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26화 (126/157)
  • 126화. 노르망디 상륙 작전 (8)

    1944년 5월 17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시작된 지 딱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슈페어 총리의 호출을 받아 베를린의 총통 관저에 와있었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어서 자리에 앉으시구려.”

    “하하, 감사합니다.”

    나는 집무실의 쇼파에 앉아 슈페어를 바라보았다.

    총리가 된 지 어느새 1년이나 지난 지금, 그의 모습은 장관 시절보다 훨씬 더 마르고 초췌해져 있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총리님.”

    “아아··· 최근 들어 업무량이 많이 늘어서 말입니다. 게다가 당 내부에서도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고요.”

    “이것도 다 전임자의 그림자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총리님의 노고를 알아줄 겁니다.”

    “하하, 부디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독일군과는 반대로, 지금 슈페어 총리가 처해 있는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비록, 계속 이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쟁이 시작된 지 벌써 4년째가 되어가는 데다가, 작년부터 시작된 전시 경제체제와 강화된 징집령 때문에 국민들의 피로도는 점점 높아져 가고 있는 상황.

    게다가 총통의 집권기에 거둔 대승리에 비해 슈페어가 집권한 이후로는 이렇다 할만한 전과도 없었거니와, 연합군까지 프랑스에 상륙하면서 점점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나치당 내부의 반대세력까지 견제해야 하니, 슈페어로서는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리라.

    “어쨌든, 그래서 오늘은 참모총장님께 전황에 대해 들어보고자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일단 서면 보고는 계속 받고 있지만, 아무래도 직접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총리님께서 필요하시다면 제가 언제든지 달려와야지요. 그래서,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과연 슈페어 총리가 나를 직접 부르면서까지 묻고자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현재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 일대는 사실상 교착상태에 들어갔으니, 아마도 최근에 있었던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대해서 궁금한 것일 테지.

    그러나 그런 내 예상과는 다르게, 슈페어 총리는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참모총장님께서 보시기에, 이번 전쟁은 얼마나 더 길어질 것 같습니까?”

    “···종전 말입니까?”

    “예, 장군께서는 일전에 소련과의 강화협상을 맺으면 영미 연합국 놈들도 전쟁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테고 지금의 이 영토를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말씀하셨지요.”

    “예, 맞습니다. 각하께서 총리직에 취임하셨을 당시, 그렇게 제안했었지요.”

    “그런데 지금 소련놈들은 우리와의 협상을 거부하며 계속 버티고 있고,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감행해서 제2 전선을 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제 파울루스 원수께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군요. 장군께서는 아직도 이번 전쟁을 소련과의 강화 협상으로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런 슈페어 총리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슈페어 총리의 말대로 확실히 지금 소련의 움직임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뭐, 지금까지 강화협상에 나서지 않은 것은 전황이 변해서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점하게 되기를 기대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소련이 시도했던 마지막 반격작전도 결국 실패로 끝났고, 올해 연합군이 감행한 서유럽 상륙 작전도 지지부진한 상황.

    그렇다면 이제 슬슬 강화협상에 응할 때도 되었는데, 저들은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기에 아직도 버티고 있단 말인가?

    ‘혹시 지금처럼 동부전선에서 계속 소모전을 벌여 아군을 지치게 만들 셈인가? 아니, 그렇다고 한들 저들이 협상에서 유리해지기는 어려운 데다가 이런 고착 상태가 계속되면 저들도 좋을 게 없을 텐데.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영미 연합군이 무언가 대단한 공세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뿐일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금 연합군의 사정도 영 좋지 않았다.

    비록 저들이 세르부르 항구를 확보한 데다가 후방에 수백만에 달하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들의 교두보는 고작 40 제곱킬로미터 남짓한 코탕탱 반도 하나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무리 많은 병력을 실어나르더라도 한 번에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한정될 터.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곳에서 두 번째 상륙 작전을 감행하지도 못할 테고 말이지.’

    만약 연합군에게 그럴만한 전력이 있다면 차라리 코탕탱 반도 포위망을 뚫고 전선을 확장하는 쪽으로 힘을 실으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확실하다.

    그건 바로 연합군의 반격을 완전히 봉쇄하고 대서양으로 몰아내는 것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슈페어 총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소련 놈들이 협상에 나서지 않을만한 이유는 연합군이 서부전선을 압박해서 아군에게 빈틈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그렇겠지요.”

    “그러니 이번에 프랑스의 영미 연합군을 완전히 분쇄하고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저들도 결국 포기하고 협상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내 말에, 슈페어는 불안한 표정을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파울루스 원수만 믿고 승전보를 기다리겠습니다.”

    *****

    그 무렵, 세르부르 항구에 위치한 미 1군 사령부에서는 브래들리와 패튼이 앞으로의 작전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군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진격해야지! 언제까지고 계속 이 코딱지만한 반도에 눌러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겠소?”

    “···그야 맞는 말입니다만.”

    패튼의 말에, 몽고메리는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침음을 삼켰다.

    현재 연합군은 세르부르 항구를 통해 증원을 거듭해 총 8개 사단을 코탕탱 반도에 배치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에 대항하는 독일군은 반도의 목 부분에 도합 8개 사단을 배치하며 철통같은 포위망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

    게다가 세르부르 항구의 제한적인 하역량을 생각한다면 이 이상 병력을 투입하는 것도 어려웠다.

    즉, 지금의 이 전력만으로 저 철통같은 방어선을 뚫고 진격해나가야 한다는 말인데, 그것이 정말 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패튼은 담담하게 답했다.

    “전선이 좁아서 배치할 수 있는 병력의 수가 제한된다면, 그만큼 더 밀어 넣으면 되지 않겠소?”

    “그 말씀은, 병력을 축차 투입하시겠다는 말입니까.”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 그럼 장군께서는 뭔가 특별한 수라도 있는 거요?”

    “···그건 아닙니다만.”

    “좋소. 그럼 1기갑사단을 르세로, 2기갑사단을 코랑탕 방면으로 투입해서 생로로 진격하도록 하지. 일단 꾸떵스부터 생로, 베이유까지만 확보하더라도 2번째 야전군을 투입할만한 전선은 확보되지 않겠소?”

    물론 그 과정에서 미군이 심대한 피해를 입을 것은 분명하지만, 어차피 지금 영국에는 전선에 투입되지조차 못한 채 차례만 기다리고 있는 사단이 9개나 더 남아있다.

    그러니, 설령 이번 공세로 전선에 배치된 병력이 모두 전멸하더라도 저 포위망을 돌파할 수만 있다면 아군의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리라.

    그런 패튼의 주장에, 브래들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시간을 끌어봤자 상황이 악화되기만 할 테니, 지금은 다소 피를 흘리더라도 진격해야겠지요.”

    “하하, 이해해주시니 다행이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중폭격기의 대대적인 공습과 함께 연합군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

    “어이, 버트! 정신 차려!”

    “···예, 예. 괜찮습니다!”

    “정신 차리라고!”

    짝!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누군가 뺨을 후려치는 충격에, 제41 기갑보병연대 소속 버트 일병은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그의 눈에는 자신의 옷깃을 붙잡고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가고 있는 분대장의 모습이 보였다.

    “부, 분대장님? 여긴 어디입니까.”

    “어디긴 어디야. 빌어먹을 전쟁터지. 정신이 드나?”

    “모, 모르겠습니다.”

    버트 일병은 후들거리는 팔로 땅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았다.

    주위에는 무너진 돌담과 파괴된 건물 잔해들뿐. 그래도 여기는 전선에서 조금 떨어진 곳인지, 총성은 들릴지언정 총알이 날아들지는 않았다.

    “제기랄, 꼬라지 보아하니 다친 데는 없는 모양이군. 저기 중대 본부로 가서 바주카 탄이나 좀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분대장의 지시에 버트는 M1 개런드 소총을 꼬나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대 본부라면, 아마 외곽에 있던 커다란 창고 건물이었었지. 그렇다면 여기서는 북쪽으로 가야 할 터.

    그렇게 중대 본부에서 바주카 탄이 든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서 땀을 뻘뻘 흘리며 분대로 복귀하자, 분대장이 돌담의 틈 사이로 무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대장님, 가져왔습니다.”

    “수고했다. 하워드, 저 빌어먹을 놈에게 한발 먹여줘라.”

    “예!”

    버트가 분대장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거대한 전차가 도로를 틀어막은 채 기관총을 쏘고 있었다.

    “···전차입니까.”

    “그래, 그것도 4호 전차 나부랭이가 아니라 진짜배기 티거다. 네놈이 기절해 있는 동안 아군 전차가 세 대나 달려들었지만 전부 장작이 되어버렸지.”

    그 말에 버트가 주위를 둘러보자, 정말 도로 저편에는 M4 셔먼 전차가 불길에 휩싸인 채 격파당해 있었다.

    “하지만 걱정 마라. 이 정도 거리에 측면 장갑이라면, 바주카로도 충분히 관통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순간, 하워드 상병의 바주카가 거대한 후폭풍과 함께 불길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포탄은 정확히 티거의 측면에 착탄해 폭발을 일으켰다.

    “명중입니다!”

    “하하! 좋았어. 돌격 앞으로!”

    그러나 잠시 뒤, 폭연이 가신 뒤 그곳에는 흠집 하나 없는 티거가 이쪽을 향해 포신을 돌린 채 멀쩡히 서 있었다.

    투콰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돌담 너머로 뛰쳐나갔던 병사들이 모두 폭발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리고 티거는 버트 일병을 깔아뭉갤듯한 기세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제, 젠장···.”

    버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워드 상병이 남기고 간 바주카포를 집어 들었다.

    이건 어떻게 쏘는 거더라? 분명 훈련소에서 배웠을 텐데. 방아쇠가 있으니 조준하고 당기면 되는 건가.

    하지만 이젠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돌담과 함께 전차의 궤도에 깔려 죽을 테니까.

    ‘제기랄, 밑져야 본전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버트 일병이 방아쇠를 잡아 당기는 순간, 바주카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딸깍.

    그 소리에 버트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가 가져온 탄 박스에는 장전되지 않은 바주카 탄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하하, 하. 바보같이···.”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의 코앞까지 다가온 티거가 거대한 폭음과 함께 폭발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버트의 머리 위로, 미군 전폭기 한 대가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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