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92화 (92/157)
  • 92화. 카잔스카야 돌출부 (2)

    1943년 6월 18일.

    소련군의 돈강 교두보 서쪽에 위치한 소도시, 노바야.

    이곳에서 171번 판터 전차장, 카를 프란츠 소위는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기랄··· 설마 이 지긋지긋한 스텝 평야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북부집단군 소속으로 레닌그라드 포위망을 뚫고 있던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왜냐하면, 소련군이 카프카스 공세를 시작함과 동시에 독일군과 소련군, 양측 모두 레닌그라드 일대에서 병력을 철수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프란츠가 소속된 판터 중대도 이곳까지 끌려와 남부집단군의 11군 소속으로 배속되어 버렸다.

    “하하, 그러고 보니 소대장님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지 말입니다?”

    “그래, 저 빌어먹을 이반 놈들이랑 4호 전차가 폐차될 때까지 싸워서 겨우 받았지.”

    프란츠는 전차병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쌍안경으로 적진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잠시 뒤, 무언가를 발견한 그는 재빨리 전차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자, 다들 잡담은 그만하지. 노먼, 소대에 전파해라. 11시 방향에 목표물 발견, 중전차 세 마리다. 각 차량은 천천히 따라오도록.”

    “예! 겔베 1으로부터 각 차량에게···.”

    “막스, 우리가 먼저 접근한다. 거리 1500미터에서 멈춰라.”

    “알겠습니다! 전차 전진!”

    171번 판터 전차가 천천히 평원을 나아가는 동안, 프란츠는 저 멀리 마치 점처럼 보이는 소련군 전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프란츠네 소대가 접근하기 시작하자, 저 녀석들도 이쪽을 확인했는지 전차를 돌리기 시작했다.

    ‘젠장, 벌써 눈치챈 건가. 현재 거리는··· 약 2000. 이 정도 거리라면 아직 괜찮겠지.’

    역시 저놈들도 122mm 주포로 이 정도 거리에서 맞출 자신은 없었던 모양인지, 응사하는 대신 이쪽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대원들도 그 모습을 확인한 모양인지, 곧바로 무전이 흘러나왔다.

    “겔베 3로부터 겔베 1에게. 저놈들이 우리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인다. 이제 슬슬 물러나도 되지 않나?”

    여기서 물러나자는 겔베 3의 말에 프란츠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확실히 그들이 받은 명령은 적을 격파하는 것이 아닌 유인하는 것뿐이었으니, 이 정도에서 물러나도 상관은 없으리라.

    하지만 프란츠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니, 여기서 물러나면 저놈들은 곧바로 추격을 포기할 거다. 그러니 1500미터까지 접근해서 교전하는 척하다가 물러나도록.”

    “겔베 1, 이 이상 접근하면 피격당할지도 모른다. 정말 접근할 생각인가?”

    “그래, 우리가 앞장설 테니 따라오도록.”

    “···알겠다.”

    무전을 끊은 뒤, 프란츠는 스코프 너머로 JS-2를 바라보며 신중하게 지형과 거리를 계산했다.

    ‘분명 위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판터라면 이 정도 거리는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저 멀리서 선두에 선 JS-2가 포화를 내뿜었지만, 역시나 122mm 포탄은 애꿎은 땅바닥만 파헤칠 뿐이었다.

    그래,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저놈들이 우리를 맞추려면 못해도 1000m 이내까지는 접근해야 할 터.

    하지만 현재 거리는 1500.

    판터에게 있어서 최고의 상황이었다.

    “전차 정지! 발츠, 선두에 선 놈부터 노려라. 각 차량, 사격 개시!”

    “발사!”

    콰광! 쾅!

    연이은 폭음과 함께 판터 소대가 일제히 포탄을 쏘아 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소련군 중전차들이 폭연에 휩싸였다.

    “명중···인가?”

    “예, 하지만 튕겨나간 것 같습니다.”

    5발 중 3발 명중.

    그러나 유효타는 없었다.

    “역시 이 거리에서 전면 장갑을 관통하는 건 어렵군. 겔베 1에서 각 차량에게. 한 발씩만 더 사격하고 이탈하도록!”

    “예!”

    “발츠! 이번에는 고폭탄이다. 화끈하게 한 방 먹여줘라!”

    쾅! 콰광!

    다시 한번 판터들이 차례대로 불을 뿜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련군 중전차들도 아군을 향해 응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소대장님, 좌측의 JS-2가 기동을 정지했습니다! 아무래도 놈의 궤도가 끊어진 것 같습니다!”

    “하하하! 고폭탄을 날려준 보람이 있군. 좋아! 겔베 1에서 각 차량에게. 즉시 전속력으로 현 위치를 이탈하도록!”

    “확인!”

    프란츠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5대의 판터는 일사불란하게 차체를 180도 선회해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면서도 소련군 중전차들은 신경질적으로 기관총을 발사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전차장님, 아군이 후미를 보였는데도 저놈들은 왜 쏘지 않는 겁니까?”

    “왜긴 왜겠냐. 주포의 구경이 무려 122mm나 되니까, 그만큼 장전도 느린 거지.”

    “아, 그렇군요.”

    몇 번이나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데다가 결국 한 대가 낙오되기까지 하자, JS-2는 프란츠의 소대를 추격하며 연신 응사했다.

    그러나 중장갑을 두른 JS-2로는 도저히 판터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한참을 따라오던 이들은 결국 추격을 포기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소대장님, 놈들이 퇴각합니다.”

    “쯧, 아깝군. 조금만 더 끌어들였으면 대전차 포의 화망에 걸려들었을 텐데.”

    “하지만 뭐, 여기까지 유인한 것만 해도 충분히 성공이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지.”

    프란츠는 해치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천천히 물러가는 소련군 중전차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1943년 6월 25일.

    랴보브스키에 위치한 남서 전선군 사령부.

    “사령관 동지, 1근위군과 21군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카잔스카야 돌출부에서는 1근위군이 계속해서 남쪽으로 진격하고 있으며, 금일 293사단, 333사단, 4기갑여단이 추가로 돈강을 도하 했습니다.”

    “하하하, 좋군. 아주 좋아.”

    부관으로부터 보고를 들은 남서 전선군 사령관, 이반 코네프 상장은 흐뭇하게 웃으며 작전 지도를 바라보았다.

    현재 3차 공세의 대성공으로 카잔스카야 방면에 거대한 돌출부를 만드는 데 성공한 남서 전선군은 그 기세 그대로 계속해서 유리하게 전황을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독일놈들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인해서 진격이 느려졌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병력을 밀어 넣으면 언젠가는 결국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되기만 하면··· 나는 카프카스를 해방시키고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 되겠지.’

    그럼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도, 더 나아가서 원수 계급장까지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잠시 달콤한 꿈을 꾸던 코네프는 이내 상념에서 깨어나 다시 눈앞에 놓인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러려면 일단은 이번 전투를 제대로 마무리 하는 게 우선이지.’

    아무리 아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고는 해도, 보고는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코네프는 빙그레 웃으며 전과 보고서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보고서를 읽어나가던 중, 코네프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일선 부대에서 올라오는 보급 요청이 그의 계산과는 많이 틀렸던 것이다.

    “···이보게, 참모장.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일선 부대에서 추가적인 공세 작전을 실행했었나?”

    “아닙니다, 동지. 현재 카잔스카야 돌출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작전은 전부 서면으로 보고되었습니다.”

    “그럼 이건 도대체 무엇인가? 돌파 작전이 없었다면 아군 전차가 기동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을 텐데, 왜 이렇게 연료 소모량이 늘었느냔 말일세.”

    그런 코네프의 물음에, 보고서를 들여다보던 참모장도 이상하다는 듯이 답했다.

    “죄송합니다, 동지. 제가 한번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참모장이 확실하게 조사해서 보고하게. 지금 상황에서 연료를 멋대로 낭비하면 곤란하단 말일세.”

    “물론입니다. 제가 예하 부대에 다시 한번 공문을 작성해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참모장이 물러난 뒤, 코네프는 다시 한번 보고서를 읽어보았다.

    “젠장··· 이럴 리가 없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그래, 분명 어딘가에서 실수가 있었거나 보고가 잘못된 것이리라.

    대규모 기동작전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양의 연료가 소모되었을 리 없다.

    코네프는 그렇게 생각하며, 불안함을 떨쳐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참모장이 가져온 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사령관 동지, 보고입니다. 어젯밤에 저희 참모부에서 그동안의 보고서를 모두 취합해봤습니다만, 최근 일주일동안 아군 전차부대의 교전 횟수가 이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두 배라고?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된단 말인가?”

    “그게··· 아무래도 독일군의 반격 횟수가 그만큼 늘어난 모양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참모장의 보고에, 코네프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독일군의 반격이 늘어났다니···. 설마, 내가 예상한 것보다 아직 저놈들한테 여력이 남아있는 건가?’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정말로 독일놈들에게 아직 병력이 남아있었더라면 지금처럼 밀리지도 않았을 터.

    그렇다면 지금 놈들이 감행하고 있는 저 반격은 아군의 공세를 늦추기 위한 지연 작전이라고 봐야겠지.

    ‘빌어먹을··· 역시 쉽게 당해주지는 않겠다 이건가.’

    하지만 문제는, 독일군의 저 지연전술이 지금의 소련군에게는 굉장히 치명적이라는 것이었다.

    “···참모장. 현재 아군이 보유한 기갑전력을 모두 동원한다고 가정했을 때, 최대 며칠까지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일단 지금 당장 저희 남서 전선군이 보유한 연료와 전차들로 계산해서 말씀드리자면, 대략 2주 정도는 전투를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주라···.”

    비록 어림짐작으로 계산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2주는 돈강 방어선을 돌파하고 남부집단군에게 충분한 타격을 입히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젠장··· 그래도 해볼 수밖에 없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네프는 이번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소련군의 승산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번 카프카스 공세는 소련의 운명을 건 단판 승부였지 않나. 결국 이번 기회에 돈강 방어선을 돌파하고 카프카스를 되찾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그렇기에 코네프는 조금 이르지만 결단을 내렸다.

    “참모장, 지금 당장 카잔스카야 돌출부에 있는 1근위군과 21군에게 연락하게. 예정되어 있던 방어선 돌파 작전을 조금 앞당기겠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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