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38화 (38/157)

38화. 스탈린그라드 (4)

“빌어먹을 놈들, 창문마다 기관총을 설치해 놨구만.”

세르게이 로마넨코 소위는 독일놈들의 야포가 만든 구덩이 속에 몸을 숨긴

채, 길 건너편에 위치한 스탈린그라드 중앙역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무시무시한 야포 세례에도 버티며 든든한 방어거점이 되어주었던 저

중앙역 청사는 현재 독일군의 손에 넘어가 완전히 요새화된 상태였다.

과연 우리 소대가 돌격한다고 해서 정말로 기차역을 탈환할 수 있을 것인가?

로마넨코가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소대원이 그에게 물었다.

“소대장 동지, 정말로 돌격합니까?”

갑작스러운 그 질문에, 로마넨코는 짐짓 싸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답했다.

“동무, 이건 군 지침으로 내려진 반격 명령이네. 설마 거역할 셈인가?”

“···물론 아닙니다, 동지.”

그의 힘없는 대답에, 로마넨코는 다른 이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소대원들

모두가 지치고 불안한 표정으로 로마넨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며칠 전에 내려온 군 지침에 따르면, 아군과 독일군 간의 교전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야포에 당하는 것이니 반격에 나서서 근접전을 펼치라고 했던가.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사실 지금 당면한 문제는 야포뿐만이 아

니었다.

지금은 병사들 모두가, 아니 장교인 로마넨코 자신마저도 이길 수 있다는 희

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백병전이라니, 이런 돌격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후···.”

로마넨코는 너무나도 튼튼하게 구축된 독일군의 진지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전황이 어렵다고 해서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는 법.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호각소리에 로마넨코 소위는 자리에서 일어나

권총을 발사하며 힘차게 외쳤다.

“전원! 돌격 앞으로! 우리의 기차역을 되찾자! 우라!!”

“와아아아!!”

“우라아!”

악인지 비명인지 모를 고함을 있는 힘껏 내지르며 병사들이 기차역을 향해 달

려나갔다.

로마넨코의 소대뿐만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누런 옷을 입은 병사들이 뛰어나

와 거리를 달렸다.

타다다다다당!!

“으아악!!”

“살려줘!”

이에 기차역에서는 기관총들이 불을 내뿜으며 반격에 나섰지만, 아군의 피해

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그동안의 치열한 전투 덕분에 거리가 온통 건물 잔해와 구덩이 등의 엄폐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예상외로 무사히 기차역까지 도착하자 로마넨코와 소대원들의 얼굴에

는 승리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싹트기 시작했다.

“좋았어! 안톤! 저 기관총 놈들한테 수류탄을 먹여줘라! 그 다음에 파파샤를

든 동무부터 돌입한다!”

“알겠습니다, 소대장 동지!”

방금 전 로마넨코에게 질문을 던졌던 안톤은 창문 밑으로 기어가서 수류탄을

슬쩍 집어넣었다.

그리고 요란한 폭음과 함께, 파파샤를 든 동무들이 먼지가 피어오르는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거나 먹어라!”

따다다다다다!!

귀가 따가운 특유의 총성과 함께 나치 놈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이에 로

마넨코도 토카레프 권총을 쏘며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렇게 얼마 동안이나 총을 쏴 갈겼을까.

옆구리에 차고 있던 탄알집 주머니가 가볍게 느껴질 무렵, 기차역 안에 청록

색 군복을 입은 사람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로마넨코는 잠시 동안 주변을 살피다 고개를 돌려 전우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소대원들은 비록 전신이 땀과 먼지에 찌들었지만,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

으로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마넨코는 그들의 눈빛을 담담하게 마주 바라보며 힘차게 외쳤다.

“우리의 승리다!”

*****

“각하, 시가지에서 소련군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는 보고입니다.”

“놈들이 반격에 나섰다고?”

“예. 현재 붉은 광장과 중앙역 등 몇몇 중요 거점이 놈들의 손에 넘어갔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슈미트 중장의 보고에 생각에 잠겼다.

‘반격이라···. 추이코프가 드디어 내 작전의 약점을 눈치챈 모양이군.’

사실 지금 우리 6군이 실행하고 있는 중(重)야포를 동원한 초토화 작전은 스

탈린그라드 같은 복잡한 시가지를 점령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이 양측간의 교전 거리가 가까운 상태에서 포격 지원을

했다간 아군 오사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중(重)야포 부대를 동원한 것은, 나는 시가지

를 점령하기 위한 끔찍한 소모전에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시가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자이들리츠 대장의 51군단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 중, 시가전 전담부대로 뽑힌 100경보병 사단, 71사단,

76사단을 비롯해 총 5개 사단이 투입된 상황입니다.”

“현재까지의 피해 상황은 어떤가?”

“자세한 수치는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아직 심각한 피해를 입은 부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슈미트 중장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좋네. 그럼 이제부터는 소련놈들이 접근하면 후퇴해서 거리를 벌리며 싸우도

록 하게.”

“후퇴··· 말입니까?”

내 말에 슈미트 중장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하긴, 그로서는 애써서 점령한

시가지를 도로 내주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겠지.

“그래, 설령 점령지를 내주더라도 놈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입히면서 아군의

전력은 보존하란 말이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시가지를 빨리 점령하는

것이 아닐세.”

사실, 지금도 시가지를 점령하고자 한다면 밀어붙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놈들의 반격에 잠깐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아군에게 유리

한 상황이었으니까.

회귀 전에도 그렇게 밀어붙인 결과, 결국에는 시가지의 90%를 점령하지 않았

던가?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피를 흘리면서 도시를 점령하는 것이 결국에는 아군의

손해였다는 점이다.

비록 시가지 전투에서 아군도 적군도 똑같이 많은 피를 흘렸지만, 아군은 그

것을 견딜 수 없었던 반면 소련놈들은 그 정도 피해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

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시가지 전투에서는 우리가 우세한 상황이지만, 지금쯤 소련놈들은 대규

모 반격 작전을 준비하고 있을 터다.

여기서 시가지에 병력을 더 투입했다간 결국 놈들의 반격에 당하고 만다.’

회귀 전, 우리 6군이 시가지 전투에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소련놈들은 총 100

만의 병력을 동원한 천왕성 작전으로 우리를 역포위해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총 30만에 달하는 6군 병사들이 포위망에 갇힌 채 추위와 굶

주림 속에서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했는가?

전생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로 15년 동안 고민한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천왕성 작전 이전에 스탈린그라드를 함락시키던가, 아니면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한 채로 병력을 온존하고 천왕성 작전을 먼저 막아야 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천왕성 작전을 먼저 막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스탈린그라드를 빨리 함락시키는 편이 좋았겠지만··· 이미 늦은

이상 어쩔 수 없지.’

하지만 후퇴를 한다고 해도 애써 점령한 시가지를 그냥 내줄 수는 없는 법.

소련놈들은 시가지를 되찾을 때도, 그리고 되찾은 후에도 합당한 대가를 치러

야 할 터였다.

나는 회의실에 앉아 있던 306포병 사령부 부장 막시밀리안 프레터 중장에게

말했다.

“프레터 중장, 구스타프를 준비하게. 놈들이 되찾았다는 스탈린그라드 중앙역

에 한발 날려주자고.”

*****

“전진!! 50m 앞으로!!”

“전진입니다!”

포병 관측 장교의 지시에 800mm 구경의 엄청난 거포가 특별 제작된 평행 이중

선로 위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기긱!!

그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나는 1350t의 쇳덩어리가 움직이면

서 내는 소음에 귀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소리가 굉장하군. 포의 구경이 80cm였던가?”

“예, 맞습니다. 비스마르크 급 전함의 주포가 38cm이니, 저희 육군의 것이 두

배 이상 큰 셈입니다.”

내 질문에 프레터 중장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는 동안, 구스타프 열차포는 곡선으로 된 철로를 따라 움직이며 포각을

천천히 조절했다. 그리고 50m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관측 장교가 수기를 흔

들며 신호를 보냈다.

“정지! 장전 개시! 탄종은 고폭탄!”

“장전 개시! 고폭탄!”

잠시 뒤, 열차 포의 후미 쪽에서 거대한 4.8t짜리 포탄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크레인을 통해 꼭대기에 올려진 포탄은 레일을 타고 약실 안으로 서

서히 들어갔다.

“각하, 이제 차에 탑승하시지요. 포가 발사되기 전에 충분히 떨어지셔야 합니

다.”

“···알겠네.”

나는 프레터 중장과 함께 차에 올라 반대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동

안 창문 밖에서는 32.5m에 달하는 거대한 주포가 하늘을 향해서 서서히 올라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수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우리가 내리자 저 멀리 굴뚝

처럼 우뚝 솟은 거포에서 엄청난 굉음과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그 폭음이 어찌나 큰지, 한참 떨어진 여기에서도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굉장하군.”

“각하, 저기를 한번 보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저 멀리, 지평선 끝에 위치한 도시에서는 뜨겁게 타오르는 불기둥이 거대한

버섯 모양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

“사령관 동지! 아군의 반격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현재 붉은 광장과 기차역을

탈환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독일놈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역시 그랬군. 괜히 야포에 겁먹어서 피하려고 하니까 오히려 당했던 게야.”

추이코프는 62군 참모장, 크릴로프 소장의 보고에 씨익 웃으며 생각했다.

‘아군의 피해가 심각하긴 하지만 어차피 증원은 계속해서 온다. 결국, 마지막

에 서 있는 놈이 승자가 되는 법이지.’

전쟁이란 결국 한번의 승리가 아니라 마지막의 승리에 의해서 승자가 정해지

는 법.

이런 식으로라도 놈들을 계속해서 밀어낸다면 결국에는 스탈린그라드를 온전

히 지켜낼 수 있으리라.

“좋소, 어제 새롭게 도착한 42특수여단을 모두 공세에 투입하시오! 지금의 이

기세 그대로 저 빌어먹을 나치 놈들을 모조리 시가지에서 몰아내는 거요!”

“알겠습니다!”

크릴로프 소장이 자리를 떠난 뒤, 추이코프는 창가에 서서 스탈린그라드 시가

지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한때, 활기가 넘치는 공업 도시였던 이곳은 독일놈들의 야포 세례에 폐허로

변해있었다.

주택가의 건물들은 모조리 지붕이 부숴져 내려앉아 있었고, 공업지구의 공장

들은 굴뚝이 무너진 채 화염과 연기만을 뿜어냈다.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라고···.’

하지만 이제 곧 저 독일놈들만 몰아내면 이 모습도 달라지리라.

추이코프가 그렇게 생각하며 도시의 전경을 바라볼 때였다.

콰아아앙!!

“······.”

도시 저편에서, 붉은 불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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