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24화 (124/157)
  • 124화. 노르망디 상륙 작전 (6)

    1944년 5월 3일.

    포츠머스의 로열 네이비 기지에서 몽고메리를 만난 아이젠하워 대장은 격분한 그를 달래느라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노르망디 해안의 증원보다 세르부르 항구 방어를 더 우선시하겠다니! 해안가에서 죽어가고 있는 우리 병사들은 다 버리겠다는 말이오?”

    “잠시 진정하시지요, 몽고메리 장군. 제 말뜻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흥! 아니긴 뭐가 아니오. 결국, 총사령관께서도 영국군보다 미군을 우선시하시겠다는 것이지 않소?”

    날 선 몽고메리의 대답에, 아이젠하워는 내심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항구에 몽고메리의 기함인 HMS 힐러리가 정박되어 있는 것을 보아하니, 어제 명령을 받자마자 곧바로 배를 돌려서 따지러 온 것일 터.

    ‘···몽고메리 장군의 반발이 이렇게까지 심할 줄이야. 혹시 영국군의 상황이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한 건가.’

    아무래도 오늘 회의가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아이젠하워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영국군의 사정을 배려하지 못한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군이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세르부르 항구는 반드시 사수해야만 합니다.”

    “나라고 그걸 모르겠소? 다만, 지금 영국군의 사정이 어려우니 이쪽을 우선시해달란 말이오. 어차피 독일군도 아군을 공격하느라 정신 팔려있으니 코탕탱 반도의 방어선은 나중에 구축해도 되지 않소.”

    “후··· 그 말씀은 맞습니다만, 그래도 상륙정을 모두 영국군에게 할당하는 것은 조금 어렵습니다.”

    “어째서요? 미군은 세르부르 항구를 얻었으니, 화물선으로 물자를 실어나르면 되지 않겠소?”

    “그게, 독일놈들이 항구의 시설물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바람에 하역할 수 있는 물자의 양이 예상만큼 많지 않아서 말입니다.”

    애당초 연합군 사령부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계획할 당시에 예상했던 바로는, 세르부르 항구를 통해 1주일에 최소 3만 톤 이상의 물자를 하역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항구를 점거하고 조사해보니 항구의 최대 하역량은 독일군의 파괴 공작으로 인해 예상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로 인해서 예정대로 물자와 병력을 수송하려면 항구와 상륙정 수송을 병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젠하워의 주장은 몽고메리와 영국군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뭐, 그건 좋소. 그래. 어차피 원래 계획에서도 세르부르 항구가 주목적이었고 캉 해방은 조공에 불과했으니, 그쪽을 우선시하는 게 전략적으로 타당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걸 위해서 우리 영국군을 버림패로 쓰겠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군. 당신이 정 그렇게 나온다면 내가 직접 미 1군을 움직여서 영국군을 구원하겠소.”

    “······.”

    몽고메리의 폭탄선언에, 아이젠하워는 할 말을 잃고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몽고메리가 정말로 미 1군을 움직이겠다고 한다면 아이젠하워로서는 이를 막을 방법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비록 아이젠하워가 연합군 총사령관이긴 했지만, 이번 상륙작전이 끝날 때까지 지상군의 지휘권은 몽고메리가 맡기로 영미 양국 간에 합의가 이미 끝났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이젠하워가 미 1군 사령관인 브래들리 중장에게 직접 연락해서 몽고메리의 명령을 거부하도록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안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연합군 내부의 신뢰 관계가 완전히 깨져버릴 터.

    하지만 그렇다고 몽고메리의 말대로 영국군의 구원을 우선시했다간 어렵게 얻은 항구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젠장, 이걸 어찌한다. 같은 미군이었으면 어떻게든 설득을 해보겠는데, 이번 일은 결국 영국군의 희생을 강요하는 꼴이니, 원.’

    군사적 이득을 우선시할 것인가, 아니면 동맹국과의 신의를 지킬 것인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아이젠하워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영국군이 조금만 더 버텨줄 수는 없겠습니까?”

    “후··· 미안하지만, 우리 영국군은 아직 48개 사단이 남아있는 당신네 미군과는 다르게 이미 병력 보충이 한계에 달해서 말이지.

    지금 골드-소드 해안의 병력을 모두 상실하면 한동안 서유럽 전역에 참전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오.”

    “···그렇군요.”

    그런 몽고메리의 대답에 아이젠하워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가뜩이나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이은 격전을 치른 데다가 최근에는 해안가의 상륙지마저 독일군 기갑부대에 의해 공격받고 있으니, 저쪽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겠지.

    ‘대통령 각하께서는 이번 상륙 작전이 실패하면 소련이 발을 뺄지도 모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작전을 성공시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영국과 척을 지는 것보다는 낫겠지.’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젠하워는 어렵사리 타협책을 제시했다.

    “그럼 장군께서 요청하신 대로 미 1군에 배정된 상륙정을 전부 영국 2군에게 할양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증원 병력을 지원해드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럼 상륙정을 받는다 한들 의미가 없지 않소. 그리고 아직 배에 타지도 못 한 채 영국에서 놀고 있는 미군 부대는 어디에 쓰려고 그러시오?”

    몽고메리는 병력을 계속 축차 투입해서라도 지금의 상륙지를 끝까지 지키자고 주장했지만, 아이젠하워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병력을 아끼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그렇게 병력을 계속 밀어 넣어봤자 노르망디 해안을 사수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서 말입니다.”

    현재 골드, 주노, 소드 해안의 전황은 이미 독일군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었다.

    하다못해 해안가의 상륙지라도 끝까지 사수했었더라면 병력을 계속 투입해 보겠지만, 이제는 그 상륙 지점마저도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지 않나.

    게다가 그동안의 격전으로 인해 이미 병력의 소모가 적지 않은 만큼, 남은 병력은 모두 코탕탱 반도의 방어에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젠하워의 생각이었다.

    “그럼 우리 영국군은 이제 어쩌란 말이오? 우리가 알아서 증원을 보내라는 거요?”

    “아닙니다. 제 말은, 차라리 노르망디 해안을 포기하고 영국군을 모두 퇴각시키자는 겁니다.”

    증원을 보내는 대신 병력을 퇴각시킨다라··· 그 말에 몽고메리 중장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게 정말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시오? 적군의 추격 속에서 병력을 탈출시키는 건 상륙작전만큼이나 어렵단 말이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도 없지 않습니까. 코탕탱 반도의 사수와 영국군의 구원을 양립시키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젠하워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몽고메리도 더 이상은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몽고메리 또한 세르부르 항구의 중요성을 다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제기랄, 어쩔 수 없군. 덩케르크의 기적이 다시 한번 일어나주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그리하여 1944년 5월 7일.

    노르망디의 소드 해안에서 영국 2군의 필사적인 탈출 작전이 시작되었다.

    *****

    “빌어먹을··· 내가 이 짓거리를 또 하게 될 줄이야.”

    소총도 장구류도 모두 벗어던진 채, 해안가에 줄지어 서서 상륙정을 기다리고 있던 헤밍턴 일병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하사 계급장을 단 부사관 하나가 어두운 표정으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또 하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난 덩케르크 철수 작전 때도 있었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이 똑같아서 말이지.”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라면, 몇 년 전에 프랑스가 독일의 손에 넘어갈 때 우리 군인들이 영불해협을 넘어왔던 그 일 말인가.

    그 당시에 헤밍턴은 아직 징집되기 전이라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그래도 며칠 동안 신문이며 라디오에서 기적과도 같은 성공이라고 떠들어대는 통에 대강은 알고 있었다.

    “그럼 하사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이번 철수 작전도 성공할 것 같습니까?”

    “후··· 글쎄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때와 이번은 상황이 너무 달라서 말이지.”

    “어떻게··· 말입니까?”

    “그때는 프랑스 놈들이 끝까지 후방을 지켜줬었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까지 온갖 나라의 군함과 상선들이 몰려와서 퇴각을 도와줬었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와 미국뿐이지 않나.”

    하사의 비관적인 말에, 헤밍턴 일병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후방에서는 다른 영국군 부대들이 필사적으로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헤밍턴도 운이 없었더라면 여기서 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버려질 것을 각오하고 싸우는 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라. 적어도 우리들은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듣기로는 우리 부대도 제법 순서가 빠른 편이거든.”

    “···그럼, 퇴각하지 못하고 남겨지는 이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다··· 아마 항복해서 포로가 되겠지.”

    그 말에 헤밍턴 일병은 새삼스레 해변가의 풍경을 다시 둘러보았다.

    해변의 한쪽 공터에는 짐을 줄이기 위해 버려진 차량과 장비들이 마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길다란 해안가에는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마치 포로처럼 빈손으로 털레털레 서 있었다.

    그럼 이 해안가에 서 있는 인원을 모두 합쳐봤자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뭐, 아무리 많이 잡아봤자 천명을 넘기기는 힘들겠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탈출하는 인원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수만 명 중에 고작 수백이라니.

    이런 식으로 실어 날아봤자 과연 얼마나 많은 병력을 탈출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헤밍턴 일병이 고민하는 동안, 저 멀리서 상륙정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배다!”

    “수송선이다!”

    “조용히 해라! 배가 도착하면 지시에 따라 차례대로 탑승하도록!”

    그리고 잠시 뒤, 모래사장 바로 앞까지 도착한 상륙정이 입구를 내리자, 장교들이 병사들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거기 너! 벽에 제대로 밀착해! 서로 최대한 붙어라!”

    “위에 올라탈 수 있는 놈은 올라타도 좋다! 체력에 자신이 있는 놈들은 옆에 매달려서라도 탑승해라!”

    그렇게 탑승 정원을 한참이나 넘긴 다음에야, 상륙정은 해안가를 출발해서 북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렇게 끼인 채로 영국까지 가야 하는 건가.”

    “도착하기도 전에 질식해 죽겠군.”

    그렇게 사방에서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헤밍턴은 멀어지는 소드 해안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아직도 치열한 격전으로 인한 폭음과 섬광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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