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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12화 (112/157)
  • 112화. 반격 (6)

    ‘뭔가··· 뭔가 강력한 일격으로 독일군을 밀어낼 수만 있다면···.’

    결국, 고민 끝에 코네프 상장은 결단을 내렸다.

    “동무. 카사리 방면의 5기갑군에서 병력을 차출해 보구차르 돌파에 투입하도록 하게.”

    “5기갑군에서··· 말입니까?”

    “그래. 독일군의 압박이 강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남쪽에 있는 것은 약해빠진 루마니아군이지 않나. 전차 부대 몇 개만 빼내서 전선 돌파에 투입하게.”

    그런 코네프의 지시에, 부관은 잠시 고민하다 곤란한 표정으로 답했다.

    “하지만 동지, 카사리 방면의 루마니아 3군도 절반은 증원된 독일군 부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병력을 더 차출한다면 현재 위치를 지키기 어렵습니다.”

    “···그 정도는 나도 각오하고 있네. 어느 정도 전선을 물려도 좋으니, 벨키니 다리의 보급로를 되찾는 것을 우선시하게.”

    사실 독일군의 기습적인 공세로 벨키니 다리와의 연결이 차단된 시점에서 이미 아무런 피해 없이 카잔스카야 돌출부를 사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어디를 얼마나 희생하고, 그 대신 무엇을 취하느냐였다.

    ‘아군이 취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보급로를 되찾는 것. 그리고 희생을 감수해야 할 부분은··· 역시 가장 멀리 진격한 5기갑군을 되돌리는 게 최선이겠지.’

    현재 5기갑군은 카사리 외곽 15km 지점까지 남쪽 깊이 내려가 있는 상황.

    저들을 이대로 내버려 두자니 역포위당할 위험도 크고 보급로도 길어져서 부담된다.

    게다가 돌출부를 일부 포기해야 한다면 가장 멀리 나간 부분을 빼는 것이 타당하리라.

    “하지만 동지, 현재 아군에게 가장 부족한 물자는 연료입니다. 지금 남쪽 깊숙이 내려간 기갑부대를 다시 보구차르 방면으로 옮긴다면 적지 않은 연료가 소모될 겁니다.”

    “고작 이 정도 전략 기동조차 어렵단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연료가 부족하진 않을 텐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부관은 그렇게 말하며 말꼬리를 흐렸지만, 코네프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아마 이렇게까지 하고도 보급로를 되찾는 데 실패한다면 그다음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네프는 이번 돌파 작전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스타브카의 지시대로 카잔스카야 돌출부를 사수하려면 이번 기회에 보급로를 되찾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동무의 걱정은 나도 이해하네. 하지만 지금 우리들에게는 이 방법밖에 없네.”

    그런 코네프 상장의 진중한 목소리에, 부관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 동지. 즉시 차출할 부대와 퇴각 작전을 마련하겠습니다.”

    “알겠네. 고생해주게나.”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14기갑사단의 반격으로 인해 정체되어 있던 보구차르 방면은 새롭게 투입된 소련군 기갑부대에 의해 다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

    1943년 10월 13일.

    코네프 상장이 5기갑군의 전력을 보구차르 방면으로 돌린 지 3일이 지났을 무렵.

    새로운 기갑전력이 증원된 제1근위군은 다시 한번 독일군의 측면을 압박하며 강하게 돌파해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는 독일군은 대규모 공습과 포격, 그리고 대전차 지뢰까지 매설해가며 필사적으로 소련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나섰으나, 압도적인 전력 차를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소련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이곳의 지리적 환경이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평원이라는 점도 이번에는 독일군의 발목을 잡았다.

    원래라면 이런 탁 트인 평야는 탁월한 기동전과 제병합동 전술을 앞세운 독일군에게 유리한 무대였겠지만, 이번에는 독일군이 방어자의 입장인 데다가 워낙 전력 차가 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43년 10월 20일.

    5기갑군의 증원 병력이 전선에 투입된 지 약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보구차르 방면의 독일군 24사단과 50사단은 사실상 포위되기 직전의 상황에 몰려버렸고, 소련군은 보급로를 되찾기까지 고작 10여km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전과에도 불구하고 남서 전선군 사령부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구차르 방면의 전세가 유리해진 만큼 돌출부의 다른 방면에서는 전황이 시시각각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령관 동지, 5기갑군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라조보이 인근에서 독일군의 진격을 멈춰 세우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라조보이라. 이 정도면 사실상 2차 공세가 시작되기 직전으로 돌아가 버렸군.”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동지. 만약 빠른 시일내에 보급로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지금의 이 위치마저도 지켜낼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부관의 냉정한 지적에, 코네프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런 그의 눈앞에는 며칠 전보다 훨씬 더 쪼그라든 카잔스카야 돌출부의 지도가 놓여 있었다.

    ‘젠장···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사실, 처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5기갑군에서 병력을 차출해 투입하자, 제1근위군이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진격해나가기 시작했으니까.

    비록 그로 인해서 5기갑군과 21군이 조금씩 밀려나기는 했지만, 어차피 독일군은 포위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금새 병력을 물릴 터.

    그렇게 보구차르 방면을 탈환해서 보급이 재개되기만 하면, 지금 빼앗긴 지역은 금새 되찾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코네프 상장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 빌어먹을 놈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직까지도 보구차르에서 버티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코네프의 예상과는 다르게, 독일군은 고작 10km의 좁은 회랑만으로 연결된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보구차르를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이 필사적으로 시간을 버는 동안 루마니아 3군과 제1기갑군은 맹공을 펼쳐 5기갑군과 21군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사령관 동지, 이제 그만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이제는 오늘 당장 보급로가 연결된다고 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젠장할···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다 포기하란 말인가!”

    사실 코네프도 부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분명 저 2개 사단을 섬멸하고 보급로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차마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젠장··· 고작 한 걸음이 부족해서 이 카잔스카야 돌출부를 전부 포기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그렇게 코네프가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사령관 동지···.”

    “···나도 알고 있네.”

    코네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전화 바꿨습니다. 남서 전선군 사령부, 이반 코네프 상장입니다.”

    “코네프 동무. 나 주코프요.”

    그의 예상대로, 전화기 너머에서는 마치 곰같은 무뚝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 동지. 안 그래도 곧 전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소? 흠··· 뭐. 하긴, 전선의 상황이 그 모양이니 말이지.”

    “···죄송합니다, 동지.”

    과연 주코프는 지금의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그의 처우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마치 판사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처럼 코네프가 두 눈을 감은 채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주코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결과는 정말 최악이오만, 그래도 나는 동무의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었다고 생각하오.”

    “···그렇습니까.”

    “그래. 그래도 전쟁은 결과가 전부지만 말이지.”

    그 말에 잠시 희망을 가졌던 코네프는 이내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하긴, 어떤 말로 포장하더라도 패배는 패배.

    전투에서 진 장수가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코네프가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하고 있을 때, 주코프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코네프 동무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려고 하오.”

    “기회··· 말씀이십니까?”

    “그래. 전투에서 지더라도 그것이 끝은 아니지. 남은 병사들을 최대한 추스르고 전선을 재구축해야 하지 않겠소.”

    이런 상황에서 전선을 재구축한다라.

    그렇다면··· 지금 아군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럼 설마··· 돌출부를 완전히 포기하고 병력을 빼내실 생각입니까.”

    “그렇소. 동무도 알다시피 현재 카잔스카야 돌출부에 배치된 남서 전선군의 병력은 내년의 최종 반격에 동원될 귀중한 전력이오.

    그러니, 최대한 전력을 온존하면서 병사들을 퇴각시켜야 하오. 그 임무를 동무에게 맡기고 싶소만, 할 수 있겠소?”

    현재 카잔스카야 돌출부에 배치된 병력은 최소한으로 잡아도 40만 이상에 전차 500여대에 달한다.

    게다가 돈강을 건널 가장 큰 다리는 결사 항전하는 독일군 2개 사단에 의해 막혀있고, 그 외에 길은 임시로 설치된 가교뿐인 상황.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전력을 최대한 온존하면서 부대를 퇴각시키라니··· 말도 안 되는 임무였다.

    그러나 코네프에게는 이 임무가 마지막 동앗줄이나 다름없었다.

    “하겠습니다. 제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주코프 동지!”

    “좋소, 그럼 난 코네프 상장만 믿고 있겠소. 내년의 반격작전은 동무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예!”

    그렇게 큰 소리로 대답한 뒤, 코네프는 수화기를 내려놓고서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이내 부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동무. 지금 즉시 각 야전군 사령관들에게 연락하게. 내일 아침, 사령부에서 회의를 소집하겠다고 말이야.”

    *****

    한편, 그 무렵 빈니차의 동부전선 총사령부.

    나는 발터 모델에게서 걸려온 뜻밖의 전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2개 사단으로 끝까지 버티고 있단 말인가? 정말 대단하군.”

    “하하, 사실 최악의 경우에는 포위당할 각오까지 한 도박이었지만 말일세. 병사들이 내 예상보다도 훨씬 잘 싸워준 덕이지.”

    “아닐세. 자네가 아니었으면 이런 결과는 만들어내지 못했을 걸세.”

    방어의 사자, 총통의 소방수라 불리던 모델이라면 분명 잘 해내주리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대단한 전과를 거둘 줄이야.

    지금의 이 기세라면 소련군이 베키니 다리를 탈환하기 전에 돌출부를 섬멸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모델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이네만··· 이제 슬슬 돌출부의 소련군을 완전히 섬멸하려고 하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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