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98화 (98/157)
  • 98화. 협상 (1)

    1943년 8월 1일.

    전날 갑작스럽게 발표된 아돌프 히틀러의 죽음으로 인해서 독일은 깊은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그로 인해서 독일 전역에서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시민들이 속출했으며, 거리에는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슬픔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이런 혼란 속에서도 총통의 장례식은 순조롭게 준비되었고 1943년 8월 7일 오후 10시, 수십만의 인파가 모인 베를린에서 화려하고 거창한 국장이 거행되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 선을 넘는 이는 즉각 체포하겠다!”

    “거기 너! 수상한 짓 하지 마라!”

    무수히 많은 시민들이 베를린의 거리로 몰려나온 가운데, 수도 경비 연대와 친위대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인파를 통제하며 좌우로 몰아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로 중앙의 통로로 4마리의 말이 이끄는 거대한 군용 마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흐흐흑···. 총통 각하!”

    “하일 히틀러!”

    “독일 만세! 총통 각하 만세!”

    사방에서 오열하며 외치는 군중들의 뒤에서, 나는 아돌프 히틀러의 장례식 행렬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앞에서는 군악대가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 2악장을 연주하고, 그 뒤로 거대한 하켄크로이츠 깃발에 덮인 히틀러의 관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렇게 베를린을 가로질러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도착한 행렬은 잠시 관을 내려놓은 뒤 마지막 연설을 시작했다.

    “친애하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민 여러분. 우리는 오늘 독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족 지도자를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히틀러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이곳에 모인 시민들은 조문 연설을 하는 슈페어의 모습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슈페어의 뒤에 서 있는 나치당 관료들과 군부를 본 이들은 곧 그가 차기 총리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슈페어는 비통하지만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자리를 빌어서 여러분들께 총통 각하의 마지막 유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독일이여, 승리할 때까지 싸우라!’”

    “와아아아!!”

    *****

    그렇게 히틀러의 장례식이 끝난 뒤, 나는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 슈페어를 찾아온 참이었다.

    “정말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각하.”

    “후우··· 그렇습니까?”

    “예, 이제 독일의 모든 시민들이 슈페어 장관님께서 독일의 차기 총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겁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내 축하의 말에 슈페어는 송구스럽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지만, 나는 그가 차기 총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 그의 머릿속은 이제부터 독일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

    ‘후후, 아직도 헛된 꿈을 꾸는 모양이군.’

    그러나 나는 그런 슈페어의 모습에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히틀러와 같은 절대 권력은 가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슈페어가 가진 정치적 기반은 나치당 내부에 존재하는 약간의 후원자들과 나를 통한 군부의 지지뿐.

    그러나 반면에, 나치 친위대를 비롯한 그의 경쟁자들은 당과 행정기관을 깊숙이 장악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슈페어를 견제할 터였다.

    ‘만약 슈페어가 히틀러처럼 시민들의 지지를 받게 된다면 상황이 좀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한, 그는 우리 군부를 결코 놓을 수 없지.’

    그렇다면 나는, 슈페어가 친위대와 경쟁하며 정권을 이끄는 동안 그의 도움을 받아서 이 전쟁을 끝내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소련과 강화협정을 맺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제 히틀러도 사라졌으니 이쯤에서 슬슬 소련과의 전쟁을 끝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소련과의 전쟁을 말입니까?”

    “예, 이미 아군은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와 카프카스의 유전, 레닌그라드까지 알짜배기 땅을 모두 점령했습니다. 그러니 소련과 끝까지 싸우는 것보다는 이쯤에서 타협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런 내 주장에, 슈페어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전쟁이 장기화되면 국민들도 별로 안 좋아할 테고 말입니다.”

    “하하, 맞습니다. 만약 소련과의 강화협상을 유리하게 맺고 이 전쟁을 조기에 끝낸다면, 총리님의 지지율도 분명 올라갈 겁니다. 게다가 영국과 미국놈들도 계속 싸우기 어려울 테고 말입니다.”

    “그럼··· 소련에 이어 영국과 미국까지?”

    “예. 만약 저들로부터 종전 협정을 이끌어낸다면, 총리님도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하고 폴란드까지 집어삼켰던 히틀러처럼 독일의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영웅이라···.”

    슈페어는 내 말에 깊은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나는 그가 결국 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그로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전쟁을 계속 수행하는 것보다는 이 정도에서 종전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히틀러와는 다르게 슈페어는 시민들의 반응도 신경 써야 할 테고 말이지.’

    그리고 잠시 뒤, 그는 역시 내 예상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럼 리벤트로프 외교 장관과 협의해서 소련에게 강화를 제안하도록 하겠소.”

    “하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희 국방군은 총리님께서 좋은 결과를 거두실 수 있도록 계속해서 소련군을 압박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소, 파울루스 원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각하.”

    그렇게 나는 웃으며 슈페어와 악수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모스크바 주재 일본 대사관을 통해서 크렘린궁에 한 통의 외교 서신이 전달되었다.

    영국과 미국이 그토록 두려워하고 경계했던, 동부전선의 단독강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1943년 8월 12일.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 위치한 스타브카 최고 사령부.

    이곳에서는 현재, 히틀러의 사망과 독일의 강화 제안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인해서 긴급회의를 벌이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소련 최고 지도부 위원들은 모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독일로부터 날아온 외교 서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후···.”

    “···설마 히틀러가 죽어버릴 줄이야.”

    그렇게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가 서신을 마저 읽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스탈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다들 내용을 확인한 것 같군.”

    “···예, 서기장 동지.”

    “좋소, 그럼 동지들의 생각을 한번 들어보고 싶군. 저 독일놈들의 제안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런 스탈린의 물음에, 회의실 안에는 다시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서기장 동지의 의중을 모르는 지금으로서는 독일의 강화 제안에 찬성하기도, 반대하기도 어려웠으니까.

    “어째서 다들 대답이 없소?”

    그런 답답한 침묵 속에서, 분위기를 살피던 주코프는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스탈린 동지, 그럼 제가 먼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얼마든지 편하게 말씀해보시오.”

    “예, 제 생각으로는 독일의 이번 강화 제안은 우리 소련에게도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나쁘지 않다고?”

    스탈린의 날카로운 반응에, 모두가 긴장한 채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서기장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뭐, 좋소. 주코프 동지, 한번 자세히 말해보시오.”

    “···알겠습니다. 현재 아군은 인력과 자원, 연료 등 종합적인 전쟁 수행 능력이 모두 사실상 한계에 다다른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카잔스카야 돌출부에서 독일군을 핀치에 몰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선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만 꼬리를 말고 항복하자는 말이오?”

    “물론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 카잔스카야 돌출부에서 아군이 유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고 때마침 독일 측이 우리에게 먼저 강화를 제안하기도 했으니, 지금 협상을 시작한다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런 주코프의 주장에 스탈린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현재 소련의 사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니, 전쟁을 지속해서 전세를 역전하는 것보단 강화협상에 승부를 거는 것이 훨씬 승산이 높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저 강화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소련이 잃어버린 영토를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손해가 막심했기 때문이었다.

    “뭐, 좋소. 그럼 주코프 동지의 말대로 강화협상에 나선다고 생각해보지. 만약 그렇다면, 카프카스와 우크라이나 흑토지대를 모두 돌려받을 수 있겠소?”

    “그건···.”

    만약 강화 협정을 맺는다면, 지금까지 빼앗긴 영토 중 일부는 돌려받을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독일 놈들이 얼마나 많은 지역을 양보해 줄 것인가?

    ‘일단, 모스크바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레닌그라드부터 스몰렌스크까지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문제는 남쪽인데···.’

    지금 독일군은 보로네슈부터 돈강 방어선, 스탈린그라드, 카프카스까지 모두 손에 넣은 상태.

    그 중, 돈강 방어선에 카잔스카야 돌출부를 만드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래도 카프카스와 우크라이나를 돌려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터였다.

    ‘젠장··· 그럼 우크라이나를 포기하고 카프카스 유전지대만이라도 돌려받아야 하나? 아니, 그것조차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렇게 스탈린이 고민하는 모양새를 보이자, 이번에는 중간에서 눈치를 살피던 외무인민위원장, 몰로토프가 입을 열었다.

    “서기장 동지, 제가 한마디 보태자면 저 또한 지금 강화에 나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몰로토프. 자네는 또 무슨 이유인가?”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강화협상에 나서면 독일과 영미를 모두 압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설명해보게.”

    그런 서기장의 반응에, 몰로토프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현재 영미는 우리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독일과 강화하려는 모양새만 취하더라도 저들은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그건 알겠네만, 그것이 어떻게 독일을 압박하는 수단이 된단 말인가?”

    “간단합니다. 영미가 독일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를 감행하든, 아니면 우리에 대한 지원을 늘리든지 간에 우리가 강화를 포기할만한 이득을 제시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독일은 곤란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군. 우리의 강화 여부를 두고 영미와 독일을 서로 경쟁시킨단 말이군.”

    “하하, 바로 그것입니다.”

    스탈린은 잠시동안 몰로토프의 제안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럼 몰로토프 동지가 나서서 독일놈들과 협상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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