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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88화 (88/157)
  • 88화. 토성 작전 (3)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지도를 바라보던 만슈타인 원수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파울루스 장군. 남부집단군의 보고대로 파블롭스크와 브카노브스카야의 공세가 양쪽 다 주공이라면, 이렇게 두 곳을 동시에 공격하는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소련군의 의도··· 말씀이십니까?”

    나는 만슈타인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 다시 작전 지도를 바라보았다.

    현재, 브카노브스카야 일대에서 도하한 돈 전선군은 재빠르게 투입된 1기갑군의 반격에 막혀서 교착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에 반해 파블롭스크 방면에서 공격에 나선 남서 전선군은 11군을 밀어내며 남쪽으로 천천히 진격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 두 공세 지점의 사이에 위치한 것은 바로, 상대적으로 약체인 루마니아군이었다.

    ‘양면 공세, 남쪽으로 방향을 꺾은 남서 전선군··· 그리고 중간에 있는 루마니아군이라.’

    나는 지도위에 펼쳐진 전황과 정보들을 살피며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의 움직임으로 미루어보면, 아무래도 소련놈들의 노림수는 루마니아 3군을 양익 포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나는 불과 얼마 전, 노보체르카스크에서 모델과 논의할 당시에만 해도 소련군이 양익 포위를 시도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저 두 곳의 공세가 모두 주공이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소련군이 양익 포위를 시도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저놈들은 1기갑군이 전략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터. 그러니 독일군이 나서기 전에 루마니아 3군을 포위해서 없애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러나 저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군은 발빠르게 예비대를 투입해서 브카노브스카야 방면의 공세를 막아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리라.

    그런 내 추측에, 만슈타인 원수는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 다른 얘기를 꺼냈다.

    “뭐,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내 생각은 자네와는 조금 다르네.”

    “···무엇이 다르다는 말씀이십니까?”

    “일단 자네의 말대로 소련군의 공세 목표가 루마니아군인 것은 확실하네. 하지만, 저들이 노리는 것은 아마도 포위가 아닐걸세.”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슈타인 원수의 반박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루마니아군을 포위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소련군이 저렇게 양면 공세에 나설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만슈타인 원수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 말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군.”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뭐,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정보로만 생각하면 자네처럼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할 테니까. 다만··· 이번에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말일세.”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발견하신 겁니까?”

    “그래, 여기를 한번 보게.”

    만슈타인은 지휘봉으로 작전 지도를 짚으며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선, 파블롭스크와 브카노브스카야의 공세 지점은 서로 150km나 떨어져 있네. 만약 놈들의 목표가 양익 포위였다면 돌파지점의 간격을 좀 더 짧게 잡았을 걸세.”

    “그건··· 소련군이 아직 전술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뭐, 그것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일세. 만약 소련군이 계획대로 루마니아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한다면, 정말 저들을 쓰러트릴 수 있겠는가?”

    “그야···.”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려던 나는 작전 지도를 보다가 이내 입을 닫아버렸다.

    소련군이 루마니아군을 포위하는데 성공한다는 말인즉슨, 서쪽으로는 11군과 동쪽으로는 4기갑군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의미였다.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저들은 루마니아군을 섬멸하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격퇴당하게 될 터였다.

    “그래, 그리고 소련군 최고 지휘 사령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겠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공세를 펼친다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이로군요.”

    “맞네. 그리고 나는 그 의도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렇게 말하며, 만슈타인은 지휘봉으로 지도 위에 놓여 있던 소련군 표식을 돈강 건너편으로 밀어 옮겼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소련군이 또다시 공세에 나설 거라는 것이었다.

    “···설마 세 번째 공세입니까.”

    “그래. 사실 나도 믿기 어렵네만, 3차 공세가 남아있다고 가정하면 지금까지 소련군이 보인 행동들도 모두 설명이 가능하네.”

    소련군의 3차 공세라···.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니 소련군이 양면 공세를 펼친 이유도 납득이 갔다.

    즉, 파블롭스크와 브카노브스카야 방면에서 감행한 저 두 공세는 11군과 4기갑군을 견제하기 위한 선제 공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군이 발 묶여 있을 동안, 마지막 3차 공세로 루마니아군을 섬멸하고 돈강 방어선 중앙에 구멍을 내겠다는 의도겠지.

    “젠장··· 상황이 곤란하게 돌아가는군요. 우리의 오판 때문에 1기갑군을 너무 성급하게 투입해버렸습니다.”

    “지금이라도 퇴각시키고 4기갑군에게 전선을 맡기면 안 되겠는가?”

    “이미 일부 부대는 전투에 들어간 터라 빼내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아직 투입되지 않은 부대들도 당장 파블롭스크 방면에 투입해야 할 판국입니다.”

    “흠···.”

    너무나도 암울하게 흘러가는 전황과 전망에 집무실 안에는 잠시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그러나 잠시 뒤, 작전 지도를 면밀히 살피며 궁리하던 만슈타인 원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군. 아직 소련놈들이 3차 공세를 감행할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니, 일단은 파블롭스크와 브카노브스카야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주력하도록 하게..”

    “그럼 만에 하나라도 3차 공세가 시작된다면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입니까?”

    “글쎄, 그때는 선택을 해야겠지. 스탈린그라드를 포기하고 6군을 빼내던가··· 아니면 다른 어딘가에서 병력을 증원받던가 말일세.”

    나는 갑작스러운 만슈타인의 말에 깜짝 놀라 그에게 되물었다.

    “스탈린그라드를··· 포기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도 스탈린그라드가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얻어낸 것인지는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지금 병력을 차출하려면 그곳밖에 없지 않나.”

    “하지만 그럼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열려서 카프카스의 유전도 위험해질 겁니다.”

    “그 상황까지 몰리면 유전도 포기해야겠지. 그래도 우선은 적군을 격퇴하는 데 집중하는 수밖에 없네.”

    스탈린그라드와 카프카스를 포기한다라.

    사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만슈타인 원수의 말은 정론이었다.

    설령 모든 것을 잃더라도, 돈강 방어선이 뚫려서 남부 전선 자체가 붕괴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전선을 유지한다고 해도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승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까지 참전한 이상, 소련과의 전쟁을 오래 끌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서 카프카스를 다시 빼앗긴다면 독소전쟁을 조기 종결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터. 그렇다면···.’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다른 곳에서 예비대를 끌어와 보겠습니다.”

    “정말 할 수 있겠나?”

    “뭐, 어떻게든 해내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내 결연한 눈빛을 본 만슈타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자네만 믿고 기다리겠네.”

    *****

    그렇게 파울루스가 소련군의 3차 공세에 대비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을 무렵.

    모스크바의 스타브카에서는 주코프와 바실렙스키가 이번 작전의 경과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다.

    “···해서, 현재 파블롭스크 방면과 브카노브스카야 방면에 총합 70만의 병력이 투입된 상태입니다.”

    “흠··· 그래서, 이번 작전 이름이 뭐였소?”

    “토성 작전입니다, 서기장 동지.”

    “토성 작전이라···.”

    주코프는 천천히 보고서를 읽는 스탈린을 바라보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보고서를 보니 브카노브스카야 방면의 공세는 적군의 예비대에 막혀 제대로 진격하지 못하고 있다고 적혀있소만, 정말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맞소?”

    “예, 맞습니다. 지난번 회의 때 설명드렸던 대로 이번 작전의 핵심은 마지막에 투입될 3차 공세입니다. 그렇기에 파블롭스크와 브카노브스카야 공세에 많은 병력이 모인 것은 오히려 호재입니다.”

    그동안 몇 번이고 패배를 거둔 탓에 크렘린 내에서도 입지가 많이 줄어든 주코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전만큼은 반드시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번 토성 작전에 알고도 막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물량의 병력을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1차부터 3차 공세까지, 이번 카프카스 공세에만 총 120만을 투입했다. 만약 이번 작전마저도 독일놈들이 막아낸다면··· 그때는 정말 패배를 인정하는 수밖에.’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들려오는 보고에 따르면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서기장 동지, 현재 파블롭스크 방면의 남서 전선군은 2차 공세만으로도 돈강 방어선을 절반 이상 돌파한 상태입니다. 이런 기세라면 3차 공세를 투입할 경우 전선을 완전히 붕괴시킬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소? 내 예상보다 훨씬 선전하고 있구려. 작년에도 이렇게 좀 싸워주시지 그러셨소.”

    “하하, 아무래도 양키놈들이 북아프리카를 때려준 덕분에 독일놈들의 병력이 분산된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독일군을 몰아내고 카프카스와 유전 지대를 되찾아야 합니다!”

    주코프와 바실렙스키의 연이은 재촉에, 지도와 보고서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민하던 스탈린도 이내 결단을 내렸다.

    “후···. 주코프 동지에게 다시 한번 소련군을 맡겨보기로 결정한 것도 나였으니, 마지막까지 믿어봐야겠지. 게다가 여기까지 와서 병력을 물리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말이오.”

    “···서기장 동지.”

    스탈린은 보고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코프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곤 그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좋소, 동지가 제안한 토성 작전의 3차 공세에 대해서도 허락하겠소. 그리고 이번 작전에 관한 한 전권을 주코프 동지에게 위임할 테니, 소비에트 연방에 다시 한번 승리를 가져다주시오.”

    그렇게, 서기장으로부터 최종 허가를 받은 주코프 대장은 그에게 큰 소리로 경례하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 이번만큼은 결코 동지께서 실망하시는 일이 없도록 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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