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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19화 (119/157)
  • 119화. 노르망디 상륙 작전 (1)

    노르망디에 배치된 독일군의 전력이 그리 많지 않다는 MI-6의 첩보 덕분에, 오랫동안 난항을 거듭하던 작전 회의도 조금씩 진척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부전선군이 총합 45개 사단에, 그중 노르망디에는 고작 8개 사단밖에 배치되어 있지 않다라. 이것 참··· 저 자식들, 혹시 우리를 깔보고 있는 건가?”

    “뭐, 독일놈들도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 때문에 병력이 부족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래서 우리가 쳐들어올 것이 확실한 파 드 칼레 방어선에 주력부대를 모두 집중시킨 거겠지.”

    사실, 지금까지 연합군 원정군 사령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다는 목표만을 공유하고 있을 뿐 그 방법과 시기, 실행에 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연합군의 입장처럼 함선을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없는 상황에서 병력을 상륙시키려면 작은 상륙정을 이용해서 조금씩 실어나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아무리 실어날라봤자, 수십만 대군의 물자와 증원 소요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그렇기에 이에 대해서 연합군 사령부는 이동 조립식 간이항구인 멀베리 항구를 사용하자는 몽고메리 중장 측과 상륙군으로 세르부르 항구를 탈취해서 사용하자는 아이젠하워 대장 측으로 나눠져서 팽팽히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첩보의 내용처럼 노르망디 해안에 배치된 독일군이 고작 8개 사단밖에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논쟁할 필요도 없다.

    그 정도 전력이라면 1파로 투입될 상륙부대만으로도 충분히 독일군을 몰아내고 세르부르 항구를 점거할 수 있을 테니까.

    ‘끝났군. 이제 멀베리 항구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못하겠지.’

    이에 아이젠하워가 몽고메리 중장을 돌아보자, 그 또한 같은 생각에 도달했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총사령관 각하께서 무슨 말을 하실지 눈에 훤히 보이는군. 독일군의 방비가 이렇게 허술한데 굳이 멀베리 항구가 필요하겠느냐고 묻고 싶으신 거겠지?”

    “하하, 그렇게 면박을 주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말씀하신 대로 멀베리 항구의 준비를 기다리기보다는 상륙 작전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련과 독일의 강화협상 때문이오?”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시간을 더 끌어봤자 독일군의 방비만 강화되지 않겠습니까. 그에 반해 아군이 한 번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말입니다.”

    멀베리 항구를 설치해서 2파, 3파 병력과 물자를 대규모로 투입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선 상륙지를 확보한 이후의 얘기다.

    애당초에 한 번에 투입할 수 있는 20만 병력으로 해안지대의 안전을 확보해내지 못한다면 큰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게다가,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아군이 파 드 칼레로 상륙하려 한다는 기만책이 들통날 가능성도 높아질 터였다.

    이렇게 아이젠하워가 계속해서 설득하자, 결국 몽고메리 중장도 그의 제안을 수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후···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멀베리 항구가 꼭 필요하리라고 생각하오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받아들이겠소.”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으로 상륙 지점 말입니다만, 지금까지 논의한 대로 미군이 유타와 오마하 해안으로, 영국군이 골드, 주노, 소드 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좋소. 좀 미안한 말이오만 독일놈들은 미군보다는 우리 영국군을 더 경계하고 있을 테니, 우리가 캉으로 진격하며 독일군의 이목을 끄는 동안 미 7군단이 세르부르 항구를 점거하는 거요.”

    아이젠하워는 몽고메리의 작전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사실상의 주공 부대는 미 7군단이, 가짜 주공 역을 맡을 조공 부대는 영 1군단이 될 터.

    “그럼 유타 해안과 소드 해안의 후방 지대 쪽으로 양군의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겠소이다.”

    그리하여 1944년 3월 7일.

    연합군 사령부는 드디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최종 계획안을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한 달간의 준비를 마친 뒤인 1944년 4월 17일.

    수십여 척의 함선들이 포츠머스 항구를 출발해 영국해협을 건너기 시작했다.

    *****

    “1중대! 여기다! 빨리 뛰어!”

    “자기 위치도 못 찾는 머저리들아! 아무 데에나 올라타! 끝까지 배에 남아있는 놈은 대서양 바다에 던져버린다!”

    “예!”

    바깥에서는 비행기의 프러펠러 소리와 함포가 발사되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지고, 상륙함 내부에는 온갖 고성과 욕설이 난무한다.

    이런 난잡한 소음 속에서 빠르게 상륙정을 찾아 탑승하는 데 성공한 116연대 전투단 소속, 데이비드 일병은 떨리는 왼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데이비드, 몇 시냐.”

    “여, 여섯 시 25분입니다!”

    “그러냐. 곧 출발하겠구만.”

    데이비드는 그의 옆에 삐딱하게 선 상병을 바라보았다.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도 상륙 작전을 치뤘다는 그 상병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굳어버린 데이비드와 달리 여유롭게 자신의 군장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데이비드가 허둥지둥 자신의 군장을 점검하고 있을 무렵, 가장 뒤에 서 있던 중대장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 곧 출발한다! 꽉 잡아라!”

    그 말에 데이비드는 잠시 두려움도 잊고서 호기심에 잠겼다.

    여기는 배의 격실 안인데 도대체 어떻게 바다로 나간단 말인가?

    그러자 잠시 뒤, 그들의 눈앞에 있는 배의 한쪽 벽면이 시끄러운 금속음을 내며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벽면이 완전히 내려가자, 신기하게도 마치 바다로 향하는 미끄럼틀처럼 변해 버렸다.

    “시발···.”

    “···젠장할.”

    하지만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 감탄하는 병사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열린 통로 너머에는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대가리 숙여!”

    왜애애앵!

    중대장의 외침에도 멍하니 서 있던 데이비드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사이렌 소리에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투다다다다!

    파바바바바박!

    “시발!”

    연신 불길한 재봉틀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쏟아지는 총탄이 상륙정 내부의 병사 몇 명을 꿰어서 꼬꾸라트린다.

    그런 와중에도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질 때면 상륙정은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렸고, 그와 동시에 짭짜름한 바닷물이 흘러들어와 군복을 적셨다.

    “데이비드, 살아있냐!”

    “우, 우웨엑!”

    “토하지 마, 병신아!”

    토 냄새와 바다 냄새, 그리고 피 냄새까지.

    잠시 주위를 돌아보니, 데이비드의 상륙정도 부상자와 사망자, 그리고 온갖 오물들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직 소문의 독일군은 구경도 못 해봤는데, 벌써부터 지옥이로군.’

    하지만 사실 데이비드네 중대는 오히려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그들보다 앞서가던 다른 상륙정들은 모두 포탄과 공습에 당해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으니까.

    그러나 그들의 운도 결국 다한 것일까.

    비교적 순조롭게 나아가던 그들의 상륙정이 엄청난 충격과 함께 멈춰버렸다.

    “으아악!!”

    “뭐야! 엎드려!”

    “상사! 계속 전진해라! 최대한 빨리 해안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 그게··· 암초나 장애물에 걸린 것 같습니다!”

    “젠장···.”

    암초라는 말에 데이비드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상륙정 바깥을 바라보았다.

    현재 그들이 좌초한 위치는 해안에서 약 70m 정도 떨어진 장소.

    해안까지 헤엄쳐가기에는 제법 멀지만, 총알이나 포탄이 날아오기에는 딱 좋은 애매한 거리였다.

    ‘···딱 안 좋은 곳에서 걸려버렸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딱 그런 위치에 독일놈들이 장애물을 설치해놓은 것이리라.

    그렇게 데이비드와 중대원들이 마치 고정 표적처럼 바다 한가운데에 떠서 떨고 있을 때, 중대장이 재빨리 결단을 내렸다.

    “전원 하차해라! 각자 헤엄쳐서 해안으로 향하도록!”

    “하, 하지만···.”

    “여기 있으면 결국 죽는다! 가자!”

    그 말을 끝으로, 중대장은 먼저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중대원들과 데이비드 일병도 결국 상륙정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타다다다당!

    “으, 으악!”

    재수가 없는 놈은 뛰어내리는 도중에 총에 맞아 쓰러졌다. 거기서 살아남은 놈들도 해안가로 헤엄쳐가다가 하나둘씩 죽어간다.

    눈앞에 있는 바닷물은 피로 붉게 물들었고, 해안가의 모래사장은 떠밀려 온 시체와 잔해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그런 수라장 속에서도 운 좋게 살아남아서 모래사장의 둔덕까지 기어가는 데 성공했다.

    “후··· 제기랄.”

    그렇게 둔덕에 도착한 데이비드가 핏물과 모래로 범벅이 된 자신의 몸을 털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이봐, 너. 어디 소속이야?”

    “116연대 전투단 소속, 424대대, 1중대 데이비드 일병입니다!”

    “젠장··· 116연대면 같은 사단 소속조차도 아니군. 너, 총은 멀쩡하냐?”

    “예? 갖고 있습니다.”

    “아니, 발사되냐고.”

    “···모르겠습니다.”

    옆에 누워있는 이름 모를 병장의 불길한 말에, 데이비드는 비닐에 감싸진 자신의 총을 꺼내서 방아쇠를 당겨보았다.

    틱! 틱!

    그러나, 몇 번을 당겨봐도 들려오는 소리는 힘없는 노리쇠 공이질 소리뿐.

    총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데이비드가 힘없이 총을 내려놓자, 총구에서는 불그스름한 바닷물이 졸졸 흘러나왔다.

    “보아하니 네 소총도 약실 안까지 다 젖어버렸나 보군.”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합니까.”

    “어떻게 하긴. 저기 굴러다니는 시체들 총 중에 멀쩡한 거 주워서 써야지. 여기서 총도 없이 다닐 수는 없잖아?”

    병장의 말에, 데이비드는 고개를 돌려 해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상륙정이 모래사장으로 올라와 병사들을 쏟아내었고, 그때마다 저 언덕 위 벙커의 기관총은 병사들을 볼링핀마냥 쓰러트린다.

    그 와중에도 저 하늘 높은 곳에서는 전투기들이 서로 난잡하게 얽혀서 공중전을 펼치고 있었고, 저 멀리서는 함포와 해안포, 야포들을 쏘아대며 화력을 다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모래 둔덕 뒤에 숨은 채 기관총탄을 피하는 게 고작인 알보병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데이비드가 언덕 위의 벙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저 옆에서 장교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약진 앞으로!! 단숨에 달려나가서 절벽 밑으로 붙어라! 절벽을 올라가서 벙커를 무력화시키는 거다! 약진 앞으로!!”

    “와아아아!!”

    “돌격이다!!”

    주위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나가는 모습에, 데이비드 일병도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의 손에는 여전히 고장난 소총이 쥐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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