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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72화 (72/157)
  • < 72화. 트리폴리 전투 (2) >

    1943년 4월 25일, 트리폴리에 위치한 독일 아프리카 군단 사령부.

    롬멜은 누군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소이까. 결국, 튀니지로 후퇴하는 것은 허락받지 못한 게로군.”

    “죄송합니다. 총통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트리폴리만큼은 꼭 사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지라···.”

    “아니, 아니오. 파울루스 장군께서는 최선을 다해주셨소. 총통께서는 이탈리아와의 외교 관계 때문에라도 트리폴리를 포기하기 어려웠을 테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롬멜은 파울루스의 사과에 손사래를 쳤다.

    사실, 최악의 경우 직위 해제까지 각오했던 그로서는 트리폴리까지의 퇴각을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트리폴리와 튀니지를 사수하는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튀니지와 트리폴리가 각개 격파를 당할 테니, 최대한 빨리 영국 8군을 섬멸하고 아르님 상급대장의 5기갑군과 합류하셔야 합니다.”

    “이것 참, 상황이 곤란하게 되었군.”

    사실, 지금까지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현재 롬멜이 보유한 전력은 독일 15기갑사단, 21기갑사단, 90경보병사단, 거기에 이탈리아 아리에테 기갑사단, 리토리오 기갑사단까지 총 5개 사단이었다.

    그에 반해, 그들을 쫓아온 영국 8군은 마찬가지로 5개 사단을 보유하고 있긴 했지만, 이들 중 2개 사단은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지는 뉴질랜드, 인도 사단인 데다가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충분히 싸워볼 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럴 때 저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단 말이지···.’

    하지만 문제는 튀니스 남부에서 멈춰있던 연합군이 트리폴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르님 상급대장의 보고에 따르면 저들의 전력은 최소 3개 사단 정도는 될 터.

    비록, 미군이 영국군에 비해서 전투력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전력 차가 8대5까지 벌어져 버리면 반격은커녕 트리폴리를 사수하는 것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도를 바라보며 고민하던 롬멜은 결국, 파울루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상황인 줄은 알고 있소만, 그래도 혹시 증원을 좀 보내줄 수는 없겠소?”

    그러나 필시 거절당하리라 생각했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파울루스 장군은 흔쾌히 답했다.

    “안 그래도 증원 부대를 트리폴리로 파견하기로 이미 결정했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그럼 증원 규모는 어느 정도요?”

    “최근 신설된 504 중전차 대대를 보내기로 되었습니다.”

    “중전차 대대라···.”

    증원을 보내준다고 해서 최소한 1개 사단은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롬멜은, 중전차 대대라는 말에 고민에 빠졌다.

    분명 중전차 대대가 파견된다면 큰 힘이 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울루스 장군은 그런 롬멜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각하. 적어도 미군이나 영국군을 상대로라면, 티거 전차는 무적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입니다.”

    “···알겠소. 장군의 말을 믿어보리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트리폴리 항구에 504 중전차 대대를 실은 수송선이 도착했다.

    *****

    1943년 5월 1일.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약 60km 거리에 위치한 소도시, 사브라타.

    미 육군 제9사단 소속의 전차장, 윌리엄 베이커 중사는 그의 셔먼 전차 위에 서서 저 멀리 떨어진 독일군 방어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차병 하나가 해치 밖으로 몸을 내밀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베이커 중사님, 중사님은 독일군과 교전해본 적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럼 독일군은 어떻습니까? 정말로 그렇게 강합니까?”

    베이커 중사는 순진하게 웃으며 묻는 전차병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전차병 중, 한 달 전 튀니지를 공격했을 때의 멤버는 아무도 없었다.

    과연 이런 신병들을 데리고 저 지독한 독일놈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베이커 중사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후··· 독일군이라. 정말 괴물 같은 놈들이지. 특히, 기갑부대와 대공포부대는 마주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게 좋을 거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훈련소에서는 저희 셔먼 전차로 격파하지 못할 독일군 전차는 없다고 배웠는데 말입니다.”

    베이커 중사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의 신병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아직 단 한 번도 실전을 치뤄보지 못한 저들에게는 두려울 게 없으리라.

    사실 그 자신도 저 친구들처럼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호되게 당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베이커는 별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자신감만큼만 실전에서 똑바로 해줬으면 좋겠군.”

    “하하, 물론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 헤드폰 너머로 기다리던 무전이 왔다.

    “브라보 1으로부터 각 차량에게. 지금 즉시 작전을 개시한다. 각 차량은 이동하도록.”

    “브라보 4, 확인.”

    1호차에 답신을 한 베이커는 포탑에서 전차장 석으로 내려갔다.

    전차 내부로 들어가자 후끈하게 달궈진 공기가 그를 반겼지만, 아무리 더워도 몸을 내밀고 있을 수는 없는 법.

    그렇게 열기를 참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은 베이커는 곧장 지시를 내렸다.

    “빌, 우리가 네 번째로 이동한다! 3호 차가 이동하면 그 뒤를 바로 따라가도록.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것 정도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예! 알겠습니다!”

    잠시 뒤, 그의 전차가 천천히 출발하자, 베이커 중사는 전차장 해치의 페리스코프를 통해서 사주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독일놈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당할까 보냐.’

    그리고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어느 순간 그의 시야에 저 멀리 서 있는 사각형의 물체가 들어왔다.

    ‘···설마 적 전차인가?’

    베이커 중사는 잠시 그 물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저 각지고 납작한 차체에 길쭉한 포신까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것은 독일군의 4호전차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확신한 베이커는 재빨리 무선을 연결하고 입을 열었다.

    “여기는 브라보 4, 3시 방향에 적 전차로 추정되는 물체 확인. 지시 바란다.”

    “브라보 1, 확인.”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베이커가 페리스코프 너머로 그 전차를 노려보고 있을 때, 무전기 너머에서 소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브라보 1에서 각 차량에게. 3시 방향에 있는 전차를 일제 사격한다.”

    그 지시 한마디에, 베이커의 4호차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브라보 4, 확인. 스티브, 철갑탄!”

    “철갑탄 장전 완료!”

    “알렉스! 조준은 끝났나?”

    “예, 이미 조준 중입니다!”

    베이커는 스코프 너머로 그 전차를 노려보면서 외쳤다.

    “발사!”

    쾅! 콰광!

    연이은 폭음과 동시에, 브라보 소대의 셔먼 전차들이 일제히 75mm 포탄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 다섯 개의 하얀 불빛이 곡선을 그리며 그 성냥갑같이 생긴 전차에 착탄했다.

    “하하하, 명중입니다!”

    “5발이 동시에 착탄하다니, 장관이군요.”

    이제 저 연기가 가시면 저 전차는 활활 불타오르고 있으리라.

    그래, 우리가 독일놈들의 전차를 격파한 것이다.

    베이커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착탄지점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러나 잠시 뒤, 폭연이 가시자 그 자리에는 그 전차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멀쩡한 모습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그 모습을 본 베이커 중사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 전차장님? 저 전차, 아직 움직이는 것 아닙니까?”

    “중사님? 중사님?”

    그러나 베이커 중사는 곧장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정리했다.

    “···당황하지 마라! 우연히 빗나갔을 뿐이다! 다시 철갑탄을 장전하고 발사하도록! 알렉스, 침착하게 다시 조준해라! 그리고 빌, 적 전차 왼쪽으로 우회한다!”

    “예!”

    베이커의 지시에, 전차병들은 덜덜 떨면서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베이커의 304호 셔먼은 노지를 달려서 적 전차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적 전차는 이쪽을 향해서 포신을 돌리고 있었다.

    ‘젠장, 이제 거리는··· 거의 500인가. 이 정도면 먼저 쏘는 쪽이 이기겠어.’

    아마 저놈은 진즉에 장전을 끝냈겠지.

    그렇다면 저놈이 조준을 완료하는 것과 우리가 장전을 끝내는 것, 누가 빠르냐의 싸움이 될 터였다.

    “젠장, 스티브! 서둘러라!”

    “죄, 죄송합니다!”

    그러나 놈들이 미숙한 탓인지, 아니면 하느님이 도우신 덕인지 다행히도 이쪽이 한 발 더 빨랐다.

    “철갑탄 장전 완료!”

    “좋아! 알렉스, 발사해!”

    “발사!”

    현재 양측의 거리는 거의 400에 가까운 상태. 게다가 놈은 측면을 약간 노출하고 있으니 명중하기만 하면 반드시 관통한다.

    ‘제발, 맞아라!’

    그런 베이커 중사의 기도가 통한 덕일까.

    그의 셔먼 전차에서 날아간 포탄은 정확히 적 전차의 측면에 착탄했다.

    그러나, 그다음에 펼쳐진 장면은 베이커 중사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깡!

    “···어?”

    적 전차의 측면을 파고 들어가던 75mm 철갑탄은 마치 미끄러지듯이 그 자리에서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베이커 중사의 셔먼을 쫓아오던 적 전차의 주포가 그의 눈앞에서 멈춰 섰다.

    그 순간 베이커 중사는 겨우 알아차렸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이 상자처럼 생긴 전차는 베이커가 교본에서 배웠던 4호 전차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훨씬 크고 강력한 다른 무언가였다.

    “서, 설마···. 이게 그 호랑이인가?”

    *****

    그 무렵, 주와라에 위치한 동부 상륙군 사령부.

    찰스 W. 라이더 소장은 초조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승리 보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각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는 반드시 이길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보다 못한 참모장의 말에 라이더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이번에는 질 리가 없는 싸움이었다.

    적은 고작 5개 사단뿐이고, 우리는 양쪽에서 8개 사단이 협공을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몽고메리 장군의 전언에 따르면 대부분의 정예부대는 동쪽에 배치되어 있다고 하니, 설마 그의 부대가 당하지는 않으리라.

    ‘그래, 아무리 롬멜이 대단한 놈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압도적인 열세에 양쪽을 동시에 막지는 못하겠지.

    그리고 설령 막히더라도 그건 우리가 아니라 영국군 쪽 문제일 터. 그렇다면 트리폴리를 점령하지 못해도 나도 할 말이 있다.’

    라이더는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참모장교가 방으로 뛰어들어오며 말했다.

    “가, 각하! 트리폴리를 공격하던 기갑여단이 전멸했다고 합니다!”

    < 72화. 트리폴리 전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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