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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22화 (122/157)
  • 122화. 노르망디 상륙 작전 (4)

    1944년 4월 24일.

    연합군이 상륙 작전을 개시한 지 약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나는 노르망디 일대의 전황을 살피기 위해 파리에 위치한 서부전선군 사령부에 방문해 있었다.

    “어서 오시오, 파울루스 원수. 어려운 상황에 와 주셔서 고맙소.”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하. ···그런데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하하, 보시다시피 전황이 생각대로 잘 풀리질 않아서 말이오.”

    나를 반겨준 서부전선군 총사령관, 롬멜 원수는 마치 며칠동안 밤을 샌 것처럼 초췌한 모습이었다.

    “의외로군요. 현재 노르망디 일대에서는 아군이 전력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소만, 연합군의 저항도 만만치가 않아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롬멜 원수는 한쪽에 펼쳐진 작전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시다시피 현재 아군은 도합 15개 사단. 그에 반해 상륙한 연합군은··· 계속해서 증원이 이어지는지라 정확한 규모는 불명이지만 대략 6개 사단 정도로 추정하고 있소.”

    15대 6이라.

    단순히 숫자로만 따지자면 전력비가 무려 2.5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우세였다.

    “하지만 아군 부대 중 243, 709, 91, 352, 716, 17사단까지 거의 절반에 가까운 전력이 고정 사단이라 대처가 어렵게 되었소.”

    나는 롬멜의 말에 침음을 삼키며 다시 작전 지도를 바라보았다.

    ‘고정 사단이라···. 제길, 동부전선을 기준으로 생각하다 보니 사단의 숫자만 따졌을 뿐, 이런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군.’

    고정 사단은 말 그대로 해안포 진지나 방어시설 따위의 정해진 장소에 배치가 고정된 부대를 뜻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기동전 훈련을 받지 않은 2선급 병력들로 이루어진 데다가, 사단에 배정된 운송수단도 열악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들을 섣불리 움직였다간 역으로 해안선의 경계가 약해진다.

    물론 연합군도 이미 교두보를 확보한 만큼 추가적인 상륙 작전을 개시할 확률은 낮긴 하지만, 그래도 세르부르 항구나 도빌 등의 요충지에서 병력을 빼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반격에 나설 수 있는 건···.”

    “91, 77, 709사단과 716, 344, 326사단 정도요. 다만, 이들로는 연합군을 완전히 밀어내기에는 조금 부족하단 말이지.”

    “그럼 기갑부대는 어떻습니까? 후방에서 대기 중인 3개 기갑사단을 투입하면 연합군도 막아내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내가 생로에 배치된 14기갑사단과 캉에서 대기 중인 21기갑사단, 12 SS기갑사단을 가리키며 묻자, 롬멜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기갑사단을 투입해서 반격에 나설 생각이었지. 하지만 저 일대는 ‘보카쥬’라고 하는 골치 아픈 지형이 펼쳐져 있어서 기갑부대를 써먹기가 쉽지 않소.”

    보카쥬는 쉽게 말해서 관목숲과 토담으로 이루어진 오밀조밀한 울타리 지형이었다.

    마치 참호와도 같이 얽혀있는 이 나무 울타리들은 전차로도 돌파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시계를 제한하고 대전차 무기에 쉽게 노출되도록 만들었다.

    이 지형 덕분에 아군은 몰려나오는 연합군을 손쉽게 틀어막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공세에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뿐만 아니라 제공권의 문제도 있소. 물론 아군의 루프트바페도 잘 싸워주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연합군놈들이 우세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오.”

    “흠···. 그럼 사령관께서는 기갑부대를 투입해 반격에 나설 경우, 아군의 승산이 어느 정도나 된다고 보십니까?”

    “내 생각에는 반반이오. 아까도 말했듯이 저 지형 때문에 기갑부대의 돌파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확신하기 어려운 데다가, 재수 없게 공습에 당해서 아까운 전력을 날려버릴지도 모르니 말이지.

    그래서 이번엔 파울루스 원수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군. 장군께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롬멜의 물음에, 나는 지도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현재 아군은 병력 우세를 점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교착상태를 뒤엎고 반격에 나서기는 조금 곤란한 상황.

    그에 반해 연합군은 무수히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공군력의 지원에 힘입어 세르부르 항구와 캉을 향해 느리게나마 조금씩 진격을 거듭하고 있었다.

    ‘세르부르와 캉이라···.’

    그리고 이중 특히 불안한 것은 코탕탱 반도의 끝에 위치한 세르부르 항구였다.

    이곳에서 미 1군을 저지하고 있는 3개 사단은 모두 고정 사단인지라 비교적 전력이 떨어지는 데다가, 영국에서 출발한 연합군의 폭격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서 약화된 상황.

    게다가 미군이 77사단을 돌파하고 반도의 서쪽까지 진격하기라도 한다면 저들은 연합군의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할 터였다.

    ‘···회귀 전의 역사에서도 그런 식으로 세르부르 항구를 빼앗겼었으니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세르부르 항구를 그냥 포기해버리기는 너무 아까운 상황.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르부르 항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갑사단들을 방어에 투입해서 현재의 교착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롬멜의 말대로 과감하게 반격에 나서서 연합군의 교두보를 제거할 것인가?

    ‘아니, 연합군의 교두보를 한 번에 제거하겠다는 것은 역시 무리수다. 하지만 이대로 교착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상책은 아니지.’

    코탕탱 반도의 위기와 골드-소드 해안의 이 애매한 교착상태. 그리고 아군의 전력과 연합군의 공군력까지.

    그 모든 것을 고려해서 고민한 끝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차라리 코탕탱 반도를 포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세르부르 항구를 말이오?”

    “그렇습니다. 어차피 지금의 상황에서 저곳을 사수하려고 병력을 더 투입해봤자 아군의 피해만 더 커질 테니, 적당한 상황에서 병력을 빼내고 반도를 틀어막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롬멜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 또한 세르부르 항구를 끝까지 사수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막상 이를 포기하기는 아까운 눈치였다.

    그런 그의 반응을 확인한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대신, 모든 전력을 집중시켜서 골드, 주노, 소드 해안에 있는 영국군을 몰아내는 겁니다.”

    “호오, 좀 더 자세히 말씀해보시오.”

    “예. 지금부터 세르부르에 있는 사단들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늦기 전에 이들을 모두 코탕탱 반도에서 빼낼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이 퇴각하면 미군은 세르부르로 향할 테니, 그 틈에 반도의 입구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겁니다.”

    비록 수송 수단이 전무한 고정 사단이라고는 해도, 세르부르 항구에서 코탕탱 반도 끝까지의 거리는 고작 50km에 불과하니 행군으로도 충분히 퇴각할 수 있을 터.

    그렇게 빠져나온 3개 사단과 77사단을 더하면 미 1군을 코탕탱 반도에 묶어놓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터였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방어선을 단축하고 병력을 구할 수도 있겠소만··· 세르부르 항구를 그렇게 쉽게 내줘도 되겠소?”

    “그 대신 영국군을 완전히 몰아내고 아군의 전력을 코탕탱 반도에 집중하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럼 방금 말한 문제는 어떻게 할 셈이오? 세르부르를 포기하고 영국군을 친다고 해도, 기갑부대를 앞세우기는 곤란할 텐데.”

    “그러니 그 대신에, 보병부대를 앞세우는 겁니다.”

    “···보병부대를?”

    내 대답에, 롬멜 장군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 독일군으로서는 공세는 당연히 기갑부대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으니까.

    하지만, 보카쥬의 지형은 대규모 기갑부대를 투입하기에는 부적절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적군의 종심이 고작 2km밖에 되지 않는 만큼 충분한 병력을 투입한다면 보병이 주축이 되어서 전선을 돌파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1km 정도만 돌파해서 해안가까지 진출하면 전차가 기동할 공간이 충분히 나올 겁니다.”

    “흠···.”

    잠시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내 제안을 검토하던 롬멜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후··· 좋소. 확실히, 세르부르를 끝까지 지키지 못할 거라면 이렇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구려. 지금 당장 코탕탱 반도의 병력을 퇴각시키도록 하겠소.”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1944년 4월 25일.

    오랫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노르망디 해안의 전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1944년 4월 30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연합군 사령부.

    “각하, 브래들리 중장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제4 보병사단이 세르부르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매일 처참한 사상자 보고서만을 받았던 아이젠하워는 갑작스러운 항구 탈환 소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유타 해안에 상륙한 이후 지난 열흘간 미군이 보여준 모습은 졸전 그 자체였다.

    독일군이 점거한 작은 마을 하나를 탈환하는데에도 최소 며칠 이상이 소요되었고, 4호 전차 한 대만 나와도 티거 전차가 나타났다면서 전폭기를 호출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고전을 면치 못하던 놈들이 갑자기 세르부르 항구를 탈환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혹시 계획대로 코탕탱 반도의 서쪽까지 진격하는 데 성공한 건가? 그래서 포위당한 독일군이 쉽게 항복해버렸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아이젠하워의 예상과는 다르게, 참모장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게··· 아무래도 독일군이 코탕탱 반도를 버리고 퇴각한 것 같습니다. 브래들리 중장의 보고에서도 세르부르 항구로 진격하면서 몇 개의 해안 진지와 부대들을 진압하긴 했지만, 아군의 예상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숫자였습니다.”

    “···그런가. 뭐, 어쨌든 잘됐군.”

    비록 퇴각하는 병력을 놓친 것은 아쉽지만, 지금은 당장 보급선을 보낼 항구를 확보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판단한 아이젠하워는 독일군이 생각보다 쉽게 항구를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사정이 어려워서 퇴각했으리라 짐작할 뿐,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좋네. 그럼 지금 당장 세르부르 항구로 화물선을 출항시키도록 하게. 지금은 코탕탱 반도와 항구를 사수하는 것이 최우선이네.”

    “예, 알겠습니다!”

    ‘후··· 결국 피를 흘리더라도 계속 밀어붙이는 게 정답이었군.’

    비록 그동안의 피해가 크긴 했지만, 이제 제대로 된 항구를 확보했으니 보급과 증원도 얼마든지 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충분한 전력이 축적되기만 하면, 지금의 이 교착상태를 돌파해서 파리를 해방시키는 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하리라.

    그렇게 아이젠하워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참모장교 하나가 집무실로 뛰어들어와서 외쳤다.

    “가, 각하! 몽고메리 중장으로부터의 급보입니다!”

    “···무슨 일인가? 천천히 말해보게.”

    “그 그것이, 지금 영국 2군이 독일군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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