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96화 (96/157)

96화. 카잔스카야 돌출부 (6)

“예, 혹시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에서 부대를 좀 차출할 수는 없겠습니까?”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에서?”

코네프 상장의 갑작스러운 증원 요청에, 주코프는 미간을 찌푸렸다.

“코네프 동지. 지금 동지가 지휘하고 있는 병력의 수만 해도 거의 50만이 넘을 텐데, 그래도 전력이 부족하단 말이오?”

“···정말 송구합니다만, 독일놈들의 저항이 예상보다 격렬한 탓에 조금 애를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강력한 공세를 감행한다면 전선을 돌파할 수 있을 겁니다!”

“흠···.”

그 말에 주코프는 작전지도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현재, 남서 전선군이 진격하고 있는 카샤리 방면에는 독일군이 3개 사단을 새롭게 투입한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잔스카야 돌출부는 점점 더 남쪽으로 팽창하고 있었다.

‘그래. 비록 저놈들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세주도권은 아직 아군이 쥐고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도 독일놈들은 별다른 대책을 내지 못하고 있지.’

그 말인즉슨, 현재 독일군도 전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의미일 터.

그렇다면 새롭게 투입된 저 3개 사단도 사방에서 예비 전력을 긁어모아서 급하게 만들어낸 것이리라.

‘확실히··· 코네프 동지의 말대로 한번 더 강하게 밀어붙이면 전선을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럼에도 주코프는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에게는 이미 맡겨진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네프 동지. 확실히 동지의 주장대로일지도 모르겠소.”

“그, 그렇다면···.”

“하지만 동지에게도 일전에 말했다시피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은 6군이 물러난 후에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해야 하오.

그런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에서 병력을 차출해버리면, 남서 전선군이 전선 돌파에 성공하더라도 주객이 전도되는 꼴 아니겠소?”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독일 6군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면 무주공산인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약간의 병력 차출은 괜찮을 것이다··· 이 말이오?”

“예, 그렇습니다.”

그 말에 주코프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독일 6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깨끗이 물러난다면, 빈 도시를 점령하는 것은 약간의 보병 부대만으로도 충분하리라.

하지만 만약 저들이 몇 개 사단을 시가지에 남겨서 계속 저항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스탈린그라드를 탈환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전력이 소모될 터였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를 완전히 점령하기 전에 남서 전선군이 격퇴당해서 양쪽이 각개 격파당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에서 병력을 차출해 코네프에게 보내줄 것인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병력을 얼마나 차출해야 할 것인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주코프가 입을 열었다.

“···코네프 상장. 만약 증원을 보내준다면 확실하게 전선을 돌파해낼 자신이 있소?”

“물론입니다, 동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럼 동지가 생각하기에, 증원은 얼마나 필요하겠소?”

주코프의 물음에, 코네프는 만면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는 일렀다.

왜냐하면, 그의 대답 여하에 따라서 주코프의 마음이 변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병력을 얼마나 요청해야 할까.’

현재 남서 전선군의 진격을 방해하는 최대난관은 사실 독일군 중전차 부대였다.

그렇다면 역시, 중전차를 효과적으로 격파할 수 있는 부대를 요청하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코네프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혹시, 중(重) 구축전차 부대를 증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구축전차 부대 말이요?”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독일군의 기갑부대가 거슬려서 말입니다.”

‘구축전차라···.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에 구축전차 부대가 있었던가?’

코네프의 뜻밖의 대답에, 주코프는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를 다시 펼쳐 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에 배치된 구축전차는 SU-85부터 SU-100, SU-152까지 총합 100여 대 정도.

이들을 전부 차출해 버리면 한동안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의 기갑전력에 공백이 생길 테지만, 어차피 저쪽에서는 계속 대치 상태만 이어질 뿐이니 별 문제 없으리라.

게다가, 차후에 스탈린그라드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더라도 구축전차는 별 쓸모가 없을 테니 보내버려도 상관없겠지.

“그럼 구축전차 100여 대를 차출해서 제14 자주포 여단으로 재편 후, 남서 전선군에 배속시키도록 하지. 이 정도면 충분하겠소?”

“예! 감사합니다.”

“좋소. 그럼 승전보를 기다리겠소.”

그리고 그로부터 열흘 뒤, 1943년 7월 20일.

제14 자주포 여단 소속의 구축전차 100여 대가 카잔스카야에서 돈강을 건넜다.

훗날 소련군 병사들로부터 즈베라보이(야수 사냥꾼)라 불리는 중 구축전차, SU-152가 전선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

“전차 전진! 알렉세이, 앞에 있는 중전차 놈들 뒤로 따라붙어라!”

“알겠습니다, 전차장 동지!”

쿠르르릉!!

메딘스키 중사가 지시를 내리자, 전투실 안에는 시끄러운 엔진음이 가득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이 타고 있는 312호 SU-152가 꾸물거리며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젠장, 느리군.”

“어차피 JS-2 놈들의 뒷꽁무니만 따라다녀야 하니 이 정도 속도가 딱 좋지 않습니까?”

“하하, 동무는 참으로 긍정적이군.”

메딘스키 중사는 알렉세이 상병의 말을 웃어넘기며, 페리스코프 너머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현재 그들의 부대가 향하고 있는 곳은 벌써 몇 주째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카잔스카야 돌출부의 밀레로보-카샤리 방면.

그렇기에 전선이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풍경은 점점 더 살풍경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불에 타서 새까맣게 그을린 밑동만 남은 나무들, 온통 파헤쳐진 채 회색의 재만 남은 구덩이, 그리고 끊어진 철조망과 파편들, 시체까지.

그 모습만 보더라도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정말 끔찍하군요.”

“쫄지 마라. 적어도 이 무식하게 튼튼한 놈은 격파당할 일 없을 테니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렇게 한참 동안 천천히 나아가던 312호 SU-152는 갑자기 멈춰섰다.

“알렉세이, 무슨 일이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앞 차량이 멈춰 서길래 일단 멈췄습니다!”

“···그래?”

그 모습에 의아하게 생각한 메딘스키가 해치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자, 앞서가던 JS-2의 후미에 타고 있던 정치장교 하나가 포탑 위에 올라가 큰소리로 외쳤다.

“전원 하차!! 돌격 앞으로!!”

“우라아아!!”

“어머니 러시아를 위하여!!”

주위에 있는 수십 대의 전차에서 한꺼번에 병사들이 뛰어내려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독일군의 기관총 진지들이 불을 뿜었다.

그 모습을 본 메딘스키 중사는 그제서야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미 전투는 시작되었다는 것을.

“어이, 자주포! 뭐 하고 있나! 빨리 지원 사격 시작해!”

“예, 알겠습니다!”

자신을 향한 정치장교의 호통에, 메딘스키는 재빨리 전투실 안으로 내려가서 지시를 내렸다.

“고폭탄 장전! 첫 번째 목표물은··· 전방의 판터 전차다!”

“예! 고폭탄 장전!”

메딘스키의 지시에, 두 명의 장전수가 낑낑거리며 43.5kg짜리 OF-540 고폭파편탄을 꺼내 들고 장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좁아터진 전투실과 무거운 포탄의 무게, 그리고 장약까지 따로 장전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장전이 완료되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쾅! 콰광!

그리고 그 사이에, 다른 JS-2 중전차들이 122mm 포탄을 뿜어대며 독일군 진지를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젠장··· 장전수, 뭐 하고 있나! 서둘러라!”

“예, 예! 고폭탄 1발, 장전 완료했습니다!”

“···후, 좋아. 수고했다.”

그렇게 고폭탄 한 발을 장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40초 남짓.

메딘스키 중사는 그 느려터진 장전 속도에 한숨을 내쉬며 조준기를 들여다보았다.

조준기 너머에는 포탄이 장전되는 동안 진즉에 조준을 끝마쳐놓은 목표물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한 메딘스키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152mm ML-20 야포의 발사 레버를 잡아 당겼다.

“발사!”

투콰앙!!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주포에서 묵직한 152mm 포탄이 날아오른다.

그렇게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높은 곳에 도착한 43.5kg짜리 포탄은 이내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낙하하던 고폭파편탄은 어느 판터의 넓찍한 정면 경사 장갑 위에서 짧았던 비행을 끝마쳤다.

쿠콰앙!!

“···명중입니다, 동지.”

“그래, 나도 봤네.”

저 높이 솟아오른 흙 기둥과 주변 일대를 가득 울리는 충격파, 그리고 자욱하게 깔리는 먼지구름까지.

그 엄청난 후폭풍에, 312호 SU-152의 전차병들은 재장전하는 것도 잊고 한참 동안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격파··· 인가?”

그리고 잠시 뒤, 흙먼지가 내려앉은 후에 그 자리에 서 있던 판터는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모습이 변해 있었다.

고폭탄에 직격으로 맞은 정면 장갑은 움푹 파인 채로 용접자리가 뜯어져 나가 있었고, 궤도와 서스펜션은 박살나서 차체가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차체 내부도 폭발의 충격으로 온통 진탕이 된 상태였다.

“겨, 격파입니다, 동지! 고폭탄으로 전차를, 그것도 판터를 잡았습니다!”

“하하··· 하하하! 설마 고폭탄 한 발로 판터를 격파할 줄이야···.”

그렇게 잠시 동안 눈앞의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메딘스키 중사는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좋아! 차탄을 장전해라! 저 빌어먹을 나치 놈들에게 152mm의 맛을 보여주는 거다!”

“예!”

그렇게 그날 하루 동안 메딘스키 중사의 SU-152는 티거와 판터, 그리고 엘레판트 중구축전차까지 무려 다섯 대의 야수들을 사냥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1943년 7월 25일.

“발사!”

투콰앙!!

“격파입니다, 전차장 동지!”

“저 4호 전차가 마지막 하나였나?”

“예, 그렇습니다.”

“좋아! 계속 전진하도록! 오늘 저녁은 카샤리에서 먹는다!”

“예!!”

계속해서 독일군 전선을 남쪽으로 밀고 진격해 내려가던 메딘스키의 제14 자주포 여단은 어느새 카샤리에서 불과 1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까지 도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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