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91화 (91/157)
  • 91화. 카잔스카야 돌출부 (1)

    대령이 내민 전보를 보는 순간,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1943년 6월 15일 오전 5시 30분.

    카잔스카야 방면에서 적군의 공세가 시작되었음. 확인 즉시 조속히 답신 바람.

    - 동부전선 총사령부

    ‘제기랄··· 소련군의 3차 공세가 벌써 시작되었다고?’

    나는 전보 쪽지를 구겨서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옆에 서 있던 참모장교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사령부로 연락해야겠네. 통신실까지 좀 안내해주게나.”

    “물론입니다, 각하.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렇게 대령의 안내를 따라서 통신실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어디로 연결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동부전선 총사령부로 연결해주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보안 절차와 연결과정을 거친 뒤에, 전화기 너머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부전선 총사령관, 에리히 폰 만슈타인일세. 무슨 일인가?”

    “육군 참모총장 파울루스입니다. 방금 전에 전보를 확인하고 연락 드렸습니다.”

    “후··· 자네인가. 그래도 빨리 받았나 보군.”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숨 섞인 만슈타인의 목소리와 함께 다급하게 움직이는 사령부의 여러 잡음들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상황이 좀 복잡하네. 전화로 논의하기는 힘드니, 지금 바로 사령부로 복귀해주게.”

    “···예, 알겠습니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밤새 수송기를 타고 날아가 빈니차의 동부전선 총사령부에 도착했다.

    그렇게 내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무실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만슈타인과 발터 모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 왔나?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

    “모델? 자네가 왜 여기에 있나. 자네는 전선을 지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하하. 그 말이 맞네만,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말일세.”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모델의 불길한 말에 내가 당혹스러워하며 되묻자,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만슈타인이 상황을 정리하며 말했다.

    “파울루스 원수도 도착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지. 모델 장군,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상황을 설명해주겠나?”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모델은 작전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제 오전 5시 30분, 카잔스카야 방면을 돌파한 소련군 부대는 파블롭스크 방면의 병력과 합류해서 루마니아 3군을 궤멸시켰네.”

    “···궤멸시켰다고?”

    “그래. 소련군의 주요 공세 지점을 방위하던 루마니아 1군단과 2군단은 사실상 전멸해버렸고, 현재는 패퇴한 4군단과 5군단이 전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네.”

    현재 작전 지도 위에 펼쳐진 남부집단군의 전황은 그야말로 풍전등화나 다름없었다.

    기습적인 3차 공세로 루마니아 3군을 박살낸 남서 전선군은 돈강 방어선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 버렸고, 이렇게 확보된 교두보로 계속해서 병력을 밀어 넣고 있는 상황.

    그에 반해 이 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아군 부대는 긴 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1기갑군과 11군, 그리고 약해빠진 루마니아군 5개 사단뿐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닐세. 더 큰 문제는··· 이 근방에는 저들을 막아 세울만한 어떠한 장애물도 없다는 거지.”

    “···그렇군요. 저곳이 뚫리면 로스토프까지 전부 뻥 뚫린 평야 지대뿐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말이네만. 어제 8개 사단이 증원될 거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병력은 언제쯤 도착하는가?”

    나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아마 신설된 3개 사단은 금방 올 겁니다. 하지만 나머지 5개 사단은 전부 서부 전선에서 차출되는지라 도착하려면 최소 2~3주 정도는 걸릴 겁니다.”

    “···최소 2~3주라.”

    내 말에 작전 지도를 바라보던 만슈타인은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역시 그렇군. 현재 상황에서 당장 3개 사단이 추가된다고 해도 3주를 더 버티는 것은 무리일세.”

    “각하! 하지만···.”

    “그러니 스탈린그라드를 포기하고 6군을 퇴각시켜서 3차 공세를 막도록 하게.”

    나는 갑작스러운 만슈타인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잊어버렸다.

    ‘···스탈린그라드를 포기한다고?’

    스탈린그라드.

    저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서, 저 도시를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 6군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던가.

    그런데 그런 도시를 싸워보지도 않고 소련군에게 거저 넘겨준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안됩니다, 각하. 스탈린그라드를 이렇게 간단히 포기하다니요.”

    “···파울루스 장군. 자네에게 저 도시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해하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내세울 때가 아니지 않나?”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아군의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서라도, 스탈린그라드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스탈린그라드를 포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도시를 하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카프카스로 내려가는 길목을 내어준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지금까지 아군이 철통같이 지키던 돈강 방어선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내 설명에, 만슈타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에게 되물었다.

    “물론 자네의 말이 맞네. 애당초에 돈강 방어선은 카프카스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으니, 카프카스를 빼앗긴다면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하지.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서 저 교두보가 돌파당해서 남부집단군 전체가 위험에 처한다면,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하, 하지만···.”

    “게다가 스탈린그라드를 일시적으로 포기한다고 해서 당장 카프카스가 소련군의 손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네. 일단 카잔스카야 방면을 막고 나서 다시 스탈린그라드를 탈환하면 되지 않나?”

    만슈타인의 말은 정론이었다.

    분명 지금의 이 상황에서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스탈린그라드를 포기하는 것이 정답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뜻 그의 작전에 찬성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1945년 이전까지 반드시 이 빌어먹을 전쟁을 끝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소련과 강화를 맺어서 전쟁을 끝내야 한다.’

    하지만, 만약 스탈린그라드가 소련군의 손에 떨어지고 카프카스까지도 가시권에 들어간다면 스탈린은 결코 강화 협상을 맺으려 하지 않을 터.

    그렇기에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스탈린그라드와 돈강 방어선을 동시에 사수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그렇게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만슈타인이 쐐기를 박듯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자네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만, 이번 공세에는 소련군의 신형 중전차와 T-34/85가 다량으로 투입되었네. 즉, 예전처럼 아군의 기갑전력이 우세를 점하기 어렵단 말일세.”

    ‘신형 중전차라···.’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가지 아이디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무슨 소리인가?”

    “어쩌면 스탈린그라드를 포기하지 않고도 소련군의 3차 공세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정말인가?”

    내 말에 모델은 반색하고 나선 반면에, 만슈타인 원수는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자네가 하는 말이니 일단은 들어보겠네만, 혹여나 괜한 소리를 하려는 것이라면 지금 그만두게나.”

    “아닙니다, 각하.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소련군의 3차 공세가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이어지는 내 물음에, 만슈타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가능했느냐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사실 나는 이전부터 계속 의문이었다.

    과연 소련군의 3차 공세가 정말 가능할 것인가?

    이제껏 연이은 패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소련이 정말로 저 정도의 엄청난 병력을 다시 한번 동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소련군은 정말로 100만이 넘는 대병력을 동원해냈고, 이는 아마도 소련이 가진 모든 자원을 쥐어 짜낸 결과물일 터였다.

    하지만, 쥐어 짜낸다고 해도 없는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법.

    소련은 블라우 작전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작년 가을부터 카프카스의 유전에 대한 공급망을 상실했고, 랜드리스 루트도 매우 제한되었다.

    그러니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은 분명 엄청난 석유 부족에 시달리고 있을 터.

    “···즉, 지금 소련군이 동원하고 있는 저 대규모 기갑부대는 아마도 연료 문제 때문에 그리 오래 기동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군! 어쩐지 소련군 기갑부대가 영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더라니, 그런 사정이 있었나.”

    “그래. 그리고 만약 소련군의 전차가 모두 멈춰버린다면···.”

    “공세도 거기서 멈추는 거지.”

    소련군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기관총과 전차, 포병, 공군이 날아다니는 현대전에서 보병만으로 공세에 나설 수는 없는 법.

    그러니 기갑부대의 연료가 모두 떨어지는 순간이 저들의 공세 종말점일 터였다.

    “소련군의 현재 위치에서 밀레로보까지는 55km, 노보체르카스크까지는 무려 200km입니다. 놈들은 결코 더 이상 전과를 확대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현재 가진 전력과 곧 도착할 3개 사단만으로도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흠···.”

    나와 모델의 계속되는 설득에, 만슈타인 원수는 잠시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의 주장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네.

    첫째는 소련군이 보유한 석유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고, 둘째는 저들의 연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아군이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걸세.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있나?”

    해결책이라···.

    그런 만슈타인의 물음에, 옆에 서 있던 모델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연료가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면, 어쨌든 많이 쓰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네만,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런 거라면 간단하지요. 아군의 기갑부대를 투입해서 계속 유격전을 펼치는 겁니다.”

    “···기갑부대로 유격전을?”

    “예, 아군이 전차를 투입한다면 저쪽에서도 전차를 출동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적 기갑부대가 접근하면, 아군은 교전을 피하고 물러나는 겁니다.”

    “적에게 지속적으로 교전을 강요한다라···. 지금처럼 불리한 상황에서 그런 공격적인 전술은 너무 위험하지 않겠나?”

    그러자 모델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뭐, 최악의 경우에는 스탈린그라드를 포기하고 6군을 빼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대답에, 모델을 가만히 바라보던 만슈타인이 입을 열었다.

    “좋네. 한번 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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