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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09화 (109/157)
  • 109화. 반격 (3)

    1943년 9월 27일.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 위치한 스타브카 최고중앙지휘사령부.

    이곳에서는 근래 보기 드물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영미 놈들의 기만 작전은 어떻게 되었소? 잘 진행되고 있는 거요?”

    “예, 서기장 동지. 좀 더 확실한 것은 독일군의 움직임을 지켜봐야 알겠으나, 현재 들려오는 바에 따르면 독일의 해외 방첩국 놈들을 속이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스탈린은 몰로토프의 보고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흠, 영국놈들이 오랜만에 일을 제대로 해주었군. 그런데 어떻게 저놈들에게 정보를 흘린 거요? 혹시 이중첩자라도 있었소?”

    “아닙니다. 그것이··· 아무래도 가짜 서류를 소지한 영국군 장교 복장의 시체를 스페인 해안에 흘려보낸 모양입니다.”

    사실 이 무렵 독일은 영국과 미국, 소련 등 주요 적성국 내부에서 제대로 된 첩보자원을 확보하는 데 사실상 실패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독일의 대외 정보 수급 루트는 대부분 동맹국의 지원이나 간접적인 정보에 의한 추론에 의지하는 판국이었고, 이를 간파한 영국은 이를 역이용해 이른바 ‘존재하지 않는 사나이’ 작전을 성공시킨 것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사나이라. 재미있군. 그나저나 독일놈들은 그렇게 잘난 척을 해대던 주제에 방첩 하나도 제대로 못 한단 말인가?”

    “그것이 결국 국가나 민족 따위의 허상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한계 아니겠습니까. 저희 소비에트 연방은 전 세계 만국의 노동자들이 서기장 동지의 영도 아래에 단결하고 있으니···.”

    “하하하. 몰로토프 동지, 그런 입에 발린 말은 그만하시오.”

    그러나 그렇게 손사래를 치면서도 스탈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이에 회의의 내용도 점차 낙관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좋소. 다음으로··· 주코프 동지.”

    “예, 서기장 동지. 말씀하십시오.”

    “그럼 이제 곧 독일놈들이 병력을 빼내서 프랑스로 배치할 테니, 한동안은 다시 아군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거요?”

    “맞습니다, 동지. 물론 석유의 부족은 해결할 수 없는 만큼 대대적인 기동전을 펼칠 수는 없겠지만, 아군의 전력비가 상대적으로 우세해지는 만큼 독일군 놈들도 감히 경거망동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세한 상황 속에서 카잔스카야 돌출부의 대치를 지속한다면 독일군의 부담은 커지고 아군의 공세역량은 점점 회복될 터.

    그리고 그렇게 내년 초가 되어서 영미 연합군이 서유럽에서 상륙 작전을 감행하면, 우리도 그때까지 비축한 연료와 물자를 모두 투입해서 최종 공세에 나서는 것이다.

    “만약 그 전에 독일이 먼저 강화 협상을 구걸하고 나서면 우리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아군이 연합군과 동시에 최종 공세에 나선다면 독일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겁니다.”

    “···호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어느 쪽이든 간에 독일놈들을 1차대전 때와 같은 꼴로 만들어버릴 수 있겠군.”

    그런 주코프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바라보던 스탈린은 몰로토프와 주코프를 향해 고개를 들고는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럼 몰로토프 동지는 독일놈들이 강화를 먼저 요청할 때를 대비해서 우리의 요구사항을 준비해두시오.”

    “알겠습니다, 동지.”

    “그리고 주코프 동지는 언제든지 최종 공세에 나설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도록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비록 눈앞의 전쟁은 지고 있지만, 독일군의 역량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전세는 서서히 역전되려 하고 있는 상황.

    이제 드디어 저 빌어먹을 파시스트 침략자 놈들에게 한 방 먹여줄 때가 온 것이다!

    이날 스타브카 최고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그런 희망찬 관측을 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집무실로 출근한 소련군 총사령관 대리, 주코프 대장은 책상 위에 놓인 뜻밖의 보고서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 1943/9/27 남서 전선군 보고서

    1. 독일 제11군이 카잔스카야 돌출부 서쪽, 보구차르 방면에서 공세를 시작하였음.

    2. 현재 6군이 심대한 피해를 입고 전선을 돌파당해 보구차르와 벨키니 다리까지 약 30km 정도의 전역이 점령당한 상황.

    3. 이에 반격에 나서서 벨키니 다리를 수복할지, 카잔스카야 돌출부의 병력을 물릴지 최고 사령부의 판단을 요망함.

    *****

    그리고 잠시 뒤, 주코프에게 호출되어 사태를 들은 바실렙스키 중장도 역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카잔스카야 돌출부가 반격당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벨키니 다리와 보구차르 방면에서만 공세에 나선 것이지만··· 뭐, 사실상 이건 카잔스카야 돌출부에 대한 공격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총공세에 나섰든, 아니면 국지적인 공세에 나섰든 간에, 이번 독일군의 반격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동부전선의 독일군 병력을 프랑스의 대서양 방벽 쪽으로 분산시키려고 했던 영국의 기만 작전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정말 곤란하게 되었군. 아군의 작전은 모두 독일놈들이 올해는 더 이상 공세에 나서지 않으리라는 가정하에서 계획된 것인데 말이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후··· 이미 닥친 일을 어쩌긴 어쩌겠나. 최선을 다해서 대응하는 수밖에.”

    그렇게 한숨을 내쉰 주코프와 바실렙스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전 지도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현재 독일군은 보구차르 방면과 벨키니 다리를 점령했을 뿐, 다른 곳에서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이러한 행동의 의도를 무엇이라 생각해야 할 것인가?

    단지 국지적인 반격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대대적인 반격에 앞선 전초전인가.

    그런 주코프의 물음에, 바실렙스키는 냉정하게 답했다.

    “주코프 동지, 지금은 그런 거시적인 부분보다도 눈앞에 닥친 문제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눈앞에 닥친 문제?”

    “예, 현재 독일군에 의해서 점거당한 보구차르 방면과 벨키니 다리는 카잔스카야 돌출부에 위치한 아군 부대의 보급을 대부분 책임지던 주요 수송로였습니다.

    물론 벨키니 다리 외에도 여러 가교들이 설치되어 있긴 합니다만, 55만 명의 보급량을 책임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보급이라. 설마 아군을 굶겨 죽이려는 것인가.”

    물론 다리 하나 차단당했다고 해서 당장 저들이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이런 보급 부족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카잔스카야 돌출부의 소련군은 계속 약화될 터.

    게다가 이제 점점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이렇듯 날씨가 추워지면 동계 방한 물품과 땔감, 연료 등 보급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이고, 보급 부족은 더욱 가속화되리라.

    그리고 그렇게 전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독일군이 반격에 나선다면, 아군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주코프 동지, 지금 이대로 있다간 카잔스카야 돌출부의 남서 전선군은 전멸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더 늦기 전에 어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흐음···.”

    현재 카잔스카야 돌출부에 배치되어 있는 55만의 병력은 내년의 최종 공세에 투입해야 할 소중한 전력이다.

    그렇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년에 연합군이 서유럽에 상륙할 때까지는 저들의 전력을 온존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저들을 큰 피해없이 살릴 수 있단 말인가?

    ‘···역시 가장 간단한 것은 병력을 퇴각시키는 거겠지. 하지만 이 경우 독일군의 추격에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카잔스카야 돌출부를 상실하게 된다.’

    현재 소련군에게 있어서 카잔스카야 돌출부는 단순한 교두보나 전략적 요충지 따위가 아니었다.

    아군이 현재 공세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그리고 독일군을 무찌를 수 있다는 희망이자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카잔스카야 돌출부를 스스로 포기하겠다고 말한다면 과연 서기장 동지께서는 그것을 받아들이실 것인가.

    ‘···아마 힘들겠지.’

    그렇기에 주코프는 두 번째 방책인, 벨키니 다리를 수복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했다.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11군을 밀어내고 보구차르 방면과 벨키니 다리를 되찾는 것이 타당할 것 같네만, 바실렙스키 동지는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되찾을 수 있다면야 최선이겠지만··· 과연 독일놈들이 순순히 내주겠습니까?”

    하긴, 독일놈들도 아군의 보급로를 제한할 요량으로 벨키니 다리를 빼앗은 것이라면 이곳을 사수하기 위해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을 터.

    게다가 최악의 경우에는 천왕성 작전 당시의 칼라치 다리를 파괴했던 것처럼 벨키니 다리를 파괴하고 퇴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벨키니 다리 북쪽은 아군이 사수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저놈들도 여유롭게 폭약을 설치하지는 못할 텐데.”

    “그렇다곤 해도, 역시 위험부담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돈강에 임시 가교를 더 설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코프는 그런 바실렙스키의 타협책에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단순히 보급의 문제뿐이라면 가교를 더 설치하거나 운송량을 늘리는 것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일놈들이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해 안에 카잔스카야 돌출부를 제거하겠다는 의도일 터.

    그렇다면 아군이 버티기에 들어갈 경우, 더 많은 자원과 병력을 투입해서 공세에 나설 것이고 결국 소모전을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러니,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보구차르 방면을 돌파하는데 승부를 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남동쪽에 있는 루마니아군과 제1기갑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게다가 벨키니 다리를 되찾는 것이 늦어지면, 돌출부의 병력도 오래 버티진 못할 겁니다.”

    “그런 위험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네만, 그래도 지금은 이게 최선일세.”

    “···주코프 동지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저도 반대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게 바실렙스키마저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주코프는, 자신의 책상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나 총사령관 대리인 주코프일세. 지금 당장 남서 전선군 사령부로 연결해주게나.”

    그리고 잠시 뒤, 몇 번의 연결과 교환 끝에 주코프의 수화기 너머에서 어딘가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오고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음의 중심에서 남서 전선군 사령관, 이반 코네프 상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남서 전선군 사령부, 이반 코네프 상장입니다. 혹시 주코프 동지이십니까?”

    “맞네, 나일세.”

    “···죄송합니다. 영 혼란스러운 상황인지라.”

    “아닐세, 아무튼 자네의 보고는 받았네만.”

    주코프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작전 지도를 훑어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스타브카에서는, 즉각 반격을 개시해 벨키니 다리와 보급로를 수복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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