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48화 (48/157)
  • 48화. 천왕성 작전 (10)

    1942년 12월 1일.

    남서 전선군의 기습적인 도하와 우연한 조우로 인해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진

    바로 다음 날.

    나는 카르포프카의 6군 사령부에서 전날의 전과 보고를 받아보고 있었다.

    “각하, 어제 루친스키 일대에서 있었던 교전 결과 보고입니다. 현재까지 확인

    된 바로는 적 전차 약 150대, 아군 전차는 약 50여 대가 파괴된 것으로 파악

    되었습니다.”

    “150대 격파에 50대 손실이라···. 생각보다 아군의 피해가 컸군.”

    현재 아군의 기갑전력은 남쪽의 공세를 막아내느라 이미 한차례 소진된 상태

    였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계획에도 없던 단 한 번의 교전으로 50대나 파괴된 것은

    예상 밖의 뼈아픈 손실이었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운 좋게 소련군의 포위 시도를 막아낸 셈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확실히 어제의 일은 우리가 운이 좋았네.”

    그러나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번 전투는 명백히 아군의 승리였다.

    이 우연한 조우 덕분에 기습적으로 포위망을 완성하려던 소련군의 시도는 무

    위로 돌아갔고, 우리는 놈들의 도하에 대비할 시간까지 벌었으니까.

    그리고 이 약간의 시간을 이용해서, 우리는 전열을 가다듬고 예비대를 끌어모

    아서 칼라치 동쪽 평원에 병력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에 갑작스러운 사태인지라, 당장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4기갑군

    단과 48기갑군단 소속의 전차 200여 대와 보병 사단 5개가 고작이었다.

    그에 반해, 우리의 적은 무려 2개 야전군을 모두 도하시키고 교두보까지 확보

    한 상태.

    천왕성 마지막 (돈강 도하 후).png

    어제의 승리 덕분에 적의 기갑전력을 제법 소모 시키고 최악의 사태를 피하긴

    했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임은 변함없었다.

    ‘···젠장, 곤란하게 되었군.’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의 이 병력으로 남서 전선군의 진격을 막아볼 것인가? 아니면 칼라치의

    11군이 포위되기 전에 먼저 퇴각시킬 것인가?

    나는 지도를 내려다보며 혼자 고민하다 회의실에 앉아있던 두 사람, 호트 상

    급대장과 잘무트 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두 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칼라치를 버리고 퇴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물음에 먼저 대답한 것은 11군 사령관, 잘무트 대장이었다.

    “각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칼라치 다리가 굉장히 중요한 거점임에는 틀림없

    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서쪽으로 향하는 철로가 막힌 이상 포위될 위험

    을 무릅쓰면서까지 칼라치를 계속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칼라치와 그곳의 교량은 스탈린그라드로 통하는 입구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잘무트 대장의 말대로, 지금과 같이 서쪽으로의 길이 막혔다면 칼라치

    를 계속 지킬 이유는 많이 퇴색된다.

    “게다가 현재 모든 보급은 남쪽으로 통하는 철로에 의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칼라치를 포기하고 11군의 전력으로 방어를 굳히는 편이 낫

    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호트 상급대장이 잘무트 대장의 말에 반박하고 나서며 말했다.

    “잘무트 대장,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결국 아군의 목적은 저놈들의 공세를 모두 물리치고 이 일대를 지켜내는 거

    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쪽으로 향하는 철로를 수복하는 것이 필수적이

    지.”

    비록 아직 남쪽으로 이어지는 철로가 연결되어있기는 하지만, 이쪽 라인은 로

    스토프를 경유해야 하기 때문에 길을 많이 우회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프카스로 내려간 1기갑군, 17군의 보급선과 라인이 겹

    치는 바람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보급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때를 대비해서 칼라치 다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물론이오. 그러니, 지금은 어떻게든 칼라치를 사수하면서 놈들을 막아내야만

    하오.”

    “하지만 어떻게 놈들을 막는단 말입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방어선이 뚫

    리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겁니다.”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자, 두 사람의 시선은 결국 나에게로 향했다.

    칼라치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마치 결단을 촉구하는 듯한 그들의 눈빛을 받으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11군을 퇴각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안정적으로 방어선을 굳히는 것이 우선이지요.”

    “흠···.”

    내 말에, 두 사람의 희비가 갈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들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대신, 칼라치의 교량을 파괴하고 물러나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내 말에, 두 사람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

    았다.

    “다리를 파괴하면 놈들이 사용하진 못하겠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

    겠습니까?”

    “그건 나도 이해가 잘 안 되는군. 자세하게 말씀해주시겠소?”

    나는 그런 그들에게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왜냐하면, 보급 때문입니다. 현재 소련군은 무려 2개 야전군을 도하시켰습니

    다. 그런데도 놈들은 제대로 된 보급로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놈들의 규모가 2개 야전군이라면 병력 수는 최소한 10만에서 15만에 달할 것

    이고, 이들이 하루에 소요하는 보급량은 최소 수백 톤이 넘을 터였다.

    그런데 이들이 보급을 유지할 방법은 그들이 건너왔을 때처럼 돈강을 도하 하

    는 수밖에 없다.

    즉, 이들이 정상적으로 보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마다 수백 톤에 달하는

    보급품을 일일이 도하시켜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군. 지금 돈강을 건넌 놈들은 보급 사정으로 꽤나 골머리를 앓고 있

    겠어.”

    “맞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문제 때문에 놈들은 칼라치를 최대한 빨리 점령하

    려고 할 겁니다.”

    “하긴, 칼라치의 교량을 확보하면 보급의 문제도 한 번에 해결될 테니.”

    “그런데 만약 저희가 칼라치의 다리를 부숴버리고 빠져나간다면 저들은 어떻

    게 되겠습니까?”

    내 말에 두 사람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재미있군. 그럼 한번 해봅시다!”

    *****

    1942년 12월 5일.

    칼라치로부터 고작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 오두막.

    이곳에서 제1근위군 소속의 중대장, 블라디미르 발레리 대위는 오늘도 맛대가

    리 없는 보리죽을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급양관 동무, 우리 부대는 보리죽이 자주 나오는구만.”

    “죄송합니다, 지휘관 동지. 최근 보급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후···. 아니오. 급양관이라고 별수 있겠소.”

    발레리는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보리죽을 씹어 삼켰다.

    ‘젠장, 5전차군 놈들이 멍청한 짓을 하는 바람에 우리가 생 고생을 하는군.’

    사실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중대장인 그는 이런 보리죽이 아니라 훨씬 사람다

    운 식사를 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얼마 전, 돈강을 도하한 뒤부터 중대의 보급 사정이 크게 악화되었고,

    그로 인해서 중대장인 발레리 대위도 병사들과 똑같은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었다.

    발레리 대위는 투덜거리면서도 그릇 안의 보리죽을 싹 비운 뒤, 창가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

    발레리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오두막의 창문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곳의 지평선 저편에는 돈강의 단 하나뿐인 다리 마을, 칼라치가 보였다.

    “제기랄, 이 빌어먹을 보리죽 때문에라도 저기를 빨리 점령하던가 해야지, 원.”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바로 코앞에 놓인 저 도시와 다리만 점령하면 그때부터는 다시 옛날의 식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발레리가 담배를 연거푸 태우고 있을 때였다.

    “지, 지휘관 동지! 급보입니다!”

    갑자기 병사 하나가 방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어와 말했다.

    발레리는 노크도 하지 않는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

    에 우선 물어보았다.

    “···쯧, 무슨 일인가?”

    “현재 칼라치의 독일군이 철수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뭐?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어디서 들어온 정보인가?”

    “그, 그게··· 저희 중대의 정찰병 동무들이 보고 왔다고 합니다. 바로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말을 흐리는 병사의 모습을 보면서, 발레리는 한숨을 크

    게 내쉬었다.

    ‘하긴, 그럼 그렇지. 또 정찰 분대 놈들이 이상한 걸 보고서 멋대로 지껄였나

    보군.’

    자신의 부하들이기는 하지만, 발레리는 정찰 분대의 보고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초급 장교와 병사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보니 다들 경험이

    부족해서 잘못된 보고를 올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의 보고도 독일놈들이 진지를 이동한다거나 교대하는 모습을 보고는

    멋대로 판단한 것일 터였다.

    ‘자, 그러면 이놈을 어떻게 처리한다.’

    발레리는 별것도 아닌 일로 자신의 방문을 열어버린 병사를 싸늘하게 바라보

    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중대장 동지, 급보입니다! 현재, 칼라치의 독일군이 퇴각하고 있다는 보고입

    니다!”

    “후···.”

    또 그 소리인가.

    발레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일개 병사가 아니라 부중대장이었다.

    “···부중대장 동지. 그건 어디서 들어온 정보요?”

    “연대에서 내려온 전문입니다. 믿기 힘든 정보지만, 아마 틀림없을 겁니다.”

    그 말에 발레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중대장의 말대로 연대에서 내려온 전문이라면 결코 헛소리는 아닐 터.

    그럼 지금 칼라치는 무주공산이거나, 최소한의 방어병력만 남아있는 상태이리라.

    ‘그리고 지금 칼라치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부대는 바로 우리 중대지.’

    만약 그렇다면.

    지금 당장 달려간다면 우리 중대가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칼라치에 입성해서

    저 교량을 확보해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 최소한 진급에, 운이 좋으면 군공 메달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발레리는 곧바로 부중대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동지! 지금 즉시 중대원들을 소집하시오! 우리는 지금 당장 칼라치를 점령해

    야 하오!”

    “알겠습니다, 동지!”

    그리고 1시간 뒤, 모든 준비를 마친 발레리의 중대는 곧바로 칼라치를 향해서

    진격했다.

    병사들은 처음에는 혹시 독일놈들이 은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조심스

    럽게 나아갔지만, 도시가 가까워짐에도 총성 한 발 울리지 않자 점점 더 대범

    하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대원들이 시가지에 진입하자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중대장 동지! 보고가 사실이었습니다! 독일놈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좋아! 지금 즉시 교두보를 확보하도록. 아니, 운전병! 우리가 직접 칼라치

    교량으로 간다!”

    “예!”

    그렇게 발레리를 태운 지프는 도시를 가로질러 돈강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

    했다.

    그리고 잠시 뒤, 돈강 앞에 도착한 발레리는 곧장 지프 차에서 뛰어내려 다리

    를 향해 달려갔다.

    “···빌어먹을. 당했군.”

    그러나 발레리가 기대했던 칼라치 다리는 그곳에 없었다.

    그 대신,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완벽하게 무너져내린 교량의 콘

    크리트 잔해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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