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90화 (90/157)
  • 90화. 토성 작전 (5)

    “···여긴 언제 방문해도 평화롭군.”

    “하하, 제국의 수도인 베를린이 혼란하다면 큰일이지 않겠습니까? 뭐, 그래도 최근에는 총통 각하께서 부상을 당하셨다는 소식 때문에 좀 소란스럽지만 말입니다.”

    1943년 6월 15일.

    히틀러를 암살한 이후, 처음으로 방문한 베를린의 풍경은 겉으로 보기에는 예전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런 베를린의 이면에서는 슈페어 총리와 다른 나치당원들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암투를 벌이고 있겠지.

    ‘여기까지 온 김에 슈페어 총리도 한번 만나봐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어느새 차량은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총통 관저 앞에 멈춰섰다.

    “도착했습니다, 각하. 그럼 저는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수고했네. 이번엔 제법 오래 걸릴 테니 편히 쉬고 있게나.”

    내가 차에서 내리자, 건물 앞에 서 있던 위병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경례하며 말했다.

    “하일 히틀러! 총통 관저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원수 각하.”

    “하일 히틀러. 그래, 혹시 슈페어 장관께서 미리 지시하신 건가?”

    “예, 그렇습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나는 위병의 안내를 받으며 대리석으로 장식된 웅장한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무려 400m에 달하는 대리석 복도를 지나서, 나는 거대한 문 앞에 섰다.

    그곳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돌프 히틀러의 집무실로 쓰이던 방이었다.

    “장관님, 파울루스 원수 각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지금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예, 들어오십시오.”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총통의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보던 알베르트 슈페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했다.

    “파울루스 장군,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예, 총리님. 직접 설계하신 총통 관저의 주인이 되신 기분이 어떠십니까?”

    내 물음에 슈페어는 씁쓸하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하··· 각오는 했지만, 역시 쉽지 않군요.”

    “그렇습니까.”

    “예, 아무래도 당 내부에서부터 조금씩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서 말입니다.”

    의심의 목소리라···.

    하긴, 보안이라는 명목하에 정보를 은폐하는 것도 결국 한계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특히, 한순간에 조직의 수장을 잃어버린 선전성이나 친위대에서는 총통의 부재를 이용해서 권세를 부리는 슈페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겠지.

    “그럼 현재 나치당 내부에서 총리님을 지지하는 세력은 얼마나 있습니까?”

    “후··· 글쎄요. 일단 외무성의 리벤트로프 장관과 다수의 일반 당원들이 저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현재 친위대의 최고 권력자인 카를 한케 관구장이 저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 말입니다.”

    “카를 한케라···. 그렇군요.”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복잡한 표정의 슈페어에게 조용히 속삭이듯이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군부는 언제 어느 때라도 총리님을 지지할 겁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하, 하하. 그것 참 믿음직하군요.”

    내 말에 슈페어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뭐, 이렇게까지 말해뒀으니 나머지 일은 슈페어가 알아서 잘 처리하리라.

    ‘어쩌면 최악의 경우에는 군부가 나서서 친위대를 진압하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지.’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벌써 일어나시는 겁니까?”

    “예, 저희 쪽에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그렇게 슈페어와의 대담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관용차에 몸을 실었다.

    “각하, 이제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육군 최고 사령부로 가세.”

    “예, 알겠습니다.”

    내가 다음으로 만날 이는 바로 신임 육군 총사령관, 룬트슈테트 원수였다.

    *****

    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뒤, 육군 총사령부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룬트슈테트의 집무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하.”

    “···파울루스 원수인가. 그날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군.”

    “예, 맞습니다.”

    히틀러 암살사건 당시, 내 행동을 묵인한 대가로 육군 총사령관 자리에 앉게 된 룬트슈테트 원수는 여전히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만슈타인 원수에게 이미 연락받았네. 남부집단군에 증원을 보내야 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지금 남부집단군은 곧 다가올 소련군의 3차 공세에 대처하기 위해서 급히 예비 병력을 충원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 동부전선은 북쪽의 레닌그라드부터 모스크바, 보로네슈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선이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나는 다른 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하기 위해서 룬트슈테트 원수의 허가를 받으러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만슈타인이 미리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룬트슈테트 원수의 대답은 그리 시원하지 않았다.

    “흠. 미안한 말이네만, 나는 자네와 만슈타인이 말하는 그 소련군의 3차 공세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네.”

    “그렇습니까?”

    “그래. 물론 자네들의 추론도 그럴싸하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근거는 모두 정황 증거들뿐이지 않나.”

    그러나 룬트슈테트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그의 말대로, 현시점에서는 나조차도 소련군이 정말 3차 공세에 나설 것인지 확신하기 어려웠으니까.

    “예, 맞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도 3차 공세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나는 당연히 자네가 나를 설득하러 온 것이라 생각했네만.”

    내 말에 룬트슈테트는 의외라는 듯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말에,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소련군이 정말 3차 공세에 나선다면, 돈강 방어선은··· 아니, 남부집단군은 붕괴하고 말 겁니다.”

    “흠···.”

    사실, 이번 3차 공세에 대한 논의에서 핵심은 그것이 정말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만약 그것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확실히 그렇군.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루마니아 3군이 궤멸당하고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전선이 뚫려버린다면··· 아마도 감당하기 어렵겠지.”

    “예, 그렇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소련군이 감행한 1차, 2차 공세를 한번 보십시오. 저렇게 무의미한 지점에 다수의 병력을 투입했다는 것은, 아마도 무언가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것일 겁니다.”

    내 말에 동부전선의 지도를 살펴보던 룬트슈테트 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자네의 말대로, 만에 하나의 위험이라도 있다면 미리 대비하는 것이 맞겠지. 그럼 증원은 어느 정도가 필요한가?”

    반쯤 허락에 가까운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려운 상황인 줄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최소 8개 사단은 배치되어야 합니다.”

    “8개 사단이라. 일단 얼마 전에 새롭게 편성된 3개 사단이 대기 중이네.”

    “그럼 5개 사단만 다른 곳에서 차출하면 되겠군요.”

    그렇다면 이 병력을 어느 전선에서 빼내야 하는가.

    그렇게 내가 작전 지도를 살피며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룬트슈테트 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파울루스 장군, 롬멜 장군이 지휘하는 아프리카 기갑군에서 부대를 차출하는 것은 어떻겠는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말입니까?”

    “그래. 아프리카 기갑군은 트리폴리도 포기하고 튀니지 방어선까지 후퇴했으니, 그만큼 병력도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말에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북아프리카 전선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룬트슈테트 원수의 말대로 현재 아프리카 기갑군이 담당하는 방어선은 이전에 비해 상당히 짧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렵습니다. 비록 이전에 비해서 부담이 줄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아프리카 기갑군이 담당하고 있는 전선은 이들의 전력에 비해 넓은 편입니다.”

    “그건 그렇네만, 저 친구들이 상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한 영미 연합군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아프리카 전선은 가볍게 보시면 안 됩니다.

    만약에 튀니지가 함락당해 버리면 이탈리아와 남부 유럽이 모두 위험해지는 만큼, 저곳만큼은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만약에 저곳에서 사단급의 병력을 차출하려고 하면, 수만 명의 병사들과 수십여 대의 전차를 지중해를 건너서 동부 전선까지 실어 날라야 할 텐데 그 수송 소요를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그런 내 설명에, 룬트슈테트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에게 되물었다.

    “그럼 결국, 자네는 서부 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하자는 말인가.”

    “예, 사실 그렇습니다.”

    “후··· 동부전선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은 언제나 맡겨놓은 돈을 찾아가듯이 서부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해 가는군.

    자네들은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지만, 서부전선은 영국의 상륙 위험에 대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단 말일세.”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부전선군 총사령관으로 근무했었기 때문일까.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인지, 룬트슈테트 원수는 대서양 방어 임무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펼치며 나에게 반박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원래의 역사에서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1944년까지 미뤄졌던 만큼, 그때보다 북아프리카 전선이 훨씬 오래 버티고 있는 지금 프랑스가 공격받을 가능성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각하,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최근 롬멜 원수가 보낸 상황 보고에 따르면 연합군은 북아프리카 전선에 대대적인 증원을 보냈다고 하니, 적어도 올해 안에 프랑스에서 상륙 작전을 감행할 일은 없을 겁니다.”

    “흠···.”

    거듭되는 내 설득에, 서부전선군의 병력을 내어주지 않으려고 버티던 룬트슈테트 원수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후, 좋네. 그럼 자네의 요청대로 5개 사단을 보내주도록 하겠네. 다만, 저쪽에서도 병력을 재배치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좀 걸릴걸세.”

    “하하, 그거야 당연한 말씀이지요. 저희들의 무리한 요청을 받아들여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총 8개 사단의 증원을 허락받은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8개 사단이라. 이 정도 전력이면 소련군이 3차 공세를 감행하더라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겠지.’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저 병력들이 전선에 도착할 때까지 돈강 방어선을 지키는 것뿐이리라.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육군 최고 사령부를 나서려고 할 때, 대령 계급장을 단 참모장교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각하! 급보입니다!”

    “···도대체 뭔가?”

    그는 나에게 다가와서 말없이 전표 쪽지를 내밀었다.

    그곳에 적혀있는 것은 단 한 문장.

    바로, 소련군의 3차 공세가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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