는 아돌프 갈란트 중장이었다.
“죄송하지만 각하, 사실 현재로서는 1대1로 싸운다고 하더라도 루프트바페가 연합군 공군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보시오.”
“예. 현재 적군의 주력 전투기인 P-47 썬더볼트와 P-51 머스탱, 그리고 아군의 메서슈미트 109와 포케볼프 190을 비교해보자면 아군기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소? 하지만 연합군의 상륙 직후와 영국군을 몰아낼 때까지는 루프트바페가 밀린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소만.”
“아마 그때는 연합군 공군이 항모와 영국 본토에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체공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현재는 코탕탱 반도에 비행장과 보급기지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강화된 것이지요.”
“비행장이라···.”
나는 갈란트 중장의 말에 침음을 삼키며 지도를 바라보았다.
설령 코탕탱 반도를 내주더라도 영국군을 먼저 정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건만, 설마 이런 문제가 발생할 줄이야.
그러자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롬멜이 입을 열었다.
“파울루스 장군, 너무 걱정하진 마시오. 갈란트 중장의 말대로 연합군 공군이 성가신 것은 사실이나, 그래 봤자 2주 동안 고작 10km를 진격한 것뿐이지 않소. 그리고 그동안 연합군 육군이 입은 피해도 결코 적지 않고 말이지.”
“···그렇습니까.”
“그래. 적어도 육군의 교전비로만 따지자면 아직 아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이지. 게다가 제공권 문제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수준은 아니고 말이오.”
그런 롬멜의 말에 나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계산기를 두들겨보았다.
확실히, 지금까지 지상의 싸움은 아군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게다가 세르부르 항구의 수용 능력 때문인지 미군이 코탕탱 반도에 투입한 전력은 약 7개 사단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지금처럼 계속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군의 전력을 소모 시키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아니. 육군만의 싸움이라면 모를까, 공군력에서 밀리고 있는 지금 소모전을 펼치면 불리한 건 오히려 우리 쪽이다. 게다가 저놈들이 준비한 전력은 백만이 넘고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조금씩 조금씩 전선이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방어선이 돌파당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될 터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제 자리에서 버티자니 적의 공군력을 버틸 수 없고, 한 번에 밀어붙이자니 힘이 부족한 상황.
그렇다고 반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여기서 물러났다간 적이 더 많은 전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되는 데다가 전선이 길어져서 일선 부대의 부담이 더 커질 테니까.
‘아니, 잠깐. 적이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된다고?’
그 순간,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 나는 롬멜 원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각하, 그럼 차라리 병력을 뒤로 물려서 적군을 내륙 깊숙이 끌어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기서 퇴각하잔 말이오? 물론 상황이 어려우면 물러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소만.”
내 말에 롬멜 원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본래 작전상 후퇴란 뒤로 물러나는 대신 방어하기 좋은 지형을 취하거나 전선의 길이를 줄여 예비대를 확보하는 등 이득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도대체 장군께서 무슨 의도로 물러나자고 말씀하신 건지는 모르겠소만, 어디로 물러나든 간에 상황을 반전시키기는 어려울 거요.
여기서 물러났다간 아군이 감당해야 할 전선은 점점 길어질 테고, 반대로 연합군의 점령지는 점점 커질 테니까 말이지.”
“단순히 지리적으로 본다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보급의 문제까지 생각하면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보급··· 말이오?”
나는 의아해하는 롬멜에게 세르부르 항구를 가리키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예, 현재 연합군은 모든 보급을 저 반파된 세르부르 항구를 통해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항구가 소화할 수 있는 화물 수하 능력은 정해져 있는 만큼, 연합군이 투입할 수 있는 전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군이 퇴각한다면 연합군 사령부는 과연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그렇군. 즉, 전선이 길어지면 불리해지는 것은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라는 말이군.”
현재 연합군은 세르부르 항구로 보급을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전력인 7개 사단, 약 15만 명 정도로 공세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이는 아군의 방어선이 반도의 목 부분에 걸쳐져 있어 전선의 길이가 30여km밖에 되지 않았던 데다가, 공군의 지원과 끊임없는 증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후퇴해서 전선이 크게 길어진다면? 연합군 공군이 아무리 열심히 지원에 나서더라도 15만의 병력만으로는 도저히 전선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버릴 터.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연합군 사령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그러니, 저들은 다수의 병력을 한 번에 투입해서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군. 그럼 목적지는 역시···.”
“남서쪽에 있는 생 발로나 동쪽에 있는 르아브르 같은 항구도시를 노리겠지요.”
“그럼 우리는 무리하게 진격하는 연합군 병력을 싸 먹기만 하면 되겠구려.”
“예, 그렇습니다.”
그런 내 설명에 롬멜은 지도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럼 현재 위치에서 꾸떵스, 생 로까지 차례대로 퇴각하도록 하겠소.”
*****
1944년 6월 5일.
코랑탱 외곽의 한 언덕에서 지프 차 한 대가 멈춰섰다.
“저 언덕이 독일군 진지가 있는 곳인가?”
“예, 현재 제2 기갑사단이 격전을 치르고 있는 고지입니다.”
“쌍안경 이리 줘보게.”
부관에게서 쌍안경을 빼앗듯이 받아든 패튼은 지프 차의 본네트 위로 뛰어 올라가 전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쯧, 멍청한 놈들 같으니. 제대로 싸우는 놈이 하나도 없구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미군의 진격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기갑부대도, 보병도 아니라 공군이었다.
독일군의 전차가 나타나면, 토치카가 길을 막으면, 포탄이 떨어지면 지휘관은 공중 지원을 요청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아군의 강점을 활용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래서야 도대체 언제 전선을 돌파한단 말인가.
‘젠장할··· 몽고메리를 비웃고 있을 때가 아니었군. 설마 이렇게까지 병사들의 수준이 차이 날 줄이야.’
비록 아직까지는 어떻게든 진격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 공세는 어디까지나 막대한 병력 소모를 감내하며 지속하고 있는 것.
이 이상 피해가 커진다면 공세를 그만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패튼이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가, 각하! 현재 르세 방면의 제1 기갑사단이 독일군의 방어선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