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천왕성 작전 (7)
“중전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중전차를 타고 싶다라.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예상이 갔다. 아마도 영웅 심리나 두려움 때문이
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힘차게 대답하는 프란츠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영웅이 되고 싶다거나 중전차를 타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나. 중전차 대대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전장에
만 투입되는 부대일세.”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이번 전투에서 많은 전우들을 잃어버렸습니다.”
나는 고개를 떨군 채 힘겹게 말을 꺼내는 프란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어깨를 떨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저 또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저 중전차가 나타나서 저희를
구해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저렇게 전우들을 구하고 싶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가.”
전우들을 구하고 싶다라···. 그것은 좋다.
하지만 문제는 저 녀석에게 정말로 그럴만한 실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시대의 중전차는 사실상 전략무기로 분류될 만큼 강력하고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저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실력이 없는 이를 태울 수는 없었다.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자, 옆에서 말없이 서 있던 하버 상사가 나서며 말했다.
“사령관님, 프란츠 상병은 바르바로사 작전부터 지금까지 수십 대의 전차를
격파해왔습니다. 그의 실력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확실히 그들의 104호 전차 포신에는 하얀 띠 형태의 격파 표식이 몇 개나 그
려져 있었다. 저 표식들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에게 한 번쯤 기회를 줘봐도 좋
을 터.
그렇게 생각한 나는 입을 열었다.
“좋네. 그렇다면 자네를 사관후보생으로 추천해주겠네. 그곳에서 실력을 입증
해낸다면 중전차 대대로 갈 수 있을걸세. 어떤가?”
내 물음에 프란츠는 눈을 빛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
“빌어먹을···.”
57군 사령관, 표도르 톨부힌 소장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책상 위에 놓인 보
고서를 읽어내려갔다.
- 1942년 11월 25일자 전과 보고
- 현재 29사단과 169사단은 사르파 호수에서 15km 떨어진 지점까지, 38사단과
422사단은 차차 호수에서 27km 떨어진 지점까지 도달하였음.
- 전력 손실이 심각해서 증원 없이는 더 이상 공세를 유지하기 어려움.
- 각 사단의 피해 규모는···
보고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그건 바로, 57군의 공세가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젠장··· 아무리 독일군 기갑부대의 지원을 받았다지만, 설마 약해빠진 루마
니아군의 방어선조차도 돌파하지 못할 줄이야.’
비록 예료멘코 상장의 닦달 때문에 급하게 감행한 공격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톨부힌 소장은 이번 공세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결과는 대참패.
공세에 투입된 300여 대의 전차 중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고, 보병 사단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제 57군이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전선을 유지하는 것뿐. 톨부힌으로써는
실패를 만회할 기회조차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제기랄··· 이 사태를 도대체 뭐라고 보고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의 이 상황을 그대로 보고했다간 패배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터.
하지만 정치장교 놈들이 모든 서류를 감시하고 있는 이상, 전과를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뭐든지 간에 다른 이유를 찾아야 할 텐데···.’
그렇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톨부힌 소장의 눈에 보고서 마지막에 적혀
있던 두 개의 문장이 들어왔다.
- 독일군이 신형 중전차를 투입함.
- 그 신형 중전차는 공, 수, 주 모든 면에서 아군의 T-34 전차를 압도하는 것
으로 확인됨. 시급히 대책이 필요함.
‘···그래! 이거다!’
톨부힌 소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참모장에게 말했다.
“참모장, 지금 즉시 독일군 신형 중전차와 교전해 본 전차병들을 소집하게.
그리고 이놈에 대한 정보를 빠짐없이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톨부힌 소장의 책상 위에 전차병들의 증언을 취합한 보
고서가 놓였다.
그 보고서를 읽은 톨부힌 소장은 직감했다. 이거라면 참패에 대한 문책을 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
1942년 11월 27일.
천왕성 작전이 시작된 지 약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스타브카에서는 주코프와
바실렙스키가 전과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바실렙스키 동지. 지금의 이 전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그래도 마냥 불리한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실렙스키의 애매한 평가에 주코프도 동의를 표하며 말했다.
“하긴. 남쪽의 공세가 막힌 것은 예상 밖이었지만, 어쨌든 가장 중요한 남서
전선군은 자신의 몫을 다해주고 있으니까.”
현재 스탈린그라드 일대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천왕성 전개 (부대 배치).png
루마니아 4군과 독일군이 남쪽의 공세를 꺾는데 집중하는 동안, 로코솝스키
중장이 이끄는 남서전선군은 루마니아 3군을 밀어내며 치르강까지 내려와 있
었다.
그로 인해 스탈린그라드 일대의 독일군 보급을 책임지던 철도는 차단되었고,
원래의 공세 목표였던 칼라치까지도 고작 10여 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은 상황.
바실렙스키 중장의 말대로 분명 전황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주코프는 이
낯익은 모습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양익 포위를 시도했으나 한쪽의 공세가 좌절되어 다른 쪽만 크게 돌출된 상
태라···. 빌어먹을 모스크바 전투 때와 판박이로군.’
주코프가 지도를 계속 들여다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그의 표정을 읽은
바실렙스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동지, 혹시 칼루가 포위망의 비극이 재현될까 걱정하시는 겁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그렇소.”
“그렇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는 그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모
스크바 전투 당시의 브리얀스크 전선군은 평야 한가운데에 놓여있었지만, 이
번에는 돈강과 치르강이 측면을 보호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긴, 게다가 이번에는 약해빠진 이탈리아, 루마니아 놈들이 그 측면을 맡고
있고 말이야.”
“하하, 맞습니다.”
바실렙스키의 말에 주코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에는 지난번과 같
은 역포위를 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터.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였다.
“좋소,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해 봅시다.”
“예. 제 생각에 현재 아군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크게 세 가지뿐입니다.”
“그게 무엇이오?”
“우선 첫 번째는 이번에 공세가 좌절된 남쪽으로 전력을 더 보강해서 원래의
계획대로 양익포위를 성공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군.”
첫 번째 방법의 경우, 장점도 단점도 명확했다. 장점은 원래의 계획대로 독일
군을 포위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더 많은 시간과 병력이 소요된다는 것
이었다.
“정석이군. 하지만, 그만한 병력을 더 차출할 수 있겠소? 안 그래도 보고서에
는 독일놈들이 엄청난 신형 중전차를 투입했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사단 몇 개 투입하는 걸로는 답이 안 나올 거요.”
“사실 저는 톨부힌 소장의 그 보고를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만··· 그래도 병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요.”
소련군의 병력 동원 현황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바실렙스키는 솔직
하게 부족함을 인정한 뒤 두 번째 안을 제시했다.
“두 번째는 가장 무난한 방법입니다. 그건 바로 남서전선군을 계속 진격시켜
서 포위망을 닫아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양익 포위 대신에 일익 포위를 하자는 거요?”
“예.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현재 남서전선군의 서쪽 방면에는 약한 동
맹국 부대들뿐입니다. 그러니 이쪽을 최소한의 병력으로 막으면서 모든 전력
을 동쪽으로 집중시켜서 포위망을 완성하는 겁니다.”
“호오. 확실히 이건 가능할 지도 모르겠군.”
현재 남서전선군의 서쪽 측면은 절반 정도가 치르강을 끼고 있는 형상이니 조
금만 병력을 보강한다면 2개 야전군만으로도 동맹국 부대들을 막을 수 있을 터.
그렇다면 가장 강력한 5기갑군과 제1근위군을 앞세워서 돈강을 건넌다면? 그
리고 그에 맞춰서 64군과 57군도 공세를 시작하고···.
머릿속으로 한참 고민하던 주코프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쓴웃음을 짓고 있는
바실렙스키를 바라보았다.
“이런, 내가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군. 미안하게 되었소.”
“아닙니다, 동지.”
“그럼 세 번째 안도 마저 들어봅시다.”
“예. 이건 조금 도박일 수도 있습니다만, 반대로 남서전선군을 서쪽으로 진격
시켜서 나약한 이탈리아, 루마니아군을 밀어내고 전선을 크게 확대하는 것입
니다.”
‘···스탈린그라드를 놔두고 서쪽으로 진격한다고?’
너무나도 모험적인 제안에, 주코프는 잠시 동안 말없이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의외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들기 시작했다.
“흥미롭군. 좀 더 자세히 말해보시오.”
“작전은 간단합니다. 우선 남서전선군을 둘로 나눈 뒤, 동쪽은 독일군을 막고
서쪽으로는 동맹군을 밀어내면서 진격하는 겁니다.
그럼, 독일놈들도 후방의 위험을 무시할 수 없으니 스탈린그라드나 카프카스
를 포기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세 번째 방법은 분명 기책이라고 할만했다.
계획대로 된다면 독일놈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퇴각해야 할 것이고, 만약 놈
들이 퇴각하지 않고 버티더라도 로스토프까지 진격하면 놈들의 보급을 끊을
수 있을 테니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
그러나 엄밀하게 가능성을 계산하던 주코프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바실렙스키 중장, 동지의 아이디어는 정말 흥미롭지만 위험하오.”
“어째서입니까?”
“일단, 만에 하나라도 독일군이 남서전선군의 진격을 막을만한 예비대를 보유
하고 있다면 그 계획은 결코 성공할 수 없소.”
“하,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오. 남서전선군이 현재 위치에서 로스토프까지 진격
하려면 얼마나 가야 하는지 알고 있소?”
주코프의 말에 바실렙스키는 지도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무려 200km요.”
“···그렇군요.”
사실, 그것으로 회의의 결론은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코프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도를 바라보는 바실렙스키에게 마지
막 쐐기를 박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두 번째 방법이 최선일 것 같군. 남서전선군 사령관
로코솝스키 중장과 긴밀히 연락해서 곧바로 작전을 실행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결론이 내려진 뒤, 바실렙스키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책상 위의 서류를 정리하던 그는 무언가를 보고 손을 멈췄다.
“주코프 동지, 그러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바실렙스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톨부힌 소장이 심혈을 기울여서 작성한
신형 중전차 보고서였다. 그것을 본 주코프는 씨익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그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이미 서기장 동지께서 그 전차를 잡
을 수 있도록 T-34를 개량하라고 지시 내리셨으니.
그리고, 우리도 신형 중전차 개발에 착수할 거라고 말씀하시더군.”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T-34의 개량과 신형 중전차 개발이라.
바실렙스키는 오늘부터 끝없는 야근에 들어가게 될 전차 설계국 동무들을 위
해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묵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