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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68화 (68/157)
  • < 68화. 튀니지 전투 (3) >

    그 무렵 프랑스령 알제리의 항구도시, 오랑의 그랜드 호텔.

    이곳에 영미 연합군 사령관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사실상 북아프리카 상륙군 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중부 상륙군 사령관, 로이드 프레덴탈 소장이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럼 먼저 보고부터 들어봅시다. 동부 상륙군과 서부 상륙군 쪽에서는 점령이 얼마나 진행되었소?”

    그의 물음에, 서부 상륙군 사령관 조지 S. 패튼 소장과 동부 상륙군 사령관 찰스 W. 라이더 소장이 답했다.

    “우리 카사블랑카 쪽에서는 프랑스놈들의 저항이 거세서 시간이 조금 걸리고 있소. 하지만 적어도 이번 달 안으로는 어지간한 지역은 다 장악할 수 있을 거요.”

    “저희 동부 상륙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상륙작전과 알제를 점거하는 것까지는 쉽게 끝났습니다만, 일대의 도시들을 모두 장악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흠. 예상과는 다르게 프랑스 놈들이 독일 쪽에 붙어서 좀 걱정했소만, 그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니 다행이군.”

    두 사람의 보고에, 프레덴탈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패튼 소장이 답답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프레덴탈 사령관,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니!”

    “왜 그러시오, 패튼 소장.”

    “아니, 사령관께서는 이번 상륙작전의 목표를 잊어버리셨소? 우리의 원래 목표는 최대한 빨리 튀니지를 점령하는 것이었지 않소이까!”

    저돌적인 패튼의 말에 프레덴탈 소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 그랬었지. 하지만 애당초에 그 작전은 비시 프랑스군의 협조를 받는 것을 전제한 것 아니었소? 보시다시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소만.”

    “그렇긴 하지. 그렇다곤 해도, 계획이 어그러졌다고 해서 목표를 포기하자는 거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상황이 어렵지 않소이까.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후방을 정리하지 않고 진격할 셈이오?”

    프레덴탈 소장은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패튼을 보며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저 성질머리하고는.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입을 열어줬으면 좋겠군.’

    하지만 그런 프레덴탈의 생각과 달리, 패튼은 모험적일지언정 무식한 인물은 아니었다.

    “물론, 후방을 정리해야 하는 것은 맞지. 하지만 지금 작전 지도를 한번 보시오.

    현재 북아프리카의 독일군은 저기 동쪽 끝, 엘 알라메인에 있고 이곳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는 약해빠진 비시 프랑스군뿐이오.

    즉, 지금 튀니지는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다는 말이지.”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소만···.”

    “그러니, 프랑스령 북아프리카를 점령하는 것은 서부 상륙군과 중부 상륙군에게 맡기고, 동부 상륙군은 곧바로 튀니지로 진격하는 것이 어떻겠소?”

    생각보다 그럴싸한 패튼의 주장에, 프레덴탈 소장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독일놈들이 상륙하기 전에 튀니지를 점거할 수만 있다면 최선이긴 하지.

    하지만 지금쯤 독일 놈들도 병력을 파견했을 텐데, 우리가 먼저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현재 동부 상륙군이 위치한 알제에서 튀니스까지의 거리는 약 600km.

    그렇다면 지금 당장 출발하더라도 도착하기까지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릴 터.

    패튼 장군의 말대로 먼저 도착할 수만 있다면 대박이지만, 만약 타이밍이 어긋나면 오히려 각개격파를 당할지도 몰랐다.

    ‘흠···.’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프레덴탈 소장은, 결국 동부 상륙군 사령관 찰스 W. 라이더 소장의 의견을 물었다.

    “그럼, 라이더 소장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가능할 것 같소이까?”

    그동안 패튼과 프레덴탈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만 있던 라이더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패튼 장군의 제안은 성공하던, 실패하던 딱히 리스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최악의 경우, 독일군이 튀니지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더라도 우리가 거리를 유지하며 전투를 피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자신만만한 라이더 소장의 대답에, 프레덴탈 장군은 결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좋소. 동부 상륙군은 즉시 튀니지로 진격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1943년 3월 29일, 동부 상륙군 예하의 미군 2개 사단과 영국군 1개 사단은 튀니지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 뒤, 빈니차의 베어볼프 총통본부.

    “가, 각하! 현재 연합군이 튀니지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뭐? 영미 연합군 놈들이 벌써 공세에 나섰다고?”

    나는 북아프리카에서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동안의 보고에 따르면, 지금쯤 영미 연합군 놈들은 프랑스령 북아프리카를 점령하고 장악하느라 여유가 없을 터였다.

    그런데 고작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벌써 작업을 끝내고 공세에 나섰다고?

    “좀 더 자세히 보고해보게. 연합군 놈들이 얼마나, 어디까지 진격했다는 말인가?”

    “그게··· 현지의 비시 프랑스군으로부터 들어온 정보입니다만, 현재 알제의 연합군이 동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알제라··· 오랑과 카사블랑카에서는 움직임이 없는가?”

    “예, 그쪽에서는 별말이 없었습니다.”

    이어지는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연합군 놈들이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도 그 넓은 프랑스령 북아프리카를 벌써 장악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번 진격은 대대적인 공세가 아니라 일부 부대만을 먼저 보내서 튀니지를 선점하려는 의도일 터.

    ‘그렇다면··· 카사블랑카나 오랑에 있는 부대를 보냈을 리는 없을 테고, 알제에 상륙한 연합군이 움직였겠군.’

    그동안의 보고에 따르면, 알제에 상륙한 연합군은 약 3만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지금 출발한 3개 사단만 제때 도착하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아니지. 똑같이 3개 사단끼리의 싸움이라면 적극적으로 섬멸에 나서도 되겠어.’

    물론, 이 3개 사단은 튀니지를 사수하기 위한 귀중한 자원이기에 만에 하나라도 피해를 입으면 곤란한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이 무렵의 미군은 제대로 된 전투 경험이 전무한 오합지졸에 불과한 데다가, 우리에게는 약하긴 하지만 이탈리아군과 프랑스군도 있다.

    그렇게 모든 계산을 끝낸 나는 곧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북아프리카, 튀니스. 5기갑군 사령부의 한스 폰 아르님 상급대장과 연결해주게.”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뒤, 몇 번의 연결을 거쳐서 내 전화기는 튀니스에 도착해 있는 5기갑군 사령관, 아르님 상급대장과 연결되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5기갑군 사령관, 한스 폰 아르님 상급대장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고생이 많으시겠군. 나 육군 참모총장, 파울루스 원수요.”

    “차, 참모총장님께서 갑자기 무슨 일로···.”

    아르님 상급대장은 갑작스러운 내 전화에 당혹스러운 기색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지금 연합군이 튀니지로 진격 중이라지?”

    “예, 맞습니다. 현재 아군이 정찰한 바로는 3개 사단 정도가 접근 중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아마, 병력이 제때 도착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도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차분하게 방어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와는 조금 달랐다.

    “방어 계획이라. 아직 병력을 인수하기도 전에 이런 명령을 내려서 미안하오만, 놈들을 막아 세우는 대신 깊숙이 끌어들여서 섬멸하는 것이 어떻겠소?”

    “섬멸··· 말씀이십니까?”

    *****

    1943년 4월 7일.

    알제리와 튀니지의 국경에 위치한 항구도시, 타바르카.

    미 육군 제9사단 소속의 전차장, 윌리엄 베이커 중사는 전차병들과 함께 셔먼 전차의 그늘에 앉아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후···. 전차장님, 저희 언제까지 대기하는 겁니까?”

    “글쎄다. 정찰 나간 놈들이 무사히 돌아와야 출발하지 않겠냐.”

    “어차피 독일놈들은 아직 튀니지에 도착하지도 않았다던데, 그냥 빨리 출발하면 안 됩니까?”

    “···그러게 말이다.”

    베이커 중사는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전차병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베이커도 높으신 분들이 왜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이건 전쟁이니까 병력을 투입하기 전에 먼저 정찰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커는 지금 하고 있는 이 고생이 헛짓거리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여기까지 오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적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후··· 이 날씨에 대기하다가 생기는 비전투손실이 더 심할 것 같은데. 이럴 거면 그냥 정찰 없이 진격하는 편이 낫지 않나.’

    베이커 중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 전차 안에 남아 있던 무전수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전차장님, 이제 출발하시랍니다!”

    “후··· 드디어 출발하는군. 빨리 가자고, 친구들. 그래도 튀니스에 도착하면 좀 쉬게 해주겠지.”

    “예!”

    엉덩이의 모래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 베이커는 뜨겁게 달아오른 포탑 위로 올라가 전차장 해치에 걸터앉았다.

    이윽고, 전차가 출발하자 모래가 섞인 사막바람이 날아와 베이커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젠장, 어떻게 바람까지 뜨거울 수가 있는 거지? 이놈의 아프리카는 정말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군.”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만약 서유럽으로 갔으면 지금쯤 프랑스를 관광하고 있을 텐데, 정말 재수도 없군.”

    “그쪽으로 갔으면 지금쯤 독일 놈들이랑 싸우고 있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런가.”

    베이커 중사는 장전수와 잡담을 주고받으며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주변에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아군 전차들뿐. 그리고 그런 그 앞에는 커다란 언덕과 협곡이 펼쳐져 있었다.

    분명 저 고개만 넘으면 튀니지라고 했던가.

    사실 튀니지에 도착한다고 해도 기후가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빌어먹을 행군은 끝나겠지.

    베이커가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협곡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저 멀리서 무언가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투쾅!

    “···응?”

    그 소리에 놀라 흠칫 고개를 돌려보자, 저 멀리 무언가 점같은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베이커 중사는 쌍안경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투콰앙!!

    쌍안경 너머로 거대한 야포가 불을 뿜는 것과 동시에, 베이커의 옆에 서 있던 셔먼이 불타올랐다.

    베이커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라보다가, 이내 고함을 질렀다.

    “젠장··· 대전차포다!! 회피해!!”

    1943년 4월 7일, 미 육군과 독일군이 처음으로 교전하는 순간이었다.

    < 68화. 튀니지 전투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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