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79화 (79/157)
  • 79화. 검은 오케스트라 (5)

    1943년 5월 10일.

    내가 카나리스 제독과 만나 밀담을 나눈 지 약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베크 장군으로부터 비밀리에 연락을 받은 나는 현재, 베를린 외곽에 위치한 그의 저택에 와 있었다.

    “연락이 늦어져서 미안하군. 그동안 우리 쪽에서도 확인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좀 있어서 말이야.”

    “아닙니다. 이렇게 다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베크 장군의 인사에 정중히 대답하며 내 맞은편 자리에 앉은 이들을 바라보았다.

    가장 상석에 앉은 루드비히 베크부터 프란츠 할더, 그리고 빌헬름 카나리스 제독까지.

    사실상 검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이 세 사람이 모두 모여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테이블의 가장 마지막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각하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제가 드렸던 제안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신 모양이군요.”

    “맞네. 그러니 자네를 이렇게 부른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각하께서는 어떻게 하기로 결정하셨습니까?”

    “···좋네, 그냥 솔직하게 인정하도록 하지.

    우리는 발키리 계획보다 자네의 제안이 더 성공 가능성이 높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네. 암살의 실행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이후의 처리에 대해서도 말이야.”

    나는 담담하게 현실을 인정하는 베크 장군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들이 생각하기에도 지금처럼 총통에 대한 지지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정권을 전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그러나 그렇게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던 베크는 곧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그 전에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지.

    그래서 결국, 자네의 제안은 나치당 수뇌부를 제거한 후에 대해서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들었네만. 맞나?”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 문제는 그저 운에 맡길 작정인 건가?”

    마치 나를 시험하는 듯한 베크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확실히 거사 이후에 나치당과 정권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 지에 대해는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그건 바로, 지금 나치당이 휘두르고 있는 저 강력한 힘은 오직 히틀러 한 사람을 통해서 나온다는 것 말입니다.”

    “······.”

    1943년 현재, 소련을 거의 빈사 상태 직전까지 몰아넣고 카프카스의 자원과 석유마저 들어오기 시작한 지금 독일에서 히틀러가 가진 위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히틀러가 사라질 경우,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이 전혀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물론, 그가 사라진다고 해서 갑자기 당이 무너지거나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돌아서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총통의 말 한마디로 국가를 좌지우지하던 시절에 비해서는 저들의 세가 많이 꺾일 수밖에 없을 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히틀러의 위광에 눌려있던 저희 군부가 다시 일어나서 나치 정권을 견제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이어지는 내 설명에, 베크 장군은 한참 동안 고개를 떨군 채 커피잔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나는 그런 베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발키리 계획에서는 거사가 성공한 뒤에 베크 장군이 육군 총사령관을 맡기로 했던가. 만약 그가 권력욕 때문에 이번 쿠데타에 뛰어든 거라면··· 이 제안을 거절할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내 제안에 대해서 과연 베크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그런 걱정을 하며 지켜보는 동안, 생각을 정리한 베크 장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네. 그럼 자네의 말대로 나치 정권이 약해지고 군부가 다시 득세했다고 가정해보세.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자네는 정말로 이 전쟁을 무사히 끝낼 자신이 있는가?”

    예상치 못했던 그의 반문에, 나는 그의 의중을 알 수가 없어 베크의 표정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는 정말로 순수하게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내심 부끄러움을 느끼며 다짐하듯이 답했다.

    “···물론입니다, 각하. 반드시 이 전쟁을 독일의 승리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좋네, 그것이면 족하네.”

    “걱정 마십시오, 각하. 파울루스 장군이라면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내 대답에, 베크와 할더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서, 지금까지 우리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만 있던 카나리스 제독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거사를 치를 것인가 하는 부분이군요.”

    “그 말씀은··· 암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하시는 거겠지요?”

    “그래. 물론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를 해두긴 했네만, 그 전에 자네의 생각을 먼저 들어보고 싶군. 어찌 되었건 간에 자네는 이번 계획의 주동자가 아닌가?”

    나는 그들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히틀러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라.

    사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총통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현재 나는 히틀러와 가장 가까이에 상주하면서 가장 자주 만나보는 최측근 중의 최측근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를 죽일 때 나치당 수뇌부까지도 모두 다 한 번에 죽여버려야 한다는 말이지.’

    만약 히틀러가 죽었을 때 괴링이나 힘러와 같은 나치당의 2인자들이 모두 살아있는 상태가 된다면, 그때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리라.

    그렇기에, 거사를 치른다면 반드시 모두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을 때여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이번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히틀러와 수뇌부를 한 번에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다음으로는 독일 외부로 나왔을 때 처리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것은 알겠네만, 외부에서 처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그래야만 이 사건의 원인을 파르티잔의 공격이나 단순한 사고 등으로 위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 하긴, 그렇게 처리하는 편이 더 깔끔하겠어.”

    베크 장군은 이어지는 내 설명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원래 세웠던 계획대로 정권을 전복시킬 것이었다면 굳이 우리가 주동자임을 감출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면 거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치를 생각인가?”

    “현재 총통은 빈니차의 베어 볼프 총통 본부에 상주하며 전쟁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시한폭탄을 가지고 있다가 언제든 목표물들이 모두 총통 본부에 모였을 때 터트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적의 공습이든 파르티잔의 테러든 간에 뭔가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여서 발표하면 되겠지.

    물론 그로 인해 후방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겠지만, 그것은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만 하는 홍역과도 같은 것이리라.

    그런 내 설명에 베크 장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럼 우리가 자네를 어떻게 도와주기를 바라나?”

    “우선 일상적인 용품으로 위장할 수 있는 시한폭탄을 준비해주십시오. 그리고, 거사가 일어난 뒤에 군부가 하나로 결집할 수 있도록 각하께서 미리 뜻을 모아주십시오.”

    “···군부의 지지를 모아달라고?”

    “예. 만약 거사가 성공한다면, 정치권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겁니다. 그동안 저희는 전선을 굳건히 사수함과 동시에 이후의 전쟁 수행에 대한 권리를 사수해내야만 합니다.”

    애당초에, 내가 히틀러를 제거하고자 했던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작전권에 대한 간섭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빠르게 군부의 지지를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내 말에 베크는 의심 어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자네··· 제2의 루덴도르프가 될 생각인가?”

    제2의 에리히 루덴도르프라.

    1차 대전 당시, 사실상 독일 제국을 전권을 휘둘렀던 그를 언급했다는 것은 너도 군부독재를 할 셈이냐고 묻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그가 이렇게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내가 추구하는 작전권이라는 것도 외부에서 볼 때는 제한적인 형태의 군부독재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이에 대해서 구구절절 변명하는 대신, 베크 장군을 똑바로 바라보며 확실하게 말했다.

    “각하께서 어떻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믿지 못하실 테니까요.

    다만, 제가 하는 이 행동이 오직 조국의 승리를 위한 것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아직 상호간에 신뢰가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그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일까.

    베크는 내 다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고, 나는 그런 눈빛을 담담히 받으며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동안 불편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좋네. 그 일은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자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옆에서 우리들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프란츠 할더였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지지에, 고개를 돌려 할더에게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각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자네까지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방금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니면 혹시, 정말로 루덴도르프가 될 생각이었나?”

    “···그건 물론 아닙니다만.”

    얼떨떨해하는 내 표정에, 할더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뭐, 내가 돕는다고 해봤자 집단군 사령관들과 룬트슈테트 녀석한테 전화 한 통 하는 정도가 전부일 테지만 말일세.”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한 할더는 베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그 시선을 눈치챈 베크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 알겠네. 그렇다면 나도 할더, 이 친구를 봐서라도 자네를 한번 믿어보도록 하지. 부디 자네의 말이 진심이길 바라겠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지지를 얻어낸 나는 베크와 악수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저택을 나서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전용차에 몸을 실었다.

    “각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다시 참모본부로 돌아가면 되겠습니까?”

    “아니. 베를린의 빌헬름 거리로 가주게.”

    하지만 나는 참모본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대신, 내가 향한 곳은 바로 알베르트 슈페어가 기다리고 있는 군수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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