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83화 (83/157)
  • 83화. 암살 (3)

    “···여기가 정말 그 회의실이 맞나?”

    “예, 그렇습니다.”

    슈페어와 함께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온 나는 참혹하게 파괴되어 버린 회의실의 모습에 할 말을 잊어버렸다.

    “나도 폭발 당시 근처에 있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폭탄에 직격타를 맞은 콘크리트 벙커 내부는 마치 한차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모든 것이 파괴되어서 흩어져 있었다.

    “그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 이미 이송한 건가?”

    “그게, 부상을 입으신 분들은 모두 진료실로 이송했습니다만···.”

    “괜찮으니 계속 말해보게. 나도 이미 짐작하고 있으니.”

    부드러운 내 목소리에, 린게 소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초··· 총통 각하께서는··· 아무래도···.”

    “···알겠네.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네. 그럼 시신은 어디에 안치해놓았나?”

    “저쪽입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앞장서서 걷는 린게 소령의 뒤를 따라서 벙커 뒤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우리가 길을 걷는 동안 저 멀리에서는 바람을 타고 단백질이 타는듯한 지독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그 냄새의 근원지인 작은 공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식탁보나 커튼 따위의 잡다한 천으로 가려진 시신들이 모여있었다.

    “···많군. 이게 다 희생자들이란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나는 린게 소령과 병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천을 걷어 시신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행동으로 인해 나중에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반드시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괴벨스, 괴링, 보어만··· 그리고 힘러까지. 어지간한 나치 놈들은 다 죽었군.’

    하긴 문밖에서 폭발의 충격에 휩쓸렸던 나와 슈페어 장관조차도 부상을 입을 정도였으니, 방 안에 있었던 자들은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마지막 하나 남은 시신의 앞에 멈춰 섰다.

    ‘후, 이게 마지막인가.’

    지금까지 그자의 시신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마 이 천 아래에 누워있는 것이 바로 총통일 터.

    하지만, 만약 이 시신이 그의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에 하나라도 암살이 실패해서 히틀러가 아직 살아있다면?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설마 그곳에서 살아났을 리가···.’

    내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천을 벗겨보자, 역시나 그곳에는 상체가 반쯤 불타버린 아돌프 히틀러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자의 마지막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결국,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렸나.’

    아돌프 히틀러.

    말도 안 되는 멍청한 명령으로 스탈린그라드의 비극을 만들고, 온갖 실책을 저질러 내 조국을 패망시켜버린 남자.

    그러나 그토록 미웠던 그자의 죽음을 확인했음에도, 내 마음은 그저 공허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의 시신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천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 린게 소령. 일단 자네는 이제부터 아무도 시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비하게.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아주게나.”

    “예, 알겠습니다!”

    *****

    그리고 잠시 뒤, 시신을 모아둔 작은 공터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모두 도착한 건가?”

    “예, 그렇습니다.”

    내 부름을 받고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총통 본부에서 근무하는 고위 공직자나 장군들이었다.

    나는 모두의 앞에 서서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오늘 오후 2시 15분경에 저곳, 콘크리트 벙커에서 커다란 폭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총통 각하께서는 무사하십니까?”

    “···그건 직접 확인해보십시오.”

    나지막한 내 목소리에,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조심스럽게 총통과 다른 고위 인사들의 죽음을 확인한 이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살피다가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는 바로, 검은 오케스트라의 일원이자 아프베어의 부국장인 한스 오스터 소장이었다.

    “총통 각하께서 돌아가시다니···.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안타깝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고 국정을 정상화해야겠지요. 안 그래도 지금 우리 독일은 전시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여기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께서 협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협조라니···. 원수 각하께서 말씀하시는 저의는 알겠습니다만,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모두의 시선에 집중된 것을 확인한 뒤, 옆에 서 있던 린게 소령에게 말했다.

    “사실 나로서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찌해야 할지 참으로 당황스럽습니다만, 다행히도 여기 있는 린게 소령이 총통 각하의 집무실에서 이런 것을 찾아내었습니다. 린게 소령, 그것을 모두에게 보여주시게.”

    “예, 알겠습니다!”

    내 지시로 집무실을 정리했던 린게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총통의 유언장을 꺼내 들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총통 각하께서 가장 최근에 남기신 유언장인 것 같습니다. 각하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데다가 필체와 서명도 일치했으니, 아마 위조문서는 아닐 겁니다.”

    “유언장이라···.”

    거기까지 말한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으나, 다행히도 아무도 유언장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사실, 히틀러가 정기적으로 유언장을 작성해서 보관했다는 것은 꽤나 알려진 사실이었기에 이런 유언장이 나온 것에 대해서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원래라면 유언장을 관리해야 할 히틀러의 개인 비서 마르틴 보어만도 이번 사건으로 죽어버렸기 때문에 만약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도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유언장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총통 각하께서 타계할 시 1순위로 헤르만 괴링, 2순위로 하인리히 힘러, 그리고 3순위로 슈페어 장관님이 총리직을 승계하도록 되어 있소이다.”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슈페어 장관에게로 쏠렸다.

    비록 유언장에 적힌 승계 서열은 3위에 불과했지만, 다른 고위 인사들이 모두 죽어버린 지금은 그가 나치당의 최고 권력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유언장을 바라보며 눈알을 굴리고 있을 때, 내가 모두의 앞에 나서며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러니 총통 각하의 유지에 따라, 이곳에 계신 알베르트 슈페어 장관님께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25대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의가 있으신 분들은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내 물음에, 돌아가는 상황을 관망하던 사람들은 대답 없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렇게 얼떨결에 총리가 되어버린 슈페어는 모두의 앞에 나서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총리로서 첫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과연 그가 내릴 첫 번째 명령은 무엇일까.

    모두가 숨죽인 채 지켜보는 가운데, 알베르트 슈페어는 나와 사전에 협의했던 대로 말을 꺼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총통 각하가 사망하셨다는 사실은 절대 기밀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당분간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발설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그날 오후, 슈페어의 지시로 인해 베어 볼프 총통 본부 전체가 삼엄한 감시하에 놓이게 되었다.

    우선 이곳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이 차단되었으며, 외부로 이어진 모든 연결망은 상호 감시하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단 하나, 내 집무실에 설치된 이 전화기만 제외하고는.

    “후···. 피곤하군. 그래도 보고는 해야겠지.”

    내 집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은 나는 전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뒤, 연결음이 이어지자마자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아들었다.

    그 상대는 바로, 검은 오케스트라의 수장 루드비히 베크 장군이었다.

    “···어떻게 되었나.”

    “성공했습니다. 히틀러를 비롯해서 괴링, 괴벨스, 힘러, 보어만까지. 어지간한 놈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위조 유언장을 이용해서 슈페어를 총리로 만드는 것도 일단은 통한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하하하! 잘됐군. 정말 잘 됐어!”

    우리의 계획이 모두 성공했다는 말에 베크 장군은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정말로 이걸로 다 잘 된 것일까.

    사실, 지금 우리가 거둔 성공은 이 조그마한 총통 본부를 장악한 것에 불과했다.

    지금 이곳에서는 슈페어의 권위가 인정받고 있지만, 과연 히틀러의 사망 소식이 모두에게 알려진 다음에도 모두가 그를 총리로 인정할 것인가?

    ‘어쩌면 나치 내부에서··· 아니, 독일 전체가 갈라져서 내전이 벌어질 지도 모르지.’

    그런 내 걱정을 읽었는지, 베크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게. 일단 자네가 국방부만 제대로 장악하고 있으면, 내전이 벌어지지는 않을 테니.”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러려면 적어도 군부의 절반 이상은 저희 총참모부의 지시를 따라줘야 할 텐데요.”

    사실, 현재 군부 내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위상은 그리 높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비록 육군 참모총장이라는 명예로운 자리에 있긴 했지만, 이 자리는 직접적인 명령권을 가지는 직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단 최고 계급인 육군 원수이긴 했지만, 연공 서열로 따지자면 나보다 먼저 원수가 된 장군들도 수도 없이 많은 상황.

    그렇기에 군부를 장악하는 일만큼은 베크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문제는 걱정말게. 우선, 동부전선에 있는 집단군 사령관들은 모두 만약의 경우에 자네를 지지하겠노라 대답해주었고, 서부전선군 사령관인 룬트슈테트 원수도 자네를 반대하진 않을걸세.”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이군요.”

    “다만, 그들을 설득하는 이끌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자네의 몫일세.”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총통 본부로 오시도록 연락해주십시오.”

    “알겠네.”

    그렇게 베크와의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의자에 기대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정권을 안정시키고 군부의 지지를 얻는다라···. 이런 계획이 정말로 성공할 것인가? 어쩌면,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독일의 패망을 더 앞당기는 것은 아닐까?

    ‘···아니, 여기까지 온 이상 어떻게든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나는 그렇게 결의를 다지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집단군 사령관들이 베어 볼프 총통 본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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