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97화 (97/157)

97화. 카잔스카야 돌출부 (7)

1943년 7월 25일.

동부전선의 카잔스카야 돌출부와 북아프리카의 튀니지 방어선에서 독일군과 소련군, 연합군 간에 연일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을 바로 그 무렵.

다른 한편, 베를린의 총통 관저에서는 앞으로 독일의 정권을 좌지우지하게 될 두 남자가 조용히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국가 수상부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를 한케 관구장님.”

“···흠. 오랜만에 보는구려.”

이곳에서 마주 앉은 이는 바로 임시 총리인 알베르트 슈페어와 니더슐레지엔의 관구장, 카를 한케 SS중장이었다.

“어쨌든··· 관구장님께서 이렇게 저를 다시 찾아오셨다는 것은, 드디어 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신 모양이지요?”

“후··· 그 제안에서 애당초에 우리에게 거부권이란 것이 있기나 했었소이까?”

“하하하, 물론이지요. 누구에게나 선택은 자유니까 말입니다. 다만, 이번의 일은 제 뜻이 아니라 총통 각하의 유지라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여우처럼 능청스러운 슈페어의 대답에, 카를 한케는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당신이 보여준 그 총통 각하의 유서를 도저히 믿지 못하겠소.

그리고, 그깟 유서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내가 지시를 내리기만 하면 우리 슈츠슈타펠은 지금 당장이라도 모두 당신에게 반기를 들어 올릴 것이오.”

그런 카를 한케의 으름장을 들은 슈페어는 그저 싸늘한 냉소만을 지어 보였다.

‘슈츠슈타펠의 반기라···.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마지막으로 몸값을 올리기 위해 발악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것이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한케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이미 승자는 슈페어로 결정된 지 오래였으니까.

슈페어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한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맞습니다. 히믈러와 보어만, 괴벨스까지 모두 죽어버린 지금은 관구장님이 슈츠슈타펠의 수장이나 다름없지요.

저도 물론 한케 관구장님의 입장과 위치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군. 그렇다면···.”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기억해주십시오. 만약 당신들이 반기를 든다면, 저는 총통 각하의 유지를 이어받은 차기 총리로서 당신들을 진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진압이라니···. 이 자식, 설마 진심으로 내전이라도 벌일 생각인가?’

슈페어가 입에 담은 흉흉한 말에, 한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한케의 표정을 읽은 슈페어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역시 관구장님은 이해가 빠르시군요. 사실, 저는 당신의 협조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불필요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당신들과 적당히 타협하려는 것뿐이지요.”

“······.”

그런 슈페어의 엄포에, 한케는 마음속으로 이를 갈았다.

‘제기랄··· 군부의 지지를 얻었다고 멋대로 나대는군···.’

하지만 그럼에도 한케는 슈페어에게 정면으로 맞설 수 없었다.

왜냐하면, 슈페어가 총통의 유언장과 군부의 지지를 통해서 명분과 무력을 모두 손에 넣은 지금, 한케로서는 마땅히 손쓸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가 한번 시도해볼 만한 저항은 슈츠슈타펠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일반 대중에게 호소하는 것 정도인데 괴벨스마저 죽어버린 지금, 그것이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군. 지금은 패배를 인정하고 저놈과 손을 잡는 수밖에.’

그렇게 계산을 마친 한케는 불편한 속내를 감추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만약 우리가 당신을 인정한다면, 전에 했던 제안은 확실히 지켜주시겠소?”

“하하하, 물론입니다! 제가 총리로 임명되는 즉시 관구장님을 친위대 국가지도자 겸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전권을 부여해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슈페어는 그런 달콤한 제안과 함께 손을 내밀었고, 카를 한케는 고민 끝에 결국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후···. 좋소. 한번 잘 해봅시다.”

*****

1943년 7월 25일.

빈니차에 위치한 동부전선 총사령부.

이곳에서 나는 남부집단군 사령관, 발터 모델 상급대장으로부터 상황 보고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 아군의 방어선은 카샤리 외곽 15km 지점까지 밀려난 상태일세. 지금 이대로라면 언제 전선이 돌파당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네.”

“후···. 그런가.”

나는 연일 악화되어 가는 카잔스카야 돌출부의 전황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서부 전선에서 차출된 5개 사단이 차례대로 돈강 방어선으로 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아마 이들이 도착할 때쯤에는 전선이 돌파당한 후일 터였다.

“미안하네. 자네는 나를 믿고 이런 막중한 임무를 맡겨 주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군.”

“아니, 아닐세. 자네의 잘못이 아니니, 그리 자책하지 말게.”

사실 발터 모델은 방어의 사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지금까지 아주 훌륭하게 소련군을 막아주고 있었다.

만약 그의 지휘가 아니었다면, 카잔스카야 돌출부는 진즉에 돌파당해서 큰 피해를 입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모델조차도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건 스탈린그라드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내 판단이 틀린 탓이겠지.’

그렇기에 나는 그를 탓하는 대신, 지금까지 애써 미루어왔던 결단을 내렸다.

“모델. 만약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소련군이 방어선을 돌파해버리면, 그때는 스탈린그라드에 있는 6군을 퇴각시켜서 돈강 방어선을 막도록 하게.”

“이보게, 지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이제까지 우리가 그토록 많은 피해를 감수하면서 싸워왔던 것은 모두 스탈린그라드를 지키기 위함이었지 않나!”

“그렇지.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 판단이 틀렸던 것 같군. 더 이상 피해가 커지기 전에 고집을 굽혀야겠지.”

“···파울루스.”

내 목소리를 들은 모델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스탈린그라드는 자네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네. 어떻게든 돈강 방어선만큼은 지켜주시게.”

“후···. 알겠네. 미안하네.”

그렇게 모델과의 전화를 끝마친 뒤, 나는 잠시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젠장···.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번 작전을 감행했는데 이 꼴이라니, 한심하군.’

그렇다면 이제부터 동부전선의 양상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이제 카잔스카야 돌출부가 돌파당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으니, 6군을 차출해서 이곳을 막으면 결국 스탈린그라드가 소련군의 손에 떨어지리라.

그럼 그다음에는 볼가강의 수운과 철로가 다시 열려서 인도양을 통한 랜드리스가 재개되겠지.

그렇게 되면, 소련군의 전쟁 수행 능력을 고갈시켜서 가까운 시일 내에 강화협정을 맺도록 만든다는 내 전략도 완전히 물거품이 될 터였다.

‘···아니,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그렇게 체념하며 지도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곧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 카잔스카야 돌출부의 소련군은 아군 전선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상황.

그 말인즉슨, 오히려 아군이 이들을 역포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스탈린그라드를 통해서 랜드리스가 재개된다고 해도 이 루트로 충분한 자원을 수급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럼 만약에··· 저놈들이 자원을 보급받기 전에 6군과 증원군을 투입해서 카잔스카야 돌출부의 소련군을 섬멸할 수 있다면?

‘현재 돌출부에 투입되어있는 소련군 병력은 최소 50만 이상이다. 만약 이 병력을 모두 섬멸해버리면, 소련 놈들도 피해를 감당하기 어려울 터.’

사실 지금 소련군에게 부족한 것은 단지 석유자원뿐만이 아니었다.

모스크바 전투부터 스탈린그라드 전투, 천왕성 작전, 그리고 2차 레닌그라드 공방전까지 무수히 많은 패배를 겪은 소련군은 원래의 역사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번에 카잔스카야 돌출부에서 50만을 섬멸당하면 더 이상은 지금과 같은 압도적인 물량을 운용하기 어려우리라.

‘그래, 가능하다. 만약 이번에 스탈린그라드를 빼앗기더라도 충분히 소련을 쓰러트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마음을 비우고 차분하게 남부집단군의 보고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도 카잔스카야 돌출부가 돌파당했다는 보고는 올라오지 않았다.

*****

한편, 그 무렵 카잔스카야 돌출부의 카샤리 방면.

이곳에서는 독일군과 소련군 간에 기묘한 대치가 일어나고 있었다.

“···뭐지? 저 녀석들, 도대체 왜 저기서 멈춰버린 거지?”

왜냐하면, 이제껏 JS-2 중전차와 SU-152 중구축전차를 앞세워서 무자비하게 진격하던 소련군이 전선 돌파를 코앞에 두고 갑자기 공세를 멈춰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모델은 일단 신중하게 대처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아마도 진격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보급이 따라오지 못해서 일시적으로 탄약이나 연료가 부족한 것이겠지. 늦어도 며칠 내에 다시 공세가 재개될 테니, 그 전까지 방어 태세를 철저히 갖추도록 하게.”

“예!”

그러나 그로부터 약 일주일이 지났을 때까지도 카샤리 방면의 소련군은 공세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동안 전선 돌파의 주역이었던 JS-2와 SU-152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받은 모델과 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아무래도 소련놈들의 연료가 드디어 바닥난 모양이군.”

“하하하, 설마 이렇게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멈출 줄이야!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어쨌든, 그럼 스탈린그라드의 6군을 빼낼 필요는 없겠군.”

모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놈들이 더 이상 전차 부대를 운용하지 못한다면 현재 전선을 사수하는 것쯤은 지금의 병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터.

하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방심하지는 말게.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해 항로를 통해 계속해서 연료가 보급되고 있을 테니. 시간이 지나면 놈들은 분명 다시 공세에 나설걸세.”

“그렇다면 결국 아군의 증원이 먼저 도착하느냐, 아니면 놈들의 공세가 먼저 재개되느냐의 싸움이로군.”

“그래. 증원군은 우리가 최대한 빨리 보내줄 테니, 자네는 현재 상황만 유지해주시게.”

“하하, 그건 걱정 말게나.”

그렇게 카잔스카야 돌출부에서 양측이 모두 고착상태에 빠진 채 끝없는 국지전과 지루한 대치만을 이어나가고 있을 무렵.

어느 날 아침, 독일의 모든 일간지에는 이런 상황을 뒤집을만한 충격적인 기사가 일제히 1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 기사의 제목은 바로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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