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46화 (46/157)
  • 46화. 천왕성 작전 (8)

    “···어나시오. 어서 일어나시오, 동무.”

    1937년 어느 날.

    로코솝스키는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비몽사몽 간에 잠에서 깨어

    났다.

    “···누구시오?”

    “5기병군단장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로코솝스키 소장, 맞소?”

    낯선 목소리의 그 사내는 질문에 대답해주지도 않고서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그제서야 잠이 달아난 로코솝스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자를 바라보았다.

    ‘···젠장, 설마 엔카베데인가.’

    파란 베레모에 파란 승마바지, 그리고 육군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약장까지.

    그 모습은 최근 군부 내에서 피바람을 몰고 다니는 정치경찰, 엔카베데임에

    틀림없었다.

    “내가 5기병군단장은 맞소만··· 도대체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무고한 시민 열 명을 놓쳐도 한 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 미친놈들이 도대체 왜 나를 찾아왔단 말인가.

    잘못한 일도 없건만, 로코솝스키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일단 일어나시오. 잠깐 우리와 같이 가주셔야겠소.”

    그들은 수갑도 채우지도 않은 채 잠옷 차림의 로코솝스키를 거칠게 일으켜 세

    웠다.

    그러나 로코솝스키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기서 저항했다간 조사도, 재판도 없이 곧바로 총알이 날아올 것

    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로코솝스키는 마치 포로처럼 양팔을 들어 올린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관사 밖으로 걸어 나가자 그곳에는 칠흑처럼 새까만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리고 그때부터 지옥과도 같은 나날이 시작되었다.

    *****

    온몸이 물에 젖은 것처럼 무겁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전신의 근육과 관절이 비명을 지른다.

    마치 꿈속인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진다.

    “로코솝스키 동무, 다시 한번 묻겠소. 동무는 폴란드와 일본에 소비에트 연방

    의 정보를 팔아치웠고, 트로츠키주의 군사 조직에 참가하였소. 이러한 반 혁

    명 행위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시겠소?”

    고막을 울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로코솝스키는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앞에는 하얀 종이와 펜이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몇 번이고 봤던 광경이다.

    지금껏 몇 번을 대답해도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일이었다.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테지.

    하지만 로코솝스키는 이번에도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실수 한마디라도 하는 순간 그의 인생은 끝날 것이기 때

    문이었다.

    “···아니, 인정하지 않겠소. 나는 맹세컨대 결단코 그런 행위를 한 적이 없소.”

    “···좋소. 자, 그럼 시작하지.”

    그리고 언제나처럼 여러 연장을 동원한 구타가 가해졌다.

    이곳의 엔카베데 놈들은 전문적인 고문보다는 무식한 구타를 더 선호했다.

    오직 고통만을 주기 위해서 행해지는 고문과는 달리, 이들은 마치 로코솝스키

    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구타하고는 했다.

    그렇게 로코솝스키는 마지막까지 거짓 증언을 거부했지만, 그런 그의 노력과

    저항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가 끝까지 버티자 엔카베데 놈들은 아무런 증거도 자백도 없이 사형을 선고

    해버렸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새끼들···.’

    그러나 그렇게 죽을 날만 기다리던 중 어느 날, 로코솝스키는 갑자기 석방되

    었다.

    무죄라거나,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끌려왔을 때처럼 아무 말 없이 풀려난 로코솝스키는 서기장과 짧은 면담을 한

    뒤 다시 군복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로코솝스키는 깨닫게 되

    었다.

    그가 마음속에 품었던 원한과 증오는 이미 마모되어 사라져 버렸음을.

    그리고 그 대신, 그의 가슴속에 남은 것은 당과 체제에 대한 공포와 충성심뿐

    이었다.

    *****

    1942년 11월 28일.

    클레츠카야의 남서 전선군 사령부.

    한창 다음 공세 계획을 세우던 로코솝스키 중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령관 동지, 스타브카의 전화입니다.”

    “알겠네.”

    스타브카라면 주코프 대장인가. 아니면 만에 하나 서기장 동지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로코솝스키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통

    신실로 향했다.

    “남서 전선군 사령관, 로코솝스키 중장입니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그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인물이었디.

    “로코솝스키 동지. 나 총참모장 바실렙스키상장이오.”

    “···바실렙스키 동지. 무슨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남서 전선군의 작전 목표를 수정해야 할 것 같소이다.”

    ‘작전 목표를 바꾼다고?’

    갑작스러운 바실렙스키의 말에 로코솝스키는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의 목표였던 칼라치까지 이제 10km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목표를 바꾸란 말인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좋소. 로코솝스키 동지도 아시겠지만, 57군과 64군의 진격이 영 시원치 않

    소. 그래서 기존의 계획이었던 양익 포위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게 스

    타브카의 판단이오.”

    “도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그러십니까.”

    “그게, 독일놈들이 신형 중전차를 대거 투입하는 바람에 20여 킬로미터밖에

    가지 못했다더군.”

    열흘 동안 진격한 거리가 고작 20km에 불과하다면 사실상 공세가 실패한 것이

    나 마찬가지일 터.

    그제서야 로코솝스키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쩐지··· 이제껏 독일놈들이 맞서 싸우는 대신에 지연전을 펼치며 퇴각만

    하더니, 그게 전부 남쪽의 공세를 막기 위함이었나.’

    한쪽을 먼저 막고 빠르게 돌아가서 반대쪽을 막는다. 전형적인 기동 방어 전

    술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쪽의 공세를 모두 막았으니 그 전력이 모두 이쪽으로 몰

    려오겠군.’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는 로코솝스키에게 바실렙스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

    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아직 여력이 남아 있는 남서 전선군이 나머지 전선을 닫아

    주셔야겠소. 가능하시겠소?”

    “······.”

    그 말에 로코솝스키는 말없이 작전 지도를 바라보았다.

    현재 남서 전선군의 위치에서 포위망을 닫기 위해 진격해야 하는 거리는 최소

    80km.

    이 거리를, 그것도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돈강을 건너서 진격해 가야

    한다.

    그것이 정말로 가능할 것인가?

    ‘···어렵군.’

    냉정하게 말해서,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로코솝스키로서는 여기서 못하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당초에 그가 형무소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이 빌어먹을 전쟁 덕분이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로코솝스키는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증명해야만 했다.

    만약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찍힌다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몰랐으

    니까.

    ‘빌어먹을···.’

    “그래서 어떻소. 가능할 것 같소?”

    마치 대답을 재촉하는 듯한 바실렙스키의 물음에, 로코솝스키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답을 찾았다.

    그리고 잠시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작전대로라면 목표에 도달하기 전

    에 공세 능력이 모두 고갈될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다른 묘안이 있습니다.”

    이 말에 그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러나 바실렙스키는 대답이 없었다.

    이에 불안해진 로코솝스키가 다시 한번 입을 열려는 찰나, 갑자기 수화기 너

    머로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소, 동지가 말하는 묘안이라는 게 뭔지 궁금하군. 한번 말해보시오.”

    놀랍게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소련군 최고 사령관 대리인 게오르기

    주코프 대장이었다.

    마치 기회를 주는 듯한 주코프의 말투에, 로코솝스키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천왕성 마지막 (로코솝스키 제안).png

    “그건 바로, 칼라치를 먼저 포위하는 것입니다.”

    “칼라치를 먼저 포위한다고?”

    “예. 방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독일군을 한꺼번에 포위하는 것은 어렵습니

    다. 그렇다면 차라리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칼라치의 독일군을 먼저 섬멸한

    다음 나머지를 포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호오.”

    현재 독일군은 교량이 놓여있는 칼라치 서쪽 일대에 병력을 집중 배치해서 방

    어선 구축하고 있었다.

    이들의 방어선을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는 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돈강을 도하

    한 다음 칼라치를 포위하면 되지 않겠는가.

    ‘만약에 칼라치의 독일군을 큰 피해 없이 섬멸하기만 한다면 나머지 포위망을

    완성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터.

    지금 아군의 전력으로 스탈린그라드를 탈환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주코프도 그런 로코솝스키의 작전에 납득한 모양인지 꽤나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작전만 놓고 보면 완벽하군. 하지만 정말 가능하겠소? 동지의 작전대로라면

    2개 야전군을 수상 도하시켜야 할 텐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요.”

    “최고 사령관 대리 동지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반드시 성공시켜 보이겠습

    니다.”

    “그렇다면 좋소. 한번 해보시오.”

    그렇게 스타브카의 허락이 떨어진 뒤, 로코솝스키는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내

    려놓았다.

    그러고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주사위는 던져졌군.”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어떻게든 이번 작전을 성공시키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며, 로코솝스키는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

    의 지휘실로 돌아갔다.

    *****

    그렇게 5기갑군과 제1근위군이 한창 돈강을 도하 하고 있을 무렵, 카르포프카

    의 6군 사령부에서는 작전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파울루스 장군께서는 소련군의 다음 공세지점이 어디라고 생각하

    시오?”

    “그야 당연히 칼라치겠지요.”

    호트 장군의 물음에 나는 고민하지 않고 즉답했다.

    어차피 남쪽의 공세가 막힌 이상, 소련놈들이 움직일 수 있는 말은 돈강 만곡

    부 일대의 남서 전선군 뿐일 터. 그렇다면 이들이 향할 곳은 뻔했다.

    ‘당연히 칼라치의 교량을 확보하고 우리의 후방을 공격하려 하겠지. 아니면,

    원래의 계획대로 포위망을 완성하려고 시도할지도 모르고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대비를 모두 끝마친 상황이었다.

    칼라치와 치르강 일대에는 11군이 방어선을 굳건히 구축한 채 버티고 있었고,

    루마니아 4군을 지원하던 4기갑군단과 48기갑군단도 11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이동하고 있다.

    ‘이제 몰려오는 소련군을 칼라치 방어선에서 막아낸 다음, 4기갑군단과 48기

    갑군단으로 놈들을 밀어내기만 하면 끝나겠군.’

    그럼 스탈린그라드를 6군의 무덤으로 만들어버렸던 천왕성 작전은 실패로 끝

    날 것이고, 스탈린그라드 전투도 블라우 작전도 모두 우리의 승리가 될 것이다.

    ‘그럼 그다음은··· 1943년부터는 내가 전혀 모르는 새로운 역사로 흘러가겠

    지.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번 블라우 작전만 성공하면 동부 전선의 무게

    추는 우리 쪽으로 엄청나게 기울어져 있을 테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여유롭게 보고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 슈미트 중장이

    다급하게 회의실로 뛰어들어왔다.

    “가, 각하! 급보입니다!”

    “그래, 드디어 소련군이 칼라치를 공격하기 시작한 건가?”

    그러나 이어지는 슈미트 중장의 말에,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현재 고루빈스키와 루친스키 일대에서 최소 야전군 규모의 소련군이 돈강을

    도하 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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