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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21화 (121/157)
  • 121화. 노르망디 상륙 작전 (3)

    “···정말 끝도 없이 들어가는군.”

    함교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던 몽고메리 중장이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 비친 바다 너머의 저 상륙지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격전의 화염과 섬광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격전지를 향해서 병력과 물자를 실은 수송정들이 쉬지 않고 나아간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일개 중대, 대대급 병력들을 계속 밀어 넣어봤자 결국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꼴밖에 되지 않을 터.

    물론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어렵게 확보한 상륙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아이젠하워 대장의 뜻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병력만 잃고 교두보 확보에 실패한다면 의미 없는 것 아니겠는가.

    “쯧쯧··· 역시 멀베리 항구가 완전히 준비된 다음에 상륙을 감행했어야 했건만. 이번에는 총사령관이 너무 성급했구만.”

    “하하, 그것도 결국 MI-6의 첩보를 믿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결국에는 독일군이 우리를 속여넘긴 것이지요.”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대답에 몽고메리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미 1군 사령관 브래들리 중장이 서 있었다.

    “···확실히 그렇긴 하오만.”

    만약 저 말을 한 상대가 패튼이었더라면 당신네들 미군이 약해빠진 탓에 아직까지도 세르부르 항구를 점거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겠지만, 상대가 브래들리인 만큼 이번에는 몽고메리도 말을 아꼈다.

    “뭐, 책임 소재는 둘째 치더라도 그래서 당신네들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오? 결국, 지금의 이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다면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 텐데.”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말씀드리려고 이렇게 온 것입니다. 저희 미 1군은 오마하 해변으로 상륙하는 것은 포기하고 모든 전력을 유타 해안으로 보내 세르부르 항구를 탈취하는 것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흠···.”

    미군이 오마하 해안 상륙을 포기한다는 말에 몽고메리는 내심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막대한 피해를 입고도 아직 해안을 확보하지 못한 오마하보다는 세르부르 항구를 탈취하기 위한 거점인 유타를 우선시하는 것이 타당할 터.

    ‘하지만 그랬다간 오마하의 독일군이 우리 쪽으로 올지도 모른단 말이지···.’

    그러나 잠시 고민하던 몽고메리는 고개를 휘저으며 그런 생각을 털어버렸다.

    지금 연합군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안정적으로 보급과 증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항구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설령 영국군이 전멸하더라도 여기서는 미군을 지원하는 수밖에 없다.

    “좋소. 그럼 독일놈들의 발은 우리 영국군이 단단히 붙잡고 있을 테니, 반드시 세르부르 항구를 탈환해내시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투를 빌겠소.”

    브래들리 중장이 함교로 들어간 뒤, 발코니에 홀로 남은 몽고메리는 다시 한번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런 와중에도 저 바다 건너편에서는 포성과 폭음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후···.”

    현재 아군이 장악한 점령지의 종심은 해안가에서부터 2km 정도라고 했던가.

    종심이 고작 2km라니.

    어지간한 야포로도 전선의 최후방까지 포탄을 쏘아 보낼 수 있는 데다가, 기갑부대가 전선을 돌파해서 내달리면 10분, 아니 5분 만에 돌파할만한 거리지 않나.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수적으로도 열세인 데다가 보급도 증원도 원활하지 않은 상태로 버티라니. 그것이 정말 가능하겠는가.

    “···어쩔 수 없군. 지금은 일선의 병사들이 버텨주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몽고메리는 파이프의 재를 재떨이에 털어서 버린 뒤, 다시 함교로 들어갔다.

    *****

    1944년 4월 18일, 유타 해안.

    연합군의 상륙 작전이 개시된 지 약 48시간이 지난 지금, 이곳은 마치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절벽 위의 독일군 벙커들은 모두 포격에 무너지거나 불에 그을려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고, 모래사장에는 송환을 기다리는 시체들이 캔버스 가방에 담긴 채 누워있다.

    그러나 이렇듯 모든 전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유타 해안가는 계속해서 상륙하는 병사들과 물자를 정리하는 간부들, 그리고 간간이 떨어지는 독일군의 포탄으로 인해 떠들썩한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빨리 뛰어내려!”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언덕까지 달려라!”

    “와아아아!”

    그런 간부의 지시에, 상륙정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바닷물에 신발이 젖은 상태로 모래사장을 뛰어서 언덕으로 달렸다.

    뭐, 어지간히 재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설마 자신들의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는 방금 전에 상륙정에서 뛰어내린 허버트 이병도 마찬가지였다.

    “후, 2소대! 전원 하차했나? 각자 장구류와 몸 상태를 점검하도록.”

    “이상 없습니다!”

    “좋아, 그럼 다시 한번 말해두지. 우리 2소대는 8연대 전투단 소속 114대대와 합류해서 임무를 수행한다. 자, 자리에서 일어나라.”

    “또 행군입니까?”

    “행군은 무슨. 여기서 30분만 걸어가도 독일군 진지가 나올 거다.”

    “하하하, 그건 좋군요.”

    그런 소대장의 대답에, 소대원들은 모두 낄낄대며 웃었다. 하지만 해안가에서 출발해 10분쯤 걷자 더 이상 웃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끔찍하군.”

    무너져내린 담벼락과 파괴된 전차들.

    그리고 여기저기에 움푹 파인 포탄 구덩이들은 이곳에서 얼마나 격렬한 전투가 있었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게다가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저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과 포성 소리도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총성과 함성 소리가 바로 옆에서 울려 퍼지듯이 생생하게 들릴 무렵, 그들의 앞으로 한 무리의 헌병들이 다가왔다.

    “정지! 소속과 신원을 밝혀라!”

    “121대대 3중대 2소대장, 막스만 소위입니다. 114대대에 합류해 싸우라는 명을 받고 왔습니다.”

    “증원병이군. 114대대는 저쪽이다. 하지만 사령부에 신고할 여유는 없을 거다. 보시다시피 독일놈들이 우릴 가만 놔두질 않아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곧바로 전투에 합류하겠습니다.”

    그렇게 헌병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곧 한무리의 독일군과 교전 중인 아군 부대를 찾을 수 있었다.

    “증원이다! 빨리 붙어!”

    “수류탄이나 바주카 있는 놈 있나? 저기 저놈들 좀 조져봐!”

    대충 보더라도 수적으로는 아군이 독일군보다 조금 더 많은 상황.

    하지만 낡은 헛간의 2층에 설치된 독일군 기관총이 하나뿐인 가도를 완전히 점거하고 있는 탓에 모두 들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발 묶여 있었다.

    “돌격 앞으로! 전투 개시!”

    “와아아아아!”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돌격 앞으로라고 말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러나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허버트는 M1 개런드 소총을 움켜쥐고서 눈치껏 주위의 선임 병사들의 뒤를 따라서 달려나갔다.

    그렇게 수풀 뒤에 엄폐해서 멍청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자, 보다 못한 선임 병사 하나가 하버트에게 외쳤다.

    “어이, 신병! 뭘 멍청하게 구경하고 있는 거야! 닥치고 쏴!”

    “아, 알겠습니다!”

    선임병의 재촉에, 하버트는 돌담 옆으로 슬쩍 보이는 독일군을 조준하고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강력한 반동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찌른다. 그렇게 대여섯 발의 탄환을 갈겨댔음에도 조준선 너머의 독일군에게는 단 한발도 닿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팅! 하는 경쾌한 금속음와 함께 탄피 클립이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독일군이 돌담 옆으로 몸을 내밀고 총을 겨누었다.

    파바바바박!

    그 병사가 가진 총은 허버트가 가진 M1개런드와는 전혀 달랐다.

    한발 한발씩 방아쇠를 당겨야 발사되는 허버트의 반자동소총과는 다르게, 저놈들의 소총은 마치 기관총처럼 쉬지 않고 총알을 쏟아냈다.

    만약 허버트가 수풀 밑에 엄폐해 있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옆에 있던 선임병이 그의 다리를 당겨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허버트는 저 총알 세례에 몸이 꿰뚫려서 비명횡사했으리라.

    “가, 감사합니다.”

    “조심하라고. 우리의 M1 개런드는 멍청하게도 ‘나 총알 다 떨어졌습니다’하고 적에게 알려주니까 말이야. 하지만 대신, 이런 것도 가능하지.”

    그렇게 말한 선임병은 주머니에서 빈 탄피 클립을 하나 꺼내더니 손가락으로 튕겼다.

    팅!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독일군이 이쪽으로 몸을 내미는 순간,

    탕! 탕!

    “이렇게 처리하는 거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별거 아니야. 결국은 잡기술이지. 이쪽으로 따라와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선임 병사는 놀라운 실력으로 독일군을 쓰러뜨리며 헛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헛간 아래까지 도착한 그는 헛간 벽에 매달린 채 허버트에게 조용히 말했다.

    “신병, 수류탄 있으면 하나 줘봐.”

    “예! 여기 있습니다.”

    허버트가 허둥지둥 허리춤에서 수류탄을 꺼내 넘기자, 그것을 받아든 그는 이빨로 안전핀을 뽑은 뒤 수류탄을 나무 틈 사이로 쑤셔 넣었다.

    “어이, 귀 막아라.”

    “예, 예!”

    그리고 잠시 뒤.

    콰앙!

    저 자그마한 수류탄의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나무로 만든 헛간의 2층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기관총 침묵! 전원 돌격해!”

    “빌어먹을 놈들, 본때를 보여주마!”

    기관총 진지가 사라지자 이 작은 마을은 순식간에 아군의 손에 떨어졌다.

    비록 독일군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가도를 통해 밀려오는 아군을 모두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한나절이 지나기 전에 전원 항복했다.

    “이겼군. 잘했다, 신병.”

    “···이긴 겁니까.”

    그러나 전투가 끝난 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도저히 승리라고는 믿기 힘든 것이었다.

    마을 광장 한켠에는 사망한 아군 병사들의 시신이 줄지어 놓였고, 지붕이 날아간 헛간 1층에는 부상자들이 드러누웠다.

    이렇게 집계한 결과, 이번 전투에서 아군측의 사상자는 도합 57명. 그에 반해 독일군 사망자와 포로는 고작 18명뿐이었다.

    “18 대 57이라. 교전비가 거의 1:3이로군.”

    “그래도 어쨌든 이겼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지.”

    그런 간부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허버트는 광장에 누운 시신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이제 곧 그가 내렸던 유타 해변으로 옮겨져서 고국으로 돌아가겠지.

    그럼 자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도 저렇게 죽어서 돌아가게 되는 건가? 아니면, 정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허버트 이병이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앉아 있을 때, 소대장이 다가와서 큰 소리로 외쳤다.

    “2소대, 전원 기상! 다시 이동한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피를 흘리며, 미 1군은 세르부르 항구를 향해서 천천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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