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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59화 (59/157)
  • < 59화. 2차 레닌그라드 공방전 (1) >

    “사령관 동지, 말씀하신 자료들을 가져왔습니다.”

    “수고했네. 그럼 이제 가보게.”

    “예!”

    주코프의 비호 덕분에 볼호프 전선군 사령관으로 복직한 로코솝스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흠, 그래도 병력 편제 자체는 크게 변한 게 없군. 그럼 문제는 역시 기갑부대들인가.’

    로코솝스키가 전선에서 물러나 있었던 약 두 달 동안, 현장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언제나 여유 분량까지 넉넉하게 제공되던 연료와 탄약은 이제 딱 정량대로만 보급되었고, 그마저도 정치 장교들의 철저한 감시하에 지급되었다.

    그렇다는 것은, 역시 카프카스를 빼앗기는 바람에 아군의 생산라인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뜻이리라.

    ‘그런데도 이런 상황에서 카프카스가 아닌 레닌그라드를 공격한다라··· 그렇다면 역시 이번 공세의 목표는 무르만스크를 통한 랜드리스 라인을 되찾겠다는 의도인 건가?

    그렇다는 것은, 이번 레닌그라드 공격은 그저 독일군의 발을 묶어놓기 위함이겠지.’

    생각해 보면 주코프가 로코솝스키에게 내린 명령은 레닌그라드를 점령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저 포위하라는 것뿐이었다.

    즉, 로코솝스키에게 내려진 이 공세 명령은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그만인 양동 작전에 불과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로코솝스키는 그제서야 주코프가 레닌그라드를 굳이 포위하라고 명령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내가 레닌그라드를 점령하려고 무리하게 나서다가 또 병력을 잃어버릴까봐 일부러 포위하라는 명령을 내린 건가? 하하, 어처구니가 없군.’

    다시 기회가 주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은 무능한 패장 취급인 것인가.

    하긴, 주코프가 정말로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더라면 이런 조공이 아니라 차후에 있을 카프카스 공세를 맡겼을 터.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로코솝스키는 잠시 눈을 감고 분노를 가라앉혔다.

    ‘···반드시 이번 작전을 성공시켜서 내 능력을 증명하리라.’

    그리고, 다시 눈을 뜬 로코솝스키는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공세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참모장, 지금까지 확인된 독일군 부대는 지도 위에 표시된 것이 전부인가?”

    “예, 보시다시피 라도가 호수부터 일멘호수까지 볼호프 강을 따라서 약 5개 군단 규모의 독일군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규모는 최소 20만 정도로 추정됩니다.”

    “20만이라···. 생각보다 많군. 그럼 기갑전력은 어느 정도인가?”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미 방어선을 구축하고 기다리는 입장인 만큼 기갑전력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로코솝스키의 적은 볼호프 강을 끼고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한 독일군 20만.

    하지만 적들의 기갑전력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소련군 장군이라면 모든 전선에서 동시에 전면적인 공세를 감행했겠지만, 독일군 기갑부대의 돌파 전술을 뼈저리게 겪은 로코솝스키의 생각은 달랐다.

    ‘결코 쉬운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방어선만 돌파하면 발트해까지 진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게다가 지금 중부와 북부의 독일군들은 발트해의 해운을 통해서 보급을 받고 있다고 하니,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기만 하면 바깥의 독일군은 한동안 포위망을 뚫기 어려울 터.

    거기까지 모든 계산을 끝낸 로코솝스키는 참모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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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곳, 추도보 방면에서 방어선을 돌파해 북쪽의 독일군을 밀어내면서 발트해까지 진격한다.”

    “기갑부대를 앞세운 일점 돌파 전술 말씀이십니까?”

    “그래, 독일놈들이 좋아하는 전격전을 저놈들에게 그대로 돌려주는걸세.”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공세 명령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로코솝스키는 방에서 나가려는 참모장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참, 참모장. 방어선 돌파에 나서는 사령관들에게는 따로 명령을 전달하도록 하게.”

    “어떤 명령 말씀이십니까?”

    “이번에 지급된 신형 전차는 교두보를 확실하게 확보한 다음에 투입하라고 말이야.”

    *****

    그 무렵, 레닌그라드 남부에 위치한 소도시 토스노.

    이곳에서는 독일군 병사들이 마치 휴가라도 온 것처럼 느긋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기사 철십자 훈장을 받고 후방으로 이송되었던 104호 전차장, 게르트 하버 상사도 있었다.

    “후, 북쪽은 평화로워서 좋구만. 남쪽은 정말 지옥이었다니까.”

    “···상사님, 또 스탈린그라드 얘기하시는 겁니까? 그러지 말고 정비나 좀 도와주십시오. 엔진 오일이 자꾸 한 방울씩 샙니다.”

    “그 정도는 그냥 놔두라니까? 어차피 전투도 없는데 정비는 무슨···.”

    그렇게 하버가 맥주나 마시면서 엔진을 정비하는 조종수를 놀리고 있자,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신병이 다가와서 물었다.

    “하버 상사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하셨다는 게 정말 사실입니까?”

    “그래, 임마.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 전차가 수백 대씩 몰려와서 전차가 다 박살났을 때도 나는 탈출하는 대신 끝까지 전차에 남아서 전선을 틀어막았다고.”

    “저, 정말이십니까?”

    신병은 하버의 목에 걸린 기사 철십자 훈장을 올려다보며 입을 떡 벌렸다.

    그러나 조종수 그라프는 그런 하버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으셨습니까.”

    “내가 몇 번이나 얘기해줬잖냐. 진짜 죽겠구나 싶었을 때, 어디선가 티거 전차가 나타나서 우리를 구해줬다니까?”

    “에이,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그래서, 그 철십자 훈장은 진짜 어떻게 받으신 겁니까?”

    “이거? 이건 그다음 날, 장군님께서 현지시찰 오시더니 우리 꼴을 보고 주시더라고.”

    하버의 말에 승무원들은 모두들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그라프는 웃으면서 다시 엔진을 정비하러 올라가 버렸다.

    그러나 하버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승무원들을 모습에도 그저 껄껄 웃을 뿐이었다.

    “후··· 정말 평화롭구만. 프란츠는 잘 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그렇게 하버가 전차장 석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을 때, 무전기가 불길하게 치직거리기 시작했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는 모양이구만.”

    하버가 한숨을 내쉬며 맥주병을 집어 넣자, 역시나 그의 예감대로 무전기에서는 소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아-. 여기는 그룬 1. 응답 바람.”

    “여기는 그룬 5. 그룬 1, 무슨 일인가.”

    “현재 적군이 아군 방어선을 돌파하였다. 전원 출격 대기하도록. 이상.”

    “수신 양호.”

    갑작스러운 출격 대기 명령에, 하버 상사는 승무원들을 불러모았다.

    그렇게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대기하자, 4호 전차 안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버 상사님, 이제 싸우러 가는 겁니까?”

    “너무 걱정마라. 별일 아닐지도 모르니까.”

    막상 상황이 닥치자, 전투 경험이 없는 승무원들은 모두 하버 상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하버 상사도 오랜만의 전투에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후, 출격이라···. 아니, 걱정할 필요 없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해왔던 일이지 않나.’

    그리고 잠시 뒤. 야속하게도 무전기 너머에서는 기동 명령이 떨어졌고, 신병들로 이루어진 하버 상사의 805호 전차는 불안하게 출발하기 시작했다.

    “전차 전진!”

    “저, 전차 전진!”

    “그라프, 긴장하지 마라. 늘 다니던 길이지 않냐.”

    “아, 알겠습니다!”

    하버 상사는 덜컹거리며 나아가는 전차 속에서도 해치의 스코프를 통해 주변을 끊임없이 살폈다.

    본부 중대의 무전에 따르면, 다수의 T-34가 추도보 방면에서 볼호프강을 도하해 북서쪽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했던가.

    그렇다는 것은 놈들의 목적지는 분명 레닌그라드일 터. 그럼 이제 곧, 저쪽에서 놈들의 전차가 나타날 것이었다.

    “그룬 5, 그쪽으로 다수의 전차가 접근 중. 확인 후 응답 바람.”

    “여기는 그룬 5. 알겠다.”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하버 상사는 주변을 살피다 조종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라프, 저쪽의 수풀 뒤로 전차를 숨겨라.”

    “예!”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예상대로 저 멀리서 소련군의 전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T-34··· 가 맞나?”

    그러나 쌍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 전차는, 하버 상사가 알고 있던 T-34와는 뭔가가 달랐다.

    ‘아니, 차체의 형상은 분명 T-34가 맞다. 하지만 포탑이 뭔가 좀 이상한데···.’

    비록 거리가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저놈의 포탑은 기존의 T-34와는 달랐다. 전체적인 크기도 훨씬 커졌고, 주포도 눈에 띄게 굵고 길었다.

    “···설마, 신형 전차인가?”

    그렇게 하버 상사가 적의 모습을 살피고 있을 때, 저쪽 옆에 서 있던 다른 아군 전차가 적을 향해서 발포하기 시작했다.

    “젠장, 멍청한 놈. 저건 그냥 T-34가 아니라고!”

    그러나 아군 4호 전차가 발사한 75mm 철갑탄은 적 전차의 둥글둥글한 포탑에 스치듯이 맞아 튕겨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볼때기를 한 대 맞은 그놈은 이쪽을 향해 포신을 돌리더니 그대로 아군 전차의 전면 장갑을 뚫어버렸다.

    “제, 젠장···. 이 거리에서 4호 전차의 전면 장갑을 관통한다고?”

    현재 적 전차와 아군의 거리는 약 1km.

    그리고 4호 전차의 전면 장갑은 80mm이니, 기존의 T-34라면 절대로 관통하지 못할 거리였다.

    그 모습을 본 하버 상사는 확신했다.

    저놈은 분명 대구경 주포를 장착한 신형 T-34라고.

    “기제, 방금 봤나?”

    “봐, 봤습니다.”

    “너도 눈치 챘겠지만, 저놈은 아마 신형일 거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까지 교본에서 배웠던 그 T-34가 아니라는 거지.”

    하버의 말에, 포수 기제는 식은 땀을 흘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너무 떨지마라. 그래 봤자 결국 T-34 아니겠냐.”

    “하지만 상사님도 보셨지 않습니까. 저놈은 방금 아군의 사격을 튕겨냈습니다.”

    “아니, 아마 튼튼한 것은 포탑뿐이고, 차체는 T-34 그대로일 거다. 차체를 노려라.”

    “···알겠습니다.”

    하버 상사가 봤을 때, 저놈은 T-34의 차체에 새로운 포탑을 올린 것뿐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차체는 예전의 T-34처럼 우리의 75mm 포탄에 그대로 뚫릴 터.

    ‘···젠장. 내 생각이 맞았으면 좋겠군.’

    “기제, 쏴라!”

    “발사!”

    쾅!

    그렇게 모두가 떨면서 지켜보는 가운데, 하얀 연기와 함께 날아간 포탄은 정확히 차체 왼쪽에 꽂혔다.

    그리고 잠시 뒤, 그 커다란 포탑 위에서 해치가 열리더니 연기와 함께 사람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하, 하하! 적 전차 격파입니다!”

    “그래, 첫 격파 축하한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놈들을 추격합니까?”

    그러나 해치 밖을 바라보던 하버 상사는 첫 전투에 잔뜩 흥분한 승무원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속으로 퇴각한다. 여기는 우리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것 같군.”

    하버 상사가 바라보던 바로 그곳에는, 방금 전의 그놈처럼 커다란 포탑은 단 신형 T-34들이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었다.

    개전 초, 독일군을 떨게 만들었던 T-34 쇼크가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 59화. 2차 레닌그라드 공방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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