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노르망디 상륙 작전 (7)
1944년 5월 14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연합군 원정군 최고사령부는 미묘한 긴장감에 잠겨 있었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현재 진행 중인 영국군의 퇴각 작전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탈출한 영국군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약 3만 명 정도가 영국해협을 건너는 데 성공했습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병력을 실어나르고 있으니 확인되지 않은 인원이 수천 명 정도는 더 있을 겁니다.”
탈출 작전을 시작할 당시에 영국군은 3개 사단에 증원된 병력까지 도합 7만 명 정도.
그런데 그중 퇴각에 성공한 것은 고작 3만에 불과하다니.
그 말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정원의 절반조차 데려오지 못했다는 것이 아닌가.
아이젠하워는 침울한 영국군 장교들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나머지 병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약 1만 5천 명은 후방을 지키며 싸우다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으며, 나머지 인원들은 아직도 소드 해안에서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영국 2군 사령관, 뎀프시 소장의 암울한 보고에 아이젠하워는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미 1군은 르세부터 카랑탕 외곽에 이어 두브강까지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상태.
그러나 이를 대신해서 영국군은 서유럽 전선에서 일시적으로 발을 빼야 할 만큼 심각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번 퇴각으로 인해 영국 50사단과 캐나다 3사단은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탈출한 영국 3사단도 모든 장비와 무장을 모두 버린 채 맨몸으로 빠져나온 신세였던 것이다.
게다가 연합군에게 들이닥친 문제는 영국군이 입은 피해와 골드, 주노, 소드 해안가 지대의 점령지 상실뿐만이 아니었다.
“그럼 노르망디에 영국군 병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겠군요.”
“총사령관께서 요청하신다면 1~2개 사단 정도는 지금 당장이라도 재편해서 보내드릴 수도 있소이다.”
“아니,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노르망디의 상황이 조금 애매해져서 말입니다.”
“지상군의 지휘권 문제 때문에 그러시는 거구려.”
“···정말 죄송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굳은 표정의 몽고메리를 바라보며, 아이젠하워는 송구하다는 듯이 어렵게 답했다.
당초 오버로드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영미 양국은 연합군 원정군 총사령관은 아이젠하워가, 지상군의 지휘는 몽고메리가 맡기로 합의했었다.
그리고 상륙 작전이 개시된 직후처럼 미 1군과 영 2군이 모두 투입되어 있었을 때는 이들 양군을 합쳐서 만든 제21 집단군의 지휘관 자리에 몽고메리가 앉음으로써 지상군의 지휘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영국 2군이 완전히 퇴각하면서 현재 서유럽의 지상군은 미 1군 소속 6개 사단밖에 남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몽고메리가 코탕탱 반도의 미 1군을 지휘하는 사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애당초에 1개 야전군밖에 남지 않았다면 집단군 사령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영미 연합군의 지휘라면 모를까, 미군만 남은 마당에 영국 장군이 지휘관을 맡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말이지.’
사실, 이 자리에 모인 미군 지휘관들은 내심 몽고메리가 지상군 사령관 직을 반납하고 물러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군 입장에서 지상군 사령관직은 연합군 총사령관 자리를 미국에 양보하고서 받아낸 것인 만큼 쉽게 포기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작금의 이 사태도 연합군의 승리를 위해서 영국군이 희생을 감수한 것인데, 그 결과 지상군 사령관직까지 반납하는 것은 너무나도 불합리한 일이었다.
‘젠장··· 단순히 행정적으로 생각하면 지산군의 지휘는 미 1군 사령관인 브래들리 중장이 알아서 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그랬다간 영국군의 입장에서는 마치 배신당한 것처럼 느껴질 테니··· 어렵군.’
그렇게 아이젠하워가 양국 지휘관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살피고 있을 때, 내내 얹잖은 기색을 숨기지 않던 몽고메리가 한숨을 내쉬며 먼저 입을 열었다.
“후··· 이래서야 도무지 상황이 정리되질 않을 것 같군. 좋소,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이번에는 우리 영국군이 양보해서 미군에 지상군 지휘권을 넘기도록 하겠소.”
“···그게 정말이십니까?”
몽고메리의 대국적인 양보에, 아이젠하워는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 공짜는 아니오. 이번에 우리 병사들이 연합군의 승리를 위해서 희생한 만큼 당신네들도 무기와 물자로 보상해주셔야겠소. 랜드리스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보상 말이오.”
“···그 부분은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긴 합니다만, 그 정도라면 대통령 각하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실 겁니다. 각하의 용단에 감사를 표합니다.”
“흥! 우리가 없는 동안 세르부르를 빼앗기지나 마시오!”
결국, 지상군의 지휘권 문제를 둘러싼 연합군 사령부의 갈등은 몽고메리의 양보와 양측의 합의 덕분에 적절하게 봉합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더 큰 문제의 시작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몽고메리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지상군 사령관 자리에 들어온 것이 바로 조지 S. 패튼 중장이었던 것이다.
*****
그 무렵,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에 위치한 스타브카 최고 중앙 지휘사령부.
이곳에서는 주코프의 뒤를 이어 최고사령관 대리로 임명된 바실렙스키 대장이 스탈린에게 전선의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논의하는 주제는 독일과 소련군이 격전을 벌이고 있는 동부전선의 전황이 아니었다.
그 대신, 이들은 노르망디 해안의 영미 연합군과 독일군의 전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해서, 현재 영국군은 대부분의 점령지와 병력을 잃고 약간의 잔당만이 남아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며, 미군은 코탕탱 반도에서 안정적인 방어선을 구축하고 세르부르 항구를 통해 계속 병력을 증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동지가 보기에는 미군의 승산은 얼마나 되는가?”
“승산··· 이라고 하시면 무엇을 말씀드릴지 모르겠습니다만. 현재의 위치에서 벗어나 생로와 캉을 점령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흠···.”
제법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는 바실렙스키의 대답에, 스탈린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연합군이 승리한다는 것은 소련의 입장에도 좋은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바실렙스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현재 연합군이 자리잡은 곳은 방어자에게 유리한 지형이라 독일군의 전력이 압도적이어도 쉽게 뚫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코탕탱 반도의 연합군은 점점 더 증원되어 늘어날 테니 언젠가는 독일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되면 독일군은 더 많은 병력을 동부전선에서 차출해서 서부전선으로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사이에 소련군이 빈틈을 노려 크게 약진하거나 강화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지난 5개월간 미국놈들이 보내준 랜드리스 물자 덕분에 아군의 전력도 상당 부분 회복되었습니다.
비록, 작년과 같은 대규모 반격작전은 어려울지 몰라도 독일군의 허를 노린 일점 돌파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실 지난 수개월 간 미국은 소련에게 노골적일 정도로 수많은 물자를 지원하며 러브콜을 보내왔다.
심지어는 이미 승기를 잡은 태평양 전선에 대한 보급물자 수송보다도 소련에게 보내는 랜드리스 지원을 우선시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노력 덕분에, 현재 소련은 M4 셔먼으로 편제된 기갑사단을 세 개나 보유할 정도로 전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바실렙스키의 재반격 주장에 대해서 단칼에 일축해버렸다.
“아니, 상황이 어찌 돌아가든 간에 우리 붉은 군대가 다시 도박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오.”
“서기장 동지, 다시 한번 생각해주십시오! 비록 지금까지 아군이 졸전을 펼치긴 했지만, 연합군이 제2 전선을 열어준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후, 바실렙스키 동지. 이건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오. 동지는 혹시 이 전쟁이 끝난 후를 생각해보셨소?”
“전쟁이 끝난 후··· 말씀이십니까?”
갑작스러운 스탈린의 물음에 바실렙스키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지금 당장 소련이 독일에게 패배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떻게 전후의 일까지 고려한단 말인가.
그러나 서기장께서는 마치 먼 곳을 바라보듯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동지도 아시겠지만, 이미 태평양 전쟁은 승기가 기울었소. 이제 일본이 몰락하는 것은 시간문제고, 그럼 미국은 승전국이 되어 태평양을 지배하겠지.
그리고 이번 상륙작전도 마찬가지요. 저놈들이 고전하는 동안 우리가 뒤를 쳐줘서 미국이 독일을 이겨버린다면, 과연 누가 이득을 보겠소?”
“······.”
물론, 독일이 패망한다면 지금 독일과 싸우고 있는 소련도 이득을 보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 남는 것은 초강대국이 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이미 국력이 쇠해 버린 소련뿐.
그럼 그 뒤에는?
1차대전 후에 적백내전이 일어났던 것처럼, 독일의 패망 후에는 저 간악무도한 영미 자본주의 돼지 놈들이 약해진 우리 소비에트 연방을 집어삼키려고 달려들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영미 연합군을 돕지 않을 것이오. 저놈들이 독일을 상대로 이기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우리 연방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붉은 군대가 치른 희생만큼 저놈들도 피를 흘려줘야 하거든.”
“하지만··· 그랬다가 독일이 연합군을 이겨버리면 더 큰 일이지 않습니까? 그럼 서부전선에 배치된 독일군까지 모두 동부전선으로 몰려올지도 모릅니다.”
“맞는 말이오. 그러니 우리는 적절한 때에 출구 전략을 사용해야겠지.”
바실렙스키의 말대로, 연합군은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파리를 탈환하고 프랑스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저놈들이 절대로 발을 뺄 수 없는 곳까지 진격해 들어와서 독일놈들이 가장 곤란해지는 바로 그 순간.
‘그 순간에 우리가 강화협상에 나서서 독일놈들에게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고 전쟁에서 빠져버리는 거지.’
그럼 동부전선에 배치된 독일군은 서부전선으로 몰려가서 영미 연합군을 박살낼 것이고, 우리 소비에트 연방은 저놈들의 싸움을 구경하며 재빨리 국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은 연합군이 좀 더 열심히 싸워줄 필요가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스탈린은 바실렙스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바실렙스키 동지, 지금 연합군 놈들에게 연락하시오. 만약 연합군이 파리까지 진격한다면, 우리도 동부전선에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겠다고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