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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16화 (116/157)
  • 116화. 대서양 방벽 (1)

    “아니, 저놈들에게 아군이 병력을 상실했다는 얘기는 전하지 마시오. 연합군은 원래의 계획대로 내년 초에 서유럽에 상륙해줘야 하니까 말이오.”

    그런 스탈린의 말에, 바실렙스키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그들이 나눈 대화의 주제는 분명 연합군의 상륙 작전과 동부전선에서의 반격 시기를 맞추는 것이었을 터.

    그런데 도대체 왜 서기장 동지께서는 연합군이 원래의 계획대로 내년 초에 서유럽에 상륙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인가?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작전이 있었나? 아니, 적어도 군사적인 문제에 한해서는 총참모본부를 통하지 않은 계획은 없다. 그렇다면, 외교적인 문제인 건가···.’

    그렇게 바실렙스키가 서기장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있자,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스탈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소, 바실렙스키 동지.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연합군의 상륙에 맞춰서 반격에 나설 생각이 없소.”

    “···그 말씀은 설마, 연합군이 만들 서부전선을 미끼로 삼아서 독일과 강화에 나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소비에트 연방이 이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오. 설령, 연합군이 유럽 대륙에 발을 디딘다고 해도 말이지.”

    한 사람의 군인으로서, 바실렙스키는 스탈린의 단언에 깊은 굴욕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서기장의 저 발언은 사실상 소련군이 패배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바실렙스키는 내심 그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기장의 말대로, 만약 소련군이 서유럽에 상륙한 연합군과 함께 끝까지 싸워서 독일을 쓰러트린다고 해도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피로스의 승리뿐일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서부전선을 빌미로 강화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려면 연합군이 제대로 싸워줘야 할 텐데, 아군이 전투에 나서지 않으면 연합군이 독일과의 전쟁을 계속하려 하겠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내가 주코프 동지 대신 바실렙스키 동지를 중용하려는 거요.”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연합군 놈들에게는 핑계를 대고 반격 작전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후방에서는 아군의 전력을 최대한 회복시키시오. 내가 몰로토프 동지에게도 언질을 해 놓겠소.”

    바실렙스키는 그제서야 서기장 동지께서 구상하고 있는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스탈린은 독일과의 강화협상을 끝마치는 바로 그 순간까지 영미 연합군을 이용해먹을 생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관건은··· 우리가 대규모 작전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영미 연합군에게는 제대로 싸우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겠군. 그리고 또···.’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바실렙스키는 고개를 들어 스탈린에게 물었다.

    “···그럼, 언제까지 연합군을 속이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스탈린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거야 물론 당연하지 않소? 저놈들이 차마 발을 빼지 못할 정도로 깊숙이 들어왔을 때까지지.”

    *****

    1943년 11월 5일.

    동부전선에서 카잔스카야 돌출부가 완전히 사라진 지 약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베를린의 육군 총사령부에서는 향후의 전세와 전망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번 반격 작전에 대해 그리 좋게 보지 않았네만··· 정말 연합군의 상륙 작전도 없었고 돌출부도 제거하는데에도 성공했군. 다 자네의 말대로 되었네.”

    “하하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것도 전부 다 남부집단군의 지휘관들이 훌륭하게 작전을 수행한 덕분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건 아닐세. 만약 자네가 연합군의 블러핑을 간파해내지 못했더라면 오늘의 승리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지.”

    그런 룬트슈테트의 말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만슈타인 원수가 웃으며 한마디 보탰다.

    “나도 총사령관 각하의 말씀에 동의하네. 파울루스, 자네는 좀 더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져도 좋네.”

    나는 이들의 말에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낸 것들은 모두 역사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대비할 수 있었던 일뿐.

    결국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은 내가 아니라 만슈타인과 모델, 롬멜과 같은 진짜 명장들이라는 것을.

    ‘그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가진 이 미래의 정보로 저들의 등을 밀어주는 것뿐이다.’

    나는 회의실에 둘러앉은 사령관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총사령관 각하, 슬슬 논의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말씀하시게.”

    “예, 그럼 우선 동부전선과 각 군관구의 사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저희 독일 육군 예하에는 동맹국 부대를 포함해서 총 337개 사단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 중 227여 개 사단이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군.”

    “하지만 이는 카잔스카야 돌출부에 대한 반격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병력이 증원된 탓인지라, 실제로는 이보다 적다고 생각해주셔야 합니다.”

    내가 부연설명을 덧붙이자, 룬트슈테트와 만슈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튀니지 전선에는 25개 사단이, 그리고 발칸 반도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총합 30개 사단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럼 현재 프랑스에는 고작 55개 사단밖에 배치되지 않은 건가?”

    “맞습니다. 다만 카잔스카야 돌출부를 제거하는데 성공했으니, 이곳에 배치된 사단들을 프랑스로 보낸다면 충분한 방어 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좋군. 어차피 연합군 놈들도 한겨울에 대서양 바다를 뚫고 상륙을 감행하진 않을 테니, 올 겨울에 방어 태세를 갖추면 되겠어.”

    그런 룬트슈테트 원수의 말에, 동부전선군 사령관 만슈타인과 신임 서부전선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유럽으로 돌아온 롬멜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중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바로, 에르빈 롬멜 원수였다.

    “우선 저희 서부전선군의 입장부터 먼저 말씀드리자면, 노르망디에서부터 파 드 칼레까지 이어지는 대서양 방벽을 모두 방어하기 위해서는 최소 70개 사단은 있어야 합니다.”

    “흠··· 70개 사단이라. 그럼 동부전선에서 15개 사단을 차출해야 한다는 계산이군. 만슈타인 원수, 가능하겠소?”

    15개 사단을 내놓으라는 롬멜의 요구에, 만슈타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지난번 카잔스카야 돌출부 반격 작전에 투입된 부대는 루마니아군 3개 사단을 포함해서 총합 14개 사단.

    그 중, 보구차르 방면에서 피해를 입었던 2개 사단과 각종 손실들을 생각하면 현재 보유한 전력은 약 11개 사단 정도였다.

    거기서 다시 4개 사단 정도는 되찾은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남겨야 할 테니, 남는 것은 고작 7개 사단뿐.

    그럼 부족한 나머지 8개 사단은 도대체 어디서 내놓으란 말인가?

    ‘···결국, 동부전선보다 서부전선에 더 무게를 실어달라는 거로군.’

    사실 롬멜 원수가 저렇게 요구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이미 영미 연합군이 서유럽에 상륙할 것이 분명한 데다가 이번 반격 작전의 성공 덕분에 한동안 동부전선에서는 큰 격전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만슈타인은 서부전선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순순히 자신의 병력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롬멜 원수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15개 사단을 차출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네.”

    “227개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중에서 15개 사단을 내주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입니까?”

    “우리 동부전선군은 레닌그라드에서 카프카스까지 무려 2000km에 달하는 전역을 담당하고 있네. 이런 전역의 크기와 소련군의 수를 생각하면 227개 사단도 그리 많은 것은 아닐세.”

    “그렇다면 더더욱 병력을 차출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미 연합군 놈들이 제2 전선을 만들어서 독일이 양면전쟁의 늪에 빠지기 전에 말입니다!”

    이렇게 한동안 평행선을 달리던 두 사람은 논쟁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파울루스 원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으로서는 역시 서부전선이 우선이지 않겠소?”

    그런 둘의 압박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저는 서부전선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롬멜 원수가 요구한 70개 사단은 조금 많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소련군은 한동안 대규모 작전을 펼치지 못할 테니 이 정도는 서부전선에 힘을 실어줘도 괜찮으리라.

    “흠··· 하긴, 서부전선을 저리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 그래서, 결국 문제는 어디서 병력을 차출하느냐인가.”

    “그럼 차라리, 레닌그라드를 포기하고 병력을 빼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레닌그라드를?”

    현재 북부의 레닌그라드에서는 50군단과 54군단이 로코솝스키가 이끄는 볼호프 전선군에 의해서 남쪽 측면을 포위당한 채 시가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

    이곳을 포기하고 저 2개 군단을 빼내면 최소 6개 사단을 확보할 수 있을 테니, 롬멜이 요구한 15개 사단을 얼추 맞출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서부전선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렇게 레닌그라드를 포기하는 것은 아깝지 않은가?”

    “아닙니다. 어차피 아군의 목표는 소련과 강화협상을 맺고 전쟁을 끝내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협상을 맺든 간에 소련놈들은 결코 레닌그라드를 포기하지 않을 테니, 차라리 이렇게 내주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레닌그라드를 포기하면 아군 대신 핀란드군이 소련군과 접하게 될 테니, 북부집단군의 부담도 같이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단순히 소거법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카프카스를 방어 중인 남부집단군이나 모스크바를 압박하고 있는 중부집단군에서 전력을 빼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내 주장에, 만슈타인 원수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레닌그라드를 포기하는 것은 아깝지만, 지금은 어디든 간에 전선을 좀 줄여야겠지.”

    이렇게 돈강 방어선에서 차출한 7개 사단과 레닌그라드에서 빼낸 6개 사단까지, 총 13개 사단의 증원이 확정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대서양 연안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였다.

    ‘대서양 방벽이라···.’

    나는 세르부르에서 캉, 디에프, 파 드 칼레까지 영국해협 연안이 그려진 서부전선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노르망디에서부터 파 드 칼레까지 최소 400km에 달하는 해안선을 모두 요새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연합군이 어디에서 상륙 작전을 펼칠 것인가인데,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노르망디 해안으로 올 터였다.

    ‘아니, 하지만 역사는 진즉에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다르게 가장 거리가 가까운 도버 해협을 건너서 파 드 칼레로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과연 어디를 막아야 하는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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