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튀니지 전투 (1) >
잠시 시간을 되돌려, 1943년 2월.
스탈린그라드 함락에 고무된 히틀러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해버렸을 바로 그때, 워싱턴 D.C.의 백악관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그 소식을 반기는 이가 하나 있었다.
그는 바로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즈벨트였다.
“대통령 각하. 방금 전, 독일이 저희들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하하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군. 설마 히틀러가 직접 나서서 우리를 도와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이 무렵, 루즈벨트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서 언론을 움직이고 상원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등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태평양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또다시 적을 늘리겠다는 것은 대중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일이었고, 상원 의원들도 대부분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젠장··· 정말 참모들의 주장대로 자작극이라도 벌여서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
이렇듯 지지부진한 결과에 루즈벨트는 심지어 그런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때마침 히틀러가 먼저 선전포고를 해준 것이었다.
“좋소! 지금 당장 마셜 장군을 불러오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미국의 유럽 전선 참전계획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후, 드디어 영국과 소련이 칭얼거리는 소리를 그만 들을 수 있겠군.”
“···하하. 축하드립니다, 각하.”
“좋소. 그럼 마셜 장군, 장군의 생각에는 우리가 독일의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그런 루즈벨트의 물음에, 육군 참모총장 조지 C. 마셜 장군은 지도를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현재, 독일군은 유럽대륙을 완전히 석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나게 팽창한 상태였다.
‘서쪽으로는 프랑스, 스페인도 사실상 추축국의 영향력 아래에 떨어졌고 동쪽의 소련은 사실상 거의 패망 직전이라고 봐야겠지.
게다가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도 이집트 일대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부 독일의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군.’
그렇다면 이렇게 거대해져 버린 독일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가.
그렇게 한참 동안 고심한 끝에 마셜이 내놓은 대답은 바로, 프랑스였다.
“곧바로 서유럽을 침공해야 합니다. 현시점에서 독일을 패배시킬 방법은 서유럽을 침공해서 양면전쟁을 강요하는 것뿐입니다.”
“좋소, 그럼 작전 계획을 한번 세워보시오.”
“알겠습니다!”
그러나 마셜의 서유럽 침공 계획에 대한 영국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뭐요? 곧바로 서유럽에 상륙하겠다고?”
“그렇습니다. 역시 독일을 쓰러트리려면 영불해협을 건너서 프랑스에 상륙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뭐, 틀린 말씀은 아니오. 하지만 그게 정말로 가능하겠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태평양을 건너서 전쟁을 치르는 것만으로도 벅차실 텐데, 그 와중에 대서양을 건너서 상륙작전을 벌일만한 물자와 병력을 동원하실 수 있겠느냔 말이오.”
“······.”
루즈벨트는 아픈 곳을 찌르고 들어오는 처칠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확실히, 서유럽을 침공하려면 적지 않은 물자와 병력을 동원해야 할 터.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태평양 전쟁과 랜드리스 정책 때문에 막대한 수송 소요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와중에 크릭스마리네의 유보트들은 엄청난 속도로 수송선을 격침시키고 있는 상황.
그런데 이런 와중에 정말로 서유럽을 침공할 만한 물자와 병력을 대서양 건너편 영국까지 실어나를 수 있겠는가.
그렇게 루즈벨트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자, 처칠이 다시 한번 쇄기를 박았다.
“게다가, 내가 듣기로는 1년 이내에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하기로 약속하셨다던데··· 정말 올해 안에 서유럽 상륙 작전을 개시할 수 있겠소?”
“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와 같이 북아프리카로 갑시다. 알제리나 모로코 같은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서 상륙작전을 벌이면 독일놈들을 몰아냄과 동시에 남유럽도 노릴 수 있지 않겠소.”
루즈벨트는 결국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전선을 우선시하자고 꼬셔대는 처칠의 말에 내심 혀를 찼다.
‘쯧, 이놈들은 아직도 지중해와 식민지에 미련을 못 버린 모양이군. 결국, 자기네들 싸움부터 도와달라는 말이지 않나.’
하지만 루즈벨트가 생각하기에도 달리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올해 안에 서유럽에 상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독일과 싸울 방법은 북아프리카를 압박하는 것뿐이었으니까.
결국, 루즈벨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 어쩔 수 없군요. 좋습니다. 그럼 북아프리카의 추축군을 먼저 몰아내는 것으로 하지요.”
“하하하! 잘 생각하셨소!”
“대신, 그다음에는 영국도 유럽 상륙작전에 협조해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걱정마시오.”
그렇게 두 정상은 마침내 북아프리카에서 상륙 작전을 벌이기로 합의했고, 그리하여 1943년 3월.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다.
*****
1943년 3월 10일.
북아프리카의 프랑스령 모로코, 카사블랑카로 향하는 수송선 안.
로버트 파커 일병은 소대 집합 명령에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칸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소대장인 웨버 소위가 나왔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제 잠시 뒤면 우리는 카사블랑카의 류티 항구로 도착한다.”
“예!”
웨버 소위는 잔뜩 긴장한 채 대답하는 소대원들을 둘러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너무 긴장하지 마라. 높으신 분들께서 말씀하시길, 지금 항구를 지키는 비시 프랑스놈들은 우리가 가면 다 투항하거나 연합군에 합류해서 같이 싸울 거라고 하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웨버 소위의 말에, 소대원들은 반신반의하며 되물었다.
“그래, 비시 프랑스는 우리 미국 정부의 인정을 받은 정식 국가다. 그러니까 상륙 시에 절대로 프랑스군을 먼저 공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금부터 알려주는 프랑스어를 숙지하도록.”
“예!”
프랑스 놈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라.
사실 그로서는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그래도 소대장님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렇게 생각한 파커 일병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상륙정에 올랐다.
“자, 출발한다! 꽉 잡아라!”
파커의 소대를 태운 수송정은 북대서양의 파도를 헤치며 카사블랑카를 향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상륙정이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웨버 소위는 성조기를 높이 들어 올린 채 당당하게 해변에 뛰어내렸다.
“쏘지 마라! 우리는 미군이고, 당신들의 우군이다!”
파바바바박!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빗발치는 기관총탄이 웨버 소위와 앞서 내리던 소대원들의 몸을 찢어버렸다.
예기치 못한 프랑스군의 공격에, 마치 훈련 때처럼 설렁설렁 내리려던 파커는 그대로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쏘지마!! 우리는 미군이다! 빌어먹을 프랑스 놈들, 성조기도 못 알아보나!”
웨버 소위가 프랑스군의 공격에 쓰러지자, 부소대장이 확성기를 잡고 외쳐댔지만 프랑스군의 총격과 포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부소대장님, 어떻게 합니까?”
“젠장, 응사해! 공격해라!!”
이러한 오해와 오판으로 벌어진 비극은 카사블랑카뿐만 아니라 오랑과 알제의 해안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고, 그 결과 미군은 항구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그리하여 1943년 3월 15일.
미군은 간신히 세 군데의 항구를 장악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뒤에도 이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모로코부터 알제리, 튀니지까지. 드넓은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주둔 중인 비시 프랑스군 12만 5천 명이 대부분 미군에 저항하고 나선 것이었다.
*****
“각하, 현재 카사블랑카와 오랑, 알제의 항구가 영미 연합군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1943년 3월 10일.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의 총독, 장 피에르 에스테바는 부관의 보고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그놈들이 도대체 왜 우리를 공격한단 말인가! 우리는 추축국도 아니지 않나!”
“그게··· 보고에 따르면 미군 부대들이 상륙하면서 프랑스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쏘지 마라. 우리는 미군이고, 당신들의 우군이다.’라고 말입니다.”
“뭐? 우군이라고 했다고?”
부관의 말에 에스테바 총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미국놈들이 저런 말을 하면서 상륙했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를 연합군으로 포섭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거부하면 힘으로 밀어버리고 점령할 심산일 터였다.
‘후···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빌어먹을 놈들뿐이군.’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미국놈들에게 항복해서 연합의 일원으로 참가할 것인가? 아니면, 독일놈들의 점령지로 달아날 것인가.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독일놈들이 카프카스를 점령했다고 했던가. 그럼 소련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겠지.
게다가 몰타와 크레타까지 지중해도 사실상 추축국의 손에 떨어졌고, 이곳 북아프리카에서도 롬멜 장군이 영국놈들을 박살냈었지.’
에스테바 총독은 그가 보고 들었던 국제 정세와 전황을 종합해서 고민한 끝에 결국 결단을 내렸다.
“이보게.”
“예, 총독 각하.”
“지금 당장 북아프리카의 프랑스군에 전파하게. 연합국 놈들에게 절대로 항복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라고 말이야.
그리고··· 알제 동쪽에 있는 병력들은 보급품과 물자를 가지고 모두 토브룩으로 퇴각하라고 전하게. 내가 타고 갈 차량도 준비해두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부관이 물러난 뒤, 에스테바 총독은 서둘러서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젠장,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독일의 승리에 모든 칩을 다 걸어버렸으니까.
*****
그렇게 영미 연합군의 프랑스령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바로 그 무렵, 총통본부에서는 이번 상륙작전에 대한 대책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약 7만에 달하는 영미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것으로 보입니다.”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라고. 그래서, 비시 프랑스군은 도대체 뭘 하고 있나?”
“일단은 최선을 다해서 저항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장비의 차이 때문에 프랑스령 북아프리카를 빼앗기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흥, 그래도 밥값은 하는군.”
에스테바 총독의 마지막 조치를 전해 들은 히틀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파울루스 장군, 튀니지에 병력을 파견해서 비시 프랑스군을 구원하도록 하시오!”
< 64화. 튀니지 전투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