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77화 (77/157)

77화. 검은 오케스트라 (4)

1943년 5월 4일, 저녁.

업무상의 이유를 핑계로 베를린에 온 나는 카나리스 제독이 알려준 주소를 찾아서 시내를 걸었다.

“이 주소대로면··· 여기인가.”

그렇게 쪽지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제법 부유하지만 한적한 동네의 작은 주택이었다.

내가 주택 앞에 도착하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한 남자가 안에서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사복을 차려입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자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바로, 내가 몇 번이고 사진으로 보았던 카나리스 제독이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각하.”

“감사합니다.”

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카나리스 제독은 몇 겹으로 된 잠금장치를 재빨리 걸어버렸다.

“보안이 철저하시군요.”

“그게, 최근 들어서 게슈타포 놈들이 저를 의심하기 시작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는 저희 아프베어만이 사용하는 안전가옥인 데다가, 설마 원수 각하께 미행이 붙었을 리는 없으니까요.”

“···그렇습니까.”

나는 카나리스 제독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쪽에 위치한 응접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은 나는 그제서야 카나리스 제독의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회색 정장에 넥타이까지 사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그는 언뜻 보기에는 잘나가는 중년의 사업가와 같은 차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빌헬름 프란츠 카나리스 제독이라···.’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비록 전후의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서 그가 검은 오케스트라와 협력해 나치 정권을 전복하고자 했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카나리스 제독이 어떤 이유로 쿠데타에 참가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시 중에도 계속 영국의 첩보기관인 MI6와 접촉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목적은 아마도 이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일 터.

그렇다면 카나리스 제독은 내부의 혼란으로 패배하는 일을 막기 위해 나치 고위층만을 제거하자는 내 주장에도 동조할 가능성이 높으리라.

내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나를 가만히 응시하던 카나리스 제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각하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후···. 솔직하게 말해서, 지난 한 달 동안 저희는 아프베어의 정보원들을 동원해서 각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래서 당신들이 조사한 결과는 어떻습니까?”

사실 이런 것쯤은 검은 오케스트라와 접촉하는 순간부터 모두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러나 태연한 내 반응에, 카나리스 제독은 더욱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놀랍게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도대체 왜 히틀러를 제거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의 조직과 계획에 대해서 어떻게 알아냈는지까지 아무것도 말입니다.”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검은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내가 히틀러를 제거하고자 하는 것도 전적으로 회귀 전의 지식 때문이었으니까.

“그러니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당신을 직접 만나서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우리에 대해서 알아낸 것입니까?”

그러나 언제까지고 이렇게 모든 것을 비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법.

저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카나리스 제독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놓아야 할 터였다.

‘젠장, 곤란하군. 그렇다고 내가 회귀했다는 것을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잠시 고민한 끝에, 내가 내놓은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실, 구데리안 장군과 만슈타인 원수을 통해서 당신네 조직에 대한 얘기를 살짝 흘려들었소.”

이 무렵, 검은 오케스트라는 구데리안과 만슈타인을 자신들의 계획에 포섭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 접촉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둘은 발키리 계획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였고, 나 또한 이들과 충분히 접점이 있었으니 이렇게 대답하면 딱히 의심받지는 않을 터.

“···구데리안 장군과 만슈타인 원수께서 계획을 입밖에 말씀하셨단 말입니까?”

“걱정 마시오. 그들도 당신들에게 해가 될만한 일은 일체 하지 않았으니. 다만, 내가 당신들에게 동조하려 하니 조금 정보를 주신 것뿐이오.”

“흐음···. 그렇습니까.”

역시 내 예상대로 카나리스 제독은 약간 인상을 찌푸렸을 뿐, 그들을 통해서 정보를 얻었다는 내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저희에게 접근한 경로도 확실하고 지금까지의 행동을 미루어봐도 각하께서 진심으로 저희의 계획에 동조하고자 하시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알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오.”

나는 그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카나리스 제독의 추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각하의 생각에 대해서는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나치의 고위층만을 제거하는 것으로 정말 충분하리라 생각하십니까? 게다가 슈페어 장관은 아마 각하의 계획에 동참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글쎄,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카나리스는 간단히 수긍해버리는 내 대답에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오히려 그에게 반문했다.

“그렇다면 제독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당신네들의 계획대로 정말 나치를 전복하고 신정권을 세우면, 그럼 영국과 미국이 좋다고 우리와 강화해줄 것 같소? 처칠이 정말로 그렇게 약속한 거요?”

“그건 아닙니다만, 처칠 총리는 반공주의자인 만큼 우리와의 전쟁을 빨리 끝내려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들의 너무나도 안일하고 구시대적인 국제 감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혹시 그 얘기는 들으셨소? 처칠이 ‘만약 히틀러가 지옥을 침공한다면 나는 악마에 대한 지지 연설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 말이오.”

“···하지만 나치를 전복하면 얘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글쎄, 적어도 올해 초에 영국과 미국놈들이 했던 카사블랑카 회담에 따르면 연합국 놈들은 ‘이 전쟁을 추축국의 무조건 항복을 통해서만 종결한다.’고 합의했소.

당신들이 신정부를 세운다고 해서 얘기가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소만.”

“······.”

내 말에 카나리스 제독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마 그는 해외 방첩국의 국장을 맡고 있는 몸인 만큼,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잠시 침묵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들고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각하의 계획대로 하면 뭔가 다를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지.”

“하지만 방금 전에는 카사블랑카 회담을 언급하면서 연합국 놈들은 결코 우리와 강화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나는 놈들이 결코 우리와는 강화하지 않으리라고 말한 것이 아니오. 다만, 당신네들의 계획처럼 거저 전쟁을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뿐이지.”

나는 아직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독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시오. 당신의 말대로 영미와 소련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태생적인 이유로 친하게 지낼래야 지낼 수 없는 사이요.

그런데 저런 이들이 지금은 동맹을 맺고서 함께 싸우고 있지. 그게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오?”

“그야··· 나치 때문 아닙니까?”

“그럼, 나치가 아니라 다른 정권이었으면 저들이 독일을 가만히 뒀을 것 같소? 유럽 대륙이 통째로 단일 국가의 지배하에 놓였는데도?”

사실, 유럽의 역사는 절대적인 강자가 하나 나타나면 모두 합심해서 그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던가.

다만 이번에는 그 대상이 우리 독일이었고, 그로 인해서 소련과 미국, 영국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세 나라가 손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억지로 맺어진 저들의 동맹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다.

과거, 적백내전을 몸으로 겪었던 스탈린은 언제나 영국과 미국이 언제든지 자신을 배신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었고, 이는 영미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끝까지 싸우자고 굳게 협약을 맺어도 결국 한쪽이 먼저 빠져나가면 나머지 이들도 손을 뗄 수밖에 없지.’

그러니, 만약 소련이 먼저 우리와 강화를 맺어버리면 영미의 입장에서는 소련이 어부지리를 취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와의 전쟁을 중단할 수밖에 없을 터.

상황이 그렇게 전개된다면 영국과 미국, 독일, 소련이 3강 구도를 형성한 채로 이 전쟁을 끝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그것이 내가 고민 끝에 찾아낸, 독일이 패망하지 않는 유일한 시나리오였다.

“···제 계획은 이렇습니다만, 제독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후···. 사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각하께서 어째서 나치의 고위층만을 제거하자고 말씀하셨는지는 이제 이해가 좀 가는군요.”

“예, 쿠데타가 성공하더라도 양쪽에게서 강화를 받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패망할 테니까요.”

사실 내가 히틀러를 제거하고자 하는 이유도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살아서 사사건건 전쟁에 개입하는 한 우리 독일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내 말에 한참 동안 고민하던 카나리스 제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일단 각하의 계획이 다 옳다고 가정해고 얘기해봅시다. 그럼, 나치 고위층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정말로 정권을 주도할 수 있는 겁니까?”

쿠데타의 성공 이후라.

사실 이 부분만큼은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애당초에 쿠데타라는 것은 얼마나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든지 간에 결국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카나리스 제독의 물음에 이렇게밖에 답할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나치 고위층을 제거하는데 성공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역으로 진압당해서 실패할지도 모르지요.”

“······.”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독일은 전시상태에 놓여있는 만큼, 쿠데타를 두고 우리끼리 내전을 벌이기보다는 우선 이 전쟁을 먼저 끝내기로 합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카나리스 제독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후··· 일단은 알겠습니다. 각하께서 오늘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제가 베크 장군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소.”

나는 제독과 굳게 악수를 나눈 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나에게 짧은 전보가 하나 도착했다.

그것은 바로 베크 장군이 보낸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