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93화 (93/157)
  • 93화. 카잔스카야 돌출부 (3)

    1943년 6월 26일.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 위치한 스타브카 최고 사령부.

    이곳에서 주코프 대장은 갑작스레 걸려온 코네프의 전화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네의 말은 지금 당장 전선 돌파에 나서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총사령관 대리 동지.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아군의 승산은 점점 더 떨어질 것입니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군. 현재 카잔스카야 전선의 상황은 아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텐데 어째서 우리가 서둘러야 한단 말인가?”

    “그건··· 독일군 기갑부대 때문입니다.”

    주코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T-34/85와 JS-2를 개발해 배치한 지금의 소련군 전차부대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독일군에게 밀리지 않을 터.

    그런데 도대체 왜 독일군 기갑부대가 문제가 된단 말인가?

    그러나 이어지는 코네프의 대답에 주코프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독일군 기갑부대가 지속적으로 카잔스카야 돌출부를 공격하며 아군 기갑부대에 교전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아군의 연료 소모가 저희의 예상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습니다.”

    ‘제기랄···. 이제 겨우 독일군 중전차를 맞상대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연료가 발목을 잡는군.’

    현재 소련군은 석유 공급의 전량을 비축분과 북해 랜드리스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비축된 석유는 이번 카프카스 공세에 전부 투입해버렸고, 북해 랜드리스는 공급량이 너무 적어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그렇기에, 이번 공세를 통해서 전세를 크게 뒤집지 못한다면 소련에게 미래는 없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코네프의 주장은 옳다. 분명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아군의 공세 능력은 점점 감소할 뿐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문제는, 지금 당장 공세에 나선다고 해도 전세를 크게 뒤집을 만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코네프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남서 전선군이 가진 연료로는 넉넉잡아도 2주 정도밖에 기동 작전을 펼칠 수 없는 상황.

    그런데 고작 2주간의 진격만으로 도대체 어떻게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단 말인가?

    “코네프 상장. 자네의 주장은 참으로 옳네만, 그래서 전선을 돌파한 다음에는 어떻게 할 셈인가.”

    “하하, 동지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힘들게 전선을 돌파해봤자 그 이상 전과를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네. 로스토프까지 진격하기에는 거리가 멀고, 독일군을 섬멸하기에는 힘이 부족할 텐데. 뭔가 대안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주코프의 물음에, 코네프는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독일군의 후방으로 깊숙이 침투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적군의 후방으로?”

    “예, 그렇습니다. 한 번의 공세로 유의미한 전과를 올리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배후에 위치한 사령부와 보급기지를 공격해서 적의 지휘 체계를 마비시키는 겁니다.”

    배후를 쳐서 지휘 체계를 마비시킨다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코프는 코네프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코네프는 1941년에 독일군이 아군의 후방으로 침투해서 우리의 지휘 체계를 와해시켰던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저놈들에게 그 전술을 써먹어 보자는 것이었다.

    ‘호오, 코네프 동지도 나름대로 머리를 썼군. 역시 그 정도 수준의 전략적 안목은 있다는 건가.’

    하지만 주코프는 코네프의 작전에 내심 감탄하면서도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

    “제법 흥미로운 제안이네만, 아마 그 작전은 성공하기 어려울 걸세.”

    “···어째서입니까?”

    “자네의 작전에는 세 가지의 문제가 있네. 우선 첫 번째는 적의 사령부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고, 둘째는 만약 작전이 성공하더라도 저 독일놈들이 그리 간단히 와해될 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걸세.”

    사실, 1941년에 소련군의 지휘 체계가 완전히 마비되었던 것은 독일군이 잘했던 것보다도 소련군이 무능했던 탓이 더 컸다.

    그러나 그에 반해 지금의 독일군은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정예병들인 데다가, 적의 사령부 위치조차도 알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는, 그렇게 적진 깊숙이 진격했다간 자네 병사들이 먼저 독일놈들에게 포위당할 거라는 걸세.”

    “······.”

    계속해서 이어지는 주코프의 반박에 코네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젠장··· 역포위라. 내 생각이 너무 짧았군.’

    확실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독일군 전선 안으로 파고들었던 모든 공세는 결국 역포위당해서 섬멸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그렇게 코네프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때, 그의 작전을 철저하게 논파한 주코프는 웃으면서 의외의 말을 꺼냈다.

    “하지만, 독일군의 후방으로 침투한다는 자네의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네.”

    “···그렇습니까?”

    “그래. 결국, 군사 작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목표로 삼느냐가 아니겠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코프의 아리송한 말에 코네프는 그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주코프는 딱 한 마디로 답했다.

    “양동 작전일세.”

    그러나 그럼에도 코네프는 여전히 주코프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양동 작전이라.

    그 말인즉슨, 남서 전선군의 돌파를 주공이 아닌 유인책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일 터.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유인한단 말인가?

    그렇게 주코프의 의중을 생각하며 고민하던 코네프는, 작전 지도위에 펼쳐진 전선의 모양을 보고서 그제야 깨달았다.

    “설마··· 스탈린그라드에 배치된 6군을 유인하려는 것입니까?”

    “하하, 역시 동지는 눈치가 참 빠르군. 바로 그거일세.”

    사실 주코프의 의도는 간단한 것이었다.

    ‘만약에 남서 전선군이 전선을 돌파해서 독일군의 배후를 위협한다면 놈들은 이것을 막을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현재 독일군에게는 가용할만한 예비대가 없다.

    그렇다면··· 스탈린그라드를 포기하더라도 6군을 빼내서 투입할 수밖에 없겠지.’

    그럼 그때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은 스탈린그라드에 무혈입성하고, 남서 전선군은 다시 퇴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스탈린그라드를 다시 손에 넣으면 인도양 랜드리스 루트를 부활시키고, 볼가강의 수운을 통해서 물자와 연료를 대량으로 보급할 수 있게 된다.

    즉, 전쟁 지속능력이 이미 한계까지 도달한 소련이 다시 한번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주코프의 작전을 들은 코네프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동지께서는 눈앞의 이득이 아닌 미래의 승리를 보시는군요.”

    “하지만 이 작전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하네.”

    “그게 무엇입니까?”

    “그건 바로, 자네의 남서 전선군이 6군을 유인하는 데 성공하고, 그 다음에 무사히 빠져나오기까지 해야 한다는 거지.”

    “···제 어깨가 무겁군요.”

    “코네프 동지, 할 수 있겠나?”

    소련의 운명이 걸린 단 한 번의 기회.

    이것을 성공시킬 수 있겠느냐는 주코프의 물음에, 코네프는 결의에 가득 찬 목소리로 답했다.

    “물론입니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

    1943년 7월 1일.

    한여름의 무더위가 시작되는 바로 그 무렵.

    171번 판터 전차장, 프란츠는 뜨겁게 달궈진 포탑 위에 서서 쌍안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대장님, 혹시 뭔가 보이십니까?”

    “아니, 요즘은 이반놈들 전차가 정말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군.”

    “하하, 저 멍청한 놈들도 몇 번이고 당하다 보니 결국 깨달은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를 쫓아오면 큰 코 다친다는 것 말입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발츠의 너스레에, 포탑 위에서 땀을 흘리던 프란츠는 이내 색적을 포기하고 전차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후··· 그래도 아직은 전차 안에 들어오면 시원하군.”

    “전차 안은 그늘이니, 원래 시원한 것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발츠, 너는 여름을 겪어본 적이 없었지. 7월 중순만 되도 이 빌어먹을 쇳덩어리가 뜨겁게 달아올라서 여기는 사우나가 된다고.”

    “···그렇습니까?”

    “그래,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전투가 시작되면 안에서 며칠 동안 갇혀있는 일도 허다하다고.”

    프란츠의 생생한 경험담에, 아직 러시아의 여름을 겪어보지 못한 전차병들의 표정이 어둡게 물들어갔다.

    “그럼··· 식사나 화장실은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전부 다 안에서 처리해야지.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들 마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그렇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얘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차내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로트 알파. 로트 1, 응답하라.”

    갑작스러운 본대의 무전에, 프란츠는 헤드폰을 쓰고 직접 응답했다.

    “여기는 로트 1. 무슨 일인가?”

    “인근 부대의 정찰 보고에 따르면, 현재 자네들이 있는 방향으로 소련군 기갑부대가 기동하고 있다는군. 확인 후 보고하도록.”

    “로트 1, 수신 완료.”

    본대와의 무전이 끝난 뒤, 프란츠는 무전기의 설정을 소대로 맞추고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는 로트 1. 다들 들었지? 오랜만에 오는 손님이다. 확실하게 준비하도록.”

    “로트 2에서 로트 1에게.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지금처럼 은폐한 상태로 기다릴 텐가?”

    172번 판터 전차장의 물음에, 프란츠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현재 그의 소대는 모두 차량을 풀과 잎사귀로 정성스럽게 은폐해둔 상태.

    그러니 지금 이대로 놈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습격하는 것도 괜찮으리라.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고려한 끝에, 프란츠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아니, 이반 놈들이 어디로 지나갈지 모르니 우리가 먼저 나서서 놈들을 찾는다. 각 차량, 기동 준비하도록.”

    “수신 확인!”

    무전기 너머로 울려 퍼지는 힘찬 대답과 함께, 우거진 수풀 속에서 판터 전차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막스, 우리도 가자. 전차 전진!”

    “예! 전차 전진!”

    프란츠는 해치 밖으로 상체를 내민 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평원을 바라보았다.

    과연 소련놈들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꾀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살피고 있을 때, 헤드셋에서 4호 차의 무전이 울려 퍼졌다.

    “여기는 로트 4! 이반 놈들을 확인했다! 3시 방향, 거리 2000 이상!”

    “막스, 정지!”

    “예!”

    왠지 모르게 다급한 목소리에, 프란츠는 전차를 멈추고 쌍안경으로 4호 차량의 3시 방향을 바라보았다.

    “···젠장.”

    “빌어먹을, 저게 도대체 몇 대야?”

    다른 전차장들도 같은 광경을 보고 있는지 헤드셋 너머에서는 연신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프란츠는 쌍안경에 눈이 박힌 채 도무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그곳에는 최소 30여 대가 넘는 JS-2와 T-34/85가 이쪽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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