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49화 (49/157)
  • 49화. 천왕성 작전 (11)

    1942년 12월 7일.

    소비에츠키의 4기갑군 사령부.

    “각하, 11군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어제 밤, 마지막 공병대대가 칼라치 다리

    를 파괴하고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11군의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던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은 부관의 보

    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 그럼 현재 11군과 소련놈들의 배치는 어떻게 바뀌었나?”

    “그 부분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호트 장군의 물음에, 부관과 참모 장교들은 11군의 보고서를 참고해서 상황판

    위의 말들을 빠르게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상황판 위에 표시된 전선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있

    었다.

    천왕성 마지막 (교량 파괴 후).png

    “하하! 상황이 제법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원래 칼라치의 교량을 지키고 있던 11군은 서쪽으로는 65군, 북동쪽은 제1근

    위군으로 둘러싸여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11군이 다리를 파괴하고 남쪽으로 물러나는데 성공하자, 이러한 양측

    의 형세는 단박에 뒤바뀌어버렸다.

    서쪽을 압박하던 65군은 돈강을 건너지 못해 전선에서 배제되어 버렸고, 제1

    근위군과 5기갑군은 마치 아군에게 포위당한 채 강가에 몰린 형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소련군은 돈강 때문에 보급에 차질을 겪을 것이고, 아군은 11군과 4기

    갑군이 합류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전선이 훨씬 안정된 상태.

    호트 상급대장은 눈 앞에서 펼쳐진 이 놀라운 변화에 내심 감탄을 멈출 수 없

    었다.

    ‘···정말 대단하군. 소련놈들이 대규모로 돈강을 도하했을 때만 해도 끝장이

    라고 생각했는데, 그 상황을 이렇게 바꿔버릴 줄이야.’

    그러나 정말로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단 한 사람의 기책으로 인해서 만들

    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거듭되는 쾌속 승진으로 불과 얼마 전에 처음 사령관직을

    맡게 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상급대장이었다.

    ‘파울루스 상급대장이라···. 정말 그 친구에 대한 소문이 모두 사실이었단 말

    인가.’

    솔직하게 말해서,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은 그동안 파울루스 장군에 대해서 그

    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군부 내에서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레닌그라드 함락과 모스크바 전투

    의 승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들 하지만, 작전에서 참모차장이 공

    을 세워봤자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겠는가.

    이는 아마도 총통께서 친나치 인사를 핵심 요직에 앉히기 위해 만들어낸 공적

    이리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트는 파울루스 장군의 소문에 대해서 딱 그 정도

    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군의 이번 대반격 이후에 파울루스 장군이 보여준 모습은 그가 생

    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아닙니다. 우선, 남쪽의 공세를 막는데 모든 전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 대신, 칼라치의 교량을 파괴하고 물러나는 겁니다.’

    그는 소련군의 초기 공세 규모와 방향을 냉철하게 간파한 뒤 정확하게 대응했

    고, 이번에 일어난 예상 밖의 사태에 대해서도 놀라운 기지를 발휘해서 상황

    을 반전시켜버렸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아주 마음에 드는군.”

    호트는 작전 지도 위에 펼쳐진 상황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무대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드넓은 벌판에 소련군은 돈강으로 퇴로가 막혀

    고립된 상황.

    누가 마치 독일군 기갑부대를 위해서 준비해둔 것처럼, 기동전을 펼치기에 완

    벽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래, 우리도 언제까지고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지도를 바라보며 미소짓던 호트는 고개를 들어 군단장들에게 힘차게 명령을

    내렸다.

    “좋아. 드디어 우리 4기갑군의 차례가 왔군. 저 멍청한 이반 놈들에게 기동전

    이 어떤 건지 가르쳐줘라!”

    *****

    그리하여, 1942년 12월 8일.

    4기갑군의 진격을 시작으로 칼라치 동쪽의 눈 덮인 평원은 다시 한번 전장이

    되었다.

    그러나 공세에 나선 4기갑군의 전력은 소수의 티거를 포함해 전차 200여 대에

    불과한 반면, 5기갑군이 동원한 전차는 무려 350대로 전력상 거의 2배에 달하

    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맹장 호트가 이끄는 기갑부대는 놀라운 속도로

    전선을 돌파하기 시작했고 이에 5기갑군은 서서히 서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로마넨코 소장! 5기갑군 동무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350대

    를 가지고도 고작 200대에게 밀리는 건가!”

    “그, 그게··· 보급의 문제로 정비와 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 기

    동 가능한 전차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돈강 도하 이후로 계속해서 불거진 보급의 문제가 숨어있

    었다.

    원래 제1근위군과 5기갑군의 계획은 기습적으로 칼라치를 포위한 후 다리를

    통해 보급로를 확보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최소한의 보급품만을 가지고 돈강

    을 건넜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우연히 벌어졌던 전차전과 11군의 다리 폭파로 인해 물거품

    이 되어버렸고, 그 후로 소련군은 최소한의 보급만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비록 보급 사정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보급은 유지되고 있

    을 터.

    그런데도 기갑부대의 가동률이 이렇게까지 떨어졌단 말인가?”

    “사령관 동지, 기갑부대는 포탄이나 연료 등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보급량이

    많습니다.

    게다가 전차가 고장 났을 때, 야전 수리가 불가능하거나 수리할 부품이 없어

    서 아깝게 버려지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후··· 빌어먹을···.”

    이어지는 5기갑군 사령관, 로마넨코 소장의 암울한 보고에, 로코솝스키는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빌어먹을··· 역시 애당초부터 너무 무리한 도박수였나? 아니, 원래의 계획대

    로 초기에 칼라치를 포위하고 확보하기만 했으면···. 도대체 왜 하필이면 그

    날 그곳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

    로코솝스키 중장은 48기갑군단과 5기갑군의 불행한 만남을 떠올리며 이를 갈

    았다.

    그러나 지나간 일은 어찌할 수 없는 법.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지도 위에 펼쳐진 전황을 살피며 이 사태를 개선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참모장, 칼라치의 교량 복구작업은 얼마나 진행되었나?”

    “현재 65군의 공병 부대들이 모두 달라붙어서 공사를 벌이고 있습니다만, 아

    마 올해 안에 완료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올해 안에 어렵다고 한다면 아무리 빨라도 이번 전투의 승부가 판가름 난 다

    음에야 수리가 완료될 터.

    로코솝스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어쨌든 최대한 서둘러 주게나. 그럼 지금은 보급이 어떤

    루트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현재는 돈강에 살얼음이 끼어있어 일부 구간은 배로, 다른 구간은 썰매로 보

    급품을 실어나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조금만 더 추워져서 얼음판이 튼튼하게 얼어붙는다면 강 위로

    트럭이 지나갈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얼음이라··· 그렇군.”

    참모장의 말대로, 돈강 위로 트럭이 지나갈 수만 있다면 보급 문제는 단번에

    해결된다.

    게다가 이 지역의 기후를 생각하면, 이제 몇 주 안에 돈강이 충분히 얼어붙을

    터였다.

    ‘그래, 그럼 몇 주만 더 버티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아군이 그때까지 버

    틸 수 있을 것인가로군.’

    드디어 희망을 찾은 로코솝스키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로코솝스키의 눈에 들어온 부대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돈강

    서쪽에 남겨진 65군이었다.

    “···좋소. 그럼 참모장의 말대로 돈강이 충분히 얼어붙을 때까지 현재 위치에

    서 버티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때까지는 65군을 예비대로 삼고 제1근위군과 5기갑군에서 손실이 발

    생하는 만큼 병력을 계속 투입하시오.”

    ‘결국, 전쟁은 마지막에 서 있는 놈이 이기는 법. 독일놈들이 계속해서 공세

    를 퍼부으면, 우리는 그만큼 병력을 투입하면 된다.’

    어차피 로코솝스키에게 다음이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번 전투에 남서 전선군의 모든 것을 걸어버렸다.

    *****

    그리고 그 후로, 의외로 쉽게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칼라치 일대의 전

    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격화되어 갔다.

    우선,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던 독일군은 이번 기회에 남서 전선군의 전

    력을 섬멸하고자 안간힘을 짜내서 총공세에 나섰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소련군은 말 그대로 병력을 갈아 넣으면서 몰려오는 독일

    군의 공세를 끝없이 격퇴했다.

    그 과정에서 칼라치 동쪽의 새하얀 설원은 병사들의 피와 포격의 그을음으로

    검붉게 물들어 갔고, 돈강을 건너는 소련군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소련군 병사들이 흘린 피와 헌신은 결국 보답받았다.

    1942년 12월 22일, 칼라치의 다리가 무너진 지 약 2주가 지났을 무렵. 드디어

    돈강이 완전히 얼어붙은 것이다.

    “좋아! 그럼 이제 보급을 정상적으로 재개하고 65군을 모두 투입하도록! 이번

    에야말로 독일놈들을 밀어내는 거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나 로코솝스키가 기대했던 대반격은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난 2주간의 치러진 어마어마한 소모전의 대가로 65군의 병력은

    진즉에 다 투입되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여력이 없는 것은 독일군 측도 마찬가지였다.

    독일군은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승기를 잡기 위해서 지난 몇 주간 지친 병사

    들을 다그치며 공세를 감행했으나 결국 끝없이 몰려오는 소련군을 뚫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11군과 4기갑군은 모든 공세 여력을 소진해버렸고, 이제

    는 참호를 파고 현재 위치에서 버텨야 할 처지였다.

    “후··· 정말로 곤란하게 되었군.”

    이 사태에 대해서 보고를 받은 나는 돌아가는 전황을 살펴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지금의 이 상황은 아군에게 있어서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6군과 4기갑군, 11군까지 3개 야전군의 보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쪽의 철로만으로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남서 전선군을 몰아내고 서쪽의 철로를 확보

    했어야 했는데 결국 실패한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서 미리 비축해두었던 보급품이 모두 소진된다면, 결국 우

    리도 물러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곤란한 건 저놈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소련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번 작전에서 소련놈들의 목표는 스탈린그라드의 포위망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놈들의 공세는 모두 다 좌절해버렸고 더 이상 투입할 병력도 없을 테

    니 천왕성 작전은 사실상 실패나 마찬가지일 터.

    이제 이 전투는 스탈린그라드의 소련군이 항복하는 것과 우리의 보급품이 모

    두 소진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빠를 것인가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후··· 거의 다 이긴 거나 마찬가지인데 마지막에 병력이 부족해서 이런 무승

    부 상황에 놓일 줄이야.’

    그렇게 내가 지도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내 앞에 놓여 있던 전화

    기가 울려 퍼졌다.

    내가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어 올리자, 그곳에서는 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

    가 흘러나왔다.

    “6군 사령관, 파울루스 상급대장입니다.”

    “파울루스 장군, 전황은 좀 어떤가?”

    전화기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남부집단군 사령관 만슈타인 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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