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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69화 (69/157)
  • < 69화. 튀니지 전투 (4) >

    1943년 4월 7일, 튀니지 서부 제프나 일대.

    불과 며칠 전에 이곳에 도착해 진지를 구축한 제21 대공포 연대 소속, 괴르너 하사는 쌍안경을 들여보다가 외쳤다.

    “온다! 지평선 너머에서 적 전차 다수 접근 중. 관측병, 거리부터 확인해!”

    “예! ···거리는 2000에 셔먼 5대, 스튜어트 7대까지 총 12대입니다!”

    “좋아, 1500까지 끌어들인 뒤 공격을 시작한다. 철갑탄 장전하고 사격 준비에 들어가도록!”

    “알겠습니다!”

    괴르너가 명령을 내리자, 그늘에 누워서 쉬고 있던 포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위치로 달려갔다.

    그동안 괴르너는 쌍안경으로 접근해오는 셔먼 전차들을 계속 주시하다가 말했다.

    “쯧. 아무리 날씨가 덥다지만 전쟁터에서 저렇게 몸을 내밀고 있으면 쓰나. 파이퍼, 저 미국 촌놈들한테 아흐트아흐트(88)의 맛을 보여줘라.”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제일 앞에 있는 셔먼부터 날리면 되겠습니까?”

    “그래. 어차피 경전차들은 고폭탄 화력이 비실비실해서 별 위협도 안 되니까, 셔먼 전차부터 우선 격파하도록.”

    “예!”

    괴르너의 지시에, 파이퍼는 스코프를 들여다보면서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손짓과 함께 거대한 8.8cm flak 36 대공포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리는··· 이제 1500 정도인가.’

    잠시 뒤, 스코프 안의 십자선이 저 멀리서 조금씩 다가오는 셔먼의 포탑 약간 위, 전차장의 근처에 안착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사실상 곡사에 가까운 탄도로 날아갈 테니, 전면 장갑에 딱 좋은 각도로 착탄 하겠지.

    “파이퍼, 조준은 아직인가?”

    “예! 끝났습니다!”

    그렇게 모든 조준을 마친 파이퍼는 힘차게 발사 레버를 당겼다.

    “발사!”

    투콰앙!

    요란한 굉음과 함께, 포진지 근처에 모래 구름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젠장··· 관측병, 착탄 확인해!”

    “예! 셔먼 한 대, 격파 확인했습니다!”

    “좋아, 계속 가자고!”

    “예!”

    파이퍼는 스코프 너머로 불타오르는 셔먼 전차를 바라보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전차장을 위해 마음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잠시 뒤, 전투가 시작된 지 약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파이퍼의 대공포 중대가 담당하던 협곡 입구는 불타오르는 전차의 잔해들로 가득 차 있었다.

    *****

    “각하, 5기갑군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방금 전, 제프나 방어선에서 튀니지로 진격하던 연합군을 격퇴하고 약 5000명을 사살 혹은 포로로 잡았다고 합니다!”

    “적의 사상자가 5000이라. 아군의 피해 규모는 어떤가?”

    “약간의 사상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사실상 피해가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정말 다행이군.”

    그 무렵, 빈니차의 베어 볼프 총통본부.

    나는 작전 참모차장 호이징거 상급대장에게서 보고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의 계획대로 적을 완전히 끌어들여서 섬멸했으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아군의 피해 없이 적을 쫓아낸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적의 규모가 3만이었으니, 이 정도 피해면 대부분의 부대가 전투 수행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봐야겠지. 그럼 한동안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겠군.’

    하지만 문제는, 이번 승리의 성과는 기껏해야 잠깐 동안의 시간 벌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알제와 오랑의 항구에서는 수송선들이 끊임없이 병사와 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었고, 연합군의 프랑스령 북아프리카 점령 작업도 언젠가 결국 끝이 날 터.

    그럼 그 뒤에는 거의 10만에 가까운 영미 연합군이 튀니지로 들이닥칠 텐데, 그때는 어떻게 튀니지를 지켜낼 것인가.

    ‘차라리 튀니지를 포기하면··· 아니, 그건 오히려 악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튀니지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북아프리카를 연합군의 손에 넘겨주면 그때부터는 프랑스 남부부터 이탈리아, 발칸반도까지 지중해 해안 전역이 연합군의 사정권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회귀 전에도 결국 튀니지를 지켜내지 못하는 바람에 연합군이 이탈리아에 상륙해서 거의 20개 사단이 이탈리아 전선에 묶여 있었지.

    그럴 바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튀니지를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병력을 가져올만한 구멍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재 동부전선은 북쪽의 레닌그라드부터 남쪽의 카프카스까지 어디 하나 병력을 빼낼 만한 틈이 없었고, 서부전선은 더 이상 병력을 차출하면 영국군의 상륙조차 막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총통이 지시한 징병 확대도 당장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정말 곤란하게 되었군.’

    그렇게 내가 병력 배치 현황표를 바라보며 한숨짓고 있을 때, 내 앞에 놓인 전화기가 울려 퍼졌다.

    나는 갑자기 걸려온 울리기 시작한 전화를 바라보다가 이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참모총장, 파울루스 원수일세. 무슨 일인가?”

    “각하. 지금 아프리카 군단 사령관, 에르빈 롬멜 원수께서 통화를 요청하고 계시는데 연결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롬멜 원수가 나에게?”

    나는 일면식도 없던 롬멜 원수의 통화 요청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내, 나는 그가 왜 지금 이 상황에서 전화를 걸었는지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좋네, 연결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수화기 너머에서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연결 되었소?”

    “예, 맞습니다. 제가 육군 참모총장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입니다.”

    “호, 드디어 목소리를 들어보는구려. 처음 뵙겠소. 내가 에르빈 롬멜이오.”

    “하하, 각하의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과연 롬멜은 무슨 말을 꺼낼 것인가.

    내가 그의 말을 기다려 주자, 롬멜은 곧바로 본론을 시작했다.

    “아무튼··· 나도 방금 들었소만, 지금 튀니지가 공격받고 있다지?”

    “예, 맞습니다. 현재 아르님 상급 대장이 지휘하는 3개 사단이 파견되어 튀니지를 방어하고 있습니다.”

    “···3개 사단이라. 내가 듣기로는 5기갑군이라 들었소만,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군.”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예비 병력은 항상 부족하지 않습니까.”

    내 말에 롬멜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우리 아프리카 군단을 물려야 하지 않소이까? 지금처럼 엘 알라메인에서 놀고 있을 바에는 차라리 튀니지를 지키러 가는 것이 나을 텐데.”

    사실 그의 말대로였다.

    현재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은 엘 알라메인 앞에서 교착상태에 빠져서 그저 물자만 툭내고 있을 뿐이니, 이들을 튀니지에 투입하는 것이 최선일 테지.

    “···그게 총통 각하께서 말씀하시길, 카이로와 수에즈 운하가 코앞인 상황에서 물러날 수는 없다고 하시더군요.”

    “후··· 역시 그랬구려.”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롬멜은 납득했다는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뒤, 롬멜은 조용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럼 참모총장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당신도 우리 아프리카 군단이 물러서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오?”

    그 말을 들은 나는 방금 전의 내 예감이 맞았음을 직감했다.

    역시, 롬멜은 히틀러의 명령을 무시하고서라도 병력을 퇴각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닙니다. 당연히 저는 아프리카 군단을 튀니지까지 퇴각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라도 나와 생각이 같아서 다행이군. 잘 들으시오, 장군. 나는 지금부터 아프리카 군단을 이끌고 튀니지로 향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그러자 롬멜은 오히려 놀랐다는 듯이 나에게 물었다.

    “놀라지 않으시는군. 설마 내가 이러리라고 예상하신 거요?”

    “그럴 리가요. 다만, 현재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지.”

    만약 롬멜이 독단적으로 히틀러의 명령을 어기고 퇴각해준다면, 엘 알라메인으로 향하는 보급 소요도 줄이고 튀니지도 방어할 수 있을 터.

    나는 감사하게도 먼저 나서준 롬멜을 위해서 최소한의 조치는 취해주기로 약속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하께서 퇴각하신 후에도 계속 북아프리카에서 지휘를 맡을 수 있도록 제가 총통 각하를 한번 설득해보겠습니다.”

    “···정말 고맙소.”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이 튀니지를 향해서 서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

    1943년 4월 12일.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의 그랜드 호텔에서는 북아프리카 상륙군 사령관, 로이드 프레덴탈 소장이 두 장의 보고서를 읽으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후··· 빌어먹을, 뭐 하나 계획대로 굴러가는 일이 없구만.”

    그의 앞에 놓인 보고서들은 바로, 튀니지를 향해 진군했던 동부 상륙군과 이집트를 사수하고 있던 영국 제8군으로부터 올라온 것이었다.

    - 1943/4/10 전투 결과 보고서

    튀니지 국경 인근, 제프나 일대에서 독일군의 기습으로 교전이 시작되었음.

    전투 결과, 약 5000명가량의 사상자와 포로가 발생하였으며 전차 100여 대가 파괴됨.

    이에 더 이상 진격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타바르카 항구 일대에서 대치 중.

    - 1943/4/11 영국 제8군 보고서

    금일 오전 8시경, 엘 알라메인 일대에서 아군과 대치 상태를 유지하던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서쪽으로 퇴각한 것을 확인.

    현재 적의 뒤를 쫓아 서쪽으로 진격 중이며, 토브룩도 버리고 퇴각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적의 목적지는 트리폴리 혹은 튀니지일 것으로 추정됨.

    “사막의 여우가 튀니지로 오고있다라··· 제기랄, 그래도 아군이 진격 중이니 이걸 기뻐해야 하나?”

    프레덴탈 소장은 자신의 기대와는 다르게 점점 꼬여가는 지도 위의 전황을 바라보면서 깊은 고민에 잠겼다.

    ‘···역시,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의 점령을 끝낸 뒤 병력을 집결시켜서 한 번에 튀니지를 쳐야 하나?

    아니, 그럴 거면 차라리 롬멜의 군대가 튀니지의 독일군과 합류하기 전에 공격하는 것이 낫지 않나.’

    정석적인 방법대로 모든 준비를 갖춘 뒤 공격하자니 적도 방비를 마칠 것 같고, 그렇다고 서둘러서 공격하자니 또 각개격파를 당할까봐 불안한 상황.

    그렇게 프레덴탈 소장이 고민하고 있을 때, 부관이 사령실로 들어와서 그에게 말했다.

    “각하, 찰스 W. 라이더 소장께서 각하와의 전화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프레덴탈 소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만만하게 튀니지로 진격했다가 패배한 주제에, 도대체 무슨 낯으로 전화를 요청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와 동시에, 프레덴탈 소장의 마음 속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래, 도대체 무슨 변명을 늘어놓을 지 한번 들어나 보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프레덴탈은 부관이 가져온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전화 받았소. 무슨 일로 전화하시었소?”

    그러나 시답잖은 변명이나 늘여놓으리라 생각했던 프레덴탈의 예상과는 다르게, 라이더 소장은 놀라운 말을 꺼냈다.

    “현재 아프리카 군단이 튀니지로 퇴각하고 있다는 연락을 들었습니다만, 저희 동부 상륙군과 영국 8군이 협공을 해서 롬멜을 잡으면 어떻겠습니까?”

    < 69화. 튀니지 전투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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