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80화 (80/157)
  • 80화. 알베르트 슈페어

    “어서오십시오, 원수 각하. 저희 군수성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하, 장관님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군수성에 도착하자,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는 현관까지 마중 나와서 나를 맞이했다.

    “이리 오시죠.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슈페어는 나를 데리고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커피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차로 하시겠습니까?”

    “차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커피를 많이 마셔서 말입니다.”

    “하하. 하긴, 각하께서는 늘 격무에 시달리시니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의미 없는 담소를 나누는 동안, 비서관으로 보이는 자가 나와서 테이블 위에 커피와 홍차를 내려놓았다.

    내가 그 찻잔을 집어 들고 홍차를 한 모금 들이마시자, 이제껏 실없이 웃던 슈페어가 눈빛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번에는 저도 제법 놀랐습니다. 설마 각하께서 저에게 먼저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거든요.”

    “하하, 그렇습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역시 지난번의 그 부탁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나는 슈페어의 기대 어린 눈빛을 마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말하는 지난번의 부탁이라는 건, 역시 그때 얘기했던 당 내부의 권력 투쟁에 관한 것이겠지.

    사실 나로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 도와줄 생각도, 방법도 없었지만, 슈페어와의 인맥을 다지기 위해서 일단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뭐,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만 말이야.’

    하지만 모든 일이 내 계획대로 풀린다면, 알베르트 슈페어가 나치당의 수장이 될 터.

    그렇기에 나는 슈페어가 정말로 괜찮은 인물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마음을 숨긴 채 빙그레 웃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제가 장관님을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아무래도 참모총장님께는 좋은 수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각하의 고견을 경청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장관님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물음에 슈페어는 애써 아쉬운 표정을 감추고는 웃는 얼굴로 답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던 그의 웃음은 이어지는 내 말에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감사합니다. 그럼, 장관님께서는 현재 나치당이 국가판무관부에서 행하고 있는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내 물음에 한참 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슈페어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 각하께서 무엇에 대해 묻고자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군요.”

    “글쎄요. 군수성의 수장을 맡고 계신 슈페어 장관님께서는 그 문제에 대해 모를래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세상에는 알고 있어도 몰라야 하는 일들이 있는 법이지 않습니까? 각하께서도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난처하다는 듯한 슈페어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예상대로 그는 현재 나치가 행하고 있는 인종적인 정책에 대해서 그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독일의 재건과 부흥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그런 것을 못 본 척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것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한 나는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민감한 부분을 여쭤본 것 같군요.”

    “···아닙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혹시 장관님께서는 차기 총통이 되고자 하십니까?”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슈페어는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차기 총통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눈빛은 당혹스러움이 아닌 야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총통 각하께서 아직 정정하신데 벌써 차기 총통이라니, 누가 들으면 오해할지도 모릅니다.”

    “계속 곤란한 질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장관님께서는 이 문제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여기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면 저도 더 이상은 도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내 말에 슈페어는 곤란하다는 듯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적인 표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고민하는듯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이내 결심한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후···. 기왕 이렇게 된 것, 저도 탁 터놓고 여쭤보겠습니다. 그럼 각하께서는 저를 어떻게 도와주실 생각이십니까?”

    “자세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장관님을 확실한 총통의 후계자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내 호언장담에 슈페어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하하, 장관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장관님께서는 그저 지켜봐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슈페어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악수를 나누었다.

    ‘아마 그가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을 때쯤에는 모든 일이 끝난 후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슈페어의 방에서 조용히 걸어 나왔다.

    *****

    그 무렵, 돈강 하구의 노보체르카스크에 위치한 남부집단군 사령부.

    이곳에서 한 남자가 남부집단군 사령관, 만슈타인 원수와 독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는 바로 돈강 방어선 사령관으로 임명된 발터 모델 상급대장이었다.

    “그래, 자네가 보기에는 소련군의 움직임이 어떠한가?”

    “저놈들이 워낙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탓에 저희도 아직 공세 규모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저놈들이 곧 돈강 방어선을 공격하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모델의 보고에 만슈타인은 작전 지도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얼마 전에 배치되었다는 신형 중전차만 봐도 그건 확실하지.”

    사실, 모델의 보고가 아니라 현재 동부전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전 상황만 보더라도 소련군이 대규모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그동안 쉬지 않고 병력을 때려 붓던 레닌그라드 공방전도 결국 멈췄고, 모스크바 일대에서도 방어전 외에는 이체 반격을 하지 않고 있으니, 남은 것은 이곳 카프카스 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하필이면 이럴 때 병력을 차출하겠다는 공문이 내려온 것이었다.

    “젠장, 이런 상황에서 2개 사단을 차출한다니··· 그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최근 북아프리카 쪽이 위험하다고 하니, 이탈리아가 위험해 질 것을 염려한 총통께서 직접 지시를 내리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야 그렇겠지만, 그래도 참모총장이라면 이런 지시가 내려지지 않도록 미리 막아야 하는 법일세.”

    누군가를 향해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만슈타인의 말에, 모델은 후방에서 고생하고 있을 자신의 친구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젠장. 사실 물어보나 마나 뻔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네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기로 하지.

    그래서, 자네가 보기에는 총사령부의 지시대로 3개 사단을 차출하고도 돈강 방어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만슈타인의 당연한 물음에, 발터 모델은 일언지하에 답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절대 불가능합니다.”

    “뭐, 당연히 그렇겠지.”

    현재 돈강 방어선에 배치되어 있는 전력은 무려 6개 야전군이다.

    이렇게 숫자로만 보면 마치 병력이 차고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 실상을 까고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방어선의 길이가 무려 430km에 달해서 5개 야전군이 길게 늘어있는 형상인 데다가 그중 2개 부대는 상대적으로 약한 동맹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델 장군은 고육지책으로 1기갑군을 후방에 배치해 기동타격대로 삼는 강수를 두었지만, 이 전략으로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3개 사단을 차출하면 1기갑군에서 그만큼의 병력을 돌려 방어선을 메워야 할 텐데, 그랬다가는 기동 방어라는 전략 자체가 흔들릴 터였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병력을 차출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인 것 같군. 일단 내가 한번 연락해볼 테니, 자네는 돌아가서 현재 상황을 유지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만슈타인의 결단에, 모델 장군은 절도있게 경례한 뒤 돌아서서 나갔다.

    만슈타인은 그런 모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남부집단군 사령관, 만슈타인 원수일세. 총참모본부로 연결해주게.”

    그가 전화를 건 상대는 당연히 육군 참모총장,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몇 차례 신호음이 울리고 연결원이 전화를 돌리는 동안, 만슈타인은 참모본부로 돌아가 버린 파울루스 장군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동안 만슈타인이 보았던 파울루스 장군은 비록 전형적인 참모장교이기는 하나, 그래도 야전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도대체 왜 이런 지시가 내려오도록 내버려 두었단 말인가.

    설마, 참모부에서 서류만 들여다보는 동안 현장의 사정을 잊어버린 것인가?

    ‘···도대체 그 친구가 뭐라고 대답할지 감도 안 잡히는군.’

    그렇게 만슈타인이 생각에 잠겨 기다리는 동안, 수화기 너머에서는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육군 참모총장,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입니다. 만슈타인 각하가 맞으십니까?”

    “···그래, 나일세. 다행히 아직도 각하라고 불러주는 모양이군.”

    “하하, 그래서 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일세. 자네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인가? 지금 돈강 방어선에서 병력을 차출해내면 위험하다는 것쯤은 자네도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역시 만슈타인의 예상대로, 그도 이럴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전화기 너머에서는 깊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후···. 사실 저도 돈강 방어선에서 병력을 차출하는 것은 끝까지 반대했습니다만, 총통 각하의 의지가 너무 강력해서 일단 지시를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닐세. 자네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3개 사단을 빼냈다간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걸세.”

    거기까지 말한 만슈타인은 잠시 파울루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렇게까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명령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총통과 직접 담판을 지어야 하리라.

    하지만 그런 만슈타인의 예상과는 다르게, 파울루스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걱정 마십시오, 각하. 돈강 방어선에서 병력을 차출하도록 한 명령은 곧 취소될 겁니다. 그러니 일단은 현재 상황을 유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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