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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82화 (82/157)
  • 82화. 암살 (2)

    “하일 히틀러! 무슨 일이십니까?”

    “고생들이 많군. 오늘 회의에 필요한 자료를 전달하는 것을 깜빡해서 말일세. 지금 잠시 들어가도 되겠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당당한 태도로, 친위대 병사에게 가지고 온 서류가방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그 병사는 내 옷깃에 달린 황금빛 원수 계급장과 서류가방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원수 각하. 가방의 내용물을 잠시 보여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미안하네만, 이 가방에 담겨 있는 서류는 1급 기밀문서여서 말일세. 자네에게는 보여주기 어려울 것 같네.”

    “그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가방의 내용물만 한번 훑어볼 뿐, 서류의 내용까지 읽지는 않습니다.”

    ‘···젠장. 설마 이런 데서 막힐 줄이야.’

    나는 생각보다 철저하게 검사하려고 드는 친위대 병사의 대처 때문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육군 원수라는 권위를 내세워서라도 일단 강제로 지나갈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는 그냥 물러나고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인가.

    ‘제기랄··· 여기서 물러나면 다음 기회를 잡기 어려울 테고, 그렇다고 강행하자니 의심을 살게 뻔한데. 정말 곤란하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양쪽 모두 자충수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고민하는 와중에도 서류가방 속의 시한폭탄 타이머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상황.

    ‘···어쩔 수 없군. 성공하든 실패하든 일단 강행해보는 수밖에.’

    결국, 그렇게 결단을 내린 나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친위대 병사에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가 말을 꺼내려 하는 바로 그 순간, 저 멀리 서 있던 누군가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아니, 이거 파울루스 참모총장님이 아니십니까? 혹시나 했는데, 이런 곳에서 다 뵙는군요.”

    갑작스럽게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내가 고개를 돌려보자, 그곳에는 SS 기갑군단장 파울 하우서 장군이 서 있었다.

    “···누구신가 했는데, 파울 하우서 사령관님이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하하하, 그러게요. 블라우 작전 때 같이 싸웠는데 이렇게 직접 뵙는 것은 또 처음이군요. 하긴, 저는 1기갑군 소속으로 카프카스로 내려갔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아, 역시 그러셨군요. 블라우 작전에서 활약하셨던 것에 대해서는 만슈타인 원수 각하께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다가와서 친근하게 말을 거는 그의 행동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의 호의를 뿌리칠 수도 없었기에 나는 계속해서 그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각하께서 이곳에는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아, 그게 회의에 급하게 전달해야 할 자료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말끝을 흐리는 내 모습에, 대강 흘러가는 사정을 짐작한 하우서 장군은 회의실 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아무래도 이 친구들이 원수 각하를 알아뵙지 못한 모양입니다. 이보게, 어서 비켜드리게.”

    “죄, 죄송합니다!”

    SS로부터 존경을 받는 파울 하우서의 힘인지, 아니면 원수 각하라는 말 덕분인지 지금까지 완고하게 문을 지키던 병사는 재빨리 옆으로 비켜섰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예, 수고하십시오.”

    나는 하우서에게 인사를 건넨 뒤,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후, 간신히 들어왔군.’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왜냐하면, 방금 전의 대화로 시간을 제법 빼앗기는 바람에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젠장, 남은 시간은 대략 5분 정도인가. 아무래도 좀 서둘러야겠군.’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나는 조심스럽게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현재 회의실 안에는 히틀러가 앉아있는 거대한 테이블을 둘러싸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상황.

    그리고 저들 중 어딘가에는 알베르트 슈페어 장관도 있을 터.

    나는 조심스럽게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며 슈페어의 위치를 찾았다.

    ‘···저기 있군.’

    내가 미리 언질을 해놓은 덕분인지, 마침 알베르트 슈페어는 문과 가까운 위치에 서 있었다.

    그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벽에 붙어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히틀러의 근처에 도착한 순간, 서류가방을 슬쩍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네! 카프카스를 넘어 카이로, 인도양까지···.”

    ‘또 개소리를 하는군.’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과대망상으로 가득한 저 연설에 감사했다.

    왜냐하면, 모두가 저 헛소리에 정신이 팔린 덕분에 내가 내려놓은 서류가방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런 히틀러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슈페어에게로 다가갔다.

    “장관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알겠소. 곧 나가리다.”

    내 속삭임에 슈페어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가 방문을 열고 몸을 반쯤 빼내는 순간,

    “우리는 반드시···!”

    콰아아앙!!

    히틀러의 연설을 파묻어버리는 굉음과 함께, 등 뒤에서 엄청난 폭압이 터져 나왔다.

    *****

    “장관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후··· 솔직하게 말해서 다리 쪽이 조금 불편하군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숙여 슈페어의 다리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그의 왼쪽 다리 허벅지 쪽에는 마치 칼에 베인 것 같이 보이는 날카로운 자상이 나 있었다.

    아마도 방금 전의 폭발로 인해 날아온 파편이 다리를 스쳐 지나간 것이겠지.

    “···걸을 수는 있겠습니까?”

    “예, 조금 아프긴 하지만 아예 못 걸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일어나십시오.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무사한 모습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나는 불편한 표정으로 의무실에 주저앉아 있는 슈페어 장관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후들거리며 걷는 그를 부축하며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슈페어 장관을 부축하는 내 상태도 그리 멀쩡하지는 않았다.

    방금 전의 폭발로 날아가는 바람에 다친 내 왼팔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고, 넘어지면서 생긴 찰과상이 이곳저곳에 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당연히 사건 현장으로 가야지요. 장관님이 그곳으로 가셔서 나치당을 통솔해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내 부축을 받으며 걷던 슈페어는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주변을 살피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각하, 이 자리에서만큼은 솔직하게 대답해주십시오. 혹시 방금 전의 그 폭발··· 각하께서 계획하신 일입니까?”

    나는 슈페어의 물음에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러나 내 고민은 사실을 들켜버렸다는 것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지금 슈페어에게 어디까지 말해줘도 괜찮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나는 구태여 모든 것을 설명하는 대신,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만약 장관님께서 하신 생각이 맞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군요.”

    뻔뻔한 내 대답에 슈페어는 오히려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슈페어도 권력에 욕심이 있었던 만큼 지금의 이 상황이 자기에게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눈치챈 거겠지.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군수성에서 뵈었을 때 각하께서 말씀하셨죠. 저를 확실한 총통의 후계자로 만들어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랬었지요.”

    “후우···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엄청난 일일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제 도움이 마음에 드셨습니까?”

    “일단 각하의 계획을 먼저 들어보지요.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제가 히틀러의 집무실 책상에 그의 유언장을 위조해서 넣어두었습니다.

    그곳에는 총통이 타계할 시 1순위로 헤르만 괴링, 2순위로 하인리히 힘러, 그리고 다음으로 슈페어 장관님 순으로 총리 직위를 승계하도록 적어 놓았습니다.”

    일단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괴링과 힘러의 이름을 위로 올려놓긴 했지만, 어차피 저들은 히틀러와 함께 폭발에 휩쓸려 죽었을 터.

    그러니 우리가 앞장서서 사태를 수습하고 총통의 유언장을 찾아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그를 총리로 만들 수 있으리라.

    ‘다만, 문제는 친위대 놈들이 과연 유언장의 지시를 따라줄 것인가 하는 것인데···. 그 부분은 슈페어의 능력을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동안, 슈페어도 마음속으로 계산을 끝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되돌릴 수도 없는 거겠지요. 각하의 계책대로 따르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나는 슈페어가 내민 손을 굳게 마주 잡은 뒤, 다시 그를 부축해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

    1943년 5월 17일, 오후 2시 15분.

    총통 회의가 진행되고 있던 콘크리트 벙커가 대폭발에 휩쓸려버리는 바람에, 베어 볼프 총통 본부는 모두가 유례없는 대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봐! 의무관들을 불러! 빨리 잔해를 제거하고 총통 각하를 이송해야···.”

    “어이, 자네! 정말로 구조를 하려는 게 맞나? 아무리 봐도 현장을 훼손해서 증거를 인멸하려는 것 같네만!”

    “저, 전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현장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치와 정부 쪽의 고위 고관들은 이번 폭발 사건으로 인해서 대부분 사망했거나 의식불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던 군부 측의 인사들은 어쩌면 암살 음모로 비약될 수도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 최대한 관여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젠장, 일단 잔해부터 치워놓게. 어쨌든 이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

    그렇게 극심한 혼란 속에서 오직 친위대 병사들만이 사건 현장을 수습하고 있을 무렵,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엉망이 된 벙커 쪽으로 다가왔다.

    “이보게, 자네가 현장 책임자인가?”

    “하일 히틀러! SS소령 하인츠 린게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가장 직급이 높아 임시로 현장을 수습하고 있었습니다.”

    “수고했네, 린게 소령. 이제부터 내가 현장을 지휘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각하의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난 육군 참모총장, 파울루스 원수네. 그리고 여기 계신 분은 슈페어 장관님일세.”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 선 이는 바로 방금 전의 폭발에서 기적같이 생존한 두 사람, 알베르트 슈페어 군수 장관과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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