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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40화 (40/157)
  • 40화. 천왕성 작전 (2) [수정]

    “현재 남쪽으로 진격 중인 1기갑군과 17군을 회군시키고, 재편 중인 11군을

    돈강 일대의 동맹국 부대 후방에 전략 예비대로 배치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저희가 물러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남부집단군 사령관의 입장에서 이 대책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슈타인 원수라면 분명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아주지 않을까.

    내심 그렇게 생각했건만, 그의 대답은 내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다.

    “유감이지만,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군.”

    예상하지 못했던 만슈타인의 반대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렵다고?’

    도대체 어째서인가. 설마 만슈타인 원수도 지금까지의 성공에 눈이 멀어 낙관

    주의에 빠져버린 것일까?

    아니, 그와 같은 명장이 지금의 이 보고서를 보고도 상황을 오판할 리 없다.

    그렇다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째서입니까?”

    내 물음에, 만슈타인 원수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 큰 승리를 거둬버렸기 때문이라네.”

    “큰 승리··· 때문이란 말입니까?”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묻자, 만슈타인 원수는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카프카스 일대가 그려진 작전 지도로 향했다.

    스칼린그라드-카프카스 전도 (진격선).png

    “자네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문에 바빠서 몰랐겠지만, 지금까지 카프카스 점

    령은 무서울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네.”

    작전 상황판 위에서 17군은 흑해의 항구도시 노보로시스크와 마이코프 유전까

    지, 1기갑군은 마이코프에서 무려 360km나 떨어진 모즈도크까지 진격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1기갑군의 앞을 막는 소련군은 고작 2개 야전군뿐.

    이는 전생의 블라우 작전보다도 훨씬 빠르고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미 17군은 마이코프에 위치한 유전을 확보했네. 비록 소련놈들의 파괴 공

    작으로 생산량이 감소한 상태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석유 생산지를 손에

    넣은 셈이지.”

    “총통 각하께서 대단히 기뻐하셨군요.”

    “그래,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 속에도 좀 더 빨리 진격할 수는 없냐고 매일

    신경질적으로 닦달하고 계시다네.”

    ‘어쩐지 스탈린그라드 공략이 늦어 져도 별다른 질책이 없더라니, 남쪽으로의

    진격에 눈이 멀어있었나.’

    나는 만슈타인의 말에 내심 납득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제의 1기갑군은 현재 모즈도크까지 진격한 상태네. 그러니까 그 말

    은, 두 번째 유전인 그로즈니까지 고작 100km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지.”

    거기까지 들은 나는 만슈타인이 방금 말했던 너무 큰 승리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설령 다른 곳에서 큰 위기가 닥친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선뜻 손을 빼내기가 쉽지 않으리라.

    ‘게다가 한번 손에 넣은 것은 절대로 포기할 줄 모르는 총통이라면 더더욱 그

    렇겠지.’

    내 생각처럼, 역시 만슈타인도 총통의 고집을 걱정하고 있었다.

    “자네는 이런 상황에서 총통이 퇴각을 허락하리라고 생각하나?”

    “아마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시겠지요.”

    “그래서 정말 곤란하게 되었네. 로스토프에서 600km나 떨어진 1기갑군을 계속

    진격시키면서 북쪽에서는 소련군의 대규모 반격을 막아내게 생겼으니 말이야.”

    만슈타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하며 유쾌하게 웃었지만, 그의 눈빛은

    체념이 아닌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각하, 설령 총통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지금 1기갑군과 17군

    을 회군시켜야 합니다. 소련군이 반격을 시작한 다음에는 이미 늦습니다.”

    나는 그런 만슈타인 원수의 태도에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계속해서 간

    언했다.

    그러나 만슈타인 원수의 대답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파울루스 장군, 자네의 말은 분명 타당하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올바

    른 판단이겠지.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애당초에 이번 블라우 작전은 카프카스와 스탈린그라드, 둘 중 하나만 얻는

    것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네. 양쪽을 모두 다 얻던가 양쪽을 모두 포기하는

    수밖에 없지.

    그리고··· 나는 양쪽 모두를 동시에 성공시켜 보일 생각이네.”

    양쪽 다 얻거나 양쪽 다 잃는 싸움이라.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양쪽을 모두 얻겠다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발상이었다.

    “각하, 그것이 정말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네. 지금 자네가 준비하고

    있는 대로, 6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들어가지 않고 전력을 축적한 상태라

    면 말이야.”

    만슈타인의 말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정신이 멍해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설마 내가 준비해둔 것을 보고서 저런 무모한 작전도 승산이 있

    으리라고 판단한 건가.’

    지금까지 나는 천왕성 작전에 대비해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발을 깊게 넣지

    않고 오히려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만슈타인 원수는 그런 우리의 상황을 보고서 1기갑군과 17군을 회군시

    키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었다.

    ‘···설마 천왕성 작전에 미리 대비해둔 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만슈타인 원수는 일그러져가는 내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 생각은 이렇네. 우선 자네들 6군의 전력으로 스탈린그라드 일대에 방어선

    을 구축하고, 4기갑군의 기갑전력은 기동타격대로, 후방에서 재편 중인 11군

    은 돈강 후방에 예비대로 배치하는 걸세. 그렇게 동맹국들과 적절히 협조한다

    면 소련군을 막아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정말 만슈타인의 말대로 이것만으로 소련군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나는 지도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아군의 전력과 소련군의 반격규모를 계산하

    기 시작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것도 같군.’

    그런 나에게, 만슈타인은 도발적인 눈빛으로 물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자네들 6군이 스탈린그라드 일대와 포위망을 끝까지

    사수해낼 수 있다는 가정하에 성립되는 작전이네. 그러니 만약 지켜낼 자신이

    없다면 지금 말하게나. 지금 당장 후방으로 보내줄 테니.”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걸까. 아니면 야망이 눈이 멀어버린 것인가.

    만슈타인 원수는 자신의 야망 때문에 남부집단군 전체를 위험한 도박에 걸려

    고 하고 있었다.

    ‘제기랄,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나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만슈타인 원수를 마주 바

    라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조건만 들어주시면 각하의 뜻대로 스탈린그

    라드 일대를 끝까지 사수해내겠습니다.”

    “조건이 무엇인가?”

    “소련군의 반격을 막아내는 동안, 4기갑군과 11군을 제 지휘하에서 협조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

    “소련군의 반격을 막아내는 동안, 4기갑군과 11군을 제 지휘하에서 협조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갑작스러운 파울루스의 요청에, 만슈타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휘권이라···.’

    사실 파울루스가 저렇게 요청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이전에 그가 주장했던 대로 소련군의 반격이 시작된다면 6군이 담당하는 스탈

    린그라드가 전투의 중심이 될 것은 자명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저 녀석에게 그럴 만한 역량이 있느냐는 거지.’

    파울루스의 6군은 스탈린그라드를 공략하기 위해 몇 차례나 전력이 증원되서,

    그 수가 이미 20만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거기에 4기갑군과 11군까지 더하면

    거의 40만에 달하는 병력이 그의 지휘하에 놓이게 될 터.

    그렇다면 그가 과연 이만한 병력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겠는가?

    만슈타인은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파울루스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상급대장이라···.’

    사실 만슈타인은 남부집단군 사령관으로 오기 전부터 그에 대해서 많은 얘기

    를 들어왔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바르바로사 작전의 실패를 예견해낸 남자, 놀라운 선견지명

    으로 레닌그라드를 함락시키고 모스크바 전투를 최악의 위기에서 구해낸 장군.

    그렇기에, 만슈타인은 남부집단군으로 발령나자마자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파

    울루스를 만나보러 갔었다.

    그러나 파울루스를 처음 만났을 때 만슈타인이 느꼈던 감정은 기대보다는 실

    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명석하고 영리하긴 하지만 지휘관보다는 참모에 더 어울리는 사람.’

    만슈타인이 보기에 파울루스는 딱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방금 전

    자신이 소련군의 반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의 대답만 봐도 분

    명했다.

    ‘현재 남쪽으로 진격 중인 1기갑군과 17군을 회군시키고, 재편 중인 11군을

    돈강 일대의 동맹국 부대 후방에 전략 예비대로 배치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저희가 물러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대답은 참모로서는 올바른 것이었지만, 지휘관으로서는 아니었다.

    무릇 지휘관이라면 아무리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최선의 승리를 추구하고, 어

    떠한 상황에서든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해서 전황을 타개해야 하는 법.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파울루스는 딱 평균점 수준의 지휘관이었다.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는 승리하고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는 패배하는 지휘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내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위기

    가 닥치면 무너지는 지휘관.

    그래서 오늘 파울루스가 그를 찾아오기 전까지, 만슈타인은 그에 대해서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참 이상하단 말이야.’

    그러나 파울루스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소련군의 반격을 알아차렸고, 심지어

    이를 미리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6군을 시가지에서 빼놓은 상태였다.

    이는 무언가 확신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 녀석에게는 뭔가가 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과거 바르바로사 작전의 실패를 예견해내고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 전

    투를 승리로 이끈 것이 전부 우연이 아니라면, 그는 이번에도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주리라.

    그렇게 생각한 만슈타인은 이번 작전도 저 녀석의 그 ‘무언가’에 한번 걸어보

    기로 결심했다.

    “좋네. 어차피 자네의 6군이 스탈린그라드 일대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이번 블

    라우 작전은 전부 틀어지는 거나 다름없으니.

    한번 자네를 믿고 맡겨보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각하의 기대에 부응해 반드시 소련군의 반격을 막아내도록 하겠

    습니다.”

    파울루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경례한 뒤 돌아서서 집무실을 나섰다.

    만슈타인은 그런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군. 이제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6군부터 4기갑군, 그리고 11군까지.

    무려 40만에 달하는 대군이 파울루스의 지휘하에 놓이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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