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10화 (110/157)
  • 110화. 반격 (4)

    1943년 10월 2일.

    우크라이나, 빈니차에 위치한 동부전선 총사령부.

    카잔스카야 돌출부의 전황이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을 바로 그 무렵, 이곳에서는 소련의 반응에 대한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어서 카잔스카야 돌출부에 대한 보고입니다만, 현재 돌출부에 갇힌 소련군 병력이 보구차르 방면을 향해서 진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호오, 결국 탈환을 선택한 건가?”

    부관의 보고에, 나는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11군의 공세가 시작된 지 약 일주일이 지난 지금, 벨키니 다리와 보구차르를 통해서 이어지던 소련군의 주요 보급로는 54군단에 의해서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이에 소련군은 벨키니 다리만큼은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듯이 막대한 병력을 투입해서 50사단을 남쪽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보급로를 수복하려면 아직 20km를 더 진격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소련군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둘뿐이었다.

    ‘54군단을 밀어내고 보급로를 되찾던가, 아니면 돌출부를 포기하고 병력을 빼내던가.’

    솔직히 말해서, 사실 나는 소련군이 과감하게 병력을 퇴각시키리라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내년까지 버티기만 하면 연합군이 서유럽에 상륙해서 제2전선을 만들어 줄 텐데, 그 전에 굳이 위험한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구태여 강행돌파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이 선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전력에 여유가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정말 도박이라도 하려는 건가.

    ‘···아니, 저놈들의 의도는 상관없지. 이렇게 된 이상 막아내기만 하면 이기는 싸움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놈들의 이번 돌파 시도를 막아낼 수 있는가, 없는가였다.

    현재 카잔스카야 돌출부에 배치된 소련군 병력은 최소한으로 잡아도 보병 40만 이상에 전차 700여 대에 달하는 상황.

    하지만 이 전력이 모두 돌파에 나서는 것은 아닐 테니, 11군이 막아야 하는 것은 이 중 절반 정도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돌출부의 소련군은 약해질 테고, 남쪽과 동쪽에 위치한 1기갑군과 루마니아 3군이 돌출부를 계속 압박해줄 테니까 길어 봐야 한 달 정도만 버티면 되리라.

    하지만 문제는 보구차르 방면을 사수하는 아군 전력이 54군단 예하의 고작 5개 사단뿐이라는 것이었다.

    ‘5개 사단으로 한 달이라··· 비록 전역이 넓지 않은 데다가 방어자의 입장이긴 하지만, 4대1의 전력 차이를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내가 지도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자, 나에게 보고하던 작전 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각하께서는 상황이 어렵다고 판단하시는 모양이군요.”

    “뭐, 그렇지. 아군에게 유리한 점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워낙 전력 차가 많이 나니까 말일세.”

    “하하, 그래도 별수 있겠습니까. 저희 참모부는 야전부대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요.”

    확실히, 작전 과장의 말대로였다.

    지금 이렇게 한숨지어봤자 참모총장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이제는 그저 일선 부대의 병사들과 지휘관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 발터 모델, 그 친구라면 분명 나보다도 더 잘 해줄 테지.”

    *****

    그 무렵, 소련군과 독일군 간에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보구차르 방면 상공에서는 Fi-156C 피젤러 슈토르히 정찰기 한 대가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보게, 상사. 여기선 잘 안 보이는 구만. 조금만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보세.”

    “죄, 죄송합니다만 사령관 각하! 이미 적진과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어서 전선에서 이탈해야 합니다!”

    “하하하! 어차피 제공권은 루프트바페가 장악했는데, 뭐가 그리 무섭단 말인가? 어지간히 운이 없는 게 아니면 저놈들이 쏴대는 기관총에 맞아 추락하는 일은 없을 걸세.”

    “···아, 알겠습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상급대장의 재촉에, 슈토르히의 조종간을 잡은 빌헬름 하이스트 상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기체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옳지! 이제야 겨우 제대로 보이는 구만.”

    그러나 그런 하이스트 상사의 고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뒷자석에 앉은 발터 모델은 마치 유람선에 탄 것처럼 편안하게 쌍안경으로 전선을 시찰하기 시작했다.

    ‘호오, 저기가 벨키니 다리인가? 지형도 좁은 데다가 소련군의 방어도 튼튼하군. 아무래도 저기를 밀어붙이는 건 어렵겠어.’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벨키니 다리를 폭파하고 퇴각할 작정이었던 발터 모델은 생각보다 견고한 소련군의 방어태세에 혀를 끌끌 차며 계획을 수정했다.

    ‘다리의 폭파가 불가능하다면··· 남은 건 정공법으로 북진하는 소련군을 모조리 격퇴하는 것뿐인가.’

    다행히도 그의 친우인 파울루스 원수는 길어도 한 달만 버티면 소련군이 무너질 거라고 언질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인가.

    ‘퇴각이 자유로운 상황이라면 후퇴와 반격을 거듭하면서 적의 진격을 지연시켰겠지만··· 현재 아군의 종심은 고작 20km에 불과하니 결국 이 자리에서 결사 항전해야겠군.’

    그렇다면 남은 방책은 기동 방어뿐이다.

    얼마 전에 도착한 14기갑사단을 적재적소에 투입하면서 적의 예봉을 꺾는 수밖에.

    그리고 바로 그것을 위해서,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모델이 직접 항공 정찰에 나선 것이었다.

    “좋네. 상사, 이제 남쪽으로 가세.”

    “남쪽··· 말입니까.”

    “그래, 소련군이 반격에 나선 보구차르 방면으로 가잔 말일세.”

    “···후, 알겠습니다.”

    이제는 하이스트 상사도 포기했는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잠시 뒤, 슈토르히 정찰기가 보구차르를 지나 전선으로 접근하자 저 멀리서 기관총탄과 대공포 세례가 그들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파방팡!

    타다다당!

    “각하! 이젠 정말로 위험합니다!”

    “역시, 이쪽이 주공이라 그런지 제법 저항이 매섭구만. 상사! 속력을 올리게! 빠르게 한 바퀴 돌아보고 빠지는 걸세!”

    “가, 각하!”

    “하하! 만약 피탄 당하면 내가 전상장이라도 챙겨줄테니 걱정 말고 가보세!”

    “후··· 알겠습니다.”

    빗발치는 총알과 포탄 속에서, 슈토르히 정찰기가 거대한 날개를 돌리며 크게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동안, 모델은 재빨리 눈알을 굴리며 전선의 상황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호오···. 내 생각에는 보구차르 쪽으로 공세를 집중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좌익 쪽에 병력을 많이 배치했군. 주공은 6군이 아니라 오히려 제1근위군 쪽이었던 건가.’

    그 모습을 본 모델은 머릿속으로 재빨리 작전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안쪽의 6군이 아니라, 바깥쪽의 제1근위군이 주공이라는 것은 54군단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포위하려는 작정이겠지.

    그렇다면 오히려 좋다.

    시가지를 이용해 방어선을 두껍게 만들어둔 보구차르 방면에는 병력을 적게 배치하고, 제1근위군 쪽에 전력을 집중해서 격퇴하면 될 테니까.

    그렇게 판단을 내린 모델은 곧바로 하이스트 상사에게 말했다.

    “상사, 54군단 사령부에 무전을 연결해주게. 지금 즉시 지시를 내려야 하네.”

    “죄송하지만 각하. 그 전에 일단 전선에서 이탈해도 되겠습니까?”

    “···뭐?”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모델이 고개를 둘러보자, 슈토르히의 날개와 창문에는 이미 기관총탄이 몇 발이나 박혀있었다.

    하이스트 상사의 필사적인 회피 기동이 아니었다면, 저 총탄 중 몇 발이 모델에게 박혔을지도 모르리라.

    “하하! 나 때문에 자네가 고생이 많았군! 그럼 일단 착륙부터 하지. 자네한테는 내가 직접 훈장을 챙겨줄 테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나.”

    “아닙니다, 각하! 영광입니다!”

    그렇게 깨진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모델은 무사히 남부집단군 사령부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보구차르에서 대기 중이던 14기갑사단에 집단군 사령부의 특별 명령이 하나 내려왔다.

    - 1943/10/2 남부 집단군 특별 명령

    1. 현재 대규모의 소련군 병력이 보구차르 돌출부의 목 부분으로 이동중인 것을 확인.

    2. 14기갑사단은 22사단과 합류해서 소련군의 반격을 원천 봉쇄할 것.

    *****

    “전원 기상! 출동이다! 10분 내로 전원 전차에 탑승하도록!”

    “옛!”

    프란츠의 지시에, 방에서 빈둥거리던 전차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군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프란츠는 먼저 밖으로 나가서 자신의 171번 판터를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 또 출동인가.”

    이번에는 또 어디로 투입될 것인가.

    뭐, 보나 마나 이 근방에서 적이 가장 많이 몰려오는 곳으로 보내지겠지.

    “젠장할,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중전차 부대로 지원하는 건데 말이야.”

    그때 교관은 판터가 티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지만, 지난 1년간 판터를 실제로 몰아보았던 프란츠가 보기에 이 녀석은 명백한 중형전차였다.

    그러나 높으신 분들은 여전히 판터를 중전차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티거처럼 최고의 격전지에 소방수로 투입해버리곤 했다.

    ‘중전차처럼 투입되는 중형전차라니. 정말 최악이군.’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프란츠는 수없이 많은 소련군 전차들을 격파하며 끝끝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지난 현재, 부대 내에서 판처 에이스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중위님, 출동 준비 완료했습니다!”

    “···그러냐. 알았다.”

    프란츠가 담뱃불을 발로 밟아 꺼트린 뒤, 전차에 올라타자 때마침 무전기에서 중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호 차부터 각 차량, 순서대로 기동하도록. 판처 에이스, 앞장서라.”

    “···그렇게 부르지 마십쇼, 중대장님.”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프란츠의 171호 판터가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막스, 길은 제대로 숙지했겠지?”

    “예, 소대장님. 일단 가도를 따라 내려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 이따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빠지는 거 잊지 말고.”

    프란츠는 큐폴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잠시 뒤, 저 멀리서 포성이 울려 퍼지고 그들의 머리 위로 루프트바페의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늦지 않게 도착한 모양이군.”

    “하하하, 이런 일에는 좀 늦어도 상관없는데 말입니다.”

    프란츠는 큐폴라 너머로 눈만 빼꼼 내민 채 적진을 조용히 노려보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믿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숫자의 소련군 전차들이 이곳을 향해서 몰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프란츠는 조용히 한숨을 내쉰 뒤, 큰소리로 외쳤다.

    “좋아, 가자! 전차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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