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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84화 (84/157)
  • 84화. 암살 (4)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각하. 이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하네.”

    “예!”

    북부집단군 사령관, 빌헬름 리터 폰 레프 원수는 기장의 경례를 적당히 받아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 그를 태운 수송기는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활주로를 달려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멀어져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레프 원수는 어젯밤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에 대해서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소집 명령이라···. 도대체 무슨 일이지? 설마 총통께서 또 이상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건가?’

    비록 어제 전화를 건 사람은 참모총장인 파울루스 원수였지만, 그가 자신을 멋대로 불러댈 리도 없으니 이 소환 명령은 분명 총통이 내리신 것일 터.

    하지만 총통께서 북부집단군 사령관인 자신을 직접 불러낼 만한 일이 있을 리 없었기에, 빈니차의 총통 본부로 향하는 레프 원수의 머리는 복잡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이내 또 다른 가설에 도달했다.

    ‘아니, 혹시 얼마 전에 있었던 베크 장군의 전화가 오늘 일을 암시하는 것이었나?’

    그 전화에서 루드비히 베크는 레프 원수에게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비록 그때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기억에서 지워버렸지만,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발언도 무언가 파울루스 장군과 관련이 있었었지.

    ‘그럼 파울루스 장군이 오늘 나를 부른 것도 그 전화와 무언가 관련이 있는 것인가? 후··· 모르겠군.’

    그러나 레프는 옆에서 들려오는 부관의 목소리에 이내 고민을 그만두었다.

    “각하, 이제 곧 빈니차에 도착합니다. 착륙을 준비해주십시오.”

    “···알겠네.”

    그래, 무슨 문제로 소집한 것이든지 간에 총통 본부에서 직접 확인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레프 원수는 편안한 마음으로 수송기에서 내렸다.

    그러나 그를 태운 차량이 국도를 벗어나서 숲길로 들어가자, 레프는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곳에는 완전군장을 착용한 무장친위대 병사들이 도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나서서 삼엄하게 차량을 검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보게 운전병, 언제부터 총통 본부의 경계가 이렇게 삼엄해진 건가?”

    “죄송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함구하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

    그렇게 꺼림칙한 분위기 속에서 베어 볼프 총통 본부에 도착한 레프는 단 한 사람의 동행조차 데리지 못한 채 곧바로 어딘가로 안내를 받았다.

    “이보게,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건가? 그래도 뭔가 설명은 해줘야 할 것 아닌가.”

    “무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원수 각하. 하지만 이곳에서 설명을 들으시면 다 이해하실 겁니다.”

    “흠···.”

    레프는 계속되는 홀대에 눈살을 찌푸리며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국방군의 고위급 사령관들과 참모총장까지 모두가 모여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가운데에 서 있던 육군 참모총장,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가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레프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레프 원수께서도 오셨군요. 이제 전원이 다 모이셨으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흥,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까지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군. 뭐든 좋으니 어서 얘기해보게나.”

    그가 오기 전에도 제법 소란이 있었던 모양인지, 서부 전선군 사령관 룬트슈테트 원수가 핀잔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파울루스는 전혀 개의치 않고 좌중을 돌아보더니 조용하게, 그러니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작스러운 얘기라 당혹스러우시겠지만, 모두 진정하고 들어주십시오. 어제 오후··· 총통 각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

    “흥,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까지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군. 뭐든 좋으니 어서 얘기해보게나.”

    계속되는 룬트슈테트 원수의 성화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을 한번 둘러보았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는 육군 소속의 레프 원수, 클루게 원수, 만슈타인 원수, 룬트슈테트 원수에 더해서 칼 되니츠 원수와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까지 고작 6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방군 최고 사령관인 총통이 사망한 현재로서는 이 6명의 손에 독일 국방군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 쥐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히틀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우선, 크릭스 마리네나 루프트바페 쪽은 크게 신경 쓸 필요 없겠지. 그럼 문제는 육군인데··· 일단 클루게 원수는 괜찮겠지.’

    중부집단군 사령관, 권터 폰 클루게 원수는 비록 검은 오케스트라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이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발키리 계획이 성공할 경우 지원하기로 약속까지 했었다.

    그러니, 히틀러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리기만 하면 나를 지지해줄 터. 그리고 레프 원수도 굳이 반대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럼 문제는··· 저 두 사람이로군.’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만슈타인과 룬트슈테트 원수를 바라보았다.

    현재 독일군 내에서 최고의 명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

    그리고 현재 독일 국방군에서 가장 존경받는 최고 원로인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

    과연 저 두 사람은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나는 그 둘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얘기라 당혹스러우시겠지만, 모두 진정하고 들어주십시오. 어제 오후··· 총통 각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뭐, 뭐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총통께서 돌아가셨다니?”

    역시 내 예상대로, 다른 장군들은 히틀러가 죽었다는 말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미리 귀띔을 받았을 클루게 원수와 만슈타인, 그리고 룬트슈테트 원수도 무언가 들은 바가 있었는지 그리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자네, 지금 그 말이 정말 사실인가?”

    “예,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육군 원수의 명예를 걸고서 맹세하겠습니다.”

    내 진중한 대답에, 좌중은 잠시동안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그러다 이내 룬트슈테트 원수가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후···. 좋네, 그럼 일단 좀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가?”

    “아직은 사태를 파악하는 중입니다만, 콘크리트 벙커에서 총통 회의가 진행되던 중 큰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사망했으며, 저와 슈페어 장관도 부상을 입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룬트슈테트 원수는 부상을 입어 붕대를 감은 내 왼팔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는 의심 어린 눈초리로 이쪽을 노려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콘크리트 벙커에서의 폭발이라. 그럼, 아무래도 내부에서 폭발한 것이라 봐야겠군.”

    “아마 그렇겠지요. 외부의 공격이었다면 파르티잔이나 폭격이었을 텐데, 그 정도로는 콘크리트 벙커 내부까지 타격을 주기 힘들 겁니다.”

    룬트슈테트의 말에 루프트바페 소속인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말대로 외부에 의한 공격이 아니라면, 결국 폭발의 원인은 내부에 있다는 의미일 터.

    그렇게 점점 대화의 주제가 히틀러를 누가 죽였는가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찰나, 이번에는 클루게와 만슈타인 원수가 입을 열었다.

    “···이제와서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오. 결국,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겠소?”

    “맞는 말씀입니다. 외부의 소행이든 내부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든 간에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지금의 반응으로 보아, 아무래도 저 두사람은 내 편이라고 봐도 되겠지.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룬트슈테트 원수를 설득하는 것뿐일 터였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예, 무엇보다도 지금은 전시상황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지중해 쪽에서는 연합군이, 카프카스 일대에서는 소련군이 대규모 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범인을 색출하는 것보다 내부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흠···.”

    내 간절한 말에, 룬트슈테트 원수는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면서도 더 이상 히틀러의 사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마치 나를 시험하듯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일단 내부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좋네. 그럼, 자네는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마치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모은 진의를 밝혀보라는 듯한 룬트슈테트 원수의 날카로운 질문에 다른 장군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모였다.

    ‘···룬트슈테트 원수라.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답게 쉽게 넘어가지 않군.’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들도 분명 이제껏 사단 배치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간섭하던 히틀러의 지휘에 불만이 많았을 터.

    그렇다면, 그 부분을 공략하면 이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선, 저희 국방군은 알베르트 슈페어 장관을 총리로 지지해야 합니다.”

    “···슈페어 장관을? 자네 설마,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겐가?”

    “개입이 아닙니다. 다만, 후방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도움을 주자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 설명에도 룬트슈테트 원수는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하긴, 전통적인 프로이센의 융커 가문 출신인 그로서는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자는 말을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겠지.

    “···나로서는 자네의 의견에 도무지 찬동할 수가 없군.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세.”

    “하지만 각하, 작금의 전황을 한번 보십시오. 이미 아군의 전선은 유럽을 넘어 아시아, 북아프리카까지 뻗어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후방이 무너져버리면 1차대전 당시의 비극이 다시 반복될 겁니다.”

    “흐음···.”

    그러나 그런 룬트슈테트조차도 내가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의 작전 지도를 보여주자 더 이상은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그도 지휘관인 만큼 현재 독일군의 전선이 얼마나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게, 지도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룬트슈테트 원수는 나를 노려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자네가 바라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우리가 모두 슈페어 장관을 지지하기라도 바라는 것인가?”

    그 대답을 들은 나는 이 자리에 모인 장군들의 면면을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각하. 저에게 맡겨 주신다면 나머지 문제는 제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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