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73화 (73/157)
  • < 73화. 트리폴리 전투 (3) >

    1943년 5월 1일.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70km 거리에 위치한 소도시, 엘 카사바트 일대.

    이곳의 작은 언덕 위에서, 검은 베레모를 눌러쓴 영국인 신사가 저 멀리 사막에 펼쳐진 독일군 방어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여우 같으니라고. 벌써 참호망과 지뢰밭을 만들어 놨구만.

    저 방어선에 배치된 독일군 부대는 어제 보고서에 적혀있던 게 전부인가?”

    “예,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엘 알라메인에서 지겹도록 봤던 놈들이니, 정찰부대가 잘못 파악하진 않았을 겁니다.”

    부관의 보고를 들은 몽고메리는 저 방어선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신의 숙적, 롬멜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흥! 그럼 독일놈들의 주력은 다 이쪽으로 와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망할 놈 같으니라고··· 지더라도 우리에게 당하지는 않겠다는 심보인 건가.”

    현재, 몽고메리가 지휘하는 영국 8군이 처한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들은 엘 알라메인에서부터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3주의 여정 동안 늘 보급과 물자 부족에 허덕여야 했으며,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롬멜의 기습적인 반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곳 엘 카사바트에 도달한 지금의 영국 8군은 공세 지속능력이 거의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젠장, 사실상 기회는 한 번뿐이라고 생각해야겠군.’

    그렇기에 지금 영국 8군에게는 기회를 기다릴 여유도, 두 번 도전할 여력도 없었다.

    단 한 번의 공세로 저 방어선을 뚫어내고 트리폴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다시 벵가지나 토브룩까지 퇴각해야 할 판국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하.”

    “어쩌긴 뭘 어쩌나. 당연히 독일놈들을 쳐부숴야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고메리는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서쪽에서 라이더 소장이 이끄는 미군도 함께 협공을 가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미군 놈들이 좀 못 미덥긴 하지만, 그래도 롬멜의 주력부대는 다 이쪽에 있으니 후방을 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렇게 판단한 몽고메리는 이번 기회에 승부를 걸기로 결단을 내렸다.

    “부관, 예정대로 5시 30분에 공세를 개시하도록 전달하게.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사막의 여우를 잡는다!”

    “예! 알겠습니다!”

    *****

    그리고 그날 오전 5시 30분, 영국 8군은 압도적인 야포 세례로 공세를 시작했다.

    비록 공군의 도움은 받을 수 없었지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포탄의 비는 철조망과 지뢰로 이루어진 이 악마의 정원을 개척하기에 충분했고, 그날 오후 15시에는 보병과 전차를 투입할 수 있었다.

    “각하, 보고입니다! 현재 51사단이 북쪽에서 지뢰밭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좋아! 개척된 통로로 계속해서 병력을 밀어 넣어라! 어차피 기회는 이번뿐이다!”

    “예!”

    몽고메리는 예상보다도 빠르게 뚫린 독일군의 방어선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처럼 저놈들도 사정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군. 저 방어선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실상은 대충 급조한 것이겠지.’

    게다가 지금쯤 트리폴리 반대편에서는 미국놈들이 열심히 후방을 공격하고 있겠지.

    그쪽에는 이렇게 급조된 방어선조차도 없을 테니, 여기보다도 훨씬 더 빨리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을 터였다.

    ‘이거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트리폴리를 함락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몽고메리는 허무하게 무너져가는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바라보며 홍차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그러나 잠시 뒤, 참모 하나가 방으로 뛰어들어와 믿기 어려운 말을 꺼냈다.

    “가, 각하! 라이더 소장으로부터의 전언입니다만···.”

    “라이더 소장이? 그래, 뭐라고 하던가. 혹시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한 건가?”

    “그게··· 트리폴리를 공격하던 부대가 전멸하고 현재, 독일군의 추격을 피해서 퇴각 중이라고 합니다.”

    “······.”

    너무나도 충격적인 보고에, 몽고메리는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트려 버렸다.

    그러나 사령부에 모여있는 이들 중 그 누구도 바닥에 떨어져 산산 조각난 찻잔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럴 리가 없네. 가서 다시 한번 확인해보게.”

    “알겠습니다.”

    몽고메리는 참모를 다시 무전실로 돌려보낸 뒤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작전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미국놈들이 패퇴했다고?’

    설마, 아무리 미군놈들이 약하다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패배하고 격퇴당했겠는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몽고메리의 마음속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피어 올랐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상황을 가정하고 다시 지도를 바라보자, 몽고메리의 손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회의실로 돌아온 참모장교는 어두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보고서를 읽었다.

    “각하, 다시 한번 확인해 본 결과, 미군은 현재 사브라타에서 주와라까지 물러났다고 합니다. 다만, 독일군의 추격이 멈췄기에 현재 위치에서 계속 대치하겠다고 합니다.”

    “젠장! 빌어먹을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도대체 2만 명이 넘는 병력을 가지고 어떻게 패퇴할 수 있단 말인가!”

    “···일단 저쪽의 보고에 따르면, 독일군의 신형 전차 때문에 도저히 진격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신형 전차라고? 흥! 별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몽고메리는 한동안 미군과 라이더 소장에 대해서 온갖 쌍욕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전세를 바꿀 수는 없는 법.

    이제는 그들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미군 없이도 트리폴리를 계속해서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공세를 중단하고 후일을 기약할 것인가?

    “···참모장, 현재의 전세는 어떤가?”

    “일단은 아군이 돌파하는 형세입니다만, 아무래도 저희가 공격자의 입장인 만큼 아군의 피해가 좀 더 빨리 누적되고 있습니다.”

    “그럼, 이런 공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겠나?”

    “아무리 길게 잡더라도 며칠 이상 지속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후우··· 빌어먹을 미국놈들···.”

    참모장의 대답에 한참을 고민하던 몽고메리는 결국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일단 공세를 중단하고 최대한 병력을 온존하면서 퇴각하도록 하게. 그리고, 어떻게든 현재 위치에서 버텨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명령을 내리면서도, 몽고메리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현재의 위치를 지켜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급 부족에 시달리는 동안에도 트리폴리의 독일군은 계속 증원되고 강해질 테니까.

    ‘···결국, 벵가지까지 퇴각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몽고메리는 트리폴리에서 900km 떨어진 벵가지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그 무렵, 워싱턴 D.C.에 위치한 백악관.

    미 육군 참모총장 마셜은 어두운 표정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손에는 방금 전, 북아프리카 상륙군으로부터 날아온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후··· 제기랄, 이걸 도대체 어떻게 보고한단 말인가.’

    그러나 안 좋은 소식이라고 해서 보고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법.

    결국, 대통령 집무실에 도착한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방안에 들어섰다.

    “어서 오시오, 장군.”

    “···예, 각하.”

    “그럼 어디 한번 말씀해 보시오. 북아프리카 전선은 어떻게 진행 중이오? 트리폴리는 함락되었소?”

    마침 집무를 보고 있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서류에 서명을 마친 뒤, 마셜에게 물었다.

    마셜 장군은 그런 루즈벨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송구합니다만, 그리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현재 트리폴리 공격에 나섰던 9사단, 34사단이 큰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고 합니다.”

    “···그렇소?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요?”

    “그게, 사실상 전멸에 가깝습니다.”

    전멸이라는 말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렇게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정적이 흐르다가 혼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루즈벨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장군도 아시겠지만, 나는 군사에 관해서는 사실상 문외한이나 다름없소. 그러니 내 당신에게 묻겠소. 장군께서는 가탄없이 솔직하게 답해주시오.”

    “···예.”

    너무나도 무거운 대통령 각하의 목소리에, 마셜은 잔뜩 긴장한 채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분명 나는 이번 전투에서 아군이 압도적인 병력 우위라고 보고받았소만, 그런데도 우리 부대가 전멸을 해버렸군.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평가하면 좋겠소?”

    “각하께서 바라시는 대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이번 전투는 교전비가 1대3조차도 되지 않는 졸전이었습니다.”

    “후··· 1대3 이하라. 이래서야 원, 우리 애들이 정말로 전쟁을 할 수는 있겠소?”

    회의감에 젖은 루즈벨트의 목소리에, 마셜은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각하. 비록 저희가 이번에 참패를 겪긴 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의 과정이었습니다.”

    “시행착오라. 매번 이런 희생이 반복된다면 서유럽 상륙은 힘들 것 같소만.”

    “만약 이번의 교훈을 살려서 전술과 지휘 체계, 무기를 개선한다면 다음번에는 이런 참패가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번만 더 저희 병사들을 믿고 기회를 주십시오.”

    “흠···.”

    마셜의 필사적인 변론에, 루즈벨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애당초에 이번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은 제2 전선을 빨리 만들어 달라는 소련의 압박 때문에 급하게 참전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소련군은 레닌그라드 일대에서 제법 선전하면서 독일군을 밀어붙이고 있었고, 그로 인해 다시 개통된 북해 항로를 통해 랜드리스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불만이 줄어든 상황.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굳이 병력을 증파해가면서까지 북아프리카 전선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하지만, 이미 독일군과의 교전이 시작되어버린 이상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단 말이지.’

    그러나 이미 미군은 북아프리카 일대에 발을 딛어버렸다.

    그럼 이제는 이 일대를 완전히 점령하던가, 아니면 아예 발을 빼야만 전역이 종결될 터.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루즈벨트는 다시 마셜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셜 장군, 그럼 얼마만큼의 병력을 더 투입하면 북아프리카 일대의 독일군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겠소?”

    “···1개 군단이면 충분합니다.”

    “1개 군단이라. 그만큼의 병력을 투입하면, 서유럽 상륙작전은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는 거요?”

    “어떻게든 해내겠습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답하는 마셜의 대답에, 루즈벨트는 한숨을 내쉬며 결단을 내렸다.

    “좋소, 그럼 장군을 믿고 증원을 허락하리다. 이번에는 부디 발전한 미군의 모습을 보여주시오.”

    “···알겠습니다.”

    < 73화. 트리폴리 전투 (3)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