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05화 (105/157)
  • 105화. 협상 (3)

    1943년 9월 1일.

    우크라이나, 빈니차에 위치한 동부전선 총사령부.

    나는 오늘 아침에도 레닌그라드부터 모스크바, 돈강 방어선, 그리고 튀니지까지 각지의 전선에서 날아온 보고를 읽고 있었다.

    “역시 북부집단군과 중부집단군은 별다른 일이 없는 모양이군.”

    올해 초, 갑작스럽게 시작된 2차 레닌그라드 공방전은 한때 아군을 무섭게 몰아붙이던 볼호프 전선군이 공세를 중단하면서 소강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에 북부집단군 사령관, 레프 원수는 1개 기갑군단만 지원해주면 레닌그라드 포위망을 밀어낼 수 있다고 간청해왔지만, 기갑사단 하나조차 아쉬운 이 시국에 1개 기갑군단을 보내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레닌그라드의 볼호프 전선군이 공세를 중단한 것도 사실은 카프카스 공세 때문이었으니까. 결국, 공짜는 없단 말이지.’

    그리고 그에 반해 모스크바 일대의 중부집단군은 작년 초, 소련군의 대반격을 막아낸 이래로 지금까지 거의 변함없이 위치를 사수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스크바 전선에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의 돈강 방어선만큼은 아니지만, 저곳에서도 지난 1년 6개월간 매일 치열한 접전을 벌어졌었고 그 결과, 지금까지도 엄청난 수의 병력이 투입되고 있었다.

    ‘후··· 다음에 클루게 원수를 만나면 병력 손실을 좀 줄여달라고 말씀드려야겠군.’

    물론 모스크바 전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돈강 방어선이 우선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중부집단군 보고서를 덮어버렸다.

    “그럼 결국 문제는··· 역시 돈강 방어선과 튀니지 전선 쪽인가. 흐음···.”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다음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펼쳐보는 순간, 나는 내 예상을 뛰어넘는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1943/8/30 아프리카 기갑군 보고서

    1. 2개 사단으로 구성된 미군이 결국 엘 게타르 협곡을 통과하는 데 성공하였음.

    2. 또한, 영국 8군 소속 5개 사단도 마레트 방어선을 돌파하였음.

    3.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적군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으며, 아군은 3개 사단을 온존한 채로 후방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였음.

    “호오, 역시 명장은 명장이라 이건가. 롬멜 원수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잘 해주고 있는 모양이군.”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튀니지를 깔끔하게 포기하고 북아프리카의 병력을 동부전선에 투입하는 것까지도 고려하고 있던 차였다.

    그동안 석유가 없어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이탈리아 왕립 해군도 카프카스 유전 덕에 부활했으니, 루프트바페와 지중해 함대만으로도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영미 연합군이 이렇게 스스로 자멸해준다면야 굳이 그럴 필요도 없지.’

    내 회귀 전의 기억과 롬멜 장군의 보고서를 취합해보면, 현재 북아프리카에 배치된 연합군의 수는 대략 15개 사단 정도일 터.

    이는 추축군이 배치한 10개 사단과 비교해서 최소 1.5배에 달하는 병력 우위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저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현재 아군은 방어자의 입장인 데다가 지형적으로도 유리한 상황이지. 게다가 저들은 대서양을 건너서 보급을 유지해야 하는 데에 더해 내부의 분쟁도 점점 커지고 있을 터.’

    그렇다면 굳이 튀니지를 포기하지 않아도 아군은 큰 부담 없이 연합군의 발을 북아프리카에 계속 묶어둘 수 있다.

    그렇게 연합군이 허비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동부전선에서 홀로 분투하고 있는 소련의 고충도 점점 심해질 터.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이었던 카잔스카야 돌출부까지 격퇴해 버린다면, 소련놈들도 결국에는 강화 조약을 수용할 수밖에 없으리라.

    ‘좋아, 모두 계획대로 되고 있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서류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책상 서랍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참모장교 하나가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각하, 지금 만슈타인 원수께서 각하를 찾고 계십니다.”

    “···만슈타인 장군이 나를?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게··· 아무래도 소련과의 협상에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

    아니, 소련과의 강화협상에 문제가 생겼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왠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나는 곧바로 만슈타인 원수의 집무실로 향했다.

    “각하, 육군 참모총장 파울루스 원수입니다. 지금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자네인가? 어서 들어오게.”

    내가 그의 집무실로 들어가자, 만슈타인은 고개를 들어 나에게 간단히 목례한 뒤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강화협상이 틀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왔습니다만··· 그것에 대한 서류인 겁니까?”

    “아, 자네한테는 아직 전문이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로군. 별로 영양가 있는 내용은 없네만, 그래도 직접 한번 읽어보시게.”

    자리에 앉은 나는 만슈타인이 건넨 보고서를 받아 읽어보았다.

    한 페이지조차 되지 않는 그 짤막한 보고서에 적혀있는 내용은 단 하나.

    그것은 바로, 소련 측이 우리와의 강화협상을 무기한 보류했다는 것이었다.

    “흠··· 보류라.”

    “그래. 이미 진즉에 한계까지 몰려있을 저놈들이 이렇게 배짱을 부리고 나올 줄이야. 자네는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

    소련이 강화협상을 먼저 뿌리치다니···.

    그렇다는 것은, 아마 둘 중 하나의 경우인 것이리라.

    ‘뭔가 상황이 급반전되어서 이 전쟁을 계속 지속할 수 있게 되었거나, 아니면 강화협상을 유리하게 주도하기 위해서 허세를 부리고 있거나.’

    하지만 북아프리카의 연합군이 졸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다가 북해 항로를 통해서 수급되는 자원의 양도 한정된 지금, 전황을 크게 뒤바꿀만한 무언가가 저놈들에게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최근 리벤트로프 외무장관이 강력하게 소련 측 외무관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하니, 아마 분위기 쇄신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더 타당하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소련놈들이 어떻게든 협상을 주도하기 위해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그런가? 하지만 그래도 좀 이상하단 말이지.”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허세를 부린다고 해도 최소한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 마련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일세.”

    확실히 만슈타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지금과 같은 전황에서 말뿐인 허세를 부린다면 가만히 있느니만도 못할 터.

    그런데도 불구하고 소련놈들이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는 것은, 저놈들도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제 생각에는 아마 둘 중 하나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둘 중 하나? 그게 무엇인가.”

    “첫 번째는 영미 연합군이 무언가 행동을 취해서 아군의 상황이 불리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련이 스스로 군사 작전을 개시해서 전세를 뒤집어 보려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둘 다일지도 모르지요.”

    그런 내 말에, 만슈타인은 지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영미 연합군이 아군을 압박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는가?”

    “예, 맞습니다. 그러니 저도 소련놈들이 직접 움직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나는 만슈타인 앞으로 몸을 숙이며, 작전 지도 위의 한 점을 가리켰다.

    그곳은 바로, 약 50만의 소련군이 밀집되어 있는 돈강 방어선의 카잔스카야 돌출부였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저희가 먼저 반격에 나서는 것이 어떻습니까?”

    *****

    그 무렵, 미국 워싱턴 D. C.에 위치한 백악관에서는 연일 이어지는 패전에 암울한 보고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 영국 8군과 미 2군단은 마레트 방어선을 돌파해서 스키라 일대까지 도달한 상황입니다.”

    “그렇군. 그래서 엘 게타르에서 스키라까지, 고작 100km를 진격하는 동안 우리 병사들이 얼마나 죽었소?”

    “그게··· 현재로서는 40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후··· 4000명이라.”

    땅이 꺼지도록 내쉬는 루즈벨트의 한숨 소리에 마셜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루즈벨트는 이내 휠체어를 돌려 마셜을 바라보았다.

    “마셜, 자네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병사들이 정말로 튀니지의 독일군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각하. 저희 병사들을 조금만 더 믿어 주십시오.”

    “그렇다면···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죽고 다치겠나?”

    “······.”

    대통령이 내뱉은 뜻밖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마셜은 어렵사리 말을 골라 입을 열었다.

    “···각하, 현재 아군의 전술적, 전략적 능력이 독일군이나 영국군에 비해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병사들은 빠른 속도로 경험을 쌓고 있으며, 미군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말이지만··· 저는 지금 북아프리카에서 우리 병사들이 흩뿌리고 있는 피가 결국 더 큰 자산이 되어 조국에 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 병사들이 흘리는 피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희생이라는 마셜의 냉정한 말에, 루즈벨트는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맞는 말이오. 그래,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는 법이지. 아무튼, 그래서 말이오만···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튀니지 점령은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전해주시오.”

    “···정말 괜찮겠습니까?”

    갑작스러운 루즈벨트의 지시 번복에, 마셜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그렇게 되물었다.

    애당초에 연합군이 튀니지 점령을 서둘렀던 것은 소련을 붙잡아 두기 위함이었는데, 그것을 이렇게 번복해도 괜찮단 말인가?

    그런 마셜의 반응에 루즈벨트는 웃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너무 걱정 마시오. 어제 소련 대사로부터 연락이 들어왔소만, 아무래도 독일과의 강화협상이 잘 안 풀리고 있는 모양이오.”

    “그렇습니까? 하긴, 강화협상이라는 게 그리 쉽게 해결되는 일은 아니지요.”

    게다가 현재 독일은 레닌그라드부터 우크라이나, 카프카스까지 소련의 알짜배기 땅을 모두 점령하고 있는 상태니, 영토 문제로만 따지더라도 쉽게 합의를 보기는 어려우리라.

    “그렇소. 그리고 그 덕분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쨌든 우리에게도 소련이 다시 제안을 해왔소.”

    “···그게 무엇입니까.”

    소련이 전쟁을 계속하는 대가로 요구하는 조건이라니,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후··· 우리더러 서유럽에 상륙해서 제2 전선을 열어달라고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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