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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74화 (74/157)

< 74화. 검은 오케스트라 (3) >

독일 베를린의 한복판, 티르피츠퍼 거리 76/78번지.

이곳에는 란드베어 운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4층짜리 건물이 하나 서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관공서처럼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이 건물은 사실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 직할의 방첩 기관인 아프베어(Abwehr)의 사무실이었다.

그런 비밀스러운 건물에서 해군 장교복을 입은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의 정체는 바로 아프베어의 수장, 빌헬름 프란츠 카나리스 제독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각하!”

“그래, 자네들도 고생하게.”

1943년 5월 2일 저녁.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시간에 퇴근길에 나선 카나리스 제독은 건물 앞에 준비되어 있던 관용차에 올랐다.

“자, 출발하세.”

“그곳으로 가면 되겠습니까?”

“그래.”

카나리스를 태운 차량은 늘 가던 길을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를린 시내를 벗어나자 운전수는 핸들을 갑자기 반대로 꺾더니, 베를린 외곽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차량은 조용한 주택가 구석에 위치한 어느 저택 앞에 멈췄다.

그곳은 바로 검은 오케스트라의 수장인 루드비히 베크의 집이었다.

“수고했네.”

“아닙니다. 천천히 일 보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늘 고맙네.”

차에서 내린 카나리스는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현관으로 들어서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그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베크 장군과 할더가 먼저 자리에 앉아서 카나리스 제독을 기다리고 있었다.

“왔군. 자리에 앉게.”

“예.”

그렇게 카나리스까지 세 사람이 모두 모이자, 베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카나리스 제독까지 왔으니 슬슬 얘기를 시작해보도록 하지. 그래, 자네들은 그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자라. 따로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누구를 의미하는 건지는 명확했다.

왜냐하면, 지난 한 달 동안 검은 오케스트라에서 언급되고 조사한 것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라··· 정말 이상한 사람이란 말이지.’

카나리스 제독은 의문의 그 남자, 파울루스 원수에 대해서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방첩국장인 그가 보기에도 파울루스 원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카나리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그는 의문의 여지가 없이 친나치 행보를 보였으며 히틀러의 총애를 받아왔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검은 오케스트라의 구성원과 발키리 계획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으며, 심지어 우리의 거사에 동참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어떻게 우리에 대해서 알아냈단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왜 우리의 계획에 참여하려 한단 말인가?

‘베크의 말에 따르면, 파울루스는 히틀러가 살아있는 한 이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지만··· 그래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군.’

사실, 카나리스 제독도 파울루스 원수의 말 자체에는 공감할 수 있었다.

외국의 사정과 국제 정세에 능통한 그가 보기에도 지금 독일이 치르고 있는 이 전쟁은 분명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파울루스 원수는 이 전쟁을 초기 단계부터 기획한 데다가 지금까지 독일이 놀라운 승리를 거두도록 기여한 최고의 공신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그가 이제와서 갑자기 독일의 패망을 걱정하면서 히틀러를 제거하려고 한다고?

“···두 사람 모두 대답이 없군.”

“아,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느라.”

“아닐세. 나도 자네의 그 심정을 이해하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카나리스는 베크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파울루스의 정체와 목적에 대한 것은 지금 여기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건 다음에 직접 만나서 확인해보면 되겠지.’

그럼, 지금 따져봐야 할 것은 그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한 제안에 대한 것일 터.

그렇게 판단한 카나리스는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우선, 지난 한 달 동안 저희 방첩국에서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어떤 방면에서도 파울루스 원수가 우리에 대해서 알아내거나 접촉할만한 접점은 없었습니다.”

“역시 그랬군. 이쪽도 마찬가지일세. 검은 오케스트라에 협력 중인 인원들을 다 조사해봤지만 별다른 용의점은 나오지 않더군.”

“그럼 차라리, 파울루스 원수에 대한 것 대신 그가 한 제안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가 한 제안에 대해서?”

카나리스는 반문하는 베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파울루스 원수는 발키리 작전과 쿠데타 대신, 나치 고위직만을 제거하자고 제안했다던데, 각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처음에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네. 물론 그의 말대로 한다면 발키리 계획보다 성공할 확률은 높아지겠지만, 그렇게 거사를 이룬다 한들 나치 정권을 몰아내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하지만, 최근 국내외의 정세와 히틀러의 행보를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네.

그자의 말대로 나치 고위층을 제거한 뒤 이들이 완전히 바뀐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협력할 수도 있다고 말이야.”

베크의 말에 카나리스 제독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나치 고위층을 제거한다. 그렇다면, 그 뒤에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만약 파울루스 원수의 말대로 슈페어 장관이 총리가 된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정권이 되어서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

‘···도무지 모르겠군. 파울루스가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무엇을 계획하는지도 말이야.’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무엇 하나도 감히 예상할 수 없는 일들뿐이었다.

그렇기에, 카나리스는 결국 고민하기보다는 직접 부딪혀보기로 결단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각하의 뜻이 그러시다면 제가 한번 파울루스 원수를 만나보겠습니다.”

*****

1943년 5월 3일.

빈니차에 위치한 베어 볼프 총통본부.

나는 오늘도 언제나와 같이 히틀러에게 모든 전선의 상황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우선, 며칠 전에 연합군의 공세가 시작되었던 트리폴리 쪽의 전황입니다. 전투 개시 당시에는 양쪽에서 연합군이 협공을 하는 바람에 상황이 어려워지리라 예상했습니다만, 서쪽의 미군이 의외로 쉽게 무너지면서 동시에 영국군도 격퇴된 상황입니다.”

“하하! 역시, 미국의 촌놈들이 전쟁이 뭔 줄이나 알겠소. 그래서 지금 트리폴리는 어떻게 되었소?”

“영국 8군은 이미 벵가지까지 물러났으며, 미군은 버티다가 점점 밀려나서 이제는 카세린 언덕 너머까지 퇴각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트리폴리의 아프리카 군단과 튀니스의 5기갑군이 사실상 연결되었습니다.”

현재, 북아프리카 일대의 전황은 우리 추축군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비록 동쪽으로 물러난 영국군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사실상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영미 연합군을 완전히 튀니스 서쪽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니 영국 8군이 재보급을 받아서 다시 공세에 나서거나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지 않는 한, 튀니지와 트리폴리는 무난하게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히틀러는 흡족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하하, 정말로 놀랍군. 좋소, 그럼 계속해서 동부전선도 말해보시오.”

“알겠습니다. 우선 북부집단군 쪽부터 말씀드리자면, 레닌그라드 일대는 일종의 대치 상태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처음에 기습적으로 시작되었던 2차 레닌그라드 전투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완전히 소모전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끝없이 병력을 갈아 넣으며 밀어붙이던 소련군은 결국 어느 순간 공세를 중단하고 현재의 포위망을 고수하기 시작했다.

“이는 아마도 북쪽의 무르만스크 랜드리스 루트를 확보한 것만으로 만족하고, 병력을 온존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중부집단군과 남부집단군의 보고는 이전과 다른 것이 없었다.

그렇게, 모든 브리핑을 마치자 그 후에도 한동안 북아프리카 일대와 동부전선의 지도를 유심히 살피던 히틀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놀랍군. 사실 영미 연합군 놈들이 갑자기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상륙했을 때만 해도 크게 걱정했소만, 벌써 이렇게 상황을 정리해버리다니.

역시, 할더를 내치고 파울루스 원수를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한 것은 내가 그동안 했던 인사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 아닌가 싶소.”

“···하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아니, 아니오. 아마 할더가 아직 참모총장을 맡고 있었더라면 지금쯤 오만 핑계를 대면서 패배와 후퇴를 변명하기에 바빴겠지.”

그렇게 한참 동안 할더를 까내리며 나를 치하하던 히틀러는 웃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아무튼 뭐··· 지금까지 적들의 공세를 물리친 것은 좋소만, 그럼 이제 슬슬 우리가 반격할 차례 아니겠소?”

“반격···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결국, 전쟁이란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고 방어만 해서는 승리할 수 없는 법이지 않소.

그러니 이렇게 아군이 승리를 거두고 적이 약해졌을 때 반격에 나서야 하지 않겠소? 내 생각으로는 연합군 놈들을 밀어붙여서 프랑스령 북아프리카를 되찾았으면 좋겠소만.”

나는 갑작스러운 히틀러의 말에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또 저놈의 정복욕이 도진 건가.’

하긴, 비록 아군이 승리했다지만 영토로만 따지고 보면 레닌그라드에서도, 북아프리카에서도 땅을 빼앗긴 것뿐이었다.

그러니 히틀러로서는 전황이 나아진 지금 어떻게든 이것을 되찾고 싶은 것이리라.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아군은 간신히 적의 공세를 막아내었을 뿐, 반격에 나설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욕심에 가득찬 히틀러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물론 각하의 말씀도 맞습니다만, 현재 북아프리카에 주둔 중인 아군은 반격에 나설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한동안은 병력과 물자를 축적하면서 방어선을 굳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반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흠, 이번에도 병력이 부족한 것이 문제인 거요?”

“···사실 그렇습니다.”

그러자 히틀러는 다시 한번 지도를 훑어보더니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그곳은 바로, 만슈타인 원수와 발터 모델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카프카스 일대의 남부 집단군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직까지 별다른 전투도 치르지 않고 있는 남부집단군에서 병력을 차출해 북아프리카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소?”

< 74화. 검은 오케스트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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