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00화 (100/157)
  • 100화. 마레트 방어선 (1)

    1943년 8월 17일.

    이베리아 반도의 남쪽 끝, 영국령 지브롤터에 위치한 로열 네이비 해군기지.

    지중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몇 달 전, 새롭게 임명된 북아프리카 상륙군 사령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중장은 본국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올해 안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군을 완전히 몰아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혹시 가능하겠나?”

    “죄송하지만, 확답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각하께서도 이미 들어서 아시겠지만, 지금 저희들의 상황이 조금 복잡해서 말입니다.”

    “···고생이 많은 줄은 아네만, 그래도 이번에는 반드시 전과를 보여줘야 하네. 지금 독일과 소련의 분위기가 정말 심상치 않단 말일세.”

    아이젠하워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마셜 참모총장의 간절한 목소리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올해 안이라. 오늘이 8월 17일이니, 그럼 대충 4개월 정도 남았군.’

    4개월. 일수로 치면 거의 120일 남짓.

    게다가 현재 연합군의 병력은 추축군보다 거의 2배 가까이 우세한 상황이니,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 정도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리라.

    하지만 현재 북아프리카에 있는 영미 연합군의 실상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연합군 병사들은 상륙한 이래로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는 탓에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데다가, 심지어 아군 사이에서도 내분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시작은 독일군이 트리폴리를 버리고 튀니지로 물러난 덕분에 북아프리카 상륙군과 영국 8군이 합류하면서부터였다.

    그렇게 양측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에서 미국 제1기갑군단 사령관 조지 S. 패튼 소장과 영국 8군 사령관 버나드 로 몽고메리 중장이 한판 붙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하는 소리긴 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트리폴리 전투의 패배는 전적으로 미군의 책임이었소.’

    ‘뭐요? 이집트까지 도망친 당신들을 도와주려고 대서양을 건너왔더니, 이제 와서 다 우리 탓에 졌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흥! 도와주러 왔으면 잘 좀 싸우던가! 미군 기갑부대가 우리 애들의 반만큼만 싸워줬어도 트리폴리에서 사막의 여우를 잡을 수 있었어!’

    ‘보자 보자 하니까, 지금 당신 말 다했어?’

    가벼운 술자리에서 시작된 그 말다툼은 결국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졌고, 어느새 두 사람의 다툼은 영국군과 미군 중 누가 더 잘 싸웠냐 하는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을 중재해야 할 북아프리카 상륙군 총사령관이 바로 아이젠하워였다는 점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패튼은 웨스트포인트 선배였기 때문에 강하게 질책하기가 곤란했고, 몽고메리는 아예 영국군 소속인지라 직접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조차 없는 상황.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저 두 사람이 회의 때마다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으니, 독일군을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북아프리카 상륙군 총사령관이 이런 자리일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거절했을 텐데···.’

    그렇게 아이젠하워가 내심 자신을 추천한 마셜을 원망하고 있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마셜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아무튼, 자네의 어깨에 미합중국의 미래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마셜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것을 확인한 아이젠하워는 수화기를 조용히 내려놓은 뒤 잠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후··· 제기랄. 미합중국의 미래라니, 무시무시한 소리를 하시는군.”

    하지만 마셜의 말이 과장인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소련이 정말 이 전쟁에서 발을 빼버린다면 미국의 미래도 크게 달라질 테니까.

    “···하는 수 없군. 오늘이야말로 결론을 짓는 수밖에.”

    그렇기에 아이젠하워는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결국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이 기다리는 회의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

    그러나 잠시 뒤, 회의실에서는 지금까지와 똑같은 광경이 아이젠하워의 눈앞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었다.

    “아니, 현재 독일놈들의 전선은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지 않소! 그러니 약한 허리 부분을 공격해서 마레트 방어선을 협공하면 된다니까!”

    “흥! 그러려면 당신들이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파이드 고개를 넘어야 할 텐데, 약해빠진 미군 병사들이 정말 할 수 있겠소?

    그럴 거면 차라리 우리 8군에게 전차를 넘기시오. 우리가 마레트 방어선을 우회해서 격파할 테니!”

    “뭐요? 지금 말 다 했소?”

    아이젠하워는 오늘도 역시나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패튼과 몽고메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한바탕 싸우다가 결국 대화가 결렬되고 안건은 다음 회의로 넘어가 버렸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미룰만한 여유가 없었다.

    올해 안에 북아프리카 전역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오늘 회의에서 결론을 내려야만 했다.

    ‘그럼 문제는··· 저 두 사람 중 누구의 편을 드느냐는 것인데.’

    과연 누구의 의견을 지지해야 저 둘을 타협시키고 독일군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인가.

    아이젠하워는 아직도 싸우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고개를 돌려, 가운데 놓인 작전 지도를 바라보았다.

    현재 독일군은 튀니지 남북으로 길게 뻗은 파이드 고개와 엘제리드 호, 테카베 계곡을 이용해서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한 상태.

    그리고 이 중 가장 골치 아픈 녀석은 남쪽에 위치한 마레트 방어선이었다.

    이 지역은 측면이 테카베 계곡으로 막힌 데다가 지중해까지의 폭이 17k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영국 8군이 아무리 공격해도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레트 방어선을 최우선 공격목표로 삼는 데까지는 두 사람 모두 동의했으나, 문제는 저곳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였다.

    “허, 참나. 애당초에 이런 상황이 된 것도 결국, 당신네 영국 8군만으로는 마레트 방어선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소! 그러니까 우리 미군이 나서서 협공해주겠다니까?”

    “글쎄, 당신들도 파이드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똑같지 않소? 그리고, 전차만 넘겨주면 우리가 알아서 마레트 방어선을 돌파하겠다니까?”

    사실 두 사람 모두 정면 공격만으로는 마레트 방어선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독일군의 후방 지대로 침투해서 협공을 펼쳐야 했는데, 서로 그 역할을 맡겠다고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젠장, 무슨 애도 아니고. 말로는 서로 논리적인 척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자존심 싸움이지 않나.’

    하지만 때로는 체면이 실리보다 중요할 때도 있는 법.

    게다가, 이런 주도권 싸움은 양국이 연합 전선을 펼치는 이상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한번은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의 편을 든단 말인가.’

    같은 미군이자, 웨스트포인트 선배인 패튼의 체면을 살려줄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롬멜을 상대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검증된 명장, 몽고메리의 판단을 따를 것인가?

    그렇게 옥신각신 싸우는 패튼과 몽고메리를 바라보던 아이젠하워는, 장고 끝에 결론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두 분의 제안 모두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흥! 일장일단은 무슨. 아이크, 그냥 내 말대로 하세!”

    “아이젠하워 장군, 같은 미군이라고 편들지는 않으리라 믿겠소이다.”

    “하하··· 물론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좋소, 한번 말해보시오.”

    그렇게 역정을 내던 두 사람은 오랜만에 입을 연 총사령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바로 두 분의 작전을 모두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모두 인상을 찌푸리며 동시에 반박했다.

    “···장군, 그 대답은 너무 실망스럽구려. 원래 전략의 기본은 선택과 집중인 법. 그런데 두 개의 작전을 모두 실행하자니, 설마 병력을 양분할 생각이오?”

    “아이크, 이번만큼은 나도 이 양반과 같은 생각일세. 두 작전을 동시에 실행하자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패튼과 몽고메리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하하, 두 분 다 잠시 진정하시고 제 말을 좀 더 들어주십시오.

    지금까지 아군의 정찰부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 마레트 방어선과 가프사 방어선을 막고 있는 독일군은 같은 부대입니다.

    그러니 두 분이 동시에 공격을 개시한다면 적의 병력은 사방으로 분산될 것입니다.”

    “흠···.”

    “그렇게 사방을 공격하다 보면 어딘가는 뚫릴 것이고, 결국 마레트 방어선과 튀니지 남부도 아군의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제서야 아이젠하워의 말을 이해한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두 부대가 동시에 공격을 개시해서 양면 공세의 효과를 낼 수 있다면 굳이 병력을 집중시킬 필요가 없을 터.

    게다가, 아이젠하워의 제안에는 그것 외에도 한 가지 더 장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몽고메리과 패튼, 둘 중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이젠하워 장군이 제법 머리를 썼군.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독일군을 상대로 실력을 증명하라는 것인가.’

    ‘그래, 이렇게 되면 결국 이번 전투에서 전과를 올리는 놈에게 주도권이 돌아가겠군.’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서로를 노려보다가, 다시 작전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자신의 부대가 나아갈 진로와 배치된 독일군의 전력, 그리고 상대방의 상황까지 모두 면밀히 검토한 두 사람은 아이젠하워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그럼 아이젠하워 장군의 말대로 한번 해봅시다. 패튼 장군께서 그동안 자신만만하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단숨에 파이드 고개를 넘어주시기를 기대하겠소.”

    “나도 정말 기대가 되는군. 그동안 몽고메리 장군께서는 기갑부대만 있으면 마레트 방어선 따위는 단독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했으니, 우리가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다 끝난 상태겠지?”

    그렇게 한참 동안 웃으며 서로 덕담을 나누던 패튼과 몽고메리는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토록 싸우던 두 사람은 사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자식··· 우리 애들도 할 때는 한다는 걸 보여주마.’

    ‘건방진 놈, 지금까지 독일놈들과 맞서 싸워 온 게 누구인지 가르쳐주지.’

    그것은 바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자식보다는 먼저 방어선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