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튀니지 전투 (2) >
“좋소, 그렇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파울루스 장군, 튀니지에 병력을 파견해서 비시 프랑스군을 구원하고 연합군을 물리치도록 하시오!”
“구원···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잔존한 프랑스군 병력들이 에스테바 총독의 지휘하에 튀니지로 물러나고 있다고 하니 병력을 파견해서 이들과 함께 싸우면 되지 않겠소?”
‘프랑스군과 함께 연합군을 몰아낸다라···. 그게 정말로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건가.’
나는 너무나도 안일한 히틀러의 명령에 내심 한숨을 내쉬며 지도를 바라보았다.
1943년 3월 20일, 현재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일대의 전황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전개되어 있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역시 1941년 2차 항공전 당시에 몰타가 함락당해버린 것이었다.
회귀 전에는 함락 직전까지 갔지만 끝내 살아남았던 영국령 몰타섬이 이번에는 크레타섬에서 살아남은 팔슈름예거에 의해 함락당했다.
이로 인해서 영국의 지중해 함대는 사실상 지브롤터에 발이 묶여 버렸고, 덕분에 회귀 전보다 보급 사정이 훨씬 나아진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은 아직까지도 엘 알라메인 일대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영미 연합군이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대규모 상륙작전을 감행했고, 비시 프랑스군은 추축국의 편에 서버린 것이다.
‘젠장··· 어쩌다 보니 상황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렸군.’
사실, 아프리카 군단이 선전하는 것도 비시 프랑스가 우리에게 붙은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좋은 일이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동부전선만으로도 벅찬 우리 독일군 입장으로서는 북아프리카에서 이렇게까지 커져버린 전선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회귀 전보다 상황이 나아졌다고 한들, 아프리카 군단의 보급조차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우리가 과연 프랑스군을 구원하고 연합군을 몰아낼 수 있겠는가?
한참 동안이나 지도를 바라보며 고심하던 나는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총통 각하.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현재로서는 북아프리카에 병력을 파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대답이 돌아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히틀러는 내 말에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조용히 되물었다.
“···어째서요? 이제 지중해를 헤집고 다니던 영국놈들도 잠잠해졌으니 그냥 병력을 실어 나르면 끝나는 일이지 않소.”
“물론 그렇습니다만, 현재로서는 당장 파견할 수 있는 예비 전력이 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지금 편제된 부대만 해도 수백 개의 사단이 있는데, 그중 북아프리카로 보낼 병력이 없단 말이오?”
나는 아직도 사태의 심각함을 파악하지 못한 히틀러를 보며 말했다.
“각하,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연합군의 숫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 해도 최소 10만에 달합니다. 거기에 이들이 동원한 기갑부대와 항공 전력까지 고려하면 저희도 최소한 5만 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해야 튀니지라도 방어할 수 있습니다.”
“그럼 투입하면 되지 않소?”
“하지만 현재 동부전선의 상황이 좋지 않아 그만큼의 병력을 차출해내기가 어렵습니다.”
“···동부전선의 사정이 어렵다고? 비록 레닌그라드에서 놈들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 외에는 우리가 압도적인 상황이 아니었나?”
내 말에 히틀러는 동부전선 작전 지도 쪽으로 다가가 병력 배치표를 뚫어져라 노려 보았다.
나는 그런 그의 옆에 서서 지도를 짚어가며 전황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까지 아군이 이겨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현재 동부전선은 그 길이만 해도 무려 2000km에 달하고 그로 인해서 현재 아군과 소련군의 전력비는 여전히 열세에 처해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그래도 결국 이기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요?”
물론 히틀러의 말대로 우리가 이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비록 지금 우리가 유리하다고 해도 어디서 병력을 차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나씩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북쪽을 봐주십시오.
현재 북부집단군은 얼마 전 시작된 소련군의 공세에 레닌그라드가 포위되는 바람에 어려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흠.”
“그리고 특히, 레닌그라드 시가지 내부에서는 늘 병력이 부족한 데다가 보급과 증원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나는 히틀러의 표정을 살피며 다음으로 남쪽의 카프카스 일대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부집단군의 전력을 차출하기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곳이 소련군의 목표가 되리라는 것은 분명한 데다가 지금도 전선의 크기와 중요성에 비해 배치된 병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지금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을 뿐이지 않소? 그렇다면 그곳에서 전력을 차출하고 나중에 채워 넣으면 되지 않겠소.”
“아닙니다, 각하. 만약 한순간이라도 저곳의 전력을 빼낸다면 소련군은 그 즉시 우리의 빈틈을 노려서 공세를 개시할 겁니다.”
그러자 히틀러는 마지막으로 아직까지도 언급되지 않았던 중부집단군을 가리켰다.
“흐음···. 그럼 중부집단군 쪽은 어떻소? 최근 들어서 큰 전투가 일어났다는 보고는 듣지 못했소만.”
“중부집단군은 모스크바를 코앞에서 압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곳에서 병력을 빼낸다면 그 누구보다도 스탈린이 기뻐할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레닌그라드에서 포위전을 치르고 있는 북부집단군과 핵심적인 이익지대인 카프카스를 사수하는 남부집단군. 그리고 소련의 심장, 모스크바를 노리는 중부집단군까지.
이 세 부대를 번갈아 바라보던 히틀러는 이내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후, 그래서 도대체 어쩌자는 거요. 그럼 파울루스 장군은 저 연합군 놈들이 비시 프랑스를 박살내고 북아프리카를 점령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보겠다는 거요?”
“물론 저 또한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계속 말해보시오.”
나는 점점 굳어져 가는 히틀러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엘 알라메인까지 진출한 롬멜 장군의 아프리카 군단을 퇴각시키고 거기에 증원군을 좀 더 보낸다면 튀니지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증원군은··· 현재 진행 중인 레닌그라드 포위망 돌파 작전을 취소하고 병력을 차출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현재 롬멜 장군이 이끄는 아프리카 군단의 상황은 말 그대로 계륵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엘 알라메인까지 진격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고, 카이로를 코앞에 두고서 공세를 포기하는 것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양측 모두 교착상태에 빠져서 증원 없이는 더 이상 진격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인 데다가, 후방의 상황이 어려워진 이상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이는 레닌그라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소련군이 대대적인 공세를 가하고 있기는 하나, 보급과 증원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당장 점령당할 위험은 없을 터.
그렇다면 레닌그라드 구원은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은 튀니지를 방어하는데 집중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단 한 걸음의 후퇴도 패배로 여기는 총통이 과연 이 작전을 승인할 것인가.
내가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한참을 고심하던 히틀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좋소. 그렇다면 레닌그라드의 구원을 미루는 것은 허락하겠소. 단,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레닌그라드를 빼앗겨서는 안되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예상치 못했던 총통의 허락에 기쁘게 답했다. 그러나 총통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단! 아프리카 군단을 퇴각시키는 것은 허락할 수 없소. 이제 카이로와 수에즈 운하가 코앞인데 여기까지 와서 멈춘다고? 그럴 수는 없지.”
그 말에, 회의실 안에는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 속에서, 히틀러는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파울루스 장군. 장군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소만, 너무 걱정마시오. 결국, 지금 문제는 병력이 부족한 것 아니오?”
“···그렇습니다. 혹시 총통 각하께서는 다른 묘안이 있으신 겁니까.”
“하하하, 내가 생각해보면 사실 간단한 일이지. 병력이 부족해서 문제라면, 병력을 더 징집하면 되지 않겠소?”
“징집··· 말입니까.”
1943년 현재, 독일이 동원 중인 병력은 약 400만에 달했다.
이것은 노동 현장에 투입된 산업 기능 요원을 제외한 독일의 모든 징집 자원을 사실상 총동원한 결과였다.
그런데 지금의 이 상황에서도 더 많은 인원을 징병하겠다고 한다면··· 가능한 선택지는 사실상 둘 중 하나였다.
‘이제는 비독일계 외국인도 징집하겠다는 말이거나, 아니면 산업 기능공도 전선으로 끌고 가겠다는 말이거나.’
나는 히틀러를 불안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동유럽의 점령지에서 지원자를 자원입대시키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들에게 모종의 혜택과 권리를 약속한다면 저희 독일에 친화적인 이들과 소련에 반감을 가진 자들이 기꺼이 지원할 것입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저 미개한 슬라브 돼지 놈들에게 자랑스러운 베어마흐트의 군복을 입히겠다고?”
“···하지만 각하!”
히틀러는 내 말을 무시하며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작년 초부터 군수부 장관으로 영전한 알베르트 슈페어였다.
“슈페어 장관, 내가 지시한 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외국인 노동자를 동원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라면, 현재도 생산 라인에 배치되어 운용 중입니다.”
“그래서 평가는 어떤가?”
“기업들은 대부분 호평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보타지 같은 것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단순 노동은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슈페어는 히틀러에게 준비하고 있던 보고서를 내밀었고, 총통은 그것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군. 그럼 그들로 공장을 돌리고, 지금 후방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징집하면 어떤가? 가능하겠는가?”
“물론입니다, 각하.”
그 말에, 히틀러는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지금 당장 대상자를 차출해서 징집하도록 하게. 이는 총통 명령일세! 그리고, 파울루스 원수.”
“예, 각하.”
나는 마음속 깊이 한숨을 내쉬며 의기양양하게 웃는 히틀러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제 병력 문제는 해결된 것 같군. 그렇지 않소?”
“···예, 맞습니다.”
“그럼 이제 북아프리카의 프랑스군을 구원하고, 연합군을 쳐부수기만 하면 되겠군. 한번 작전을 입안해보시오.”
< 65화. 튀니지 전투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