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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36화 (36/157)
  • 36화. 스탈린그라드 (2)

    스탈린그라드 방어선 앞에 도달한 뒤, 현장 시찰을 마치고 6군 사령부로 돌아

    온 나는 곧바로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그렇게 6군 예하의 군단장들이 모두 모인 뒤 한 사람이 더 회의실에 나타났다.

    그는 바로 4기갑군 사령관,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이었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호트와 악수를 나누었다.

    “오늘 이렇게 저희 6군 회의에 참석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는 것이 목적인 이상, 우리 4기갑군이 6

    군에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소.”

    “하하,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사실 군번으로 따지면 호트의 지휘에 내가 협조하는 것이 맞는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시가지 점령이라는 특성상 우리 6군이 작전을 주도하게 된 것이었다.

    “좋소, 그럼 일단 파울루스 장군의 견해를 한번 들어보고 싶군. 이제부터 어

    떤 식으로 공세를 시작할 생각이오?”

    “예, 우선 여기를 한번 봐주십시오.”

    현재 아군과 소련군의 배치 및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스탈린그라드 전투.png

    우선, 우리 6군과 4기갑군은 돈강을 건너 교두보를 마련하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 스탈린그라드까지는 약 40km의 거리가 남아 있었고, 이곳에는 방

    어진지와 3개 야전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트 장군께서도 아시겠지만, 스탈린그라드는 볼가강과 돈강이 가장 가까워

    지는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양측간의 최단 거리는 고작 50km에 불

    과합니다.”

    “그렇지. 게다가 그 50km 남짓한 작은 공간조차도 놈들이 파놓은 참호와 장애

    물로 가득하고 말이야.”

    나는 호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예,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군의 가장 강력한 장점인 기갑부대의 기동력

    과 돌파력을 제대로 활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만약 우리 기갑부대들이 저 좁은 공간을 어떻게든 활용해서 기동전을

    펼친다고 해도 놈들은 후퇴해서 도시로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고 말입니다.”

    “그렇지.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요? 되든 안 되든 기동포위전을 한번 시도해

    보겠소?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으시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호트는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호트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오히려 소련 놈들을 시가지 안으로 밀어 넣을 생각입니다.”

    “···놈들을 밀어 넣는다고? 나는 이해가 잘 안되는구려. 상황이 어렵더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야전에서 최대한 피해를 입히는 것이 맞지 않겠소?”

    사실 호트의 말은 타당했다.

    만약 지난번처럼 스탈린그라드 시가지를 하나하나 점령해나갈 생각이었다면,

    나도 그의 말대로 야전에서 승부를 걸어봤으리라.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걱정 마십시오, 각하. 저희는 시가지로 굳이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흠, 아무래도 도시를 포위하겠다는 생각이신 모양이군.”

    “예, 맞습니다.”

    내 대답에 호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는 것은 우리 6군의 역할이니, 그로서는 굳이

    간섭하지 않겠다는 거겠지.

    “좋소. 그럼 우리 4기갑군이 어떻게 해주면 좋겠소?”

    “여기, 북쪽의 철로 지대를 돌파해서 볼가강까지 스탈린그라드의 북쪽을 완전

    히 차단해 주십시오. 그다음 일은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알겠소이다.”

    자신의 예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어서 그런지, 호트는 내 요청을 흔쾌히 수

    락한 뒤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럼 이제 다음은 스탈린그라드 시가지 공략을 준비할 차례였다. 나는 옆에

    앉아있던 6군 참모장, 슈미트 중장에게 물었다.

    “자, 그럼 우리의 중(重)야포 부대는 어디까지 왔나?”

    *****

    “한스, 시동 걸어라!”

    “예!”

    하버 상사의 부름에, 포커를 하던 한스는 패를 내려놓고 재빨리 조종수 석으

    로 뛰어 올라갔다.

    “제기랄, 스트레이트였는데. 발터, 한스 패 까봐.”

    “···원 페어입니다.”

    “어쩐지 신나서 뛰어가더라니.”

    프란츠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카드를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차로

    향했다.

    그러나 그 전차는 낡아빠진 302호 3호 전차가 아니었다. 포탑 측면에 ‘104’라

    고 주기된 신형 4호 전차. 이것이 프란츠네가 새롭게 보급받은 전차였다.

    ‘봐도 봐도 멋지단 말이지.’

    늠름한 장포신의 4호 전차를 감상하던 프란츠는 고개를 들어 포탑의 해치에

    앉은 하버 상사를 바라보았다.

    “전차장님, 이번에는 어디로 갑니까?”

    “여기까지 왔으면 뻔하지. 당연히 스탈린그라드 아니겠냐.”

    “키예프, 모스크바에 이어서 이번에는 스탈린그라드입니까? 저희는 어째 격전

    지로만 불려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런 프란츠의 말에, 하버 상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답했다.

    “지난번 전투 이후 부대 재편할 때 네가 신형 전차 주는 데로 가자고 해서 여

    기로 끌려온 거잖냐. 그때 가만히 있었으면 아직 모스크바에 남아 있었을 거다.”

    “그래도 뭐··· 모스크바보다는 여기가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길 바래야지. 이제 그만 타라. 출발할 시간이다.”

    하버 상사의 말에 프란츠는 투덜거리면서 포수석에 앉았다.

    “역시 신형이 좋다니까.”

    스코프나 페달, 레버 등은 3호 전차와 거의 유사하지만 바닥의 바스켓부터 넉

    넉한 포수석의 공간까지, 모든 것이 전반적으로 좋아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신형 4호 전차의 진정한 매력은 그따위의 것들이 아니었다.

    “프란츠! 1시 방향, 거리 800에 T-34 두 대다. 격파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프란츠는 검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포탑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오른쪽으로 2

    도 정도··· 딱 좋군. 왼쪽 끝에 있는 T-34가 조준경의 삼각뿔 위에 올라왔다.

    ‘전차의 크기는··· 약 3 슈트리히. 상사님 말씀대로 대충 800m 정도인가.’

    거리 800에 목표는 T-34의 정면 장갑.

    예전 3호 전차의 60구경장 5cm 주포였다면 약점을 정확히 맞추더라도 관통을

    확신하기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신형 4호 전차의 48구경장 장포신 7.5cm 주포는 달랐다. 이 녀석은 이

    정도 거리라도 T-34의 전면 장갑을 여유롭게 관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약점사격을 할 필요가 없으면 딱히 어려울 것도 없지.’

    “발사!”

    쾅! 철컥!

    경쾌한 포성과 함께 하얀 빛이 정면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리고 잠시 뒤, 저 멀리 스코프 안에 놓인 T-34에서는 검은 전차 복장을 한

    사람들이 허겁지겁 뛰쳐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명중! 차탄 장전!”

    프란츠는 다시 포탑 레버를 살짝 당겼다. 엔진의 동력으로 구동되는 4호 전차

    의 포탑은 가벼운 손놀림만으로도 부드럽고 섬세하게 움직였다.

    ‘거리는··· 이제 750 정도인가.’

    이 정도 거리라면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재조준 없이 당겨도 되리라.

    “발사!”

    쾅!

    이쪽으로 달려오던 또 한 대의 T-34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사랑스러운 48구경장 7.5cm 주포가 이번에도 이반 놈들이 자랑하던 경사 장갑

    을 깔끔하게 관통해버린 것이다.

    “격파되었습니다!”

    “하하, 이 거리에서 저 망할 T-34 놈들을 관통하다니. 이놈은 제법 쓸만하군.”

    “쓸만한 게 아니라 끝내주는 거죠. 이 정도면 저놈들의 76mm 주포보다도 더

    나을 겁니다.”

    “좋아, 계속 전진한다! 볼가강에 도달할 때까지 멈추지 마라!”

    “예!”

    그렇게 두 대의 T-34를 흠집 하나 없이 가볍게 격파한 102호 전차는 다시 드

    넓은 벌판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8월 2일, 그렇게 계속 소련군을 밀어내며 진격해나가던 4기갑군은 드

    디어 스탈린그라드 북쪽의 볼가강에 도달했다.

    주코프와 예료멘코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카프카스로의 철도망이 끊겨버리

    는 순간이었다.

    *****

    이곳은 스탈린그라드 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유니버마그 백화점.

    한때는 소련에서 손에 꼽을 만큼 크고 아름다웠던 이 건물은 현재 스탈린그라

    드 전선군의 사령부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령관 동지, 62군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독일군의 압박이 너무 거세

    서 도저히 현재 위치를 사수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저희 64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상 독일군과 맞서는 것은 자살행위입니

    다. 시가지로 후퇴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십시오.”

    연달아 이어지는 암울한 보고에 예료멘코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자리에 주저앉

    았다.

    ‘젠장··· 역시 급파된 예비대로 야지에서 독일군과 맞서는 것은 무리였나.’

    그러나 예료멘코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야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마지막 철로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지막 이유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사령관 동지, 63군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독일군 전차부대에 방어선을 돌파당하였음. 놈들은 현재 볼가강 강변까지 진

    격한 상태이며, 그로 인해 스탈린그라드로 통하는 모든 통로가 차단되었음.

    이상입니다.”

    “후···.”

    예료멘코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지도를 힘없이 바라보았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8월.png

    카프카스로의 통로는 이미 끊어져 버렸고, 이제는 이곳 스탈린그라드조차도

    지켜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북쪽의 통로를 다시 연결할 것인가? 아니면 이 도시에 틀어박혀서 농성할 것

    인가?

    예료멘코가 고민이 잠겨 있을 때, 그의 앞에 놓여 있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

    했다.

    그 전화기는 바로 스타브카로부터의 직통 라인이었다.

    ‘빌어먹을···.’

    예료멘코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스탈린그라드 전선군 사령관, 예료멘코 상장입니다.”

    “예료멘코 동지, 소식은 이미 들었소. 스탈린그라드가 포위당했다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주코프의 말에 예료멘코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합니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군의 전력이 너무나도 부족했으니 말이야. 하

    지만 더 이상 밀리는 것은 곤란하오. 이제 서기장 동지께서도 거기를 눈여겨

    보기 시작하셨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도시만큼은 반드시 사수하겠습니다.”

    “그래야 할거요. 증원 병력은 지금도 끊임없이 보내고 있으니, 시가지만 어떻

    게든 사수해내시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전화가 끊어진 것을 확인한 예료멘코는 수화기를 천천히 내려놓은 뒤 입을 열

    었다.

    “지금 즉시 62군과 64군을 시가지 안으로 퇴각시키시오. ···추이코프 동지,

    아무래도 동지의 주장대로 시가전을 해야 할 것 같군.”

    예료멘코의 말에 추이코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좋소, 그럼 시가전의 지휘는 추이코프 동지에게 일임하겠소.”

    그리하여 8월 3일, 62군과 64군 예하의 소련군 약 30만 명이 스탈린그라드 시

    가지 안에 결집했다.

    그렇게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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