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60화 (60/157)
  • < 60화. 2차 레닌그라드 공방전 (2) >

    “각하, 26군단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대규모 소련군 기갑부대가 아군의 볼호프강 방어선을 공격 중이라고 합니다.”

    1943년 2월 15일.

    오늘도 평화롭게 서류 업무나 보던 북부집단군 사령관, 레프 원수는 갑작스러운 참모장의 보고에 고개를 들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소련군이 이곳을 공격 중이라고?”

    이 무렵, 진즉에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고 무르만스크로 통하는 철로를 차단한 북부집단군은 더 이상의 공세를 중단하고 현재 위치에 눌러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 블라우 작전이 시작되면서 양측의 관심은 남쪽으로 내려가 버렸고, 이곳 북부 지역은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평화로운 현상 유지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프 원수는 부관의 보고를 처음 들었을 때조차도 상황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카프카스의 자원 줄이 끊어져서 몸이 달아있을 저 소련놈들이 이렇게 갑자기 북부로 쳐들어온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이건 분명 국지적인 교전으로 시작된 것이 조금 규모가 커졌거나, 일선 부대에서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오보를 한 것일 터.’

    그렇게 26군단의 초기 보고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레프 원수는 적당히 후방에서 대기 중인 기갑 사단 하나를 증원 보내는 정도로 조치해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레닌그라드의 겨울 궁전으로 출근한 레프 원수의 책상에는 믿기 어려운 보고서가 올라와 있었다.

    “···참모장,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소련군 기갑부대가 가치나 외곽까지 도달해 있다고?”

    “예, 정확히 2시간 전부터 가치나 남부 외곽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니, 아군 기갑부대는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하루 만에 이만큼 돌파당했단 말인가!”

    “그게··· 아무래도 소련군이 아군의 4호 전차를 상회하는 신형 전차를 대규모로 투입한 모양입니다.”

    레프 원수는 전날 밤과는 너무나도 달라져 버린 상황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젠장, 설마 진짜로 소련놈들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건가? 게다가 신형 전차라니···.’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진 전황은 모든 것이 그가 알던 상식과 정보에서 벗어난 일들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고민을 거듭하던 레프 원수는 결국 안전한 길을 택했다.

    “···어쩔 수 없군. 50군단과 54군단을 레닌그라드 시가지와 네바강 요새 지대까지 후퇴시켜서 전선을 새로 구축한다.

    그리고, 총참모부에 연락하게. 소련군의 공세 목표가 레닌그라드인 것 같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2월 18일.

    추도보에서 진격을 시작한 볼호프 전선군의 선봉 부대는 발트해에 위치한 항구도시, 소스노비보르에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불과 40km의 거리이긴 하지만, 레닌그라드의 남쪽 측면이 소련군에 의해서 차단되어버린 것이다.

    *****

    “사령관 동지! 대성공입니다! 아군 기갑부대가 발트해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무렵, 볼호프 전선군 사령부.

    로코솝스키 중장은 부관의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갑부대를 모아서 일점 돌파한 덕분인지, 아니면 신형 전차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성공했군.’

    현재 볼호프 전선군은 북쪽으로는 레닌그라드의 남부를 압박하고 있었고 남쪽으로는 가치나에서 벨리키노브고로드까지 독일군을 밀어내고 있었다.

    ‘쉬운 승리군. 그래 봤자 시간 끌기에 불과한 가짜 승리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렇게 남쪽을 완전히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레닌그라드와 독일군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레닌그라드에서 포위당했던 1941년의 소련군과는 다르게, 지금의 독일군은 동맹국인 핀란드와 이어져 있는 데다가 발트해를 통해서 얼마든지 보급을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한다고 해도, 이렇게 독일군을 수세에 몰아넣은 것만으로도 로코솝스키의 임무는 이미 완수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애당초에 주코프의 작전은 레닌그라드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북부집단군의 발이 묶인 동안 무르만스크를 회복하고 랜드리스를 챙기겠다는 것이었으니까.

    “사령관 동지, 그럼 이제 현재 위치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전선을 사수하도록 명령을 하달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잠깐 기다리게.”

    그러나 그 순간, 로코솝스키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분명 지금쯤 레닌그라드의 독일 놈들은 급하게 퇴각하느라 상황이 엉망일 터.

    게다가 발트해를 통해서 보급과 증원을 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당장 비축된 물자와 병력은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1941년 당시, 레닌그라드 포위망 안에서 버티던 소련군의 수는 무려 70만에 달하지 않았던가?

    그에 비하면 지금 레닌그라드를 지키는 독일군 병력은 기껏 해봐야 2~3개 군단 수준에 불과할 터.

    게다가, 이번에 새롭게 보급된 신형 T-34의 성능은 로코솝스키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훌륭했다.

    ‘그렇다면··· 지금같이 독일군이 혼란에 빠져 있는 틈에 레닌그라드를 점령해버리고, 그동안 신형 T-34를 투입해서 남쪽 전선을 방어하면 되지 않겠는가?’

    로코솝스키는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자신이 떠올린 이 위험한 작전을 몇 번이고 검토해보았다.

    ‘···분명 위험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리고 그 결과, 그가 도달한 결론은 바로 한번 해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후···.”

    로코솝스키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고개를 들고는 참모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참모장, 11군을 투입해서 레닌그라드를 공격하도록 하게. 최대한 많은 병력을 투입해서 단기간에 결판을 내야 하네.”

    *****

    “빌어먹을, 설마 이 자리에서 저기도시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11군 예하의 188 소총 사단 소속, 그레고리 이고르 소위는 풀숲에 몸을 숨긴 채, 평원 너머에 위치한 레닌그라드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호오, 동지는 혹시 레닌그라드와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거요?”

    이고르 소위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며칠 전, 중앙에서 파견되어서 그의 소대를 따라다니는 선전 장교 다닐로프 중위였다.

    ‘쯧, 귀찮은 인간 같으니라고.’

    이고르 소위는 마음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재작년의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에 제가 저곳에서 배치되었습니다.”

    “호오, 그거 참 흥미로운 얘기구려. 레닌그라드를 사수하기 위해 싸우던 장교가 이제는 레닌그라드를 탈환하기 위해 공격에 나서다니. 이 얘기를 선전 기사로 써도 되겠소?”

    “···마음대로 하십시오. 대신, 사진을 찍는 것은 좀 참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플래쉬가 터지면 독일놈들의 총탄이 쏟아질 테니까 말입니다.”

    “하하, 물론이지. 내가 비록 선전 장교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소.”

    이고르는 싱글싱글 웃는 다닐로프 중위를 불안하게 돌아보고는 다시 독일군에 의해 요새화된 레닌그라드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젠장··· 벌써부터 기관총이며 대전차포까지 갖다 놓았군. 생각보다 쉽지 않겠는데.’

    이고르 소위는 시가지가 요새화될 경우, 얼마나 뚫어내기 어려운지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가 지난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튼튼하고 복잡한 저 건물들 덕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가 저 도시로 돌격을 해야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그로서는 그저 답답할 노릇이었다.

    ‘누군가한테는 좋은 기삿거리에 불과하겠지만 말이지···.’

    이고르는 아직도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다닐로프 중위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다닐로프 동지, 일단 오늘은 돌아갑시다.”

    “오, 역시 참전용사답게 벌써 공세 계획을 세우신 모양이구려.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

    “글쎄··· 사실 시가전은 답이 없소. 그저 사방을 잘 살피면서, 눈앞의 적들을 빨리빨리 죽이는 수밖에 없지.”

    “그렇구려.”

    그렇게 다닐로프 중위와 함께 진지로 돌아온 이고르 소위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징집병들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정말 이런 놈들을 데리고 저 독일놈들의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숨 쉬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결국 작전은 명령대로 진행될 것이고, 자신은 저 병사들과 함께 돌격해야 할 운명인 것이다.

    이고르 소위는 그런 소대원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등 뒤에서 울려 퍼지는 호각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외쳤다.

    “가자, 동지들! 오늘 우리는 혁명의 수도, 레닌그라드를 탈환한다! 우라!”

    “우라아!!”

    사방에서 장교들이 일어나 하늘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고, 소총을 든 병사들은 정신없이 도시를 향해 달려나간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빗발치는 기관총 세례가 내리꽂혔다.

    “돌격! 돌격해!”

    “엎드리지 마라! 엎드리면 죽는다! 무조건 달려가서 건물에 붙어라!!”

    독일군의 저항은 맹렬했으나, 결국 인민의 파도를 막아 세울 수는 없었다.

    수없이 많은 병사들이 벌판에서 희생된 끝에 이고르 소위의 소대는 레닌그라드 안에 발을 디뎠고, 그때부터 끔찍한 시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건물로 들어가! 밖에 있지 마라!”

    “예, 예!”

    그렇게 소대원들과 함께 건물로 들어선 이고르 소위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몸을 숙였다.

    타다다다당!

    “고개 숙여!”

    “으, 으악!”

    총성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바닥에 엎드린 이고르 소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는 벽까지 기어서 나아갔다.

    그렇게 벽에 도달한 뒤, 주변을 살피자 그와 함께 들어왔던 소대원들은 태반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젠장. 기다리고 있었나.”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어쨌든 건물에 진입하는 데는 성공했고, 소대원들도 그리 많이 다치진 않았으니까.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피던 이고르는 벽 모퉁이 너머로 나무 조각을 내밀었다.

    타다다당!

    그러자 빗발치는 기관총탄이 나무 조각을 찢어발겼다.

    ‘역시, 기관총을 설치해둔 건가.’

    “안톤! 복도 너머로 수류탄을 던져라!”

    “저, 저말입니까?”

    “그래, 빨리 던져!”

    “예, 예!”

    이고르의 지시에, 안톤은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수류탄을 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가슴팍에서는 핏방울이 튀어 올랐다.

    쾅!

    과연 안톤이 던진 마지막 수류탄은 제대로 들어갔을 것인가.

    이고르가 조심스럽게 나무 조각을 내밀자, 이번에는 기관총탄이 날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1층은 확보된 것 같군. 다들 일어나라! 2층으로 올라간다!”

    “예!”

    그렇게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고르에게 다닐로프 중위가 다가왔다.

    그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이고르에게 물었다.

    “···이고르 동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군의 피해가 너무 크지 않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는 알겠습니다만, 이게 시가전입니다.”

    “······.”

    이고르 소위는 충격을 받은듯한 다닐로프 중위를 내버려 두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소련의 일간지 「프라우다」의 한쪽 구석에는 놀라운 선전 기사가 하나 실렸다.

    그건 바로, 레닌그라드를 수복하기 위한 대반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 60화. 2차 레닌그라드 공방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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