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63화 (63/157)
  • < 63화. 2차 레닌그라드 공방전 (5) >

    잠시 시간을 되돌려 1943년 2월 15일,

    2차 레닌그라드 공방전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을 바로 그 무렵.

    독일 뮌스터에 위치한 제1기갑학교에서는 작년 말, 파울루스의 추천으로 입학한 프란츠가 소위 임관을 준비하고 있었다.

    “카를 프란츠! 카를 프란츠 후보생! 혹시 여기에 있나?”

    “예, 여기 있습니다!”

    “잠시 따라오도록.”

    점심 식사를 마치고 여유롭게 오후 수업을 준비하던 프란츠는 자신을 찾는 교관의 목소리에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관은 프란츠를 데리고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에게 커피를 한잔 내주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자네도 소위 계급장을 달겠구만.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하하, 아닐세.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혹시 희망하는 배속지는 어디인가?”

    “중전차 대대로 배치되기를 희망합니다.”

    교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프란츠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는 처음 입학할 때부터 중전차 대대를 희망했었지. 자네의 성적과 수훈 경력이면 충분히 갈 수 있을걸세.”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일세, 혹시 이번에 새롭게 배치된 신형 전차에 대해서는 들어봤나?”

    “···신형 전차 말입니까?”

    프란츠는 갑작스러운 교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교관은 ‘기밀’이라고 적힌 서류 파일을 하나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바로 이걸세. 정식 명칭은 5호 전차 판터라고 하네.”

    프란츠는 교관이 내민 서류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그 서류에는 T-34와 같이 전면 경사 장갑을 채용한 신형 전차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이게··· 판터입니까?”

    “그래, 멋지지 않나?”

    “예, 정말 대단하군요.”

    프란츠는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판터의 제원 사항을 읽어내려갔다.

    ‘주포는 70구경장 7.5cm인가. 1km 거리에서 관통력이 150mm면 사실상 티거의 56구경장 8.8cm 주포와도 동급이군.

    거기에 80mm 55도 경사 장갑이면 실질적인 방호력은 120mm 정도 되겠어.’

    교관은 그런 프란츠의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다가 슬쩍 말을 꺼냈다.

    “자네도 보면 알겠지만, 판터의 성능은 티거와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네. 아니, 몇몇 단점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티거보다도 우수한 전차지.”

    “···그렇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새롭게 창설되는 판터 부대로 갈 생각은 없나? 일단 형식상으로는 중형전차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전차 대대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을 걸세.

    게다가 자네처럼 실전 경험과 수훈 경력을 두루 갖춘 이가 간다면, 곧바로 소대장을 달 수도 있네.”

    교관의 달콤한 제안에 프란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5호 전차 판터라···.’

    사실 고민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이곳에 온 것은 티거에 탑승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진 속에 서 있는 판터의 날렵한 모습과 서류상에 적힌 우수한 성능,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대장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 프란츠의 마음을 붙잡았다.

    ‘그래, 교관님의 말씀대로 성능이 비슷하다면 기동성도 좋고 신형인 판터가 더 낫겠지.’

    그렇게 계속되는 교관의 설득에, 결국 프란츠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교관님의 말씀대로 신설되는 판터 부대로 지원하겠습니다!”

    “하하, 잘 생각했네! 내 곧바로 추천서를 써줄 테니 자네는 생활관으로 가서 발령 준비나 하고 있게나.”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47기갑연대 소속 판터 부대로 배속된 프란츠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특급열차에 실려 레닌그라드로 향하게 되었다.

    *****

    카앙!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이 전차를 뒤흔들었다.

    “으악!! 마, 맞았습니다!”

    “당황하지 마라! 포탄을 튕겨낸 것뿐이다. 막스, 측면이 노출됐다! 차체를 더 틀어라!”

    “예, 옛!”

    1943년 2월 25일, 레닌그라드 포위망 서쪽의 발트해 연안 일대.

    이곳에서 포위망 돌파에 투입된 171번 판터 전차장, 프란츠 소위는 T-34/85들과 격렬한 포화를 주고받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저 놈들이 그 신형 T-34인가? 티거였으면 이 정도는 무시하고 돌파했을 텐데, 그 교관 놈의 헛소리 때문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전차장님?”

    “···쯧. 아니, 별말 아니다.”

    사실, 그 교관이 프란츠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판터의 주포는 티거의 8.8cm와 비교해도 못지 않았고, 전면 장갑에만 한정 짓는다면 티거보다도 더 튼튼했으니까.

    하지만 이 녀석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측면 장갑의 두께가 40mm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사령부에서는 카탈로그 스펙만 보고서 이 전차를 중전차처럼 투입해버렸고, 그래서 프란츠네 부대가 이곳에 투입된 것이었다.

    “젠장할···. 측면이 약하니 어떻게 돌파할 방법이 없구만.”

    “전차장님, 우측 방면에 T-34입니다!”

    “빌어먹을 놈들, 정말 집요하게 측면만 노리는군. 발츠! 2시 방향, 거리 700. 철갑탄이나 한 발 먹여줘라!”

    “예!”

    프란츠의 지시에, 그 자리에서 정지한 판터는 길다란 포신을 돌려서 맹렬하게 달려오는 T-34를 조준했다.

    쾅!

    우렁찬 포성과 함께, 우측으로 파고들던 T-34는 전면 장갑이 관통되서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후, 그래도 주포 하나만큼은 정말 믿음직하군. 막스, 전방의 도로까지 계속 진격한다. 전차 전진!”

    “예! 전차 전진!”

    그렇게 프란츠의 171호 판터 전차는 빗발치는 85mm의 포화를 뚫으며 레닌그라드를 향해서 천천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

    “사령관 동지, 27군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발트해 일대에서 독일군 기갑 부대가 전선을 돌파 중이라고 합니다.”

    “뭐? 독일놈들이 벌써 반격에 나섰다고?”

    예기치 못한 참모장의 보고에, 로코솝스키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분명 저놈들의 기갑 부대는 아군 T-34/85에 밀려서 수세에 몰렸을 텐데, 어떻게 벌써 반격에 나섰단 말인가.

    ‘···설마, 벌써 구원군이 도착한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독일놈들이 아무리 빨리 증원을 보내더라도 최소한 한 달은 걸릴 테니까.

    그렇다면 이번 돌파 시도는 기만책이거나 다른 무언가가 있을 터였다.

    “놈들의 규모는 얼마인가.”

    “그게, 적들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만 아마 중전차를 투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설마 또 티거인가.”

    독일군 중전차라는 말에 로코솝스키의 머릿속에서는 천왕성 작전 당시의 악몽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참모장의 대답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닙니다, 전차병들의 증언으로는 티거와는 다르게 생긴 중전차라고 합니다.”

    “뭐? 신형 중전차라고?”

    “예, 보고에 따르면 아군의 85mm 주포로도 전면 장갑을 관통하기 어렵고 1km 이상의 거리에서도 T-34를 격파한다고 합니다.”

    로코솝스키는 작전 지도 위에 새롭게 표시된 중전차 부대의 표식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현재, 레닌그라드 전투는 로코솝스키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포위망 바깥에서는 독일군의 신형 중전차가 전선을 돌파하려 하고 있었고, 금방 함락될거라 생각했던 레닌그라드 시가지에서는 신무기로 무장한 독일군이 아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있는 상황.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서 공세를 중단하고 병력을 물려야 마땅했지만, 서기장 동지께서 레닌그라드를 함락하라고 명령하신 이상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하하···. 주코프 동지의 말대로 그냥 포위망을 구축하는 선에서 만족했어야 했나. 괜한 공명심 때문에 내 목을 졸라버렸군.’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어쩌겠는가.

    이제는 주코프의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는 수밖에.

    결국, 로코솝스키는 고심 끝에 참모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단, 레닌그라드 공세는 증원이 도착할 때까지 중단하도록 하게. 그리고··· 신형 중전차를 격파하거나 노획하는 병사에게는 특진과 휴가,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전파하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참모장이 물러난 뒤, 로코솝스키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독일군의 진격을 얼마나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로코솝스키의 걱정과는 다르게, 독일군 기갑 부대의 진격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멈추고 말았다.

    1943년 3월, 올해도 역시나 라스푸티차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가지와 포위망 바깥의 교전이 모두 중단되고 교착상태에 빠진 동안, 주코프가 보낸 증원군이 레닌그라드 일대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

    그 무렵, 빈니차에 위치한 베어 볼프 총통본부.

    나는 북부집단군에서 보내온 한 통의 보고서를 놓고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흠, 레닌그라드 일대에 소련군 병력이 대규모로 집결했다라.”

    그 보고서의 내용은 바로, 레닌그라드에 대한 소련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보고서를 보다가, 이 소식을 가져온 참모차장 호이징거 중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호이징거, 자네는 이 보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보고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그래서 이상하단 말이지.”

    참모차장의 말대로, 이렇게 레닌그라드 일대에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를 막기 위해서는 카프카스에 있는 야전군을 북쪽 끝까지 옮겨와야 하는 데다가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무르만스크를 막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카프카스가 아닌 레닌그라드를 이렇게 대대적으로 공격하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군.

    설마 무르만스크를 통한 랜드리스만으로도 충분히 석유를 수급할 수 있다고 계산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내가 모르는 다른 노림수가 있는 건가.’

    하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레닌그라드는 보급과 증원이 계속 이루어지는 한 결코 빼앗길 리 없었고, 무르만스크를 통한 북해 항로는 크릭스 마리네의 유보트들이 계속해서 견제해줄 테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북부집단군의 보고서를 서랍 속에 넣어버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참모 장교 하나가 집무실로 급하게 뛰어들어와 나에게 말했다.

    “가, 각하! 급보입니다!”

    “무슨 일인가?”

    “그게··· 비시 프랑스 측에서 온 연락입니다만, 현재 프랑스령 북아프리카가 연합군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고 합니다!”

    < 63화. 2차 레닌그라드 공방전 (5)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