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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03화 (103/157)
  • 103화. 마레트 방어선 (4)

    “가, 각하! 급보입니다! 1기갑사단이 적의 매복에 당해 패퇴 중이라고 합니다!”

    “뭐? 이탈리아군에게 매복을 당했다고?”

    그 무렵, 가프사의 미 육군 2군단 사령부.

    이곳에서 아군의 승전보만을 기다리고 있던 패튼 장군은 생각지도 못했던 패배 소식에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젠장할! 이 멍청한 놈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파스타 놈들에게 당한단 말이야! 저놈들에게는 기습할만한 대전차포도 없었을 텐데?”

    “아직 상황이 제대로 파악된 것은 아닙니다만··· 셔먼 전차가 정면에서 격파당했다는 아군 병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마 독일군의 대공포 부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빌어먹을. 또 그놈의 88mm인가.”

    독일군이 증원에 나섰다는 소식에, 길길이 날뛰던 패튼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며칠째 지연되는 전황에 지쳐서 오늘 내로 협곡을 넘으라 닦달했던 것이 설마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하필이면 이럴 때 독일군을 만나다니. 역시 조급해하지 말고 내일 아침 공세를 재개했어야 했나.’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되돌릴 수는 없는 법.

    지금은 그런 것보다 앞으로의 일을 고민해야 할 때였다.

    “···어쩔 수 없군. 그래서, 현재 아군의 상황과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일단 독일군에게서 기습을 당한 13기갑연대 소속 전차들이 십여 대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던 47보병연대 소속 3대대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채 물러난 상태입니다.”

    “후··· 그래도 마냥 최악의 상황은 아니군.”

    그러나 부관의 보고를 들으며 잠시 고민하던 패튼은 이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비록 독일군의 기습에 당해서 협곡을 돌파하는 데 실패하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피해가 크지 않은 데다가 어쨌든 협곡의 끝자락까지 밀어붙이는 데는 성공했지 않은가.

    ‘가장 중요한 출구의 목 부분을 틀어막힌 것이 뼈아프긴 하지만··· 어떻게든 이 부분만 뚫어내면 우리의 승리다!’

    그렇게 판단한 패튼은 부관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부관! 지금 당장 1기갑사단과 9보병사단 사령부에 지시하게. 내일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총공세를 펼쳐서 엘 게타르 협곡을 돌파하라고 말이야!”

    “하지만 각하, 저곳을 정면으로 돌파했다간 아군 병사들이 큰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피해? 흥! 세상에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 어디 있나! 우리는 어떠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반드시 저 협곡을 넘어야만 하네! 내 말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수십여 대의 전차들과 병사들이 좁은 협곡을 따라 천천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

    다른 한편, 그 무렵 마레트 방어선 남쪽의 메데니느에 위치한 영국 8군 사령부.

    이곳에서 독일군의 예비대가 움직였다는 소식만 기다리고 있던 몽고메리는 나날이 순조롭게 진격하는 미 2군단의 보고에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패튼 그놈이 벌써 엘 게타르 협곡을 거의 다 건넜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현재 협곡의 끝자락에서 독일군의 대공포 부대가 최후의 저지에 나선 모양입니다만, 이곳만 돌파해낸다면 가베스와 마레트 방어선까지는 금방일 겁니다.”

    “젠장! 롬멜 이 자식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설마 저 여우 같은 놈이 예비대를 마련해두지 않아서 저러는 것은 아닐 텐데.”

    엘 알라메인에서부터 트리폴리, 그리고 이곳 튀니지까지.

    이제껏 언제 어디서든지 몽고메리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던 독일군 기갑부대는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저들은 어딘가 후방에 예비대로 배치되어 있을 터인데··· 롬멜을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예비대를 엘 게타르 협곡으로 투입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렇게 몽고메리가 지도를 바라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자,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8군단장, 마일스 C. 뎀프시 소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각하,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독일군에게 충분한 예비대가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후··· 이제와서 무슨 소리인가, 뎀프시 소장. 저놈들의 15기갑사단이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은 자네도 들었지 않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렇다고 15기갑사단이 이곳 튀니지 남부에 있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 뎀프시 소장의 대답에, 몽고메리는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현재 튀니지 전선은 지중해부터 파이드 고개를 따라서 엘제리드 호수, 마레트 방어선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상태.

    게다가 연합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병력 열세인 추축국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뎀프시 소장의 말대로 15기갑사단이 북쪽 어딘가에 배치되어 있을 가능성도 없진 않으리라.

    “그럼 자네의 말은··· 지금 독일군은 예비대를 아껴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비대가 없는 상황이라는 말인가?”

    “예, 맞습니다. 지금 엘 게타르 협곡에 투입되었다는 독일군 대공포 부대가 아마 저들의 마지막 예비대가 아니었겠습니까.”

    “흠···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까지 독일군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도 전부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현재 마레트 방어선의 추축군은 몽고메리의 눈앞에 보이는 독일군 1개 사단이 전부나 다름없을 터.

    ‘젠장할, 진즉에 이럴 줄 알았으면 8군단을 곧바로 투입했을 텐데. 내 꾀에 내가 넘어간 꼴이 되어버렸군.’

    하지만 그래도 아직 늦지는 않았다.

    미 2군단이 마레트 방어선에 도달하려면 협곡의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한 뒤에도 140km를 더 달려야 할 테니까.

    ‘그래, 저 무식한 패튼 놈이 아무리 빨리 오더라도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릴 터. 그 정도 시간이면 우리가 마레트 방어선을 돌파하기에 충분하지.’

    그렇게 판단한 몽고메리는 옆에 서 있던 뎀프시 소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뎀프시 소장, 현재 8군단의 공세 준비는 어디까지 진행되었나?”

    “예. 현재 1기갑여단 소속 전차 120여 대와 50사단의 병사들은 모두 마트마타 언덕을 넘어 집결한 상태입니다.

    다만, 공세를 위한 물자들과 보급로는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서 장기간 작전을 지속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거라면 됐네. 어차피 속전속결로 측면을 돌파해서 마레트 방어선을 무너트리면 보급 문제도 해결되지 않나.”

    “하하, 맞는 말씀이십니다.”

    “좋아. 지금 당장 1기갑여단을 앞세워서 공세를 개시하게!”

    그리하여 1943년 8월 25일.

    오랫동안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영국 8군단이 테카베 계곡을 따라서 마레트 방어선 후방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엘제리드 호수 남쪽에서는 영국 8군단과 독일 90경보병 사단이 교전을 개시했을 바로 그 무렵.

    다른 한편, 엘 게타르 협곡에서는 미 2군단 병사들이 무수히 많은 피를 흘려가며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연합 방어선을 돌파하려 하고 있었다.

    “제기랄, 맥스! 언제까지 땅바닥이랑 키스만 하고 있을 거냐! 빨리 대가리 들고 쏴라!”

    “하, 하지만 분대장님, 총알이··· 총알이 계속 날아오고 있습니다!”

    “젠장, 병신같은 신병 새끼들···. 댄! 저 개 같은 기관총 잠시만이라도 멈출 수 없겠나?”

    “죄송합니다, 분대장님. 현재 위치에서는 사수를 노릴수가 없습니다!”

    “제기랄···.”

    독일군의 포탄과 이탈리아군의 기관총 사격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선의 한복판.

    적진으로 돌격하던 도중 고립되어버린 마이크 케인 하사와 그의 분대원들은 전차 잔해물과 구덩이 따위로 엄폐한 채 아군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케, 케인 하사님! 저기 아군 전차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뭐?”

    그런데 바로 그때, 저 뒤쪽에서 십여 대의 아군 전차들이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지금은 거리가 멀어서 전차들밖에 보이지 않지만, 전차가 단독으로 공세에 나설 리는 없으니 분명 저 뒤에는 다수의 보병들이 따라오고 있으리라.

    “좋아! 아군이 온다! 저 녀석들이 여기를 앞서 지나가면 우리도 그 뒤를 따른다!”

    “예! 알겠습니다!”

    “맥스!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뛸 준비나 해라. 이번에 못 따라오면 진짜 버리고 갈 거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아군 부대가 그들의 바로 옆을 지나가는 그 순간.

    “지금이다! 달려!”

    “움직여!”

    케인과 그의 분대원들은 진격하는 전차의 꽁무니 뒤에 붙어서 무사히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분대원들이 모두 따라온 것을 확인한 케인은 곧바로 옆에 있는 녀석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이봐, 우리는 45연대 소속 417대대원들이다. 너희들은 어느 부대 소속이지?”

    “417대대? 우리보다 먼저 출발해서 박살났다는 그 분들이시구만. 우리는 389대대요.”

    “···389대대가 투입된 건가. 젠장, 우리 대대는 진즉에 끝장난 모양이군.”

    그래도 389대대라면 같은 45연대 소속이니, 이제부터는 이 녀석들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도 적진 한가운데서 낙오되는 불상사는 없으리라.

    케인 하사는 내심 안심하며 그들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콰앙!!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옆에서 앞서 달려나가던 M4 셔먼 한 대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그리고 잠시 뒤.

    퍼버엉!!

    전차 내부에서 연쇄적인 폭발음이 들리더니, 그와 동시에 셔먼의 동글동글한 포탑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시발···.”

    “동요하지 마라! 대전차포다! 모두 돌격해!”

    “기관총 진지와 대전차포를 진압해라!”

    “와아아아!!”

    어떤 장교가 터무니 없는 소리를 외치자, 광기인지 동요인지 모를 것에 휩싸인 병사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부, 분대장님! 저희도 진격합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 멍청한 놈아.”

    그러나 무책임한 돌격의 대가는 참혹했다.

    참호를 향해서 달려나가던 병사들은 태반이 철조망을 넘지도 못한 채 고꾸라졌고, 그들의 방패가 되어줘야 할 전차들은 졸전을 펼치다가 날아오는 88mm 포탄에 하나둘씩 격파되어 갔다.

    그리고 잠시 뒤, 방금 전 그 장교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울려 퍼졌다.

    “퇴각!! 퇴각하라!!”

    그렇게 389대대와 합류한 케인 하사는 두 번의 돌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분대원들을 이끌고 아군 진지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층 더 암울한 소식뿐이었다.

    “잘 들어라. 현재 독일군 낙하산 부대가 엘 게타르 협곡 서쪽에서 대규모로 낙하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우리의 후방이 차단되었다는 소리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 우리 389대대는 서쪽으로 되돌아가서 저들을 격파할 것이다. 지금 당장 준비하도록!”

    그건 바로, 미군 2개 사단이 엘 게타르 협곡에 갇혀버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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