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23화 (123/157)
  • 123화. 노르망디 상륙 작전 (5)

    1944년 5월 1일.

    노르망디 해안 인근의 소도시, 아로망슈.

    이곳에 설치된 영국 50사단 사령부는 현재,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독일군의 공세로 인해 깊은 혼란에 빠져있었다.

    “각하, 69여단 사령부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트레이시 슈 메르 방면의 가도를 방어하는 612연대의 피해가 너무 심각해서 퇴각하겠다고 합니다.”

    “그건 불가하네. 대신, 여기에 배치된 424연대를 보내 증원토록 하게.”

    “죄송하지만 424연대는 며칠 전에 3개 중대를 잃고 후방에서 재편 중인 상황입니다.”

    “그럼 바젠빌의 30기갑여단에서 병력을 지원받을 수는 없겠나?”

    “저쪽도 상황은 비슷한지라···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영국 제50사단장, 더글라스 알렉산더 그레이엄 소장은 작전 지도와 편제표를 번갈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적어도 서류상의 편제에 따르면, 현재 그의 50사단에는 무려 24개의 연대가 배치되어 있는 상황.

    하지만 이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증원과 투입을 반복하다 보니 생긴 행정오류일 뿐, 실제로 지금 당장 전투 가능한 병력의 수로 따지면 50사단의 전력은 12개 연대도 채우기 어려울 터였다.

    그 예로 현재 베이유 방면에 배치된 부대는 총 3개 연대였지만, 이들의 병력은 모두 합쳐봤자 고작 7개 중대밖에 되지 않았다.

    ‘젠장할··· 고작 사단 사령부에서조차도 전력 파악이 안 될 만큼 전황이 급박하단 말인가. 이래서야 언제 어디서 전선이 무너지더라도 이상하지 않겠군.’

    게다가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독일군이 압도적인 수의 보병을 투입해서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영국군이 병력 열세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고착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인근의 보카쥬 지형과 아군의 공군 지원, 그리고 미군 덕분이었다.

    사실 노르망디에 배치된 독일군 부대의 수는 많았지만, 이들 중 다수는 해안의 방어선에 고정된 데다가 반격에 나선 이들도 코탕탱 반도와 캉 인근으로 분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의 독특한 보카쥬 지형은 독일군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기갑부대를 막아주었으며, 공군 지원은 위급한 순간에 기동타격대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독일놈들이 세르부르 항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해버릴 줄이야···.’

    그런데 그 모든 이점들은 독일군이 세르부르를 포기하고 영국군에 전력을 집중함으로써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다.

    마치 참호와도 같은 보카쥬 지형은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한 데다가 체계적인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독일군에게 더욱 유리하게 작용했고, 그동안 든든한 버팀목이던 공군 지원도 사방에서 몰려오는 독일군을 모두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군. 그럼 69여단의 퇴각을 허락하겠네. 단, 30기갑여단과 발맞춰서 함께 물러나야 하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여단 사령부에 명령을 하달하겠습니다.”

    결국, 결단을 내린 그레이엄 소장은 점점 더 줄어드는 영국군의 교두보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젠빌의 30기갑여단도 물린다고 생각하면··· 해안까지의 종심은 고작 4km 남짓해지는 건가. 이래서야 여기, 아로망슈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겠군.’

    하지만 그래도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감수하면서 현재 위치를 끝까지 사수해봤자 결국 큰 의미는 없었을 테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점령지를 일부 포기하더라도 병력을 물려서 전선의 부담을 줄이는 편이 나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그레이엄 소장은 연합군 사령부로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후··· 이제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나. 증원이 더 필요하다? 아니, 어차피 지금도 최대한 빨리 병력을 보내고 있을 텐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방금 전에 명령을 전달하러 나갔던 부관이 다급하게 뛰어들어오며 말했다.

    “가, 각하! 급보입니다! 독일군 기갑사단이 아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독일놈들은 보카쥬 때문에 기갑부대의 투입을 포기한 게 아니었나?”

    “그게··· 아무래도 아군의 방어선이 취약해진 틈을 타서 단번에 돌파하려는 작정인 것 같습니다.”

    그런 부관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엄 소장은 독일군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군의 방어선을 단번에 돌파한다고?

    뭐, 그것은 좋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기갑부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일대는 해안가에서 조금만 깊이 들어가더라도 보카쥬 지형이 펼쳐져 있는데, 설마 이런 곳에서 기동전을 펼쳐 아군 부대의 후미를 치려는 것은 아닐 터.

    ‘···아니, 설마.’

    그러나 그 순간, 그레이엄 소장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대부분의 지형이 나무 울타리와 관목 수림으로 뒤덮여있는 이곳에서도 딱 한군데, 전차가 기동할 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건 바로, 바다와 맞닿은 해안가 근방의 평야 지대였다.

    *****

    그 무렵, 트레이시 슈 메르 인근에 위치한 작은 관목지대.

    이 우거진 수풀 속에는 다섯 대의 판터가 적군의 관측과 공습을 피해 은폐한 채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 최선두에 선 171호 판터의 포탑 위에는 가슴팍에 기사 철십자 훈장을 단 전차장이 서서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대장님, 이제 슬슬 출발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영국 놈들도 이제 다 도망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니, 아직이다. 적어도 아군이 가도를 장악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프란츠 중위는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냉정하게 답했다.

    현재 그들 소대가 받은 임무는 눈 앞에 펼쳐진 보카쥬 지형을 단번에 돌파해서 해안가의 평야로 진격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영국군의 방비가 가장 약해진 틈을 타 재빨리 가도를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그냥 수풀을 밀고 지나가면 되지 않습니까? 4호나 셔먼은 몰라도 판터 정도면 나무 울타리는 밀고 지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러다가 만약에 전차가 멈추기라도 하면 그 순간 우리는 전부 끝장이다.”

    프란츠는 조종수 막스의 안일한 주장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사실 전차장의 입장에서 보자면 보카쥬 지형은 여러모로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막스의 말대로 단숨에 밀고 지나가자니 울퉁불퉁한 지형과 빽빽한 나무 덩굴 탓에 궤도가 걸리기 일쑤였고, 그렇게 통과하더라도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보병들의 바주카에 노출되어야 했다.

    그렇다고 반대로 울타리를 돌아가자니 진입로가 뻔해지는 데다가 울타리 너머에서 날아오는 총알과 포탄에 측면이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

    그렇기에 대대 사령부에서도 판처 에이스라 불리는 프란츠에게 이 돌파 임무의 선두를 맡긴 것이리라.

    ‘뭐, 나라고 해도 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말이지.’

    그러나 프란츠로서도 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저 때를 잘 살펴서 단숨에 돌파하는 수밖에.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던 프란츠는 드디어 포탑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좋아, 막스. 지금 출발한다! 각 차량도 차례대로 따라서 기동하도록.”

    “예!”

    전차장 석에 앉은 프란츠는 좁은 페리스코프의 시계 너머로 적진을 살피며 계속 달려나갔다.

    현재 시가지의 영국군은 아군에 의해 완전히 제압당한 채 뿔뿔이 흩어져서 도주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저 관목 울타리 너머나 건물의 2층에서 언제 영국군이 튀어나와 바주카를 날려댈지 알 수 없었다.

    “막스! 속도를 줄이지 마라! 돌담은 그냥 밟고 지나가!”

    “소대장님! 3시에 기관총 진지입니다!”

    “무시하고 통과해! 지금은 개활지로 나가는 게 최우선이다!”

    다섯 대의 판터가 좁은 시가지의 가도를 달리자 보병들은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그런 보병들 사이로, 저 멀리 모퉁이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1시에 적 전차 발견! 셔먼입니다!”

    “거리는? 아니, 일단 달리면서 쏴라! 발츠, 할 수 있겠나?”

    “해, 해보겠습니다!”

    현재 판터의 속도는 약 시속 40km.

    하지만 좁은 시가지를 달려서 그런지 체감상 느껴지는 속도는 훨씬 빨랐다.

    게다가 애당초에 전차포는 멈춰서 쏘는 것이 보통인 만큼, 이런 상황에서 명중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리라.

    하지만 프란츠는 대충 한 발 발사하기만 한 채 격파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쳐 통과해버렸다.

    만약 격파하지 못했더라도 거기서 프란츠의 판터가 멈췄다간 뒤에 오는 차량까지 모두 정체되었을 테니까.

    “여기는 바스 5. 셔먼 처치 완료.”

    “수고했다, 바스 5. 현재 위치는?”

    “전방 차량과 약 200 정도 떨어졌다. 금방 따라가겠다.”

    “확인.”

    그리고 그렇게 트레이시 슈 메르를 통과해서 개활지로 나오는 순간, 프란츠의 눈앞에는 드넓은 대서양 바다와 저 멀리 떠 있는 로열 네이비의 모습이 펼쳐졌다.

    “···통과했군.”

    잠시 동안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프란츠는 이내 무전기의 레버를 돌리고 말했다.

    “여기는 바스 1. 오케스트라에게.”

    “여기는 오케스트라. 무슨 일인가.”

    “바스 소대, 전원 트레이시 슈 메르를 통과했다. 이상.”

    *****

    1944년 5월 2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연합군 원정군 최고 사령부.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 대장은 책상 위에 놓인 두 장의 보고서를 바라보며 깊은 고뇌에 잠겨있었다.

    ‘코탕탱 반도와 영국군이라···.’

    그 보고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그건 바로, 미 1군이 세르부르 항구와 코탕탱 반도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는 것과 영국 2군이 전멸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

    그리고 이 보고서의 마지막에서 브래들리 중장과 몽고메리 모두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 ···비록 코탕탱 반도를 순조롭게 점령하기는 했지만, 세르부르 항구의 방어를 강화하고 현재의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함.

    - ···현재 교두보의 해안지대가 독일군 기갑부대로부터 위협받고 있어, 반격을 위한 증원이 시급히 요구됨. 이에 모든 상륙정을 영국 2군에 배정해줄 것을 요청함.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어렵게 얻은 세르부르 항구와 코탕탱 반도를 지키기 위해서 전력을 보낸다면 영국군이 위험에 처할 것이고, 저들을 구원하기 위해 증원을 집중하면 모처럼 얻은 항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험에 처한 아군을 구원할 것인가? 아니면 요충지의 사수를 우선시할 것인가?

    ‘젠장할···.’

    포기할 수 없는 양쪽을 저울에 올린 채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젠하워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세르부르 항구를 포기할 수는 없네. 코탕탱 반도를 우선시하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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